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영국의 화가, 그래피티 아티스트, 사회운동가, 영화감독으로 스스로를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칭하는 이다.영상(KBS) 이 사람의 신상에 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항상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작품을 만들고 사라지며 인터뷰를 통해서 대면한 사람도 극소수다.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예술작품을 공개하고 나서야 그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초기 활동 영역을 보면 브리스톨 출신인듯 하다.[2] 또 1990년부터 활동했다고 하니까 10대 중후반부터 활동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적어도 2010년대 기준으로 나이는 40에 육박할 듯하다.
2. 상세[편집]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14살부터 낙서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뱅크시와 유일하게 얼굴을 맞대고 인터뷰를 했다는 가디언 언리미티드의 기사에 의하면 뱅크시는 1974년생이라고 한다. 그의 본명은 로버트 뱅크스라고 알려져있으며, 백인이고, 브리스톨시에서 태어났으며, 고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퇴학을 당했고, 사소한 일로 체포된 경력이 있다.[3]
한 번은 대영박물관에 잠입해서 소를 사냥하고 쇼핑하는 원시인이 그려진 돌을 몰래 진열하고 도망갔는데, 며칠 동안 사람들이 그게 가짜인 줄 몰랐다고. 이외에도 루브르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브루클린 박물관, 뉴욕현대미술관에도 똑같은 짓을 했고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 놓아둔 미사일 딱정벌레는 23일 동안 전시했다고 한다(...). 예술을 겉치레로 여기고 제대로 감상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행위 예술이었던 것. 뱅크시의 작품은 예술계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반전, 반권위적인 성향도 띄고 있다. 이렇게 기존 예술이나 사회 권위를 비판하는 예술을 제도비판(Institutional Critique) 예술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자주 하는 것으로 그래피티가 있다. 처음에 뱅크시가 그래피티를 그리기 시작할 때는 아무도 그림의 보존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뱅크시가 유명해지니까 자기 벽에 그림이 그려지면 너도나도 보존하고 팔아대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뱅크시는 센트럴 파크에 자기 그림을 늘어놓고[4] $60[5]에 판매를 하였는데 6시간 동안 고작 3명이 총 8장을 구매하였다. 이 또한 예술의 허례허식을 비판하는 행위예술이다.
2010년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자신이 작업하는 과정과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감독 데뷔했다. 출연하기는 하는데 여기서도 얼굴은 가려진다(...).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국내에도 개봉했다. 제목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뱅크시의 작품에도 나왔던 문구인데, 의미는 말 그대로이다. 대형전시관의 경우는 물건을 구매하게 되어 있는 선물가게(art shop)를 통과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로, 예술, 특히 전시예술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이다. 저 선물가게에는 심오한 예술적 완성도 같은건 필요없다. 싼 가격, 쉬운 이해, 기존 예술품의 손쉬운 반복, 제품이 아닌 판매자의 명성과 홍보 등이 제품의 질을 대신한다. 이는 작품속 티에리 구에타에 대한 뱅크시의 설명이기도 하고, 이후 미스터 브레인워시라는 예명으로 엄청나게 잘나가서 한국 공연도 했던 티에리 구에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번은 대영박물관에 잠입해서 소를 사냥하고 쇼핑하는 원시인이 그려진 돌을 몰래 진열하고 도망갔는데, 며칠 동안 사람들이 그게 가짜인 줄 몰랐다고. 이외에도 루브르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브루클린 박물관, 뉴욕현대미술관에도 똑같은 짓을 했고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 놓아둔 미사일 딱정벌레는 23일 동안 전시했다고 한다(...). 예술을 겉치레로 여기고 제대로 감상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행위 예술이었던 것. 뱅크시의 작품은 예술계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반전, 반권위적인 성향도 띄고 있다. 이렇게 기존 예술이나 사회 권위를 비판하는 예술을 제도비판(Institutional Critique) 예술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자주 하는 것으로 그래피티가 있다. 처음에 뱅크시가 그래피티를 그리기 시작할 때는 아무도 그림의 보존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뱅크시가 유명해지니까 자기 벽에 그림이 그려지면 너도나도 보존하고 팔아대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뱅크시는 센트럴 파크에 자기 그림을 늘어놓고[4] $60[5]에 판매를 하였는데 6시간 동안 고작 3명이 총 8장을 구매하였다. 이 또한 예술의 허례허식을 비판하는 행위예술이다.
2010년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자신이 작업하는 과정과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감독 데뷔했다. 출연하기는 하는데 여기서도 얼굴은 가려진다(...).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국내에도 개봉했다. 제목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뱅크시의 작품에도 나왔던 문구인데, 의미는 말 그대로이다. 대형전시관의 경우는 물건을 구매하게 되어 있는 선물가게(art shop)를 통과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로, 예술, 특히 전시예술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이다. 저 선물가게에는 심오한 예술적 완성도 같은건 필요없다. 싼 가격, 쉬운 이해, 기존 예술품의 손쉬운 반복, 제품이 아닌 판매자의 명성과 홍보 등이 제품의 질을 대신한다. 이는 작품속 티에리 구에타에 대한 뱅크시의 설명이기도 하고, 이후 미스터 브레인워시라는 예명으로 엄청나게 잘나가서 한국 공연도 했던 티에리 구에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5년 디즈멀랜드를 개장하면서 공개한 초상화와 본인 사진 |
2015년에 데미언 허스트를 포함한 여러 예술가들과 손잡고 디즈멀랜드라는 본격 애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가족 테마파크를 표방하는 막장(...) 테마파크를 만들었다. 5주 한정 오픈이라 현재는 문을 닫았다. 사용되었던 자재들은 난민 캠프 제작에 재활용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자세한 사항은 문서 참고.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 월드 오프 호텔(Walled Off Hotel)이라는 호텔을 열었다. 건물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는 대신 안팎을 뱅크시의 작품으로 가득 체운 곳으로 3월 11일 부터 예약을 받는다고 하며 2017년 내내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6] 디스멀랜드와는 다르게 장기적으로 운영하며 운영은 전부 지역 주민들이 담당하고 수익도 전부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3. 작품관[편집]
뱅크시의 작품은 반전주의, 안티파, 탈권위주의, 무정부주의, 진보주의, 반자본주의(반소비)등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주제를 다루고있다. 특히 작품의 대부분이 자본과 권력에 대한 조롱과 전쟁과 소비에 대한 반대관이 상당히 강하게 들어가 전위적이고 실존주의, 허무주의적인 미술관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뱅크시는 작품에서 일반적으로 탐욕과 위선, 부조리, 소외와 같은 현대사회의 인간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두며 그래피티 아티스트적인 정체성으로 지루함을 혐오해 지루하지 않은 미술을 추구한다.
2018년 10월에는 자기가 그린 작품 중 하나인 '풍선을 든 소녀'가 100만 유로 이상으로 낙찰이 되자 미리 프레임 밑에 장치해 둔 분쇄기를 원격으로 가동시켜 그림을 즉석에서 분쇄하고 도망가는 퍼포먼스 또한 보이기도 했다. # 참고로 저 분쇄기가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12년 전이다. 사람들은 '뱅크시 당했다(Banksy-ed)'라는 반응을 보였다. 해당 퍼포먼스는 자본적 미술에 대한 퍼포먼스였으며 돈으로 구매하는 자본적이 된 미술시장이 덧없음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평론측에서는 "퍼포먼스가 발동한 순간 가격이 올랐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유는 보험 때문(...) 보통 경매장에서 작품이 훼손되면 주최측 보험이 배상을 하지만 이번 퍼포먼스로는 어떻게 될 지 논쟁 중이라고. 낙찰 받은 구매자는 구매를 결정했다. 여담으로 그림이 분쇄당한 다음날, 뱅크시는 본인의 SNS에 "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라는 피카소의 말을 올렸다.
이후 뱅크시는 통해 파쇄기 설치 과정과 예행연습, 실제 파쇄장면이 들어 있는 유튜브 영상을 공개했다. # 뱅크시는 '리허설에서는 매번 성공했었다.'라며 그림이 절반만 잘려나간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했고, 영상과 함께 올린 글에서 항간에 떠도는 '그림이 실제로 파쇄되지 않은 거 아니냐?' 와 '경매 주최측과 공모한 거 아니냐?' 라는 의혹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2018년 10월에는 자기가 그린 작품 중 하나인 '풍선을 든 소녀'가 100만 유로 이상으로 낙찰이 되자 미리 프레임 밑에 장치해 둔 분쇄기를 원격으로 가동시켜 그림을 즉석에서 분쇄하고 도망가는 퍼포먼스 또한 보이기도 했다. # 참고로 저 분쇄기가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12년 전이다. 사람들은 '뱅크시 당했다(Banksy-ed)'라는 반응을 보였다. 해당 퍼포먼스는 자본적 미술에 대한 퍼포먼스였으며 돈으로 구매하는 자본적이 된 미술시장이 덧없음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평론측에서는 "퍼포먼스가 발동한 순간 가격이 올랐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유는 보험 때문(...) 보통 경매장에서 작품이 훼손되면 주최측 보험이 배상을 하지만 이번 퍼포먼스로는 어떻게 될 지 논쟁 중이라고. 낙찰 받은 구매자는 구매를 결정했다. 여담으로 그림이 분쇄당한 다음날, 뱅크시는 본인의 SNS에 "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라는 피카소의 말을 올렸다.
이후 뱅크시는 통해 파쇄기 설치 과정과 예행연습, 실제 파쇄장면이 들어 있는 유튜브 영상을 공개했다. # 뱅크시는 '리허설에서는 매번 성공했었다.'라며 그림이 절반만 잘려나간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했고, 영상과 함께 올린 글에서 항간에 떠도는 '그림이 실제로 파쇄되지 않은 거 아니냐?' 와 '경매 주최측과 공모한 거 아니냐?' 라는 의혹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4. 정체(?)[편집]
2014년 10월 20일 런던에서 경찰에 체포되면서 신분이 밝혀졌다는 기사가 떴다. 본명은 폴 호너(Paul Horner), 35세로 영국 리버풀 출신 #...이라고 기사가 작성되었는데 낚시라고 한다. 체포된 적도, 신상이 밝혀진 적도 없다.#
2016년 9월 2일에는 스코틀랜드의 탐사보도기자인 크레익 윌리엄스(Craig Williams)에 의해 뱅크시의 정체가 사실은 매시브 어택의 로버트 델 나자(Robert Del Naja)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로버트('3D') 역시 그래피티 씬에서 활동한 적이 있으며 브리스톨에서는 거의 최초라고 봐도 될 정도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7] 뱅크시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브리스톨 출신으로 추정될 뿐 아니라 매시브 어택의 음악이 큰 영감을 준다고 언급한 적 있고, 매시브 어택의 앨범 재킷에 그의 작품이 항상 등장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여러 단서가 있으나[8] 결정적으로 매시브 어택의 투어가 열리는 장소 혹은 3D가 방문한 곳은 비슷한 시기에 뱅크시의 작품이 생겨난 경우가 여러 차례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런 경우가 찾아보면 꽤 잦아서 기자 본인은 3D가 뱅크시 본인이라고 추측하며, 그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뱅크시는 로버트 델 나자가 이끄는 창작집단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매시브 어택의 프로듀서인 롭 스미스는 이런 추측을 헛소리라 일축했다. 델 나자 역시 과장된 거라면서 부인. 때문에 뱅크시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일듯 하다.[9]
2003년 영국 ITV의 뱅크시 인터뷰 내용이 2019년 7월 4일 발굴되었다. 아직 뱅크시가 인기를 막 얻던 시절이라[10] 기자가 인터뷰하고 오랫동안 잊어버렸다고 한다. 여기서 뱅크시가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은 그래피티를 할 수 없다. 그 둘은 양립 불가능한 요소다"고 정체를 밝히지 않는 철학의 이유를 소개했다.
기혼자로 밝혀졌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당시 작품을 발표했는데 아내가 자신의 재택 근무를 싫어한다고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
2016년 9월 2일에는 스코틀랜드의 탐사보도기자인 크레익 윌리엄스(Craig Williams)에 의해 뱅크시의 정체가 사실은 매시브 어택의 로버트 델 나자(Robert Del Naja)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로버트('3D') 역시 그래피티 씬에서 활동한 적이 있으며 브리스톨에서는 거의 최초라고 봐도 될 정도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7] 뱅크시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브리스톨 출신으로 추정될 뿐 아니라 매시브 어택의 음악이 큰 영감을 준다고 언급한 적 있고, 매시브 어택의 앨범 재킷에 그의 작품이 항상 등장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여러 단서가 있으나[8] 결정적으로 매시브 어택의 투어가 열리는 장소 혹은 3D가 방문한 곳은 비슷한 시기에 뱅크시의 작품이 생겨난 경우가 여러 차례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런 경우가 찾아보면 꽤 잦아서 기자 본인은 3D가 뱅크시 본인이라고 추측하며, 그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뱅크시는 로버트 델 나자가 이끄는 창작집단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매시브 어택의 프로듀서인 롭 스미스는 이런 추측을 헛소리라 일축했다. 델 나자 역시 과장된 거라면서 부인. 때문에 뱅크시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일듯 하다.[9]
2003년 영국 ITV의 뱅크시 인터뷰 내용이 2019년 7월 4일 발굴되었다. 아직 뱅크시가 인기를 막 얻던 시절이라[10] 기자가 인터뷰하고 오랫동안 잊어버렸다고 한다. 여기서 뱅크시가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은 그래피티를 할 수 없다. 그 둘은 양립 불가능한 요소다"고 정체를 밝히지 않는 철학의 이유를 소개했다.
기혼자로 밝혀졌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당시 작품을 발표했는데 아내가 자신의 재택 근무를 싫어한다고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
5. 기타[편집]
6. 관련 문서[편집]
[1] ...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아래 추정이라던가 몇몇 인터뷰에 따르면 사실상 확정에 가깝다.[2] 매시브 어택처럼 브리스톨 지하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3] 출처:Banksy Wall and Piece[4] 다만 본인이 판매하지는 않고 대리인을 고용하여 판매하게 하였다. 물론 뱅크시 작품이라고 언급하지도 않은 무명 신분으로 판매.[5] 이때 당시 대략 7만원 정도 였다.[6] 방문자가 많으면 운영 기간을 연장할 계획이라고 한다.[7] 실제로 3D는 음악 작업과 동시에 꾸준히 그래피티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매시브 어택 홈페이지에도 간간히 올라오는 편이다.[8] 한 예로 뱅크시는 블러의 앨범 Think Tank의 앨범 커버를 맡았는데, 블러의 리더인 데이먼 알반과 의혹을 받고 있는 델 나자는 서로 친하기로 유명하다. Think Tank 앨범 활동 시기에 두 사람이 이라크 전쟁 파병 반대 운동을 하기도 했으며, 알반이 Heligoland 앨범 작업에 참여해 곡 하나를 부르기도 했다.[9] 그러나 델 나자 본인은 부인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 모두 뱅크시예요(We are all Banksy).”? 완전히 부정한 것인지는 의문이다.[10] 2003년 블러의 Think Tank 앨범 커버로 대중적 인지도가 올라가던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