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 개요[편집]
아바스 왕조 혹은 아바스 칼리파국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집안에서 분기한 계통이 세운 칼리파 국가로, 이슬람 제국의 세 번째 정통 계승 체제로 평가된다. 무함마드의 삼촌인 압바스 이븐 압둘 무탈립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세운 이 왕조는, 8세기 중반 호라산 지역에서 시작된 대규모 혁명 운동을 통해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등장하였다. 새로 수립된 정권은 바그다드를 새 수도로 정하고, 정치적 권력뿐 아니라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로서도 세계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바그다드는 아바스 시기에 이르러 단순한 행정 수도를 넘어, 학문과 기술, 예술이 융성한 문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이 도시는 넓은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학자, 번역가, 과학자, 시인들이 교류하는 공간이었으며, 고대 지식을 보존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지혜의 집'이라 불리는 기관은 이러한 흐름의 상징으로,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등 다양한 언어의 지식이 아랍어로 번역되어 새로운 학문 체계로 재정립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아바스 왕조는 우마이야 체제와 달리 초기에 비아랍계 무슬림, 특히 이란계 무슬림을 포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들은 행정 조직 속으로 대거 편입되어 관료 체계를 구성하였고, 그 중에서도 바르마크 일가는 제국의 행정 운영을 실제로 담당한 대표적 인물들로 평가된다. 이러한 포용 정책은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아우르는 제국 운영을 가능하게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아랍 중심주의가 강화되고 비아랍계 구성원은 점차 소외되기 시작하였다.
정치적 측면에서 아바스 칼리파국은 점차 독립성과 통제력을 상실해갔다. 1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바그다드는 부와이흐 왕조에 의해 장악되었고, 이어 셀주크 세력에 의해 군사적·행정적 주도권을 빼앗겼다. 이 시기 칼리파는 종교적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로 남았을 뿐, 실질적 통치 기능은 외부 세력의 손에 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세기에는 잠시나마 정치적 회복을 시도하며 메소포타미아와 주변 지역에서 영향력을 다시 확보하는 데 성공하기도 하였다.
아바스 칼리파국의 종말은 13세기 중엽에 찾아왔다. 몽골 제국의 군대가 서방으로 진출하던 과정에서 1258년 바그다드를 공격하였고, 도시를 방어하던 칼리파 알무스타심은 저항하지 못한 채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학문과 문명이 융성하던 도시의 몰락을 가져왔으며, 동시에 아바스 칼리파국의 실질적인 종결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아바스 왕조는 그 직계 계보가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다. 바그다드 함락 이후, 방계 후손이 이집트로 망명하여 맘루크 술탄국의 지원 아래 종교적 권위를 지닌 칼리파로 다시 즉위하였다. 이 칼리파는 실권 없는 상징적 존재로 남았으나, 맘루크 체제 아래에서 1516년까지 명맥을 이어갔다. 끝내 1517년,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마지막 칼리파 알무타왁킬 3세로부터 칼리파 직위가 이양되었고, 오랜 역사 속 아바스 왕조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바그다드는 아바스 시기에 이르러 단순한 행정 수도를 넘어, 학문과 기술, 예술이 융성한 문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이 도시는 넓은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학자, 번역가, 과학자, 시인들이 교류하는 공간이었으며, 고대 지식을 보존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지혜의 집'이라 불리는 기관은 이러한 흐름의 상징으로,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등 다양한 언어의 지식이 아랍어로 번역되어 새로운 학문 체계로 재정립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아바스 왕조는 우마이야 체제와 달리 초기에 비아랍계 무슬림, 특히 이란계 무슬림을 포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들은 행정 조직 속으로 대거 편입되어 관료 체계를 구성하였고, 그 중에서도 바르마크 일가는 제국의 행정 운영을 실제로 담당한 대표적 인물들로 평가된다. 이러한 포용 정책은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아우르는 제국 운영을 가능하게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아랍 중심주의가 강화되고 비아랍계 구성원은 점차 소외되기 시작하였다.
정치적 측면에서 아바스 칼리파국은 점차 독립성과 통제력을 상실해갔다. 1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바그다드는 부와이흐 왕조에 의해 장악되었고, 이어 셀주크 세력에 의해 군사적·행정적 주도권을 빼앗겼다. 이 시기 칼리파는 종교적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로 남았을 뿐, 실질적 통치 기능은 외부 세력의 손에 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세기에는 잠시나마 정치적 회복을 시도하며 메소포타미아와 주변 지역에서 영향력을 다시 확보하는 데 성공하기도 하였다.
아바스 칼리파국의 종말은 13세기 중엽에 찾아왔다. 몽골 제국의 군대가 서방으로 진출하던 과정에서 1258년 바그다드를 공격하였고, 도시를 방어하던 칼리파 알무스타심은 저항하지 못한 채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학문과 문명이 융성하던 도시의 몰락을 가져왔으며, 동시에 아바스 칼리파국의 실질적인 종결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아바스 왕조는 그 직계 계보가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다. 바그다드 함락 이후, 방계 후손이 이집트로 망명하여 맘루크 술탄국의 지원 아래 종교적 권위를 지닌 칼리파로 다시 즉위하였다. 이 칼리파는 실권 없는 상징적 존재로 남았으나, 맘루크 체제 아래에서 1516년까지 명맥을 이어갔다. 끝내 1517년,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마지막 칼리파 알무타왁킬 3세로부터 칼리파 직위가 이양되었고, 오랜 역사 속 아바스 왕조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