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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가2. 영향력


1. 평가[편집]

대중음악 사상 최초의 록스타이자 당시 음악계의 주류를 혼자만의 폭발적인 인기로 변화시켜버린 대중음악사의 거인으로 평가받는다.

은근히 까도 많은 편이여서, 평가 절하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으며 70년대 펑크 록 뮤지션들이 엄청나게 씹어댔다. 이들은 이전 세대인 히피 문화부터 구닥다리 로큰롤까지 모두 척살 대상으로 삼았다(...). 심지어 더 클래쉬는 그들의 노래 "1977"에서 No Elvis, Beatles or Rolling Stones in 1977이라고 노래했다. 그런데 클래쉬가 위에 언급된 뮤지션들을 싫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그들의 앨범 London Calling커버 자체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Elvis Presley' 앨범에 대한 오마주였으니까. 커트 코베인은 자신의 기타 케이스에 엘비스의 욕을 적어놓기도 하였다.

특히 흑인 음악 쪽에서는 '흑인의 음악을 훔쳐와 적당히 흑인 색을 탈색시킨 뒤 백인들의 인기를 얻었다'며 싫어하기도 한다.(이런 시각은 특히 힙합 쪽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모스 데프 1집의 'Rock & Roll'이나 퍼블릭 에너미[1]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2]그가 이후의 록 아티스트와는 달리 창작곡이 없던데다가 대다수 히트곡이 (라기보단 전부) 흑인 작곡가, 싱어가 버젓히 있는 원곡이 있었다. 인종 차별로 흑인 싱어의 음악은 방송금지 되었고 오로지 메이저 채널에서는 엘비스의 음악만을 들을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을 보면 흑인들 입장에서 열 안 받을 수가 없다. 이런 현실은 영화 드림걸즈에서 잘 표현된다. 이에 반발한 흑인들이 메이저에 진출하려고 만든 제작사가 바로 스티비 원더, 마빈 게이, 마이클 잭슨 등등을 배출한 모타운이다.[3]

그러나 흑인 음악가이자 로큰롤의 전설 리틀 리차드는 이 의견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는 엘비스를 “그는 통합자였다. 엘비스는 축복이었다. 그들은 흑인 음악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는 흑인 음악을 위한 문을 열었다.”라고 평했고, 제임스 브라운은 “엘비스와 나는 유일한 미국의 오리지널”이라고 평하며 엘비스의 독보적임을 인정했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다 못해 거의 당연시 여기던 그 당시에 사실상 백인 청년이 흑인 음악을 들고와 완벽하게 소화해 내고 신드롬급의 인기를 일으킨 것부터 대중음악계의 판도를 넘어 당대 미국 사회 시스템 자체를 뒤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와 비슷한 시기를 같이 보낸 흑인 뮤지션들이 그를 인정하는 부분도 이런 시대적 배경을 다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시점의 시각으로만 판단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부분.

게다가 저작권법이 잘 지켜지지 않던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엘비스는 죽을 때까지 흑인 원작자들에게 단 1페니도 지불하지 않았다.[4] 그러나 이를 전적으로 엘비스의 책임이라 보기는 어렵다. 엘비스는 생전 매니저에게 혹사당하며 착취를 당했던 것으로 유명한 슈퍼스타였다. 천하의 엘비스도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의 희생양이 될 정도로 악덕 제작자가 많았던 시대였던 것이다. 링크 따라서 흑인 원작자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은 당시 악덕 제작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런 쟁점들과 약물 문제로 인해 죽었다는 오명으로 인해 당대에는 평론가들에게도 대차게 까이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관리의 문제일 뿐 음악적인 면에서는 엘비스가 대중들에게 아주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과 그만의 독특한 패션 등은 아직도 심벌처럼 남아 그가 남긴 영향력은 지속돼 현재는 평론가들도 모두 인정한다. 적어도 엘비스가 있었을 때랑 없었을 때를 상상해 본다면 미국을 넘어 전 세계 대중음악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평가는 계속 변하는 것.

2. 영향력[편집]

엘비스의 등장 이전에도 리틀 리처드, 척 베리와 같은 초기 로큰롤 장르를 탄생시키고 활동한 아티스트들도 있었으나 로큰롤 장르를 영미권 대중음악의 주류로 끌어올리고 범세계적인 인기를 처음으로 갖게 한 장본인은 엄연히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엘비스가 일으킨 로큰롤 열풍은 스탠다드 팝, 재즈 등으로 대표되던 기성 대중음악계의 판도를 뒤집었으며 본고장인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 무수히 많은 '엘비스 키즈'들을 만들어 냈고 그렇게 자란 엘비스 키즈들이 1960-70년대 대중음악 시장을 지배한 전설적인 록 음악 아티스트들이 되었다.[5]

북미 음악계에서 그의 위치는 아직도 확고하다. 그 이유로 'King of Rock 'n' Roll'은 그의 별칭이기도 하다. 유럽에선 아직도 생존 가수들보다 더 많은 앨범 판매고를 올리는 등 유럽과 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6] 비틀즈는 엘비스를 보며 로큰롤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웠다. 존 레논폴 매카트니 역시 60년대 초반까지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버디 홀리와 함께 자신들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으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늘 언급했다. 그리고 엘비스와 만났을때의 경험과 감동을, 다들 노년에 접어든 1990년대에도 다큐멘터리에 나와서 감명깊게 얘기했다. 밥 딜런도 자신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되고 싶다고 늘 말했었고, 실제로 그의 10대 시절 사진을 보면 가죽재킷과 리젠트 머리를 하면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패션을 그대로 따라한 모습들이 있다.

60년대의 전설적인 록 스타들이 록의 꿈을 꿀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가장 핫한 로큰롤 스타인 엘비스 프레슬리를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로큰롤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게 된 것은 자신들에게 처음으로 '우상으로서의 로큰롤 그 자체인' 음악을 알려준 스타 혹은 아이돌이기도 했던 엘비스에 대한 경배이자 지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엘비스가 최초로 레코드를 녹음했던 스튜디오에 밥 딜런이 와서 엘비스가 서있던 자리를 표시해 둔 흔적에 무릎을 꿇고 키스를 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7]

현대에서 엘비스가 '위대하다'고 평가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그의 음악은 흑인음악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백인이 흑인음악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흑백 인종차별이 매우 심하던 시대에 인종의 크로스오버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는 점이다. 다만 사실 그것보단 엘비스가 백인이라서 대중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 때문에 많은 흑인 가수들은 엘비스가 우리의 노래를 빼앗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음악을 빼앗아다며 팻 분을 비난했던 리틀 리차드가 훗날 인정했듯, 엘비스를 비롯한 백인 스타들이 알앤비, 로큰롤을 대중들에게 소개해줬기에 그들이 재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걸 생각해야 한다.

또한, 현재와는 달리 기독교 힙합이나 록 등의 장르가 활성화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로큰롤이 악마의 음악으로 여겨졌던 1960-1970년대에 < He Touched Me > 와 같은 가스펠 앨범들을 발매함으로써 선교 방식을 다양화하는 데 기여한 가수로도 평가받는다. 특히 미국에서 소위 Megachurch 라 불리우는 대형 교회들이 록밴드 또는 기타 대중음악팀을 필수적으로 고용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상당히 놀라운 혜안.
[1] 대표곡인 Fight the Power에서 인종차별주의자인 존 웨인과 함께 극딜한다.[2] 백인 래퍼 중 가장 유명한 에미넴 역시 흑인이 주류인 힙합에서 인기를 얻었는데, 'Without Me'에서 본인이 흑인 음악을 이기적으로 써먹어서 자신의 주머니를 부풀렸다며 엘비스 이래로 최악이라고 한다.[3] 그런데 마이클 잭슨은 엘비스의 딸과 결혼했다... 이혼하긴 했지만.[4] 엘비스는 자기 운전수에게 캐딜락도 펑펑 선물하던 사람이다.[5] 물론 엘비스는 50년대 당시 초창기 로큰롤을 현재의 록 음악으로 확실히 정의시키거나 더 나아가 세부장르화시킨 인물은 아니다. 엘비스의 역할은 로큰롤을 말 그대로 전세계적으로 폭발적 '유행'시킨 아이콘이었으며 로큰롤 장르를 더 발전시키고 현재의 록 음악으로 완전히 정립시킨 아티스트들은 그 전설적인 비틀즈, 롤링 스톤즈와 같은 60년대 밴드 아티스트들을 통해서이다. 엘비스의 중요성은 비틀즈를 비롯한 후대의 아티스트들의 어린 시절에 록 음악이 뭔지를 알게끔 들려주고 보여준 아이콘이자 첫 선구자의 역할이었다는 점이다.[6] 한국으로 치면 조용필같은 대중음악의 황제이자 영원한 아이콘 대우를 받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일종의 영구결번같은 개념.[7] 반면 비틀즈, 밥 딜런과 함께 록 음악을 발전시킨 롤링 스톤스는 엘비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