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아나니 사건은 제193대 교황인 보니파시오 8세가 자신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한 콜론나 가문의 생존자 중 하나였던 시욘나 콜론나에게 뺨을 맞은 사건으로, 이 사건은 아나니의 뺨 때리기(schiaffo di Anagni / Anagni slap)로 불리게 되었다.
2. 전개[편집]
보니파시오 8세는 프랑스 왕국의 필리프 4세와 성직자 과세를 두고 대립했는데, 1303년 9월 7일 아나니에 머물던 중 첼레스티노를 지지하던 콜론나 가문과 프랑스 군대의 습격을 받았다. 당대의 로마에서 콜론나 가문과 보니파시오 8세가 속했던 카이나티 가문은 적대 관계였다. 양 가문 모두 교황이 되어 부와 권력을 얻으려고 애를 썼고, 이를 위해 이탈리아 외부의 세력까지 끌어왔다. 교황권의 약화를 노리던 필리프 4세의 입장에서는 떡이 굴러들어온 격이었다.
이때 프랑스의 재상이었던 기욤 드 노가레와 콜론나 가문의 가주였던 시욘나 콜론나는 갑주를 입고, 무장한 병사들을 대동한 채 교황의 알현실로 와서는 보니파시오 8세를 모욕하고 난폭한 행동을 하며, 필리프 4세의 명령으로 보니파시오 8세에게 당장 사임하라고 협박했다. 이에 보니파시오 8세가 격분하여
이때 프랑스의 재상이었던 기욤 드 노가레와 콜론나 가문의 가주였던 시욘나 콜론나는 갑주를 입고, 무장한 병사들을 대동한 채 교황의 알현실로 와서는 보니파시오 8세를 모욕하고 난폭한 행동을 하며, 필리프 4세의 명령으로 보니파시오 8세에게 당장 사임하라고 협박했다. 이에 보니파시오 8세가 격분하여
차라리 날 죽이라
고 외치며 강력히 거부하자 안 그래도 원한이 맺힌 데다가 화까지 치민 시욘나 콜론나가 끼고 있던 장갑을 빼어 교황의 뺨을 후려쳤다. 이후 보니파시오 8세는 프랑스 병사들에게 얻어 맞으며 감금당했다고 한다. 교황의 곁에 있던 성직자들도 두들겨 맞았고, 교황과 같이 감금당했으며 교회의 보물들까지 빼앗겼다. 이는 14세기 교황권의 쇠퇴를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이다.
당시 보니파시오 8세의 나이는 73세였는데, 노구의 몸으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은 탓에 3일 후, 로마 시민들에 의해 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1개월 후에 사망했다. 이를 두고 당시
당시 보니파시오 8세의 나이는 73세였는데, 노구의 몸으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은 탓에 3일 후, 로마 시민들에 의해 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1개월 후에 사망했다. 이를 두고 당시
보니파시오 8세는 여우처럼 교황의 지위에 올라 사자처럼 지배하고, 개같이 죽었다.
라는 말이 돌았다.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교황이지만 교황청의 독립을 위해 세속 군주들, 특히 필리프 4세와 대립했던 마지막 교황이기도 하다. 그의 사후 교황권은 더욱 쇠퇴하며, 결국 1309년 아비뇽 유수가 일어나게 되었다.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교황이지만 교황청의 독립을 위해 세속 군주들, 특히 필리프 4세와 대립했던 마지막 교황이기도 하다. 그의 사후 교황권은 더욱 쇠퇴하며, 결국 1309년 아비뇽 유수가 일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