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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킬라우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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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분화의 역사
2.1. 1823년부터 1894년까지

1. 개요[편집]

파일:Episode_4_of_Kilauea's_December_2024_eruption_2025-01-16.jpg
25년 할레마우마우에서 발생한 분화
할레마우마우 분화구는 하와이 섬킬라우에아의 정상에 위치한 칼데라 내부에 위치한 구덩이형 분화구이다.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으며, 2018년 5월 3일 이후 연속적인 붕괴로 크기가 대략 두 배로 증가하기 전까지 너비 770m, 길이 900m 정도였다. 2018년 붕괴 이후 바닥은 칼데라 바닥으로부터 약 600m 아래에 위치하게 되었다.

할레마우마우는 하와이 전통 신앙에서 불과 화산의 여신인 펠레가 머무는 곳으로 여겨진다. 이름은 '아마우 고사리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1924년 이전까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용암 호수가 존재했으며, 20세기 동안 많은 분화가 발생했다.

2. 분화의 역사[편집]

2.1. 1823년부터 1894년까지[편집]

파일:1000000141.jpg
1893년 할레마우마우의 용암 호수, 니라공고 산의 용암 호수와 흡사하다.
킬라우에아 칼데라를 처음으로 영어로 기록한 인물은 영국의 선교사이자 민속학자였던 윌리엄 엘리스였다. 1823년, 그는 하와이 원주민들과 함께 이 지역을 탐험하면서 당시 칼데라 내부에 거대한 용암 호수가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칼데라를 바라본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우리는 말을 잃었다. 마치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 심연을 응시할 뿐이었다. 우리 눈앞에는 거대한 초승달 모양의 협곡이 펼쳐져 있었으며, 길이는 약 3km, 폭은 약 1.6km, 깊이는 약 240m에 달했다. 바닥 전체는 뜨거운 용암으로 덮여 있었고, 특히 남서쪽과 북쪽 부분에서는 거대한 불길이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며 요동쳤다. 마치 바다처럼 밀려오는 불타는 파도와도 같았다.

엘리스가 이곳을 방문한 시점부터 최소한 1840년까지 킬라우에아 칼데라 내부에는 넓은 용암호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용암 호수는 거대한 불타는 연못과도 같았으며, 지속적으로 용암이 끓어오르고 넘쳐흐르면서 칼데라 내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1840년경부터 킬라우에아 칼데라 내부의 용암 호수는 점차 축소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칼데라 내부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수십 년에 걸쳐 점점 작아지면서 현재 할레마우마우가 위치한 지역으로 국한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화산 내부의 지질 활동과 용암 분출 방식의 변동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칼데라 내부의 용암호는 안정적인 호수 형태를 유지하기보다는 간헐적으로 출현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용암호가 존재하는 기간이 줄어들었고, 한동안 활동을 멈추었다가 다시 나타나는 주기가 반복되었다. 이 과정에서 칼데라 내부에서는 지속적인 붕괴와 지반 침하가 이루어졌으며, 지형도 점차 변화해 갔다.

19세기 후반, 킬라우에아는 많은 탐험가와 여행자들에게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으로 여겨졌다. 특히, 1866년에는 미국의 유명한 작가이자 유머 작가였던 마크 트웨인이 이곳을 방문하였다. 그는 칼데라 바닥까지 직접 내려가 용암호를 가까이에서 관찰하였으며, 당시의 장관을 이렇게 기록했다.
한낮의 태양을 응시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으나, 태양빛처럼 하얀 광채가 아니라 붉고 황금빛을 띠는 광경이었다. 호수 가장자리 곳곳에서는 용암이 솟구쳐 오르며 작은 화산 분출구처럼 보이는 용암 굴뚝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용암 굴뚝에서는 붉은빛과 황금빛을 띠는 용암 방울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그 모습은 마치 보석이 빛나는 듯한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더욱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솟구치는 불기둥들은 연무 너머로 희미하게 반짝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트웨인은 이 장면을 "눈을 뗄 수 없는 경이로운 광경"이라 묘사하며, 키라우에아 용암호가 지닌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방문한 시점에도 용암호는 이미 이전보다 축소된 상태였으며, 1823년에 비해 활동이 줄어든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1894년 12월, 킬라우에아 정상부에서는 지진 활동이 급증하면서 강한 화산성 지진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 지진들은 칼데라 내부의 지반을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결국 오랜 세월 동안 존재했던 용암호가 완전히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용암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원형 분화구가 남겨졌으며, 이것이 오늘날 "할레마우마우"라고 불리는 분화구의 시작이었다.

할레마우마우는 초기에는 직경 약 360m 정도의 원형 함몰 지형이었다. 용암이 모두 사라지면서 칼데라 내부는 깊은 구덩이처럼 변하였고, 이후 몇 년 동안 추가적인 붕괴와 지반 침하가 진행되었다. 특히 1899년 3월까지 분화구의 깊이가 300미터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초기보다 훨씬 깊어진 상태였다.

할레마우마우는 이후에도 간헐적인 분출을 반복하였으며, 용암이 다시 채워지거나 빠져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1823년부터 1894년까지 지속되었던 거대한 용암호의 시대는 완전히 끝난 것이었다.

19세기 동안 키라우에아 칼데라는 거대한 용암호의 형성과 축소, 그리고 최종적인 소멸이라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1823년 윌리엄 엘리스가 목격한 시기에는 칼데라 전체를 덮을 만큼 거대한 용암호가 존재했다.

1840년 이후 용암호의 규모가 점차 줄어들었고, 1866년 마크 트웨인이 방문했을 때는 활동이 다소 감소한 상태였다. 1894년 12월 지진 활동 이후, 용암호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할레마우마우 분화구가 형성되었다. 이후에도 칼데라 내부에서는 간헐적인 용암 분출과 붕괴가 이어졌으며, 1899년까지 할레마우마우는 깊이를 더해갔다.

이 과정은 키라우에아 화산의 지질적 변화와 마그마 활동의 변동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19세기 동안 이 지역의 지형과 화산 활동이 얼마나 극적으로 변화했는지를 증명하는 중요한 기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