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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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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제20대 가한 | |
당 제8대 황제 대종 | 代宗 | |
출생 | |
즉위 | |
사망 | |
능묘 | 원릉(元陵) |
재위기간 | 당의 황태자 |
제8대 황제 제20대 가한 | |
1. 개요
1. 개요[편집]
성은 이(李), 휘는 휴(豫)이며, 당나라 제8대 황제이다. 생전 존호는 보응원성문무효황제(寶應元聖文武孝皇帝)였으며, 정식 시호는 예문효무황제(睿文孝武皇帝)이다. 묘호는 대종(代宗), 능호는 원릉(元陵)이다.
대종은 당 숙종 이형과 장경황후 오씨(章敬皇后 吳氏)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자이며, 조부는 당 현종 이융기, 조모는 원헌황후 양씨(元獻皇后 楊氏)이다. 황실의 정통 혈통을 계승한 황태자로 성장하였으며, 조정 실무를 일찍부터 경험하였다. 762년 숙종이 붕어하자 곧바로 즉위하였다.
그의 재위는 안사의 난의 후유증 속에서 시작되었으며, 절도사 세력의 군사적 자율권이 크게 확대된 가운데 중앙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대종은 절도사 세력과 일정 수준의 타협을 유지하면서 중앙 권위 회복을 시도하였으나, 실질적인 지방 통제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유교적 이상정치를 회복하고자 하였으며, 과거제를 정상 운영하고 황제 중심의 예제를 강화하였다. 환관 세력의 영향은 여전했지만, 조정은 제도적 안정과 왕조의 정통성 유지를 위한 개혁을 병행하였다. 일부 절도사 세력을 견제하고 황실에 대한 충성 서약을 유도하려 하였으나, 지방 분권의 구조적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하였다.
경제 회복을 위한 시도도 이루어졌다. 파괴된 농경지의 재개간, 조세 제도의 재정비, 화폐 유통의 안정화 등이 추진되었고, 수도 장안의 질서 회복과 세입 기반 복구를 위한 노력도 병행되었다. 그러나 제국 전체의 재정 자립도는 여전히 미흡하였으며, 지방 절도사에 의존하는 구조는 계속되었다.
문화적으로는 유교를 중심에 두되, 불교와 도교를 병행하여 조정의 정신적 기반으로 삼았다. 불교에 대한 후원은 활발하였으며, 예악의 회복과 학문 장려도 함께 이루어졌다. 궁정 안팎에서는 시문과 음악 등 당 문예 전통이 계승되었고, 대종 스스로도 학문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779년 붕어하였으며, 원릉에 묻혔다. 뒤를 이어 아들 이경이 순종으로 즉위하였다. 대종의 통치는 당 제국이 회복의 전기를 맞이하기보다는, 혼란 속에서 질서의 유지를 꾀하는 과도기의 성격을 지녔다. 강력한 통치를 실현하지는 못하였으나, 제국의 명맥을 유지하고 황실 중심 체제를 계승한 군주로 평가된다.
대종은 당 숙종 이형과 장경황후 오씨(章敬皇后 吳氏)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자이며, 조부는 당 현종 이융기, 조모는 원헌황후 양씨(元獻皇后 楊氏)이다. 황실의 정통 혈통을 계승한 황태자로 성장하였으며, 조정 실무를 일찍부터 경험하였다. 762년 숙종이 붕어하자 곧바로 즉위하였다.
그의 재위는 안사의 난의 후유증 속에서 시작되었으며, 절도사 세력의 군사적 자율권이 크게 확대된 가운데 중앙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대종은 절도사 세력과 일정 수준의 타협을 유지하면서 중앙 권위 회복을 시도하였으나, 실질적인 지방 통제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유교적 이상정치를 회복하고자 하였으며, 과거제를 정상 운영하고 황제 중심의 예제를 강화하였다. 환관 세력의 영향은 여전했지만, 조정은 제도적 안정과 왕조의 정통성 유지를 위한 개혁을 병행하였다. 일부 절도사 세력을 견제하고 황실에 대한 충성 서약을 유도하려 하였으나, 지방 분권의 구조적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하였다.
경제 회복을 위한 시도도 이루어졌다. 파괴된 농경지의 재개간, 조세 제도의 재정비, 화폐 유통의 안정화 등이 추진되었고, 수도 장안의 질서 회복과 세입 기반 복구를 위한 노력도 병행되었다. 그러나 제국 전체의 재정 자립도는 여전히 미흡하였으며, 지방 절도사에 의존하는 구조는 계속되었다.
문화적으로는 유교를 중심에 두되, 불교와 도교를 병행하여 조정의 정신적 기반으로 삼았다. 불교에 대한 후원은 활발하였으며, 예악의 회복과 학문 장려도 함께 이루어졌다. 궁정 안팎에서는 시문과 음악 등 당 문예 전통이 계승되었고, 대종 스스로도 학문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779년 붕어하였으며, 원릉에 묻혔다. 뒤를 이어 아들 이경이 순종으로 즉위하였다. 대종의 통치는 당 제국이 회복의 전기를 맞이하기보다는, 혼란 속에서 질서의 유지를 꾀하는 과도기의 성격을 지녔다. 강력한 통치를 실현하지는 못하였으나, 제국의 명맥을 유지하고 황실 중심 체제를 계승한 군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