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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작사가, 작곡가와 가수를 겸하는 사람을 말한다[1]. 보통 자기가 부를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하는 가수들을 싱어송라이터라 부른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음악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고 자신의 음악적 성향에 잘 맞는 곡을 작곡하므로 명곡들을 많이 만들어낸다. 다만 실제로 작사, 작곡에 더해 편곡까지 스스로 하는 경우는 정말로 드물다. 대개 본인이 작사, 작곡한 곡을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 편곡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작사, 작곡, 편곡, 악기 연주, 믹싱, 프로듀싱까지 스스로 하는 아티스트도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 악기 연주에 레코딩, 믹싱에 프로듀싱까지 하는 싱어송라이터도 있다.
앨범아트의 경우 장범준 등과 같이 본인이 직접 디자인 하는 경우도 있다. 뮤직비디오 스토리의 경우 본인이 직접 작성하는 경우도 있는지는 확인불가.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지만 붙여서 쓰면 끊어 읽을 위치가 애매해져, 일부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싱-어-송-라이터(sing-a-song-writer)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선 작사 작곡 능력에 대한 평가를 제쳐두고 작사 작곡하는 가수라고 하면 좋게 보는 편이다. 또한 커리어 전체에 걸쳐서 송라이팅에 참여한 곡의 수가 소수인데도 싱어송라이터 취급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2]. 반면 미국, 유럽, 일본의 경우 인디 시장 자체가 저변이 꽤 넓고 인디씬에서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고 메이저 데뷔를 하는 케이스가 많다 보니 많은 가수들이 기본적인 작사, 작곡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서양권과 일본의 경우 가요계에서의 싱어송라이터의 비중이 매우 큰 편이다. 요네즈 켄시, 우타다 히카루, 호시노 겐이 대표적인 예. 실제로 일본 연예계에서 싱어송라이터들은 최상급의 대우를 받으며 인기도 많다. 일본 유명 싱어송라이터들의 작사 작곡 능력은 세계적으로 상당한 편으로 평가 받는다.
대신 이 동네에서는 '기본도 안 된 게 작곡이랍시고 허접한 거 가져오는' 케이스도 끼어 있다고 지적받기도 한다. 특히나 작사가, 작곡가, 편곡자의 구분이 뚜렷한 한국이나 일본 음악 시장과는 달리 구미권에서는 작사와 작곡을 구분하지 않고 "songwriting"이라고 부르는데, 가사 몇 자 고치는 것만으로도 크레딧에 songwriter로서 이름이 올라가기 때문에 곡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싱어송라이터 취급을 받는 경우도 끼어 있다. 커리어 초기의 저스틴 비버가 이런 식으로 곡 작업에 참여한 후 싱어송라이터라며 마케팅을 한 대표적인 예시이다.
사실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가려면 싱어송라이터로의 능력은 거의 필수라고 봐도 좋을 정도지만[3], 막상 데뷔부터 싱어송라이터인 경우는 간혹 보컬로의 능력은 좀 부족하고 음악적 지식, 센스, 미디어 전략에 탁월한 경우가 꽤 있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보컬 능력에 대한 컴플렉스가 강한 경우 역시 많다. 밴드 음악의 경우 리더 역할을 보컬이 아니라 기타리스트 등 다른 포지션이 맡는 경우들을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특히 인디즈도 이미 확고한 시장의 지위를 확보한 미국, 영국, 일본의 신인 싱어송라이터들은 가진 재능에 비해서 가창력이 좀 부족해서[4] 소속사에서 의도적으로 일찍부터 음악 작업에 참여시키는 케이스가 많다. 그래도 당연히 울 가수는 자기가 써서 노래하는 캐괴수임 형식으로 되며 이건 좋은 세일즈 포인트가 된다. 특히 일본 가요계는 가수들의 가창력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단점을 메꿀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들 위주로 가요계가 발전했다고 보는 이도 많다. 하지만 이는 일본어의 문제라고 보기 힘든 게 오페라나 성악에서의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태리어와 비슷하게 개음절 언어여서 부드러우며, 모음이 아,에,이,오,우 뿐이라서 밝은 느낌을 주는 데다가 목소리를 내지르기도 적합하다. 거기다가 유무성음으로 구별하는 언어인데다가 장단음 구분이 있기에.
하지만 역사에 남는 위대한 가수, 위대한 싱어송라이터들은 대부분 보컬로도 작곡가로도 대단한 업적을 남긴다. 단지 이런 가수들은 영미권에 치중되었고 싱어송라이터 중에서 이런 반열에 올라갈만한 경우 역시 영미권에 치중되었다. 한국의 경우 아이돌로 대표되는 기획형 가수가 많아지고, 기획형 가수가 아니더라도 작곡/편곡에 많으면 열 명도 넘는 사람이 달라붙는 게 일반적인 현재 상황에서는 보컬로 뛰어나다면 활동 초반에는 그쪽에 집중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사/작곡이 분업화/다인원화하는 것은 영미권 등의 해외 음악 시장도 마찬가지여서, 시간이 갈수록 평균적인 질은 올라갈지언정 위대한 싱어송라이터는 나오기 어려워질 듯하다.
앨범아트의 경우 장범준 등과 같이 본인이 직접 디자인 하는 경우도 있다. 뮤직비디오 스토리의 경우 본인이 직접 작성하는 경우도 있는지는 확인불가.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지만 붙여서 쓰면 끊어 읽을 위치가 애매해져, 일부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싱-어-송-라이터(sing-a-song-writer)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선 작사 작곡 능력에 대한 평가를 제쳐두고 작사 작곡하는 가수라고 하면 좋게 보는 편이다. 또한 커리어 전체에 걸쳐서 송라이팅에 참여한 곡의 수가 소수인데도 싱어송라이터 취급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2]. 반면 미국, 유럽, 일본의 경우 인디 시장 자체가 저변이 꽤 넓고 인디씬에서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고 메이저 데뷔를 하는 케이스가 많다 보니 많은 가수들이 기본적인 작사, 작곡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서양권과 일본의 경우 가요계에서의 싱어송라이터의 비중이 매우 큰 편이다. 요네즈 켄시, 우타다 히카루, 호시노 겐이 대표적인 예. 실제로 일본 연예계에서 싱어송라이터들은 최상급의 대우를 받으며 인기도 많다. 일본 유명 싱어송라이터들의 작사 작곡 능력은 세계적으로 상당한 편으로 평가 받는다.
대신 이 동네에서는 '기본도 안 된 게 작곡이랍시고 허접한 거 가져오는' 케이스도 끼어 있다고 지적받기도 한다. 특히나 작사가, 작곡가, 편곡자의 구분이 뚜렷한 한국이나 일본 음악 시장과는 달리 구미권에서는 작사와 작곡을 구분하지 않고 "songwriting"이라고 부르는데, 가사 몇 자 고치는 것만으로도 크레딧에 songwriter로서 이름이 올라가기 때문에 곡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싱어송라이터 취급을 받는 경우도 끼어 있다. 커리어 초기의 저스틴 비버가 이런 식으로 곡 작업에 참여한 후 싱어송라이터라며 마케팅을 한 대표적인 예시이다.
사실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가려면 싱어송라이터로의 능력은 거의 필수라고 봐도 좋을 정도지만[3], 막상 데뷔부터 싱어송라이터인 경우는 간혹 보컬로의 능력은 좀 부족하고 음악적 지식, 센스, 미디어 전략에 탁월한 경우가 꽤 있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보컬 능력에 대한 컴플렉스가 강한 경우 역시 많다. 밴드 음악의 경우 리더 역할을 보컬이 아니라 기타리스트 등 다른 포지션이 맡는 경우들을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특히 인디즈도 이미 확고한 시장의 지위를 확보한 미국, 영국, 일본의 신인 싱어송라이터들은 가진 재능에 비해서 가창력이 좀 부족해서[4] 소속사에서 의도적으로 일찍부터 음악 작업에 참여시키는 케이스가 많다. 그래도 당연히 울 가수는 자기가 써서 노래하는 캐괴수임 형식으로 되며 이건 좋은 세일즈 포인트가 된다. 특히 일본 가요계는 가수들의 가창력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단점을 메꿀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들 위주로 가요계가 발전했다고 보는 이도 많다. 하지만 이는 일본어의 문제라고 보기 힘든 게 오페라나 성악에서의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태리어와 비슷하게 개음절 언어여서 부드러우며, 모음이 아,에,이,오,우 뿐이라서 밝은 느낌을 주는 데다가 목소리를 내지르기도 적합하다. 거기다가 유무성음으로 구별하는 언어인데다가 장단음 구분이 있기에.
하지만 역사에 남는 위대한 가수, 위대한 싱어송라이터들은 대부분 보컬로도 작곡가로도 대단한 업적을 남긴다. 단지 이런 가수들은 영미권에 치중되었고 싱어송라이터 중에서 이런 반열에 올라갈만한 경우 역시 영미권에 치중되었다. 한국의 경우 아이돌로 대표되는 기획형 가수가 많아지고, 기획형 가수가 아니더라도 작곡/편곡에 많으면 열 명도 넘는 사람이 달라붙는 게 일반적인 현재 상황에서는 보컬로 뛰어나다면 활동 초반에는 그쪽에 집중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사/작곡이 분업화/다인원화하는 것은 영미권 등의 해외 음악 시장도 마찬가지여서, 시간이 갈수록 평균적인 질은 올라갈지언정 위대한 싱어송라이터는 나오기 어려워질 듯하다.
2. 싱어송라이터의 분류[편집]
국내의 싱어송라이터인 유영석은 국내의 싱어송라이터를 두가지로 분류했다.
주의할 것은, 원래 영어의 songwriter는 작사와 작곡을 아우르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한국이나 일본 음악 시장에서는 작사에 참여한 사람과 작곡에 참여한 사람을 구분해서 표기하지만, 영미권을 비롯한 많은 음악 시장에서는 작사 또는 작곡에만 참여해도 songwriter로 합쳐서 표기한다. 그 이유는 저작권료를 나눌 때 지분이 작사 50%, 작곡 50%인데 보통 작사나 작곡의 공동 작업자 수가 달라서 사람 수가 적은 쪽이 돈을 더 많이 가져간다. 그래서 참여한 작사, 작곡진을 전부 한꺼번에 같이 올려서 한 곡당 기여한 비중대로 저작권료를 배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데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HYBE의 방시혁이 총괄 프로듀싱하는 아티스트들은 songwriter를 합쳐서 표기하고 있다.
주의할 것은, 원래 영어의 songwriter는 작사와 작곡을 아우르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한국이나 일본 음악 시장에서는 작사에 참여한 사람과 작곡에 참여한 사람을 구분해서 표기하지만, 영미권을 비롯한 많은 음악 시장에서는 작사 또는 작곡에만 참여해도 songwriter로 합쳐서 표기한다. 그 이유는 저작권료를 나눌 때 지분이 작사 50%, 작곡 50%인데 보통 작사나 작곡의 공동 작업자 수가 달라서 사람 수가 적은 쪽이 돈을 더 많이 가져간다. 그래서 참여한 작사, 작곡진을 전부 한꺼번에 같이 올려서 한 곡당 기여한 비중대로 저작권료를 배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데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HYBE의 방시혁이 총괄 프로듀싱하는 아티스트들은 songwriter를 합쳐서 표기하고 있다.
2.1. 노래하는 작곡가[편집]
첫 번째는 작곡가로 출발해서 가수를 겸하게 된 경우. 유희열, 윤상, 노엘 갤러거, Sia 등이 이 경우다.
이 경우 보컬 능력이 비교적 평이한 경우가 많다. 즉 살짝 부족한 보컬로서의 가창력을 뛰어난 음악적 센스로 커버하는 경우. 윤상의 경우 고음이 안 올라가져서, 녹음 도중에 곡을 고치는 해프닝도 있었다. 자신의 정확한 음역대를 몰랐다고. 특히 유희열은 자유로 가요제에서 환관 창법에 너덜너덜한 가창력을 보여 멤버들과 파트너 재석에게 맹렬히 디스당했다.
좋은 예시로 영국의 작곡가인 노엘 갤러거가 있다. 노엘 갤러거가 있던 오아시스에는 이미 리암 갤러거라는 최고의 보컬리스트가 있었지만, 리암은 오아시스 초창기만 하더라도 공연 펑크가 잦았다. 이때 메인 보컬의 공석을 작곡가이기도 하고, 그 때문에 오아시스의 모든 곡을 부를 수 있었던 노엘이 대신 맡았다. 또한 리암은 곡을 가려서 불렀다. 어쿠스틱 곡들은 자신의 보컬을 따라올 수 없는 나약한 곡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인데, 곡을 썩혀놓을 수도 없었던 노엘은 B사이드에 자신의 어쿠스틱 셋을 넣기도 하였는데, 보컬인 리암의 이러한 특징들로 말미암아 본디 프론트맨이 아니었던 노엘이 자연스럽게 보컬로서 공식적인 무대들을 접하게 된다. 이후 노엘이 보컬을 맡은 2집의 Don't Look Back In Anger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사람들은 노엘을 자연스럽게 리암과 더불어 또 하나의 프론트맨으로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후 90년대를 지나 오아시스 후기가 될 수록 리암의 독특한 창법으로 목소리가 점점 맛이 가기 시작하자, 앨범이나 라이브에서 노엘이 보컬을 맡는 비중이 점점 늘어가면서 비중이 리암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하고, 이후 밴드가 공중분해된 이후 자신만의 솔로 밴드를 만들어서 작곡과 보컬을 둘 다 하고 있다.[5]
이 경우 보컬 능력이 비교적 평이한 경우가 많다. 즉 살짝 부족한 보컬로서의 가창력을 뛰어난 음악적 센스로 커버하는 경우. 윤상의 경우 고음이 안 올라가져서, 녹음 도중에 곡을 고치는 해프닝도 있었다. 자신의 정확한 음역대를 몰랐다고. 특히 유희열은 자유로 가요제에서 환관 창법에 너덜너덜한 가창력을 보여 멤버들과 파트너 재석에게 맹렬히 디스당했다.
좋은 예시로 영국의 작곡가인 노엘 갤러거가 있다. 노엘 갤러거가 있던 오아시스에는 이미 리암 갤러거라는 최고의 보컬리스트가 있었지만, 리암은 오아시스 초창기만 하더라도 공연 펑크가 잦았다. 이때 메인 보컬의 공석을 작곡가이기도 하고, 그 때문에 오아시스의 모든 곡을 부를 수 있었던 노엘이 대신 맡았다. 또한 리암은 곡을 가려서 불렀다. 어쿠스틱 곡들은 자신의 보컬을 따라올 수 없는 나약한 곡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인데, 곡을 썩혀놓을 수도 없었던 노엘은 B사이드에 자신의 어쿠스틱 셋을 넣기도 하였는데, 보컬인 리암의 이러한 특징들로 말미암아 본디 프론트맨이 아니었던 노엘이 자연스럽게 보컬로서 공식적인 무대들을 접하게 된다. 이후 노엘이 보컬을 맡은 2집의 Don't Look Back In Anger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사람들은 노엘을 자연스럽게 리암과 더불어 또 하나의 프론트맨으로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후 90년대를 지나 오아시스 후기가 될 수록 리암의 독특한 창법으로 목소리가 점점 맛이 가기 시작하자, 앨범이나 라이브에서 노엘이 보컬을 맡는 비중이 점점 늘어가면서 비중이 리암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하고, 이후 밴드가 공중분해된 이후 자신만의 솔로 밴드를 만들어서 작곡과 보컬을 둘 다 하고 있다.[5]
2.2. 작곡하는 가수[편집]
두 번째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작곡까지 하게 된 경우다.
이런 경우엔 본인이 작곡을 하고 편곡이나 작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곡하는 가수' 계열의 아티스트가 쓴 곡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노래하는 작곡가' 계열보다 음악적으로는 다소 단순하지만 반대로 가창에서의 난이도가 높은 곡이 많다는 것.
이런 경우엔 본인이 작곡을 하고 편곡이나 작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곡하는 가수' 계열의 아티스트가 쓴 곡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노래하는 작곡가' 계열보다 음악적으로는 다소 단순하지만 반대로 가창에서의 난이도가 높은 곡이 많다는 것.
2.3.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편집]
마지막은 가수 데뷔 후 처음부터 두 가지 모두 도맡았고 결과가 성공적인 경우다. 이 분야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위 예술가 싱어송라이터의 이미지에 가장 잘 들어맞는 듯.
3. 목록[편집]
자세한 내용은 분류:싱어송라이터 문서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분류: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문서 참고하십시오.
4. 여담[편집]
- 싱어송라이터 전공: 평생교육원 평생교육기관을 제외한 싱어송라이터 전공이 개설된 대학교는 극히 적으며, 입학 정원부터 모집하는 유명대학교로는 20년 기준 (ㄱ~ㅎ순) 백석예술대학교 단국대학교(천안), 동아방송예술대학교, 백제예술대학교, 서경대학교, 호원대학교 정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