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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respectability politics
사회적 약자나 개개인이 주류 사회의 입맛대로, 존중 받을 만한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는 말의 진짜 의미도 사실은 이것을 돌려 말하는 완곡표현이다. 언론에서 말하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넓은 부류의 사람들이 포함된다.[1]
사회적 약자나 개개인이 주류 사회의 입맛대로, 존중 받을 만한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는 말의 진짜 의미도 사실은 이것을 돌려 말하는 완곡표현이다. 언론에서 말하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넓은 부류의 사람들이 포함된다.[1]
2. 문제점[편집]
존경성 정치가 흔히 주장하는 래퍼토리 중 하나는 사회는 관대하지 않으니 살아가다가 불만이 있다면 직접적으로 항의를 하거나 저항하기보다 그럴 시간에 본인의 힘과 능력을 길러서 출세를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근본적인 차별을 없애기 힘들다 왜냐하면 설령 억울해서 출세한 사람들이 있어도, 우리는 성공했는데 왜 너내는 성공하지 못하냐? 의지와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라는 식으로 자신들이 당했던 부당함을 후대에 다시 되물림 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즉 사회적 소수자는 왠만해서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어렵고 집단에서 사회적으로 인정해줄 만한 행동을 해야지만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2] 또한 폭력 피해자가 속해있는 집단의 편견이나 선입견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면 존중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은 결과 라며 책임전가하는 것이 있다.[3]
3. 차별적인 사회구조의 옹호[편집]
실제로도 개천용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이 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한체 살아가고, 이렇게 되어버리면 소수자 차별적인 사회 구조는 바뀌지 않고 유지된다. 건강한 사회라면 이러한 소수자 인권과 차별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이어야 하겠지만, 존경성 정치가 이미 내재화된 사람들은 그런 걸 신경쓸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 사실 이런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약자가 무시당하고 소외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이걸 누구나 경험한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을 해야지만 스스로의 마음에 위안을 얻을 수 있어서이다.
기득권층은 옆자리에 얼굴마담 자리 하나를 마련해두고, 수많은 사람에게 말한다.
"당신들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
모두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우리는 리더가(비록 부패했을지라도) 능력이 있어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믿는다. 때문에 소수자라도 능력만 있으면, 노력만 하면, 언젠가는 사회가 알아봐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누구도 사회체제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해 모두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쌓는다
그러나 특별한 재능이 없는 평범한 약자들은 어떨까? 위 히든 피겨스의 경우, 백인 남성이라면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적당히 교육 받고, 적당한 회사에 취직하고, 운이 좋으면 NASA에 취업할 수도 있다. 반면 평범한(캐서린 정도의 재능이 없거나, 있어도 그 사실을 몰랐을) 흑인 여성은 청소부나 웨이트리스 자리도 운이 좋아야 구할 수 있을 거다. 그 직업들이 하찮다는 게 아니다. 급여부터 모든 조건이 NASA 같진 않다는 말이다.
즉 흑인 치과의사가 (이빨을 발명하지 않아도) 백인 치과의사와 같은 동네에 사는게 이상하지 않고,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처럼 진작에 엔지니어가 됐어야 차별이 없는 것인데, 존경성 정치는 '흑인도 노력하면 치과의사가 될 수 있다!', '더욱 성공하면 백인 치과의사랑 같은 동네에 살 수 있다!'는 식으로 차별적인 사회구조를 호도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아래의 '소수자 권리 증진으로 이어지지 않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기득권층은 옆자리에 얼굴마담 자리 하나를 마련해두고, 수많은 사람에게 말한다.
"당신들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
모두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우리는 리더가(비록 부패했을지라도) 능력이 있어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믿는다. 때문에 소수자라도 능력만 있으면, 노력만 하면, 언젠가는 사회가 알아봐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누구도 사회체제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해 모두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쌓는다
그러나 특별한 재능이 없는 평범한 약자들은 어떨까? 위 히든 피겨스의 경우, 백인 남성이라면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적당히 교육 받고, 적당한 회사에 취직하고, 운이 좋으면 NASA에 취업할 수도 있다. 반면 평범한(캐서린 정도의 재능이 없거나, 있어도 그 사실을 몰랐을) 흑인 여성은 청소부나 웨이트리스 자리도 운이 좋아야 구할 수 있을 거다. 그 직업들이 하찮다는 게 아니다. 급여부터 모든 조건이 NASA 같진 않다는 말이다.
즉 흑인 치과의사가 (이빨을 발명하지 않아도) 백인 치과의사와 같은 동네에 사는게 이상하지 않고,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처럼 진작에 엔지니어가 됐어야 차별이 없는 것인데, 존경성 정치는 '흑인도 노력하면 치과의사가 될 수 있다!', '더욱 성공하면 백인 치과의사랑 같은 동네에 살 수 있다!'는 식으로 차별적인 사회구조를 호도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아래의 '소수자 권리 증진으로 이어지지 않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4. 소수자의 인권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음[편집]
사회적 소수자들 중에 억울해서 출세한 사람들의 노력은 결코 무시당하거나 폄하되어도 안 되고, 비난을 받아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회의 변화를 바란다면 뛰어난 개인이 아니라 암암리에 소수자 차별과 배척을 정당화하는 사회 구조와 인식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 정형인들의 인정을 받아야야지만 소수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다면 정말 사회가 진정으로 정의롭고 평등하며 자유롭다고 볼 수 있을까. 결국 소수자의 성공은 집단의 구성원으로써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시련이자 조건이 되며 이로 인해서 차별적인 사회 구조는 더욱 공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