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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의 원조부 李宮進 | 이궁진 | ||
성씨 | 이(李) | |
휘 | 궁진(宮進) 또는 어열(餘說) | |
부친 | 이진유(李珍有) | |
모친 | 오씨(吳氏) | |
부인 | 이씨(李氏) 또는 김씨(金氏) | |
아들 | 이용부(李勇夫), 이단신(李端信) | |
생몰 | ? ~ ? (향년 27세) |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완산실록과 동국세기, 충효전의 내용이 다소 다르게 전해지며, 완산실록에 따르면 아내는 이씨(李氏), 동국세기 및 충효전에 따르면 아내는 김씨(金氏)이다. 또한 완산실록의 관직과 이름은 한림(翰林) 이궁진이나 동국세기 및 충효전에 따르면 호장(戶長) 이어열(李餘說)이다.
2.1. 완산실록[편집]
언제 태어났는지는 불명이나 15세에 이름이 실전된 선생 밑에서 수학하였으며, 27세가 되자 과거에 급제했고 호류궁(琥琉宮) 교수관(敎授官)에 임명받았고 인종에 의해 한림원으로 이직하여 그곳에서 일했다. 그러나 이듬해에 모함을 받아 귀양을 갔고 그곳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2.2. 동국세기 및 충효전[편집]
동국세기에선 이름이 이어열(李餘說)로 나타나며, 15세에 김대유(金大有)의 밑에서 수학하였다고 한다. 또한 김대유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기에 아내도 이씨가 아닌 김씨(金氏)이며 이궁진이 27세가 되던 해 과거에 합격하자 홀유궁(屹留宮)의 교수관(敎授官)으로 임명받았는데 모든 선비들이 그에게 몰려들 정도로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이후, 배륭대군(裴隆大君 또는 濱龍大君)이란 자가 이궁진의 기상과 문장을 보고 인종에게 이궁진을 대제학(大提學)에 임명시킬 것을 건하였다. 그러나 이궁진을 질투하는 자들이 많아 본인은 대제학을 거부했고 하야한 후 죽었다고 한다.
이후, 배륭대군(裴隆大君 또는 濱龍大君)이란 자가 이궁진의 기상과 문장을 보고 인종에게 이궁진을 대제학(大提學)에 임명시킬 것을 건하였다. 그러나 이궁진을 질투하는 자들이 많아 본인은 대제학을 거부했고 하야한 후 죽었다고 한다.
3. 계보[편집]
3.1. 선조[편집]
3.2. 후손[편집]
4. 팔고조도[편집]
이궁진의 팔고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