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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프 알 다울라 통치 기간 중인 955년경의 함단 왕조 영토 |
1. 개요[편집]
함단 왕조는 905년부터 1004년까지 약 100년간 모술과 알레포를 중심으로 동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북부를 지배한 시아파 왕조이다. 압바스 왕조의 쇠퇴 속에서 모술 총독 가문이었던 함단 가문이 독립하여 세웠으며, 왕조명은 부족장 함단 이븐 함둔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모술과 알레포의 이중 체제로 운영되었으며, 사이프 알 다울라 통치기에는 알레포를 거점으로 동로마 제국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그러나 10세기 중후반 동로마 제국과 파티마 왕조의 압박을 동시에 받으면서 약화되었고, 979년 모술이 부와이 왕조에 점령당한 데 이어 1004년 마르완 왕조에 의해 멸망하였다.
모술과 알레포의 이중 체제로 운영되었으며, 사이프 알 다울라 통치기에는 알레포를 거점으로 동로마 제국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그러나 10세기 중후반 동로마 제국과 파티마 왕조의 압박을 동시에 받으면서 약화되었고, 979년 모술이 부와이 왕조에 점령당한 데 이어 1004년 마르완 왕조에 의해 멸망하였다.
2. 건국 배경[편집]
함단 왕조의 기원은 동로마 제국 시기부터 시리아 북부에 정착해 살아온 아랍계 유목 부족인 바누 타글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부족은 초기 이슬람 정복 시기에도 단성론적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였으며, 우마이야 왕조 시기에는 친위 세력으로 활동하며 정치 군사적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9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들은 점차 이슬람으로 개종하였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정치 참여의 폭도 점차 확대되었다.
9세기 중반 이후 아바스 왕조가 수도를 바그다드에서 사마라로 옮기면서 정치적 불안과 군벌 분열이 심화되었고, 이를 틈타 바누 타글립은 자지라 일대에서 세력을 급속히 확장하였다. 특히 모술 일대에서는 이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으며, 사실상 지방 자치를 실현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에 아바스 왕조는 중앙 권력을 회복하기 위해 9세기 말, 튀르크인 총독을 모술에 파견하여 통제력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 시도에 반발하여 바누 타글립 출신의 유력자 함단 이븐 함둔은 카와리지파와 연합하여 무력 봉기를 일으켰다. 이 반란은 4년에 걸친 장기전에 돌입했으며, 884년 함단 이븐 함둔이 항복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그의 자손들은 이후에도 정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둘째 아들 후세인 이븐 함단은 아바스 왕조 휘하의 유력 아랍인 장군으로 성장하여 카와리지파, 시아파 카르마트, 바누 칼브, 툴룬 왕조 등과의 전쟁에서 눈에 띄는 군공을 세웠다. 그의 활약으로 인해 감옥에 있던 함단 가문 일원들이 석방되었고, 이 가문은 다시 궁정 내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911년 후세인 이븐 함단은 모술의 아미르로 임명되었으나, 915년 바그다드에서 와지르 직을 둘러싸고 벌어진 권력 투쟁 속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문은 완전히 몰락하지 않았으며, 925년 셋째 아들 압둘라 이븐 함단이 바그다드 궁정과의 정치적 연합을 통해 모술 총독으로 다시 임명되며 가문의 권력은 복권되었다. 이 인물이 바로 훗날 함단 왕조의 창건자로 평가된다.
9세기 중반 이후 아바스 왕조가 수도를 바그다드에서 사마라로 옮기면서 정치적 불안과 군벌 분열이 심화되었고, 이를 틈타 바누 타글립은 자지라 일대에서 세력을 급속히 확장하였다. 특히 모술 일대에서는 이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으며, 사실상 지방 자치를 실현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에 아바스 왕조는 중앙 권력을 회복하기 위해 9세기 말, 튀르크인 총독을 모술에 파견하여 통제력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 시도에 반발하여 바누 타글립 출신의 유력자 함단 이븐 함둔은 카와리지파와 연합하여 무력 봉기를 일으켰다. 이 반란은 4년에 걸친 장기전에 돌입했으며, 884년 함단 이븐 함둔이 항복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그의 자손들은 이후에도 정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둘째 아들 후세인 이븐 함단은 아바스 왕조 휘하의 유력 아랍인 장군으로 성장하여 카와리지파, 시아파 카르마트, 바누 칼브, 툴룬 왕조 등과의 전쟁에서 눈에 띄는 군공을 세웠다. 그의 활약으로 인해 감옥에 있던 함단 가문 일원들이 석방되었고, 이 가문은 다시 궁정 내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911년 후세인 이븐 함단은 모술의 아미르로 임명되었으나, 915년 바그다드에서 와지르 직을 둘러싸고 벌어진 권력 투쟁 속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문은 완전히 몰락하지 않았으며, 925년 셋째 아들 압둘라 이븐 함단이 바그다드 궁정과의 정치적 연합을 통해 모술 총독으로 다시 임명되며 가문의 권력은 복권되었다. 이 인물이 바로 훗날 함단 왕조의 창건자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