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히르의 반지

세상의 첫 빛이 태어나기 전, 별들의 노래가 아직 조율되지 않았던 까마득한 옛 시대에 하나의 반지가 빚어졌다. 아 반지는 고결한 맹세와 피로 물든 인연의 서약 속에서 깨어났다.

황금 왕관 아래에서 서로 얽히고 교차하는 두 마리 뱀의 형상은 푸르게 빛나는 보석을 눈으로 삼고, 왕관을 받드는 동시에 그것을 삼키려는 듯 서로 다른 운명을 담고 있었다. 왕위의 영광과 몰락의 그림자, 그 모든 운명의 갈림길이 이 반지 속에 깃들어 있었다.

그 기원은 바다 너머 신성한 서녘의 땅 발리노르에서 시작되었다. 별의 시대, 놀도르의 현명한 군주 핀로드는 아직 순수했던 세상의 광채를 담아 그 반지를 만들었고, 운명의 부름을 받아 가운데땅으로 향하였다.

별빛 아래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던 어느 날, 인간 바라히르는 핀로드의 목숨을 구하였고, 감사의 마음으로 핀로드는 영원히 지켜질 맹세를 그에게 건넸다. 바라히르와 그의 자손들이 어둠 속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자신과 후계자들이 기꺼이 목숨을 바쳐 도울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반지는 그 맹세의 증거로, 별들의 노래만큼이나 깊고도 엄숙한 운명의 씨앗이 되어, 인간과 요정 사이의 끊어지지 않을 우정의 증표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반지는 바라히르의 아들 베렌에게 계승되었고, 그 이후로 디오르와 엘윙, 그리고 바다를 건넌 엘로스에게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위대한 섬나라 누메노르의 왕가, 안두니에의 영주 가문을 거쳐 중간대륙의 아르노르 왕통까지 흘러갔다. 왕국이 몰락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혼돈 속에서도 반지는 줄곧 인간 왕가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징표로, 잊을 수 없는 약속을 품은 증거로 간직되었다. 그것을 손에 쥔 이는 단지 핏줄을 이은 자손이 아니라, 민족의 영광과 기억, 무거운 책임을 물려받은 자였다.

긴 세월이 흐르고 흘러 아르세다인의 마지막 왕 아르베두이가 몰락의 문턱에서 롯소스 족의 도움을 얻었을 때, 그는 감사의 표시로 반지를 그들에게 맡겼다. 그러나 운명의 물결은 아직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얼음의 바다가 왕을 삼켰으나, 그 아들 아라나르스는 이 반지 덕에 다시 정통의 상징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반지는 이렇게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언제나 진정한 계승자의 손으로 돌아왔다.

한편, 바다를 넘어 누메노르 왕가에서 분리된 안두니에의 영주 가문에는 엘렌딜의 조상 실마리엔이 있었다. 타르엘렌딜 왕의 장녀 실마리엔은 안두니에의 귀족 엘라탄과 결혼하여 반지를 가문의 보물로 보존하였다. 수천 년의 세월과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반지는 언제나 안두니에의 전통과 함께 전해졌으며, 마침내 엘렌딜의 먼 후손 아라고른에게 이르렀다.

그리고 모든 운명이 하나로 수렴하였을 때, 아라고른은 불사의 존재이며 그 어느 누구보다 사랑하는 이인 아르웬에게 반지를 건넸다. 이제 이 반지는 인간과 요정,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순간, 재건될 왕국과 이어질 고귀한 혈통을 상징하는 보물이되었으며,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신뢰와 희망이 담긴 운명의 증언이었다.

그라고 다시 세상이 흘렀다. 아라고른도 아르웬도 이 땅엔 이제 없지만 여전히 바라히르의 반지는 진정한 왕이 돌아와 다시금 세상을 바로 세울 날을 기다리며, 수많은 별빛 아래 조용히 빛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