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만약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국 대신 일본이 분단됐으면 어떻게 됐을지에 대해 다루는 문서이다.
2. 역사[편집]
2.1. 일본의 항복[편집]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다. 소련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을 도와 태평양 전쟁에서 역할을 많이 했고, 쿠릴 열도는 물론이고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까지 남하했다.
2.2. 일본의 분단[편집]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일본열도는 미국, 소련, 영국, 중화민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고, 일본열도 남부는 미국의 영향으로 자본주의가, 일본열도 북부는 소련의 영향으로 공산주의가 확산됐다. 1950년, 일본열도 남부에는 남일본이, 일본열도 북부에는 북일본이 건국되었다. 류큐는 독립되지 않았고 미국의 속령으로 있었다. 북일본은 군주제를 거부한 1당 독재 국가였고, 남일본은 덴노가 명목상 군주인 국가였다.
2.2.1. 일본열도에서 전쟁이 일어난 경우[편집]
1952년, 소련의 지원을 받는 북일본은 일본열도에서 미국의 세력을 몰아내겠다는 명분으로 남일본을 침공하여 일본전쟁이 발발했다. 남일본에 미군이 어느 정도 주둔해 있었지만 미국은 한국과 중화민국을 지원하느라 군사력을 소모해서 당장 남일본을 지원할 수 없었다. 결국 북일본은 혼슈 전체와 시슈 서부를 점령했고 남일본은 후쿠오카를 임시 수도로 삼은 채 UN에 지원을 요청했다.
남일본의 지원 요청을 받은 UN은 미국을 중심으로 남일본을 지원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과 남중국에 군수 공장들이 건설되었다. 남일본-UN 연합군은 빠른 속도로 북진하여 시슈 서부와 혼슈 전체를 점령했다.
그러나 북일본이 밀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소련은 북일본을 지원했다. 이로 인해 북일본은 혼슈 북부를 점령했다.
결국 1955년, 일본전쟁은 휴전 상태가 되었다. 수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으며 일본열도는 대부분 초토화되었다.
일본전쟁 이후 북일본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1당 독재로 인해 1인당 GDP가 극심하게 낮았다. 남일본도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했지만 미국은 한국과 중화민국에 경제 지원을 집중적으로 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한국과 중화민국은 군수 공장을 통한 수출과 미국의 경제 지원으로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했고 소련은 북일본을 통해 태평양 진출을 시도하여 무역이 어느 정도 발전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한계로 결국 멸망했다.
남일본의 지원 요청을 받은 UN은 미국을 중심으로 남일본을 지원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과 남중국에 군수 공장들이 건설되었다. 남일본-UN 연합군은 빠른 속도로 북진하여 시슈 서부와 혼슈 전체를 점령했다.
그러나 북일본이 밀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소련은 북일본을 지원했다. 이로 인해 북일본은 혼슈 북부를 점령했다.
결국 1955년, 일본전쟁은 휴전 상태가 되었다. 수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으며 일본열도는 대부분 초토화되었다.
일본전쟁 이후 북일본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1당 독재로 인해 1인당 GDP가 극심하게 낮았다. 남일본도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했지만 미국은 한국과 중화민국에 경제 지원을 집중적으로 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한국과 중화민국은 군수 공장을 통한 수출과 미국의 경제 지원으로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했고 소련은 북일본을 통해 태평양 진출을 시도하여 무역이 어느 정도 발전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한계로 결국 멸망했다.
2.2.2. 일본열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경우[편집]
남일본은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여 한국, 남중국과 함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북일본은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으며 소련 멸망 이후에는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결국 북일본은 남일본에 합병되었고 일본은 통일되었다.
3. 주요 등장 국가[편집]
명칭 | 수도[1] |
대한민국 | 서울특별시 |
일본국 | 도쿄도 |
일본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센다이시 |
미합중국 | 컬럼비아 특별구 |
중화민국 | 난징시(명목상) 타이베이시(사실상) |
중화인민공화국 | 베이징시 |
[1] 1970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