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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르비아 침공

1. 세르비아 침공[편집]

세르비아 침공은 1914년 7월 28일부터 12월 15일까지 진행된 군사 작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동시에 세르비아 왕국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전투는 사라예보 사건으로 촉발된 국제적 긴장의 결과로 발생했으며, 전쟁 초기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세르비아를 점령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해 암살되면서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냈고, 세르비아가 이를 거부하자 7월 28일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하며 침공을 개시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8월 초부터 세르비아를 향해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세르비아군은 전략적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며 저항하였다. 8월 12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드리나 강을 넘어 세르비아 영토로 진입하였으나, 8월 16일 세르비아군이 체르 전투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격퇴하며 초기 공세를 막아냈다.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이 거둔 최초의 승리였다.

이후 9월과 10월에도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를 다시 침공하려 했으나, 세르비아군의 효과적인 방어와 열악한 보급 상황으로 인해 실패하였다. 그러나 1915년 말, 독일과 불가리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지원하며 세르비아를 향한 새로운 공세를 감행하였다. 10월부터 독일군과 불가리아군이 협공을 펼치면서 세르비아군은 점점 밀리기 시작하였고, 12월 15일 결국 수도 베오그라드가 함락되면서 세르비아 침공은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동맹국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러나 세르비아군은 완전히 궤멸되지 않았으며, 병력을 후퇴시켜 그리스와 코르푸 섬으로 철수한 후 연합군의 지원을 받아 전쟁 후반기에 다시 반격을 준비하였다. 세르비아 침공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초기 전황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발칸 전선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상당한 병력을 소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