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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 22대 왕에 대한 내용은 정조(조선)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2007년~2008년에 방영된 조선 22대 국왕 정조를 다룬 MBC 사극.
2. 줄거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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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4회[편집]
1762년(영조 38년, 임오년), 뒤주에 갇힌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기 위해 어린 정조 이산은 시민당으로 향한다. 그러던 와중에 생각시 성송연, 어린 내관 박대수를 만나게 된다. 사도세자를 만나 영조에게 그림을 전해달란 부탁을 받은 세 사람은 그림을 전하기 위해 궁 밖으로 가서 영조를 만나려 하지만 결국 사도세자는 죽고 만다.[1]
2.2. 5~8회[편집]
9년 후 1771년(영조 47년), 이산은 노론 세력들의 음해에 맞서 겨우 겨우 세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편, 어린 시절 이산을 돕다가 궁에서 쫓겨난 성송연(한지민)은 도화서 다모가 되고, 박대수는 무과를 준비하며 다시 이산을 만날 날만 기다리고 있다. 정후겸은 청국에 보낼 조공품 백우포를 훔쳐 이산을 곤경에 빠트리지만 성송연이 황우포를 호분으로 염색하는 아이디어를 내 해결한다. 이 일로 이산과 성송연, 박대수가 재회하게 된다.
2.3. 11~32회[편집]
이후 이산은 책사 홍국영(한상진) 등의 도움으로 노론 세력들의 음해를 조금씩 이겨낸다. 박대수는 무과에 급제하고, 서장보, 강석기 등과 함께 세자익위사가 되어 이산을 지킨다. 한편, 이산과 성송연의 사이가 깊어져가는 것을 알게 된 혜경궁 홍씨(견미리)는 성송연을 청국으로 보내버린다. 이 일로 이산과 성송연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헤어지게 된다.
2.4. 33회 ~ 47회[편집]
5년 후 1776년(정조 원년), 성송연은 우여곡절 끝에 조선으로 돌아와 도화서 화원으로 성장한다. 이산은 노론 세력들에 의해 궁지에 몰리지만 결국 온갖 음해를 이겨내고 보위에 오른다. 영조는 승하 전, 사도세자의 그림 속에 숨겨진 편지를 읽고 후회와 미안함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하옥된 노론 일파 중 이태석은 고금도에 유배 후 사사, 오인철은 강화도에 유배 후 사사, 홍인한은 여산에 유배 후 사사, 정후겸은 함경도 경원에 유배 후 사사하고, 김귀주는 흑산도에 유배, 화완옹주는 폐서인 후 유배 및 위리안치(圍籬安置)당한다.
한편 자살을 기도했던 정순왕후는 편전에 찾아와 정조에게 충복이 되겠다 선언하고, 그 이유를 묻는 최석주에게 '한번 죽어봤더니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걸 알았다. 이제 살기 위해서 금상의 충복이 되어야 한다면 기꺼이 그리 하겠다'라고 말한다. 한편 홍국영은 정순왕후가 정치로 정조에게 맞서려 함을 파악하고 정조에게도 '정순왕후가 정치로 공격하려 하니 전하께서도 정치로 맞서시라'고 충언하며 정순왕후에 대한 처벌을 보류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하옥된 노론 일파 중 이태석은 고금도에 유배 후 사사, 오인철은 강화도에 유배 후 사사, 홍인한은 여산에 유배 후 사사, 정후겸은 함경도 경원에 유배 후 사사하고, 김귀주는 흑산도에 유배, 화완옹주는 폐서인 후 유배 및 위리안치(圍籬安置)당한다.
한편 자살을 기도했던 정순왕후는 편전에 찾아와 정조에게 충복이 되겠다 선언하고, 그 이유를 묻는 최석주에게 '한번 죽어봤더니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걸 알았다. 이제 살기 위해서 금상의 충복이 되어야 한다면 기꺼이 그리 하겠다'라고 말한다. 한편 홍국영은 정순왕후가 정치로 정조에게 맞서려 함을 파악하고 정조에게도 '정순왕후가 정치로 공격하려 하니 전하께서도 정치로 맞서시라'고 충언하며 정순왕후에 대한 처벌을 보류할 것을 제안한다.
2.5. 48~61회[편집]
이산은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과 함께 개혁정치를 펴나간다. 효의왕후는 송연에게 입궐에 대한 의중을 조심스럽게 떠보는 한편 홍국영은 자신의 누이를 혜경궁 홍씨의 며느리로 천거한다. 궐에 들어오라는 효의의 제안을 받고 고민에 빠지는 송연. 그런 송연에게 속마음을 내비치는 대수를 보며 송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2.6. 62~77회[편집]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산과 성송연이 맺어진다. 믿었던 홍국영이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중전을 암살하려는 모의를 꾸몄다가 발각되어 모든 권력을 잃고 귀양을 갔다 사망한다. 마침내 혜경궁 홍씨에게 인정받은 성송연이 낳은 문효세자가 홍역으로 요절하고, 성송연은 둘째 임신 중 장결병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최석주와 민주식, 그리고 정순왕후가 개입한 노론 최후의 반란도 진압되고, 14년 후, 이산 역시 죽음을 맞이한다. 그후 아들 순조가 즉위한다.
[1] 여담으로 실제역사에선 1762년 사도세자가 사망한 후 홍봉한의 집의 청지기였던 성윤우의 딸인 성덕임(의빈 성씨)을 혜경궁 홍씨가 1762년 성덕임을 궁녀로 들이고 양녀처럼 기른걸로 보아 실제 첫만남이 1762년으로 동일할수도 있다. 또한 정조가 15살때 후궁을 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곧바로 승은 내린걸로 보아 실제로도 첫사랑일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