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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카티에 연방 왕국 Bundesreich Lescatie | |
레스카티에 망명정부의 국기, 전 연방 왕국의 국기가 그대로 망명정부의 깃발이다. | |
명목상 정치체제 | 연방제, 입헌 군주제 |
명목상 설립 연도 | 1855년[1] |
(비공식)국가 ISO 코드 | LSC |
명목상 수도 | 미덴하임Middenheim |
왕위 요구자 | 프레데리카 엘리자베트 폰 레스카티에Frederica Elizabeth von Lescatie |
1. 개요[편집]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은, 구 미테란트 지역을 통치하던 정부였으며, 1921년 미테란트 코뮌의 미테란트 혁명으로 인해 붕괴되었다. 그러나 레스카티에 왕실을 포함한 일부 인사들은 외국으로 도망가 망명 정부를 선포하였으며, 이것이 작중 세계관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 역사[편집]
군국주의 국가 레스카티에 공국은 주변의 소국들을 병합하여 1855년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을 설립하였으나,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팽창, 확장 정책을 지속하였으나, 이전에 미테란트 지역 소국들과 전쟁하던 것과 달리 거대한 강대국들과 맞섰을 때는 일시적으로 우위를 점했으나 점점 국력을 소모해 가고, 내부에서는 레티시아 마르크스와 카를라 엥겔스가 주창한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인 운동가들은 군주정 타도를 주장해가면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1920년,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미테란트의 노동자 집단의 평화로운 시위에 대해 레스카티에 왕국 정부가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16세의 여성 봉제 노동자 엠마 리스가 그 와중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레스카티에 전역에서 사회주의자, 전쟁반대자, 공화주의자, 군주정 반대자들이 제각기 자발적으로 봉기하고, 당시 레스카티에 국왕 오토 7세는 혁명가들을 '대역죄인' 등의 과격한 용어로까지 몰아붙이면서 진압, 연루 금지 등을 명령하였지만 이는 소용이 없었다. 이미 민심은 전쟁에 지치고, 레스카티에 왕국의 억압적인 정책을 더이상 지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2]
결국 주요 도시가 '코뮌' 또는 '해방구'를 선언한 혁명 세력에게 넘어가고, 수도 미덴하임까지 위협받게 되면서, 그 전까지는 당당하고 위풍있는 전제군주인 양 행세했던 오토 7세는 왕실 직계와 그 때까지 왕국에 충성하던 충성스러운 신하들 일부를 데리고 알비온으로 줄행랑을 치게 되었다. 알비온 왕가는 왕실간 결혼으로 인해 레스카티에 왕가와 인척관계였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 국왕 오토 7세는 알비온의 수도 '론디니움'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레스카티에 왕국 임시 정부를 선언하고, 반역도당들에게 넘어간 왕국을 되찾는 성전과, 충성스러운 연방왕국 국민들의 봉기를 명령하였으나. 이에 따르는 이는 없었다고 전해진다.
1920년,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미테란트의 노동자 집단의 평화로운 시위에 대해 레스카티에 왕국 정부가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16세의 여성 봉제 노동자 엠마 리스가 그 와중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레스카티에 전역에서 사회주의자, 전쟁반대자, 공화주의자, 군주정 반대자들이 제각기 자발적으로 봉기하고, 당시 레스카티에 국왕 오토 7세는 혁명가들을 '대역죄인' 등의 과격한 용어로까지 몰아붙이면서 진압, 연루 금지 등을 명령하였지만 이는 소용이 없었다. 이미 민심은 전쟁에 지치고, 레스카티에 왕국의 억압적인 정책을 더이상 지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2]
결국 주요 도시가 '코뮌' 또는 '해방구'를 선언한 혁명 세력에게 넘어가고, 수도 미덴하임까지 위협받게 되면서, 그 전까지는 당당하고 위풍있는 전제군주인 양 행세했던 오토 7세는 왕실 직계와 그 때까지 왕국에 충성하던 충성스러운 신하들 일부를 데리고 알비온으로 줄행랑을 치게 되었다. 알비온 왕가는 왕실간 결혼으로 인해 레스카티에 왕가와 인척관계였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 국왕 오토 7세는 알비온의 수도 '론디니움'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레스카티에 왕국 임시 정부를 선언하고, 반역도당들에게 넘어간 왕국을 되찾는 성전과, 충성스러운 연방왕국 국민들의 봉기를 명령하였으나. 이에 따르는 이는 없었다고 전해진다.
3. 역대 왕위 요구자 목록[편집]
요구하는 작위 |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의 연방국왕 미덴하임 대공 연방의 수호자 및 기타 작위 |
현재 레스카티에 왕위를 요구하는 역대 왕위 요구자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오토 7세/오토 에두아르트 폰 레스카티에Otto Eduard von Lescatie(1921~1938)
오토 7세/오토 에두아르트 폰 레스카티에Otto Eduard von Lescatie는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의 마지막 연방국왕이다. 오토 7세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그가 성년이 되기 이전까지는 사실상의 섭정이었던 모후와 비교적 현실감각이 있는 군사관료들의 조언에 의해 통치하였지만, 성년이 된 이후에는 과대망상적인 영토확장 욕구에 의해 무리한 전쟁을 벌이고, 이것이 나라의 역량을 갉아먹음과 동시에, 그는 노동자들이 언젠가는 나라를 무너뜨리고 말 것이므로 그들을 강하게 억눌러야만 된다고 굳게 믿고 노동자 억압 정책을 펼쳤는데, 결국 그의 믿음이 스스로 미테란트 혁명을 불러일으킨 꼴이 되고 말았다.[3] 제 2차 소녀혁명, 또는 미테란트 혁명 수호전쟁이 일어났을 때, 반혁명 연합군이 코뮌을 부수고 연방 왕국 정부를 회복하리라고 믿었지만, 끝내 미테란트 코뮌이 생존하면서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남은 여생 내내 그는 열심히 소리쳤지만 망명지인 알비온에서도 반혁명 전쟁으로 손해를 크게 보았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 지크마어 가브리엘 폰 레스카티에Sigmar Gabriel von Lescatie(1938~1971)
지크마어 가브리엘 폰 레스카티에는 오토 폰 레스카티에의 삼남으로, 작위 계승의 법칙에 따라 레스카티에의 왕위 요구자가 되었다. 본래 장자 계승법을 따르는 레스카티에에서는 삼남이 계승자가 될 수는 없었지만, 장남이었던 오토 왕자는 미테란트 혁명 중에 '전사' 하였고, 차남이었던 프리드리히 요제프 왕자는 본래 병약했던데다가 아버지 오토 7세보다 먼저 사망했기에, 삼남에게 계승권이 돌아간 것이다. 아버지보다 좀 더 온건한 시각을 갖고 있었던 지크마어 폰 레스카티에는,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을 실질적 연방제로 개편하고, '실질적인 입헌군주제'를 도입함을 발표하여 '명목상의' 의회를 세우고 레스카티에 망명자들에게 '레스카티에 제헌 의원'의 칭호를 주었으나, 미테란트 코뮌에서 평가하기에는 '그러기엔 너무 늦은 쇼에 불과하다'라는 평가를 들을 뿐이었다.
- 프란츠 오토 폰 레스카티에Franz Otto von Lescatie(1971~2012)
프란츠 오토 폰 레스카티에는 지크마어 폰 레스카티에의 장남으로, 그의 뒤를 잇는 레스카티에의 왕위 요구자이다. 이전까지의 왕위 요구자들이 적극적으로 레스카티에 연방왕국 복원을 위하여 무엇인가 노력이라도 해 본 것과 달리, 프란츠 폰 레스카티에는 그때까지 남아 있던 레스카티에 왕실 자산을 통해 향락과 엽색을 추구한 것으로 유명한 것을 빼면, 실질적인 대외 활동은 없었다고 여겨진다. 물론 알비온의 일개 시민 자격일 뿐이었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겠지만.
- 프레데리카 엘리자베트 폰 레스카티에Frederica Elizabeth von Lescatie(2012~)
프레데리카 엘리자베트 폰 레스카티에Frederica Elizabeth von Lescatie는 프란츠 폰 레스카티에의 무남독녀로, 선대 왕위 요구자가 엽색을 추구한 것에 비하면 기묘하게도 자식 복이 없었고, 왕위 요구자가 될 적장자가 없었던 탓에 왕위 요구자의 자리가 여성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현재까지 그녀의 행보는 소소한 자선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 알비온 내 자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으며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