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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발굴 위치3. 유물
3.1. 금속활자3.2. 일성정시의와 물시계 3.3. 총통과 동종
4. 의의5. 전시6. 참조문헌

1. 개요[편집]

파일:ICM_chulto.jpg
파일:ICM_hwalja.jpg
유물 발굴 현장 사진
주요 출토품인 금속활자
2021년 6월 29일 문화재청과 산하기관 수도문물연구원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에서 조선금속활자 160본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과학유물을 출토하였다고 밝혔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번 유물 발견을 "대단한 사건"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 발굴 위치[편집]

파일:ICM_map.jpg
파일:ICM_satelite.jpg
유물 발굴지 지도
위성사진
이번에 유물이 발굴된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는 종로2가 사거리, 탑골공원 서쪽에 있다. 조선 전기까지는 한성부 중부 8방(坊)[1] 중 하나인 견평방(堅平坊)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의금부와 상업시설인 운종가가 이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연구원은 발굴지역은 조선 전기부터 근대에 이르는 6개의 문화층(2~7층)으로 분류하였는데, 이번 유물은 발굴지에서도 16세기에 해당하는 6층, 3m 아래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유물이 발굴된 유구는 역사학적으로 큰 가치를 가진 곳이 아니다. 건물 형태로 보아 조선 정부에서 지은 건물이 아니라 민간에서 지은 건물로 추측된다.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평범한 창고에서 이런 고귀한 유물이 발견된 것에 대해 의구심이 크며, 아마 재활용하려고 묻어놓았다가 어떠한 이유로 잊힌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연대를 알 수 있는 물건 중 가장 늦은 물건이 1588년에 제조되었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문에 폐기한 것일 수도 있으나, 그 이유 역시 연구를 통해 밝혀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제6조(매장문화재 지표조사)
① 건설공사의 규모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설공사의 시행자는 해당 건설공사 지역에 문화재가 매장ㆍ분포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사전에 매장문화재 지표조사(이하 "지표조사"라 한다)를 하여야 한다.

제36조(행정명령 위반 등의 죄) 정당한 사유 없이 다음 각 호의 명령 또는 지시를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제9조제1항에 따른 문화재 보존조치 명령
  2. 제10조제2항에 따른 공사중지 명령
  3. 제11조제2항에 따른 발굴의 정지 또는 중지명령(제16조에 따라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4. 제14조에 따른 발굴완료 후 필요한 사항의 지시(제16조에 따라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매장 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한편, 발굴지의 향후 이용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매장문화재보호조사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매장 문화재 보존조치 명령, 공사중지 명령, 발굴 정지 또는 중지 명령, 발굴 완료 후 필요한 사항 지시에 따르지 않거나 정부의 지표조사를 거부하는 경우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강제 조치 때문에 문화재나 유적을 숨길 수 있다는 비판을 고려해 서울시에서는 유적지가 나온 지역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2015년 종로구 공평동 5-1번지에 종로센트로폴리스를 짓다가 도시 유적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때 서울시는 지하의 도시 유적을 보존하는 대신 용적률을 200%만큼 올려 주었다.

3. 유물[편집]

3.1. 금속활자[편집]

파일:ICM_hwalja3.jpg
금속활자
이 유물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조선시대 금속활자 1600여 점이다. 조선 전기 금속활자는 한글 활자 30본(1455년 무렵 제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외에는 전해오지 않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활자들이 다 불탄 데다가 조선시대에서 옛 금속활자를 녹여 새 금속활자로 만드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발굴로 조선시대 금속활자의 실물 연구가 가능해졌다.

금속활자의 제작 연도나 목적도 다양하다. 한자 활자에는 1434년 갑인자(甲寅字), 1455년 을해자(乙亥字), 1465년 을유자(乙酉字)에 해당하거나 이로 추정되는 유물이 나왔으며, 이 중 갑인자는 구텐베르크의 1453년 42행 성경 인쇄보다도 이른 것이다. 한글 활자도 초기 한글 표기인 동국정운식 표기법( ‘ㅭ’, ‘ㆆ’, ‘ㅸ’)이 반영된 활자가 확인되었다. 학계는 활자 모양이 1462년 능엄경언해와 일치한 것으로 보아 한글 활자는 1455~1462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훈민정음이 1433년에 창제되었으나, 한글 활자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일 것이다. 또한 한글 토씨인 '이며'나 '이고'를 인쇄하는데 썼던 연주활자도 발굴되었다.

3.2. 일성정시의와 물시계 [편집]

파일:ICM_ijs.jpg
이번에 발굴된 일성정시의 부품(상)과 구조(하)
일성정시의는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천문 시계로, 조선 과학의 혁명을 상징하는 물건 중 하나이다. 안타깝게도 실물은 현존하지 않고, 지금 있는 일성정시의는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복원품이다. 하지만 이번 발굴에서 일성정시의의 부품으로 추정되는 금속 원판이 발견되었다. 이번에 발견된 부품은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3개 부품이다.주천도분환은 원을 365.25도로 등분한 고리이고, 일구백각환과 성구백각환은 하루를 100각으로 나눠 눈금을 새긴 도구로, 각각 태양과 별의 위치를 이용해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였다.
파일:ICM_jj.jpg
파일:external/pds22.egloos.com/f0018015_4eb4c9f860ffc.jpg
자격루 부품으로 추정되는 금속판
자격루 복원품
자동물시계 부품도 발견되었다. 금속판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형태인데, 이는 「세종실록」에서 전하는 물시계의 작동 방식을 연상시킨다.[2] 사학계에서는 이 금속판이 세종 시대 장영실이 만든 흠경각 옥루이거나, 1566년 중종 시대에 만들어진 보루각의 자격루 부품 중 하나로 추측하고 있다.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는 실물이 없고, 중종 시대 자격루는 청동으로 만든 물통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3.3. 총통과 동종[편집]

파일:ICM_ct.jpg
파일:ICM_bell.jpg
총통
동종
연구원은 승자총통(1583년) 1점, 소승자총통(1588년) 7점 등 총 8점의 총통도 찾았다. 소승자총통에는 제작자가 희손과 말동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보불 제 855호 차승자총통에도 새겨진 이름이다. 총통은 절단된 채로 발견되었다.

동종은 파편과 용뉴(용 모양 손잡이)만 발견되었다. 동종에는 "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이라 새겨져 있었다. 이는 1535년(중종 30년) 4월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조선 시대 기와가 몇 점 발견되었다.

4. 의의[편집]

역사학계에서는 "올해 고고학 발굴의 최고 성과", "대단한 사건"이자 "깜짝 놀랄 만한 일", "세계적 사건"이라는 표현을 쓰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단한 사건입니다. 깜짝 놀랄 만한 일이죠. 기다리던 유물이 나온 것 같아서 매우 기쁩니다."라고 평하였고, 문화재청 관계자도 "보존처리와 추가 연구를 거치면 조선 전기 인쇄술과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금속활자는 1372년 직지심체요절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경보다 50년가량 이른 것이다. 조선 전기에도 1403년 계미자, 1420년 경자자 등을 제작하면서 활자의 전통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도 당대 금속활자 실물은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증도가자 101점은 진위 논란 끝에 보물로 지정되지 않았으며, 조선 전기의 금속활자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30점이 다였다. 그러나 이번에 금속활자가 대규모로 발굴되면서 이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가능해졌다.

물시계 부품과 일성정시의도 실물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있는 일성정시의나 여타 박물관에 있는 자격루 모두 복원품에 불과하다. 세종의 주요 업적으로 과학 기술 진흥을 손꼽으나, 이를 상징하는 유물은 훈민정음 말고는 없는 셈이다. 기록만으로 남아있던 시계의 일부를 직접 발굴함으로써, 당대 과학 기술을 복원할 실마리를 얻은 셈이다.

5. 전시[편집]

이번에 발굴된 유물들은 2021년 11월 3일부터 12월 31일까지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유물이 발굴된 지 5개월 만이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인사동 출토유물 발굴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전시 초반과 마지막을 발굴 현장과 유사하게 꾸며 발굴조사로 찾은 유물임을 강조했으며, 관람객이 유물을 잘 이해하도록 시각 자료를 풍부하게 마련하였다.

1부는 금속활자 1천 632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조 시기가 확정된 304점과 아직 확정되지 않은 1300여점을 구분해 전시했다. 일부 활자는 뒷모습도 볼 수 있도록 투명한 아크릴판 사이에 끼어 놓거나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확대경과 태블릿PC를 같이 배치하였다.

2부는 일성정시의 부품, 물시계 부품, 총통과 동전을 전시하였다. 일성정시의를 전시하면서 그 옆에는 정조 시대에 생산된 해시계 소일영(小日影)도 배치하였다. 소일영 전체가 전시되는 것은 이번 전시전이 처음이다. 또한, 인사동 발굴 참여자의 목소리를 담은 영상, 음악가 박다울 씨가 작곡한 곡도 감상할 수 있다.

6. 참조문헌[편집]

[1] 조선시대 한성부의 행정단위, 오늘날로 치면 에 해당한다.[2] 세종실록 65권, 세종 16년 7월 1일 병자 4번째기사 "구멍 열 둘을 뚫어서 구리로 만든 작은 구슬을 받도록 하되, 구슬의 크기는 탄알만 하며, 12구멍에 모두 기계가 있어서 여닫을 수 있도록 하여, 12시간을 주장하게 하고, 오른쪽에도 동판을 설치하되, 길이는 살대에 준하고, 나비는 2촌 5푼인데, 판면에는 25개의 구멍을 뚫어, 또한 작은 구리 구슬을 왼쪽과 같이 받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