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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카포레토 전투는 1917년 10월 24일부터 12월 19일까지 이탈리아 북부 카포레토(현재 슬로베니아 코바리드)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군이 이탈리아군을 상대로 거둔 결정적인 승리였다. 이 전투는 아손초 전투에서 수세에 몰렸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독일군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반격을 감행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탈리아군은 전선이 붕괴되면서 대규모 후퇴를 감행해야 했다.

전투가 벌어진 시점에서 이탈리아군은 아손초 강 전선에서 12차례에 걸친 공세를 감행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지쳐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전력 부족으로 방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나, 독일군이 지원을 결정하면서 반격을 준비하게 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새로운 침투 전술을 활용하여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하였으며, 독일군의 정예 부대인 슈투름트루펜(돌격 부대)이 선봉에 서서 이탈리아 방어선을 돌파하였다.

10월 24일, 독일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강력한 포격과 함께 공격을 개시하였으며, 기동전을 통해 빠르게 이탈리아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이탈리아군은 혼란에 빠졌고, 많은 병력이 포로로 잡히거나 전투에서 이탈하였다. 불과 며칠 만에 연합군은 전선을 깊숙이 돌파하였으며, 이탈리아군은 전열을 가다듬기도 전에 후퇴를 강요당했다.

이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은 3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상실하였고, 약 40만 명이 후퇴하면서 전선은 크게 붕괴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빠르게 진격하여 피아베 강까지 도달하였으나, 이탈리아군은 연합국의 지원을 받아 방어선을 재정비하고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였다.

카포레토 전투는 이탈리아군에게 치명적인 패배였으며, 이로 인해 이탈리아 국내에서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가 발생하였다. 정부는 혼란에 빠졌고, 이탈리아군 총사령관 루이지 카도르나가 해임되면서 지휘 체계도 재편되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이탈리아군은 이후 연합국의 지원을 받아 피아베 강 전선에서 다시 방어에 성공하였다.

카포레토 전투는 기동전과 침투 전술의 성공적인 적용 사례로 평가되며, 서부 전선에서 참호전이 장기화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기동력과 전술적 혁신이 승패를 가를 수 있음을 보여준 전투였다. 또한 이탈리아군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다시 반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1918년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에서 연합국이 승리하는 데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