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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69900_51940_5538.jpg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의 외관
파일:다운로드장경판전 구조.gif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외부의 구조
파일:20160110CNT00000850_M.jpg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내부
1. 개요2. 건립3. 소실 위기4. 구조와 팔만대장경을 보호하는 과학적 원리5. 의의6. 기타

1. 개요[편집]

장경판전(藏經板殿)정식명칭: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유네스코 명칭:해인사 장경판전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조선 전기에 서고이다.
또한,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도서관 중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다.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국보 제52호이다.

2. 건립[편집]

처음에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며 보관되었던 팔만대장경은, 강화도 선원사라는 곳에 고려 시대와 조선 단종때까지 보관되었다.
조선 초에 이르어서야 팔만대장경이 해인사로 오게되었고, 장경판전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장경판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때는 세조 3년(1457)으로 추정된다.
그 후, 정희황후가 1481년(성종 12년)에 추가 증축하였고, 완성된 시기는 성종 19년(1488)으로 추정한다.
이후 1622년(광해군 14년),1624년(인조 2년)때에 보수공사 했으며, 전체적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된 때는 15세기 세조에서 성종 대를 거치며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3. 소실 위기[편집]

6.25 전쟁 때 지리산 일대로 들어가 은둔한 빨치산들을 소탕하기 위해 그 일대를 폭격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은 김영환 당시 공군 대령이 폭격지점이 해인사임을 인지, 폭격금지 명령을 내리고 항공기에 달린 기관총으로 빨치산들을 위협해 소탕하는데 성공했다.
만약 그때 폭격명령을 받아들였다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당시 고려의 과학기술과 지식들을 증명해주는 해인사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을 모두 지워버렸을수도 있다.
여담으로 2010년에 돌아가신 김영환 장군을 대신해 아들 김정기씨가 문화재청에서 금관문화훈장을 대신 수여했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이 왜 폭격명령에 불복종했냐고 질문하자, "미군이 일본문화의 중심인 교토를 전쟁 때 지켜줬듯이, 팔만대장경 역시 지켜야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것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해인사에서는 매년 6월 故 김영환 장군의 추모제가 열린다고 한다.

4. 구조와 팔만대장경을 보호하는 과학적 원리[편집]

길이는 61m,폭은 9m이다.
건물의 위치는, 산을 등지고 서남향으로 배치해 습기가 많은 동남풍을 차단한다. 동시에 큰 창을 내여 일조량을 확보한다.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 건물의 남쪽은 아래쪽 창문이 약1.5배 , 북쪽은 위쪽 창문 약4.6배 더 크다. 이러면 바람이 건물 내부를 돌며 공기를 순환시키게 된다.
또 장경판전의 바닥에는 횟가루,숯,소금을 차례로 깔았다. 이러면 장마철에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할 때는 습기를 내보내 적절한 습도를 유지한다.
그외에 열전도율이 낮은 진흙 기와와 빠른 배수를 위한 넓은 도랑을 설치하는 등 오직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만을 위한 건물이었다.

5. 의의[편집]

자연과학의 원리가 응축된, 현대 건축기술보다 뛰어난 건물이다. 오히려 팔만대장경보다 12년 앞선 1995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처럼 세계 유일의 목판 보존용 건축물로서 그 가치가 엄청나고 현대의 기술보다 더 뛰어나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6. 기타[편집]

민간인 통제 구역이다. 하도 기독교 광신도들의 방화 시도와 무당들이 무속신앙적인 이유들로 불타는 부적을 창살 안으로 던져버리는 경우가 있어 아예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한다. 또 조선 시대때 여러차례 해인사에 화재가 발생한 경우도 있어 해인사에서는 자체적으로 소방차를 배치해놓고 있으며, 승려들 수시로 화재 대비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숭례문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네이버의 데이터 센터 각은 장견판전의 설계를 크게 반영하였다.
3D모델이 존재한다.https://skfb.ly/owUF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