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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
1. 개요[편집]
1902년 출생한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열사이다.
2. 여담[편집]
- 원래 5만원권에 들어갈 인물로 유력하게 거론되었으나, "모진 고문으로 인해 얼굴이 퉁퉁 붓고 수심이 가득찬 얼굴이라 고문 받기 전 사진을 찾기 힘들어서"라는 이유로 결국 신사임당이 5만원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1] 도로명 주소로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생가길 18-1[2] 자료에 따라 9월 28일 설과 10월 12일 설이 존재한다.[3] 27세손.[4] 그도 역시 딸과 같은 독립운동가였으며, 유관순의 성격은 아버지에게 유전받았다.[5] 한때 유준석, 유관옥 등의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다.[6] 원래 모두 류씨가 맞으나, 유씨로 표기한 이유는 1921년(한글맞춤법의 역사 참고) 두음 법칙이 생기면서 편의상 류관순을 유관순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가 고유명사화 되어서 그렇다. 교과서에도, 대중적으로도 ‘류관순’보단 ‘유관순’이라는 이름이 훨씬 더 퍼져 있어서 이런 부분에 있어 혼란을 막기 위해 2014년부터 유관순으로 바뀌었다.[7] 1930년대 경성제국 여학생 평균 신장이 150cm였다고 한다. 평균보다는 약간 큰 셈이다.[8] 그러나 수감기록증에 애매한 글씨체로 쓰는 바람에 5척 0촌이 5척 6촌처럼 보이게 되었고 이로인해 유관순이 당대로서는 굉장히 체격이 큰 169.7cm인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9] 생전 최종학력은 이쪽이다.[10] 이화학당 개교 110주년을 맞아 심의를 거쳐 1996년 5월 30일에 명예졸업장을 추서받았다. 따라서 실질적 학력은 이쪽이며, 공식적으로 이화여고 동문임을 인증한 셈이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명예졸업이 졸업으로 인정되지 아니한다. (명예졸업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일종의 상훈으로 생각하면 된다.)[11] 어렸을 때는 천안 병천에 있는 매봉교회, 이화학당 시절에는 서울 정동의 정동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가족이 모두 개신교 집안이다.[12] 지금의 건국훈장 독립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