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 朴時伯 | Park Si-baek | |
출생 | 1964년 11월 23일 (60세) |
본관 | 밀양 박씨 |
국적 | |
학력 |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경제학 / 학사) |
활동기간 | 1996년 ~ 현재 |
장르 | 시사만화, 역사만화 |
데뷔작 | 한겨레 <박시백의 그림세상> |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시사 만화가.
2. 생애[편집]
2.1. 만화 활동 전[편집]
1964년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면서 총학생회 신문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대학 4학년 때인 1988년에 광주 미국문화원 시한폭탄 테러사건에 참여하다 안내상이 자수하면서 같이 체포되어 옥살이를 한 바가 있다.
2.2. 만화 활동[편집]
이후 1996년 한겨레신문 만평담당자 모집에 응모해 당선되었고, 박재동으로부터 <한겨레그림판>을 넘겨받았다. 그러다가 1997년부터 만평 <한겨레그림판>을 <문화일보>에서 이적해 온 장봉군에게 넘긴 뒤 2001년 4월까지 한겨레신문에서 <박시백의 그림세상>을 연재했다.
진보적인 시야를 바탕으로 한 이슈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희화화하거나 패러디를 하는 보통 다른 시사만화들과 달리 그의 시사만화는 전체적으로 지면이 넓고 페이지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 또한 수필만화의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건의 전후관계 및 배경과 진행, 논평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 만화의 눈에 띄는 주 토픽은 이러하다. 한창 레임덕을 겪고 있었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 그리고 김영삼의 퇴임 이후 행적에 대한 매우 혹독한 비판. 국민의 정부 이후 확실히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데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 비판인데 당시 국민의 정부가 자민련과 연정하고 있다는 이유도 있고, 경제정책에서 진보성향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3]
또 국가보안법, 언론 등에 대한 비판도 약방 감초처럼 들어갔다. 국가보안법은 하루 빨리 없애야 하며 있어서도 안 될 법으로 보고 있고 동아일보, 조선일보에 대한 적대적인 시선이 눈에 띈다. 특히 조선일보는 아예 한국 최대의 킹메이커 '좃선'으로 등장한다. 전형적인 딴지일보식 패러디법.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을 때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구세주 포지션으로 매우 큰 기대를 보였다. 미래의 일을 알 수 없으니 깔 이유는 없지만 좀 우습게 되긴 했다. 후일 통진당 사태에서 NLPDR계를 까댔던 진중권이나 홍세화도 초기에 민노당 당원이었다. 당시 진보지식인들이나 진보단체에서 민노당에 대해 기대를 많이 걸었었긴 했다. 미약하기는 하지만 나름 지역적으로 기반(울산, 창원)도 가지기도 했고.
진보적인 시야를 바탕으로 한 이슈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희화화하거나 패러디를 하는 보통 다른 시사만화들과 달리 그의 시사만화는 전체적으로 지면이 넓고 페이지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 또한 수필만화의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건의 전후관계 및 배경과 진행, 논평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 만화의 눈에 띄는 주 토픽은 이러하다. 한창 레임덕을 겪고 있었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 그리고 김영삼의 퇴임 이후 행적에 대한 매우 혹독한 비판. 국민의 정부 이후 확실히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데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 비판인데 당시 국민의 정부가 자민련과 연정하고 있다는 이유도 있고, 경제정책에서 진보성향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3]
또 국가보안법, 언론 등에 대한 비판도 약방 감초처럼 들어갔다. 국가보안법은 하루 빨리 없애야 하며 있어서도 안 될 법으로 보고 있고 동아일보, 조선일보에 대한 적대적인 시선이 눈에 띈다. 특히 조선일보는 아예 한국 최대의 킹메이커 '좃선'으로 등장한다. 전형적인 딴지일보식 패러디법.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을 때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구세주 포지션으로 매우 큰 기대를 보였다. 미래의 일을 알 수 없으니 깔 이유는 없지만 좀 우습게 되긴 했다. 후일 통진당 사태에서 NLPDR계를 까댔던 진중권이나 홍세화도 초기에 민노당 당원이었다. 당시 진보지식인들이나 진보단체에서 민노당에 대해 기대를 많이 걸었었긴 했다. 미약하기는 하지만 나름 지역적으로 기반(울산, 창원)도 가지기도 했고.
2.2.1.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편집]
자세한 내용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문서 참고하십시오.
그렇게 시사만화를 그리며 지내던 도중, 1990년대 후반부터 TV 사극을 접하면서 조선사에 대해 흥미를 느껴 관련 역사책을 찾다 조선왕조실록에 관한 책이 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조선왕조실록을 그려보겠다는 일념 하에 2001년에 잘 다니던 한겨레를 그만둔 후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실록 국역CD를 구입하여 공부했고, 2003년에 콘티부터 그림과 채색까지 모두 혼자서 작업한 대하역사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권을 출간했다. 거의 주먹구구식으로 무작정 그리기 시작하여 100여 장을 그린 다음에 여러 출판사들을 찾아다녔고, 우연히 휴머니스트에 연이 닿아 바로 출판이 되었는데 작가 본인도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4]
야사에 의존하는 경향이 큰 기존 드라마나 만화와 달리 정사를 토대로 철저히 사실에 기초하여 그린다. 예외는 세조와 사육신 관련 부분. 단종실록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육신전 내용을 넣었다.
그래서 드라마나 만화 등을 통해 알려진 것과 다른 이미지를 가진 인물들이 만화 속에 등장한다. 예로 연산군의 갑자사화는 계획된 일이었으며, 정조는 대중에게 알려진 것보단 보수적인 군주였다는 것. 상당히 알찬 내용이라 조선사에 내공이 부족한 사학과 학생들도 이 책을 보면서 무난하게 조선사에 대한 전반적인 뼈대를 잡을 정도.
나무위키에 등재된 항목에서도 이 책의 영향을 받은 글들이 많다. 그냥 베껴오면서 자기 글인양 쓴 문서도 상당히 많다. 다만 자기 입장에서 필요해서 인용한 사례가 더 많은 것도 특징이다. 앞서 비판적이라고 언급한 세조 관련 부분도, 박시백은 재임시기의 세조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을 모두 다루고 있다. 스스로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본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또한 박시백의 시각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문서들도 종종 눈에 띈다. 초기 권에선 사육신의 야사를 제외하곤 야사를 적극적으로 인용하여 사실에 맞지 않다고 했고 후기 권에도 조병구 야사나 대원군 야사 등을 언급하여 정사와 비교하고 있다.
총 20권으로 기획되었으며, 19권이 흥선대원군, 20권이 고종-순종이라는 떡밥이 있었지만, 19권은 고종실록, 20권은 망국편으로 마무리되었다. 18권 작가 후기에서 '남은 두 권은 고종 편'이라고 밝혔으며 1910년 국권피탈까지 다룬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을 끝내면 대하역사만화가 아닌 그냥 창작극화를 그리고 싶다고 밝혔다.[5] 이 인터뷰는 2011년 3월 말에 행해진 인터뷰인데 여기 보면 박시백의 조선 역사나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제일 높이 평가하는 조선의 인물은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인듯하다. 그리고 인조 편이 제일 그리기 싫었다고 언급하면서 지도자로서는 빵점인 인물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위 인터뷰가 이루어진 이후에 이루어진 이 인터뷰에 의하면 세종과 이순신 외에 강한 인상을 받은 인물로 이성계와 정도전, 중종 때의 정광필을 꼽았으며, 정광필에 대해서는 '평전 같은 걸 쓸 수 있다면 한 번 써 보고 싶다'고까지 언급했다. 고우영 작품 전반이나 이두호 화백의 《임꺽정》을 재미있게 보았고 일본만화 중 《강철의 연금술사》와 《기생수》를 재미있게 보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결국은 고종실록에서 스카를 등장시킨 후에 참수당하게 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야사에 의존하는 경향이 큰 기존 드라마나 만화와 달리 정사를 토대로 철저히 사실에 기초하여 그린다. 예외는 세조와 사육신 관련 부분. 단종실록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육신전 내용을 넣었다.
그래서 드라마나 만화 등을 통해 알려진 것과 다른 이미지를 가진 인물들이 만화 속에 등장한다. 예로 연산군의 갑자사화는 계획된 일이었으며, 정조는 대중에게 알려진 것보단 보수적인 군주였다는 것. 상당히 알찬 내용이라 조선사에 내공이 부족한 사학과 학생들도 이 책을 보면서 무난하게 조선사에 대한 전반적인 뼈대를 잡을 정도.
나무위키에 등재된 항목에서도 이 책의 영향을 받은 글들이 많다. 그냥 베껴오면서 자기 글인양 쓴 문서도 상당히 많다. 다만 자기 입장에서 필요해서 인용한 사례가 더 많은 것도 특징이다. 앞서 비판적이라고 언급한 세조 관련 부분도, 박시백은 재임시기의 세조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을 모두 다루고 있다. 스스로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본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또한 박시백의 시각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문서들도 종종 눈에 띈다. 초기 권에선 사육신의 야사를 제외하곤 야사를 적극적으로 인용하여 사실에 맞지 않다고 했고 후기 권에도 조병구 야사나 대원군 야사 등을 언급하여 정사와 비교하고 있다.
총 20권으로 기획되었으며, 19권이 흥선대원군, 20권이 고종-순종이라는 떡밥이 있었지만, 19권은 고종실록, 20권은 망국편으로 마무리되었다. 18권 작가 후기에서 '남은 두 권은 고종 편'이라고 밝혔으며 1910년 국권피탈까지 다룬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을 끝내면 대하역사만화가 아닌 그냥 창작극화를 그리고 싶다고 밝혔다.[5] 이 인터뷰는 2011년 3월 말에 행해진 인터뷰인데 여기 보면 박시백의 조선 역사나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제일 높이 평가하는 조선의 인물은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인듯하다. 그리고 인조 편이 제일 그리기 싫었다고 언급하면서 지도자로서는 빵점인 인물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위 인터뷰가 이루어진 이후에 이루어진 이 인터뷰에 의하면 세종과 이순신 외에 강한 인상을 받은 인물로 이성계와 정도전, 중종 때의 정광필을 꼽았으며, 정광필에 대해서는 '평전 같은 걸 쓸 수 있다면 한 번 써 보고 싶다'고까지 언급했다. 고우영 작품 전반이나 이두호 화백의 《임꺽정》을 재미있게 보았고 일본만화 중 《강철의 연금술사》와 《기생수》를 재미있게 보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결국은 고종실록에서 스카를 등장시킨 후에 참수당하게 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3. 성향[편집]
3.1. NL 성향[편집]
당시 정권에 대한 비판, 과거사에 대한 입장 표명이야 그렇다 쳐도 제일 큰 문제는 역시 성향이다. 반미 만평과 비슷한 맥락으로 저자의 과거 운동권 이력과 본지의 성향, 북한 정권의 흉포함에 대해 잘 모르던 시대상을 감안하고 봐야겠지만 그래도 지금 보면 백무현 만평만큼이나 입이 쩍 벌린다.
북한의 고려연방제 수용을 안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겁쟁이짓이라고 한다. 또한, 북한을 대신해 미국의 오만함을 비판하고 민족적 차원에서 북한 편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남북관계는 북한보다 미국의 잘못이 크다고 주장한다.[6]
제일 황당한 부분으로 북한 인권에 대해 걱정하는 시선은 적대적 시선, 균열의 시선, 냉전주의자의 시선으로 허수아비 찌르기를 시전한다. 이 외에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5년에서 정치 성향을 드러낸다.
북한의 고려연방제 수용을 안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겁쟁이짓이라고 한다. 또한, 북한을 대신해 미국의 오만함을 비판하고 민족적 차원에서 북한 편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남북관계는 북한보다 미국의 잘못이 크다고 주장한다.[6]
제일 황당한 부분으로 북한 인권에 대해 걱정하는 시선은 적대적 시선, 균열의 시선, 냉전주의자의 시선으로 허수아비 찌르기를 시전한다. 이 외에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5년에서 정치 성향을 드러낸다.
3.2. 반미주의[편집]
연재 당시인 1999년부터 매향리사격장 사태, 노근리 양민학살 등의 이슈화로 특유의 오글거리는 반미가 눈에 띈다. NL성향이든 PD성향이든간에 미국에 부정적이었고, 더군다나 아직 색이 덜 빠졌을 때이니 자연스럽게 미국에 부정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긴하다. 강철서신을 쓴 김영환처럼 대놓고 전향을 한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으니.
1950년 이후 미국의 해외 침략사
- 1950 : 한국전쟁
- 1953: 이란의 모사디그 정권 전복
- 1954 : 과테말라 군사 개입
- 1958 : 중동 위기 선동, 대만 케모이 마스 섬 주변에서 무력 시위
- 1960 : U-2 첩보기 소련 영공 정찹, 콩고에서 유엔 군사작전 선동
- 1960 : 쿠바 카스트로 암살기도 (1960~1981)
- 1961 : 쿠바 피그만 침공, 베를린 위기 선동
- 1964 : 베트남 통킹만 무력 도발, 베트남 전쟁(1964~1972)
(중간생략)
- 1980 : 아프가니스탄 군사 개입 (1980~1984)
(중간생략)
- 1990 : 걸프전 (1990-1991)박시백의 그림세상 : 우리 시대의 자화상, 해오름, 2002, 34쪽
한국전쟁은 북한이 먼저 남한을 기습공격한 전쟁인데다가 김일성 밑에서 수령님 할뻔하다가 구해준 게 미군인데 그걸 해외침략이라고 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심지어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한 것도 소련이 아니라 미국의 해외침략에 분류하고 있다. 걸프전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선제 침공하여 병합해서 일어난 건데 미국의 해외침공이라고 서술하는건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불감증이라면서 일본군주둔과 동일시하며 조롱하는 만화도 그린다.
미군1: "21세기엔 중국이 우리의 최대 위협국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동북아에서의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고 우리의 이익을 지키위 해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에도 한반도에 계속 주둔할 것이다."
(효과음 - 두둥)
미군2:"..."
미군1: "어때 ? 한국쪽 반응은?"
미군2: "그게..."
(김대중 무반응. 옆에다가는 "김 대통령이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주한미군의 주둔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말한 바" 있다는 기사가 있음.)
미군2: "아무런 반응이 없어요."
미군1: "그으래? 통일후에도 떠나지 않겟다는데도 무반응이라..."
미군2: "혹시...불감증이 아닐까요? 늘 외국군대가 있다보니..."
미군1: "음...그럴수도 있겟군. 일본군부터 따지면 100년넘게 외국군대가 주둔해 왔으니까. 하여간... 정말 쉬운 나라란 말야 하하"
미군2: "킥킥"박시백의 그림세상 : 우리 시대의 자화상, 해오름, 2002, 15쪽
미군 주둔을 불감증이나 일본군처럼 점령을 위해 주둔했던 제국주의 군대와 동일시 한다는 점은 일본 극우 민족주의와 차이점이 없다. 그리고 김대중도 까고 있다.
지나가는 시민1: (미군을 보며) 악덕 장사꾼이다.
지니가는 시민2: 네?
지나가는 시민1: 쟤들말야 고물전투기를 억지로 떠넘기잖아.
지나가는 시민2: 맞아 F15K!박시백의 그림세상 : 우리 시대의 자화상, 해오름, 2002, 30쪽
F-15는 고물전투기라면서 억지로 떠넘겼다는 근거를 알 수 없는 주장을 해서 훗날 밀덕들에게도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강풀도 저거랑 관련된 만화를 그린적도 있었기도 하다. 굳이 따지자면 F-15 원판은 1970년대에 나온 기종이긴 하지만, 애초에 무기는 신뢰성과 성능만 확실하다면 몇십 년이고 쓸 수 있는 거고, 대한민국 공군이 운용하는 모델인 F-15K는 당시 최신 기술을 떡칠해서 사실상 원판과는 한참 떨어져 있을 정도로 개량된 모델이다. 애초에 이 정도급 전투기가 없어서 아직도 F-4를 주력으로 굴리는 나라들도 허다하다. 한국조차도 아직도 10여대 수준이지만 F-4를 운용하고 있으며 이미 더 상위기종인 F-16을 비롯한 기종이 주력인 튀르키예나 그리스를 비롯한 나라들도 주력은 아니라도 F-4 수십여대를 보조로 운용하고 있다.
4. 작품 목록[편집]
- 한겨레그림판 (1996~1997) - 이후 장봉군이 이어받음.
- 박시백의 그림세상 (1997~2001)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03~2013) - 조선왕조실록의 정사를 바탕으로 한 만화로 총 2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인물 사전 - 휴머니스트 편집부에서 엮은 조선 인물 열전이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연표 - 박시백이 만화를 그리면서 작성한 노트를 모아 연표 형식으로 묶은 책이다. 조선사를 공부할 때 상당한 도움이 되니 읽어 보는 것을 추천.
- 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완간된 후 진행된 팟캐스트에서 오간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전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 35년 (2018~2020) - 일제강점기를 그린 만화로 총 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 친일파 열전 - 35년 완간 후 친일파들을 다룬 만화이다.
- 박시백의 고려사 (2022~2023) - 전 5권 예정이다.
- 임진왜란, 조선엔 이순신이 있었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10권 선조실록 편과, 11권 광해군 일기에서 임진왜란 관련 이야기를 뽑아 만든 한 권짜리 특별판이다.[7]
5. 여담[편집]
- 경종-영조실록 편에 나온 패러디와 인터뷰를 보면 BIGBANG 태양의 팬으로 보인다.
- KBS1 역사저널 그날 50회에 패널로 출연했다. 그런데 토의 주제가 하필 이것이라...
[1] 인근의 옹포리, 협재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경찰청 차장과 경찰대학장을 지낸 박진우도 이 마을 출신이다.[2] #[3] 사실 IMF 시절이었기 때문에 IMF 극복과 경제의 빠른 정상화가 최우선이던 시절이었다.[4] 참고[5] #[6] 다만, 미국이 38선을 긋자고 먼저 주장한 것 등 이렇게 보는 시선도 꽤 있다.[7] 박시백은 작가의 말에서 편집본 출판에 대해 출판사의 제안을 처음 받았을 당시 선조실록에 임진왜란을 자세하게 썼으니 그걸 보는 게 낫지 않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세트 의주로 소비된 데다 '선조실록'하면 선조 임금에 관련된 이야기로만 생각할 수 있다는 출판사의 설득을 받아들여 편집본 출판에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