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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브루실로프 공세는 1916년 6월 4일부터 9월 20일까지 동부 전선에서 벌어진 전투로, 러시아 제국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상대로 감행한 대규모 공세였다. 이 공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동부 전선에서 연합군이 거둔 가장 큰 승리 중 하나로 평가되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사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16년 당시 서부 전선에서는 솜 전투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며, 연합군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이 공격을 감행할 필요가 있었다. 러시아군 총사령부는 여러 명의 장군들에게 공세 계획을 맡겼으며, 그중 알렉세이 브루실로프 장군이 가장 효과적인 공세 전략을 제안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대규모 돌격 방식이 아닌, 넓은 전선에서 다중 공격을 펼치는 전술을 구상하였으며, 이를 통해 적의 방어선을 여러 곳에서 동시에 압박하는 전략을 세웠다.

공세는 6월 4일 러시아군의 대규모 포격과 함께 시작되었다. 러시아군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방어하는 갈리치아 전선을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공격하였으며, 기습적인 전술을 통해 적군을 효과적으로 압박하였다. 초반 러시아군은 성공적으로 전선을 돌파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크게 후퇴시켰다. 전투가 진행될수록 러시아군은 리보프 방향으로 진격하며 수십만 명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포로로 잡았다.

브루실로프 공세는 초기에는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러시아군의 보급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점차 진격 속도가 느려졌다. 독일군은 이를 틈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지원하며 반격을 감행하였고, 결국 9월이 되면서 전선은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 공세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군사적으로 독일군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이 공세는 루마니아가 연합국 측에 참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군 역시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었고, 내부적으로 군사적,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면서 결국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되었다.

브루실로프 공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러시아군이 수행한 가장 성공적인 공세로 평가되며, 현대적인 기동전 전술이 활용된 사례로도 주목받는다. 하지만 러시아군의 보급 한계와 지휘 체계의 문제로 인해 장기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전쟁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