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터틀맨 Turtle Man | |
본명 | 임성훈 (Lim Seong-hoon) |
출생 | |
사망 | |
장지 | |
국적 | |
신체 | |
가족 | |
학력 | |
종교 | |
병역 | |
소속 그룹 | |
포지션 | 리더, 메인래퍼, 서브보컬 |
데뷔 |
1. 개요[편집]
터질 것만 같은 행복한 기분으로
틀에 박힌 관념, 다 버리고 이제 또
맨 주먹 정신, 다시 또 시작하면
나 이루리라 다 나 바라는 대로
2. 생애[편집]
1970년 9월 3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대한민국 육군 장교 아버지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전주시는 태어날 당시 아버지의 근무지로, 군인인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광주광역시, 전주시 등 지역을 수시로 옮겨가면서 근무해왔으며, 학창시절은 서울특별시에서 보냈다.
평택시에서 목욕탕을 하던 어머니의 도움으로 가수의 꿈을 키우던 그는 31살이던 2001년, 거북이 결성/데뷔 후 리메이크곡[11]과 1집 몇 곡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사·작곡했다.[12] 특유의 굵직한 음색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랩과 리드보컬을 담당했으며, 2007년에는 기획사 부기엔터테인먼트를 창립했다.
그는 선천성 심근경색으로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었으나 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자진입대하여 육군 상등병으로 소집해제되었다. 군에서 복무하던 시절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여자친구가 성폭행을 피하려다 그만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터틀맨은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울먹였다고 한다. 여자친구와의 사별 후 터틀맨은 순정을 지키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에 대한 심정은 2집 '10년이 지났지만'이라는 노래에 담겨 있다.[13]
참고로 터틀맨이 생전에 제일 좋아했던 자신의 곡은 거북이에게 가요프로그램 1위의 영예를 안겨준 '비행기'나 지금도 거북이의 대표곡으로 알려진 'Come On', '빙고', '싱랄라', '왜이래' 등이 모두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사부곡(思父曲) '장군에게'[14]였다는 사실을 그의 사후 지이가 밝힌 바 있다.
한때 1975년생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2006년에 자신이 37살로 김구라와 동갑(1970년 생)이라 밝힌 바 있다.[15] 실제로 2020년 금비가 복면가왕에 출연해 정체가 밝혀지자 김구라가 이것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사후에 1973년 생으로 잘못 알려진 정황이 포착되었다.
터틀맨은 당시 거북이가 랩과 힙합을 주로 추구하는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임선영을 위해 발라드 파트를 넣어주는 배려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임선영은 터틀맨을 자기를 여기까지 키워 준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도 하고, 장례식에서도 펑펑 울며 슬퍼했다.
평택시에서 목욕탕을 하던 어머니의 도움으로 가수의 꿈을 키우던 그는 31살이던 2001년, 거북이 결성/데뷔 후 리메이크곡[11]과 1집 몇 곡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사·작곡했다.[12] 특유의 굵직한 음색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랩과 리드보컬을 담당했으며, 2007년에는 기획사 부기엔터테인먼트를 창립했다.
그는 선천성 심근경색으로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었으나 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자진입대하여 육군 상등병으로 소집해제되었다. 군에서 복무하던 시절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여자친구가 성폭행을 피하려다 그만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터틀맨은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울먹였다고 한다. 여자친구와의 사별 후 터틀맨은 순정을 지키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에 대한 심정은 2집 '10년이 지났지만'이라는 노래에 담겨 있다.[13]
참고로 터틀맨이 생전에 제일 좋아했던 자신의 곡은 거북이에게 가요프로그램 1위의 영예를 안겨준 '비행기'나 지금도 거북이의 대표곡으로 알려진 'Come On', '빙고', '싱랄라', '왜이래' 등이 모두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사부곡(思父曲) '장군에게'[14]였다는 사실을 그의 사후 지이가 밝힌 바 있다.
한때 1975년생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2006년에 자신이 37살로 김구라와 동갑(1970년 생)이라 밝힌 바 있다.[15] 실제로 2020년 금비가 복면가왕에 출연해 정체가 밝혀지자 김구라가 이것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사후에 1973년 생으로 잘못 알려진 정황이 포착되었다.
터틀맨은 당시 거북이가 랩과 힙합을 주로 추구하는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임선영을 위해 발라드 파트를 넣어주는 배려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임선영은 터틀맨을 자기를 여기까지 키워 준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도 하고, 장례식에서도 펑펑 울며 슬퍼했다.
2.1. 투병과 사망[편집]
거룩한 인생, 고귀한 삶을 살며
북그럼(부끄럼) 없는 투명한 마음으로
이내 삶이 끝날 그 마지막 순간에
나 웃어보리라, 나 바라는 대로거북이, <빙고> 中
2005년 4월 12일, 심근경색으로 인해 갑작스레 쓰러진 후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아오던 중 그로부터 3년만인 2008년 4월 2일, 결국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 말았다. 최초로 진입했던 소방관의 그림에 따르면 침대에서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고 하였다. 잠자다가 고통을 느끼고 119에 신고를 하려다 사망한 것으로 추측이 되고 있다.
그의 심근경색은 가족력도 있지만 영 좋지 못한 생활습관도 한 몫 했는데, 술은 잘 마시지 않았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군 제대 직후인 20대 후반 클럽 DJ로 활동했던 시절에는 심야 시간대에 피자나 갈비 같은 기름진 음식들을 폭식하기도 했으며,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 할 정도의 육식 마니아였다. 당시 터틀맨의 주치의였던 순환기내과 김성구 교수는 그의 심근경색 가족력 때문에 콜레스테롤 섭취를 억제해야 된다 밝혔는데, 나중에 심근경색 수술을 받은 이후에는 그래도 고기 먹는 양을 줄여서 보통 사람 대비 별다른 게 없는 정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2006년, TV종합병원 방송 녹화 중에는 평소 같으면 고깃집을 찾았을 터틀맨이 멤버들과 함께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16] 당시 터틀맨은 밥 먹는 것이 가장 힘든 스케줄이라 했고, 스튜디오에서 VCR을 통해 보던 사람들은 그 말에 폭소했다.
하지만 식생활보다도 더 큰 문제는 밤 늦게까지 음악과 회사 일을 하느라 과로가 가중되었고, 이걸 버티기 위해 캔커피를 하루에 10캔 가까이 마실 정도로 카페인을 입에 달고 살았다는 것이다.[17] 체중 역시 103kg이나 나갈 정도의 상당한 비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운동도 잘 하지 않았다. 게다가 담배까지 하루에 2갑 반이나 피울 정도로 엄청난 골초였다. 심장 수술 이후 한동안 금연했지만, 사망 4시간 전인 4월 1일 밤 10시부터 밤 12시까지 2시간 만에 2갑이나 피웠다고 한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쌓였고, 이를 푸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해 담배에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러한 주변 상황이 심장에 무리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 2007년 12월 건강이 나빠진것으로 보아서 2007년 12월부터 그 징조가 보인 것 같다. 그때 병원에 입원했다면 현재까지 살아 있을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만약 재판에서 진다면 30억의 위약금이 발생한다는 것 때문에 많이 힘들다고 추정된다. 회사 문제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4집 활동 기간에서는 우울증도 겪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아주 더 큰 문제를 보인것은 4집 발매 전에는 멤버들과 동거를 하였지만 4집 발매 이후로 금호동에서 혼자 살았다고 한다.[18] 멤버들과 동거를 계속 하였다면은 자기관리나 응급처치가 더 용이했을 테니 지금까지 살아 있을수도 있어서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여러가지의 이유로 인해 건강의 큰 무리를 준것으로 보인다.[19]
이후 2020년 엠넷 특집방송 다시 한번에서 사실 터틀맨은 살 수 있었지만 음악 활동을 위해서 이를 포기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어느 날 터틀맨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고, 의사는 병원에서 한 달간 입원하고 30kg를 감량하면 살 수 있다고 조언했지만, 터틀맨은 입원 생활 동안 체중감량을 하였더니 본인의 개성 있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것을 보고 병원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쓰러지더라도 무대 위에서 쓰러지겠다는 열정이 누구보다도 불타올랐던 것. 그 때 완성한 작품이 바로 거북이에게 첫 1위를 안겨준 "비행기"다. 이후로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서 병원에 갈 시간조차 없어질 정도로 과로가 가중되었다고 한다.[20]
이런 뒷사정 때문에 오랜 활동 기간과 꾸준한 인기로 인해 적지 않았었던 수익의 대부분을 심근경색 치료에 써야 해서 궁핍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날 당시에도 약 4억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고... 그래서였는지 2007년 12월에 싱랄라 뮤직비디오[21] 촬영 중 인터뷰에서도 2008년에는 빚을 좀 많이 탕감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지만 농담이고요라고 하며 화제를 전환하였다.
멤버들과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3월 31일인데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오래 배웅을 해줬다고 한다. 어쩌면 곧 떠날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이후 사망 전날인 4월 1일은 스케줄이 없어서 그날 하루 종일 집에 머물렀고, 금연한 지 꽤 되었음에도 사망 4시간 전인 그날 밤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담배 2갑을 피우고 밤 12시에 침실에서 잠들었다가 이튿날 새벽 2시에 돌연 사망하였다. 잠든 지 불과 2시간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당일인 2일 오후 5시에 방송 녹화 스케줄이 있던지라 매니저가 픽업하러 갔는데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흔들어도 아무런 응답이 없자 열쇠 수리공을 호출해 문을 따고 들어갔고, 그렇게 사망 13시간 만인 오후 3시, 터틀맨은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22]
그의 시신은 수원시연화장[23]에서 화장되었고, 유골은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 추모관에 안치되어 있으며[24] 후일 마왕 신해철과 배우 김성민도 이곳에 안치되었다. 유토피아 추모관 근처에는 오방 교차로와 오방 마을이 있는데, 생전 마지막 앨범인 정규 5집 이름이 '오방 간다' 이다. 지이와 금비가 추모관으로 가는 길에 오방 마을이 있음을 알고 많이 놀랐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6년이 넘었지만, 음악사이트 및 유튜브에서는 거북이와 터틀맨의 부재를 아쉬워 하는 추모글들이 고인의 기일을 전후로 계속 올라오고 있다. 터틀맨의 사망을 계기로 거북이는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고, 사후 3년 뒤인 2011년에 이강을 영입하여 재결성하지만 예전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고, 게다가 이강마저도 개인 사정으로 탈퇴하면서 멤버들 모두 각자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심근경색은 가족력도 있지만 영 좋지 못한 생활습관도 한 몫 했는데, 술은 잘 마시지 않았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군 제대 직후인 20대 후반 클럽 DJ로 활동했던 시절에는 심야 시간대에 피자나 갈비 같은 기름진 음식들을 폭식하기도 했으며,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 할 정도의 육식 마니아였다. 당시 터틀맨의 주치의였던 순환기내과 김성구 교수는 그의 심근경색 가족력 때문에 콜레스테롤 섭취를 억제해야 된다 밝혔는데, 나중에 심근경색 수술을 받은 이후에는 그래도 고기 먹는 양을 줄여서 보통 사람 대비 별다른 게 없는 정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2006년, TV종합병원 방송 녹화 중에는 평소 같으면 고깃집을 찾았을 터틀맨이 멤버들과 함께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16] 당시 터틀맨은 밥 먹는 것이 가장 힘든 스케줄이라 했고, 스튜디오에서 VCR을 통해 보던 사람들은 그 말에 폭소했다.
하지만 식생활보다도 더 큰 문제는 밤 늦게까지 음악과 회사 일을 하느라 과로가 가중되었고, 이걸 버티기 위해 캔커피를 하루에 10캔 가까이 마실 정도로 카페인을 입에 달고 살았다는 것이다.[17] 체중 역시 103kg이나 나갈 정도의 상당한 비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운동도 잘 하지 않았다. 게다가 담배까지 하루에 2갑 반이나 피울 정도로 엄청난 골초였다. 심장 수술 이후 한동안 금연했지만, 사망 4시간 전인 4월 1일 밤 10시부터 밤 12시까지 2시간 만에 2갑이나 피웠다고 한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쌓였고, 이를 푸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해 담배에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러한 주변 상황이 심장에 무리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 2007년 12월 건강이 나빠진것으로 보아서 2007년 12월부터 그 징조가 보인 것 같다. 그때 병원에 입원했다면 현재까지 살아 있을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만약 재판에서 진다면 30억의 위약금이 발생한다는 것 때문에 많이 힘들다고 추정된다. 회사 문제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4집 활동 기간에서는 우울증도 겪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아주 더 큰 문제를 보인것은 4집 발매 전에는 멤버들과 동거를 하였지만 4집 발매 이후로 금호동에서 혼자 살았다고 한다.[18] 멤버들과 동거를 계속 하였다면은 자기관리나 응급처치가 더 용이했을 테니 지금까지 살아 있을수도 있어서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여러가지의 이유로 인해 건강의 큰 무리를 준것으로 보인다.[19]
이후 2020년 엠넷 특집방송 다시 한번에서 사실 터틀맨은 살 수 있었지만 음악 활동을 위해서 이를 포기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어느 날 터틀맨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고, 의사는 병원에서 한 달간 입원하고 30kg를 감량하면 살 수 있다고 조언했지만, 터틀맨은 입원 생활 동안 체중감량을 하였더니 본인의 개성 있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것을 보고 병원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쓰러지더라도 무대 위에서 쓰러지겠다는 열정이 누구보다도 불타올랐던 것. 그 때 완성한 작품이 바로 거북이에게 첫 1위를 안겨준 "비행기"다. 이후로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서 병원에 갈 시간조차 없어질 정도로 과로가 가중되었다고 한다.[20]
이런 뒷사정 때문에 오랜 활동 기간과 꾸준한 인기로 인해 적지 않았었던 수익의 대부분을 심근경색 치료에 써야 해서 궁핍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날 당시에도 약 4억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고... 그래서였는지 2007년 12월에 싱랄라 뮤직비디오[21] 촬영 중 인터뷰에서도 2008년에는 빚을 좀 많이 탕감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지만 농담이고요라고 하며 화제를 전환하였다.
멤버들과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3월 31일인데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오래 배웅을 해줬다고 한다. 어쩌면 곧 떠날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이후 사망 전날인 4월 1일은 스케줄이 없어서 그날 하루 종일 집에 머물렀고, 금연한 지 꽤 되었음에도 사망 4시간 전인 그날 밤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담배 2갑을 피우고 밤 12시에 침실에서 잠들었다가 이튿날 새벽 2시에 돌연 사망하였다. 잠든 지 불과 2시간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당일인 2일 오후 5시에 방송 녹화 스케줄이 있던지라 매니저가 픽업하러 갔는데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흔들어도 아무런 응답이 없자 열쇠 수리공을 호출해 문을 따고 들어갔고, 그렇게 사망 13시간 만인 오후 3시, 터틀맨은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22]
그의 시신은 수원시연화장[23]에서 화장되었고, 유골은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 추모관에 안치되어 있으며[24] 후일 마왕 신해철과 배우 김성민도 이곳에 안치되었다. 유토피아 추모관 근처에는 오방 교차로와 오방 마을이 있는데, 생전 마지막 앨범인 정규 5집 이름이 '오방 간다' 이다. 지이와 금비가 추모관으로 가는 길에 오방 마을이 있음을 알고 많이 놀랐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6년이 넘었지만, 음악사이트 및 유튜브에서는 거북이와 터틀맨의 부재를 아쉬워 하는 추모글들이 고인의 기일을 전후로 계속 올라오고 있다. 터틀맨의 사망을 계기로 거북이는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고, 사후 3년 뒤인 2011년에 이강을 영입하여 재결성하지만 예전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고, 게다가 이강마저도 개인 사정으로 탈퇴하면서 멤버들 모두 각자 활동을 하고 있다.
3. 수상 경력[편집]
거북이 멤버로서 수상한 부분에 대한 내용은 거북이(혼성그룹) 문서 참고하십시오.
4. 여담[편집]
- 노래할 때 나오는 특유의 중저음은 원래 목소리가 아니라 군복무 시절에 구령을 하면서 터득하게 된 목소리로, 이 목소리를 랩에 적용하려고 2년을 연습했다고 한다. 원래 목소리는 노래 부를 때보다 높은 편으로, 거북이 2집 수록곡 '고부기', 4집 수록곡 'Remember Me', 5집 수록곡 '안녕 푸치'에서 원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Remember Me'의 경우 아예 피쳐링해준 가수가 누구냐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데뷔 때 원래 목소리로 녹음을 해봤는데 덩치와 안어울리는 목소리라서 새로 개발한 목소리가 거북이 노래에서의 터틀맨 목소리라고.
- 사망 후 유족은 그의 어머니와 형, 형수, 그리고 그의 조카(형의 자녀)[27]가 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형은 오랜만에 찾아간 지이와 금비를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동생 내지 친딸처럼 대하면서 이들의 유대감이 얼마나 끈끈했는지를 보여주었다.
- 2008년까지 김구라와 같은 소속사에 있었다. 김구라는 과거 신정환을 좋게 보지 않았는데, 1974년 생인 신정환이 4살이 많은 터틀맨을 무시하고 하대[28]했기 때문이라고 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터틀맨은 "예전에 방송국 대기실에서 신정환 선배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며 "선배도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헌데 선배가 갑자기 뜬금없이 '거북아 너는 몇 살이냐'고 물어와 당황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두사람의 관계가 나쁘지 않음을 알 수있고, 방송에서 신정환도 거북이와의 일화를 몇 번 언급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신정환을 저격한 것이 아니다.[29]
-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에서 임선영의 멤버들 폭행 불화 의혹이 있었다. 거북이 참고.
- MC 스나이퍼의 6집에 수록된 'Letter To Heaven'에는 둘 사이의 일화가 가사 안에 있다. 실제로 터틀맨 생전 MC 스나이퍼는 터틀맨보다 무려 9살[30]이나 어린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거북이 5집 음반에도 붓다베이비의 일원이었던 DJ Road가 스크래치 세션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1집 앨범 작업을 하다 만난 인상 좋은 뚱땡이 뒤뚱대는 발걸음과 덥수룩한 긴 머리
징그럽게 놀려댔지 그 펑퍼짐한 엉덩이를 형은 작곡을 한다면서 기타 줄만 튕겼지
우린 빈털터리 생긴 건 빈집털이 도둑놈 같이 생겼어도 보헤미안 랩소디
스타의 꿈을 키워나간 비좁았던 작업실 사는 게 넉넉지가 않아 쇼파는 곧 내 침실
우리는 함께 데뷔를 했고 나름 성공을 했다고 자축을 하며 술 마시던 그날을 난 기억해
그게 바로 엊그제 이야기만 같은데 믿지 못할 매스컴의 보도를 전해 듣게 돼
찾아나선 장례식 밝게 웃는 영결 사진 그 앞에서 고개 숙여 울고 있는 지이는
나를 보자 품에 안겨 또 눈물을 쏟아내 난 말했지 '팬들은 거북이를 기억해'- MC 스나이퍼, <Letter To Heaven> 中
- 바이브의 원년 멤버인 유성규의 절친이자 그가 이끄는 레이블인 Chic Entertainment 소속 래퍼인 SNOFEEL(스노필, 본명 고승일, 과거 예명은 씨팍, T.D.F에서의 활동명은 진센)이 과거 거북이의 전신격 되는 힙합그룹 T.D.F(Turtles Da Foul)에서 터틀맨과 같이 활동한 인연이 있다. 2017년 발표한 싱글인 <Flash Back> 랩 가사에서도 이를 언급하였는데, 해당 가사는 다음과 같다.
- 중학생인 14살 때 왜이래를 작곡했다고 한다. 그가 중학교 2학년이던 1984년의 한국 가요계의 분위기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기 이전이었고 댄스 곡과 힙합 곡이 주류가 아니었던데다 늘상 트로트, 포크 락, 발라드 곡으로 도배되었던 시대였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정말로 충격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왜이래"는 19년이 지난 2003년에 세상 빛을 보게 되며, 또한 가장 유명한 곡 '빙고'도 역시 중학교 2학년때 만들었다.
- 엠넷 특집방송 '다시 한번'에 김현식과 더불어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방송은 2020년 12월 9일 전파를 탔다.[32] 거북이 멤버들과 JTBC 이태원 클라쓰의 수록곡 가호의 시작을 불렀는데, 30대 후반[33]의 터틀맨 외모와 특유의 표정, 제스처까지 완벽히 재현해냈다. 터틀맨이 사망했을 2008년도에는 있지도 않았고 2010년대 중반부터 하나의 문화가 된 손가락 하트 포즈까지 마지막 사라질 때 재현해서 큰 감동을 선사했다. 목소리의 경우 특유의 랩을 구현하는 건 현 시점에서는 불가능이라서 싱잉랩으로 대체했고, 음성 합성의 티도 나는 편이지만 그래도 괜찮은 퀄리티로 복원하였다. 특히 추임새는 하하가 생전 터틀맨이 녹음했던 추임새가 담긴 USB 메모리를 구해온 덕에 가능했다고 한다. 목소리를 제외한 외모는 생전의 터틀맨과 비슷한 체형의 남성 댄서를 그린 스크린 앞에서 촬영한 다음 얼굴만 딥페이크로 합성하는 방식으로 구현하였다. 당시 촬영장에서 터틀맨의 홀로그램이 나오자 어머님인 백남 여사와 형 임준환은 공연 내내 통곡을 하다시피하며 무대를 지켜보았고, 형은 동생의 모습이 그래픽인 것을 아는데도 무대로 뛰어올라가고 싶었다고 했으며 어머니 백남 여사는 "사랑하는 내 아들 성훈아."라는 말 이후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거북이의 멤버들과 팬들, 현장에 있던 MC 하하과 게스트 펭수[34] 또한 슬픔에 젖어 있는 모습이 나왔다.
- 웹소설 알고보니 재벌아들에서 그룹명은 바다거북으로, 터틀맨은 서광일이란 이름으로 나왔다, 주인공이자 STAR그룹 3대 회장인 이시완에 의해 현실에서의 마지막 무대가 취소되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다행히 병원에 도착한 후 쓰러져 목숨을 구했다, 참고로 이시완이 서광일의 팬이라고 한다, 고아원이랑 공장 노동자 시절에 서광일의 노래로 힘을 얻었다고.
- 친형에 의하면 터틀맨이 어렸을 때부터 워낙에 우량아였다고 한다.
- 2004년 12월 3일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해 스크류바 CM송을 부를 때, 간접광고를 막기 위해서인지 중간에 혓바닥을 내밀었다.
[1] 유골함에는 음력생일인 8월 3일로 기재되어 있다. 양력으로 환산 시 9월 3일이 된다.[2] 사망 13시간만인 당일 오후 3시에 매니저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사망 시간으로 미루어 보면 취침 도중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듯 하다.[3] 네이버 프로필 상 98kg이지만, 2006년 12월 16일에 방송된 TV종합병원에서 집에 있는 체중계로 측정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측정된 값은 102.9kg로 반올림하면 103kg이였다. 해당 방송분 이후 6개월만인 2007년 6월에 14kg 감량 사실을 알렸는데, 의사가 원 체중에서 30kg, 즉 73kg 이하로 빼지 않을 시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4] 보통 이 정도 키면 260~265mm인 경우가 대다수인데, 폭식으로 체중이 많이 증가해 발 사이즈가 300mm 되는 걸로 보인다. 여담으로, 강호동과 발 크기가 같다.[5] 전라남도 장성군 출신으로, 후술할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소장이다. 1997년에 아들과 같은 병세로 인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 도중 별세했다. 하지만 사망 연도에 대해서는 1998년 설도 있는 등 아주 들쑥날쑥하다.[6] 자식을 생전에 그토록 사랑해서 그런지 자식이 세상을 떠났을 때 매우 슬프게 오열하였다. tv종합병원으로 백미희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7]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는 어디 나왔는지 불명이다.[8] 30대 후반 시절에 활동할 때 염주를 차고 자주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2006년 TV종합병원 방영 당시 집 내부에 걸려있는 달력에 달마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9] 선천적 심근경색으로 면제였으나 예비역 육군 소장인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방위병으로 근무하다 상병으로 소집해제하였다.[10] 지이, 금비와 팀명 거북이도 이 노래에 같은 방식으로 등장한다.[11] 사계, 한동안 뜸했었지 등.[12] '모든' 곡은 아니고 1집 당시 삼속곡으로 잠시 활동했던 '순한 사랑'과 'Real Love'는 본인의 자작곡도 아니지만 리메이크 곡도 아닌 완벽한 타 작사, 작곡가의 제작 곡. 참고로 '순한 사랑'의 작사, 작곡, 편곡은 작곡팀 디스코파이터가 도맡았다. 해당 두 곡이 터틀맨의 자작곡이 아닌 이유는 터틀맨이 1집 발매를 위해 작사 및 작곡가를 찾아다닐 때 대부분이 거북이의 성공을 회의적으로 보고 곡을 주는 것을 거부했을 때, 터틀맨에 호응해 디스코파이터가 거북이에게 곡을 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저 두 곡은 원래 종로에서란 발라드곡으로 유명한 JS란 여성 2인조 듀오의 앨범에 Why (순한 사랑), Just One (Real Love) 이란 제목으로 실으려 했으나 곡 정산 문제로 수록이 무산된 상황이었는데 거북이가 곡 사용료를 지불하고 JS의 음반에 싣지 못한 순한 사랑과 Real Love를 거북이 1집에 싣게된 것이다. 그러나 JS측에서 이후 음반을 출시할 때 디스코파이터 측과 협의되지 않은 저 두 곡을 앨범에 실어버렸고 거북이는 그들보다 앨범출시가 늦었기 때문에 본의아니게 거북이의 저 두 곡이 표절곡이란 오명을 쓸 뻔 했다. 그렇지만 터틀맨이 이에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해 이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또한 원래 거북이는 처음에 터틀맨, 레드페이스, 지이로 데뷰할 예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집에는 터틀맨과 레드페이스가 공동 작사, 작곡한 곡들이 더러 존재한다.[13] 이 곡이랑 4집 수록곡 '10년 전으로'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두 곡은 전혀 다른 곡이다. 4집 '10년 전으로'의 경우, 주요 화자가 터틀맨이 아닌 Z-E(지이)이며, 지이가 10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한탄하며 내뱉는 랩에 터틀맨이 10년 전으로 되돌아 간다고 해도 다시 지금 이 시점이 되돌아오면 그 때마다 다시 10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후회하기 보다는 지금의 현실에 최선을 다하라고 일침하는 답가로 이뤄져 있다. 2집 '10년이 지났지만'이 터틀맨의 자전적 내용이라면 4집 '10년 전으로'는 Z-E(지이)의 자전적 내용이니 거북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어볼 것을 추천.[14] 이 곡은 2004년 6월 단독 콘서트에서 터틀맨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라이브로 불렀다. 거북이의 노래들은 보통 터틀맨이 대다수의 파트를 3인에게 공평하게 배분했지만 유이하게 이 곡만 보컬을 제외한 곡 전체가 터틀맨의 솔로이다. 이후로는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라이브로 부른 적이 없다고 한다. 사부곡이다보니 아버지 생각에 말을 잇지 못했다는 듯. 또 한 곡의 터틀맨 솔로곡은 거북이 4집 거북이 사요!!의 Remember Me 이다. 첫 부분을 자세히 들어본다면 총 소리가 들린다.[15] 만일 밝혀지지 않았다면 터틀맨 사망 기사에 향년 33세(세는나이 34세)라고 쓰여 나왔을 것이다.[16] 2006년이라는 방영 연도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에는 쌀로 만들어서 다이어트에 좋겠거니 하는 게 상식처럼 돌았지만, 사실 쌀국수는 나레이션에 나온 것 과는 다르게 나트륨이 많아 다이어트에 좋은 음식은 아니다. 다만, 칼로리 자체는 타 국수 요리보다 한참 낮기는 하고 당시 터틀맨의 문제는 콜레스테롤이었기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을듯.[17] 적당한 카페인 섭취는 심장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카페인 과다섭취는 심장에 치명적이며, 심장마비 사례도 적지 않게 나오는 편이다. 거기에 심장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과로까지 겹쳤으니 터틀맨 입맛을 생각하면 카페인보다는 캔커피 내 설탕이 더 문제를 키운 듯.[18] 터틀맨이 자택을 처음으로 구할 당시에는 그가 다녔던 순천향대병원이 있는 한남동 아파트에 거주했다가 금호동 아파트로 이사간것으로 보인다.[19] 정확히는 TV종합병원에 나온 관리를 퇴원 초기에는 하면서 체중도 89kg까지 빼는 등 관리를 했던게 2006년이지만 그 이후 이런 저런 사정+본인의 음악활동에 대한 후술할 신념으로 관리를 지속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터틀맨이 거주했던 금호동 아파트가 순천향대병원에서 조금 먼위치에 있어서 골든타임을 놓친게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20] 체형과 목소리는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래서 살을 빼면 목소리가 바뀌는 경우가 있으며, 특히 복식호흡으로 목소리를 낼 경우 심각하게 변할 수도 있다. 가수는 목소리나 음색이 아이덴티티인데, 그걸 잃는다는 것이므로 함부로 감량/증량해서는 안 된다.[21] 당시 터틀맨이 입고 있던 악마 의상을 보면 싱랄라임을 알 수 있다. 싱랄라는 실제 발매 시기는 2008년이지만, 상술되었듯이 동년 12월에 뮤직비디오가 촬영되었고, 2008년 1월 10일에 공식적으로 발매되었기 때문.[22] 당시 그가 휴대전화로 119에 응급출동 요청할려고 시도한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미 골든 타임을 놓쳤고 신고 기록이 없어서 119상황실에 전파되지않았다.[23] 훗날 배우 장자연과 노무현 16대 대통령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들 중 일부분이 화장된 곳이다.[24] 가수 터틀맨(임성훈) 12주기 추모식, 유토피아추모관, 2020-04-02[25] 12월의 인물 - 임준환, (사)한국테니스발전협의회, 2007-12-05[26] 테니스 선수로 활동한적이 있다.[27] 결혼과 조카의 탄생은 터틀맨의 사후에 이뤄졌기 때문에 생전에 만나지는 못했으며, 2007년 테니스 잡지에서는 미혼으로 나와 있다. 1966년 생인걸 고려하면 동생이 사망한 2008년 이후 결혼한 것이라 42세 이후이므로 결혼이 꽤 늦은 편.[28] 신정환이 "거북아, 너 몇 살이니?" 이런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나중에 터틀맨의 나이를 알고 놀랐다고는 했는데, 사실 터틀맨이 신정환보다 한참 늦게 데뷔한데다 (신정환이 보기에 터틀맨이) 나이에 비해 동안인 점도 한 몫 했다. 현재 시점에서는 30대 그 나이로 보이지만 30대가 겉늙어보이던 2000년대 초반, 중반까지만 해도 저정도 얼굴이면 동안이었다.[29] 거북이, 후배가수들에게 "인간이 되라", 씨앤비뉴스, 2008-01-11[30] 터틀맨이 1970년 생, MC 스나이퍼가 1979년 생이다.[31] MC 스나이퍼도 불교이다.[32] Mnet, 故김현식·터틀맨 추모 특집 '다시 한번' 편성, 스타투데이, 2020-10-28[33] 물론 2020년까지 생존시 나이는 50세다. 터틀맨은 1970년 생으로 강호동, 박명수와 동갑이다. 여담으로 1982년생인 금비가 2020년 당시 30대 후반으로 터틀맨이랑 나이가 같아졌다.[34] 평소 팬이긴 하나 생전에 서로 만난 적이 없으며 터틀맨이 살아 있을 당시에는 펭TV자체가 없었고 펭수 캐릭터도 생기기 전이다. 애초에 유튜브라는 게 한국에 알려지기도 전이었다.[35] 홍서범, 황현희, 김대범과 함께 출연했다.[36] 보통 방송이나 무대에선 안경을 쓰지 않았고, 영정사진에서도 안경을 쓰지 않았다.[37] 당시 결승전 상대는 박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