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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비아 공화국
Republic of The Gambia
파일:감비아 국기.svg
파일:감비아 국장.svg
국기
국장
표어
Progress, Peace, Prosperity
진보, 평화, 번영
위치
파일:감비아 위치.svg
기본 정보
수도
반줄
최대도시
세레쿤다
하위 행정구역
1시 5구 43군
면적
11295km²
국가
For The Gambia Our Homeland
우리의 조국 감비아를 위해
인문 환경
인구
2,486,937명[A]
인구 밀도
208명/㎢[B]
종교
이슬람교 90%
기독교 8%
토착 신앙 2%
공용어
정치
정치체제
공화제, 단일국가
대통령(국가원수)
아다마 배로
의회의장
파바카리 자타
여당
국가인민당
경제
경제 체제
시장경제
통화
감비아 달라시
GDP(명목상)
16억 4,424만 달러[C]
1인당 GDP
(명목상)
712 달러[C]
기타 정보
국가 코드
GM
국제 전화 코드
+220
시간대
UTC+0
1. 개요2. 하위 행정구역3. 역사
3.1. 독립 전3.2. 독립 후 자와라의 독재3.3. 자메의 집권3.4. 그 이후
4. 상징
4.1. 국기4.2. 국가4.3. 국장
5. 지리
5.1. 접경국 및 주변국
6. 기후7. 인문환경
7.1. 인구7.2. 언어7.3. 종교
8. 경제9. 출신 인물10. 여담

1. 개요[편집]

는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육지로는 세네갈에 둘러싸여있고 바다로는 대서양에 접해있는 국가이다.

수도는 반줄(Banjul)이지만 너무 서쪽에 치우쳐져 있고 근처 지역과의 교통도 그리 좋지 않아 최대도시는 근처에 있는 세레쿤다이다.

프랑스 식민지가 대부분이었던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나이지리아, 가나, 시에라리온과 함께 몇 안되는 영국의 서아프리카 식민지였다. 그 영향으로 공용어는 영어가 채택이 되었다.

2. 하위 행정구역[편집]

감비아는 1개의 시와 5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다.
파일:감비아 행정구역.png
  • 반줄 (Banjul) (시)
  • 강 상류 (Upper River) (구)
  • 강 중류 (Central River) (구)
  • 강 하류 (Lower River) (구)
  • 북강둑 (North Bank) (구)
  • 서부 지방 (Western) (구)

국가가 강에 의해 반으로 갈라진 셈이 되었다. 반줄 시는 서부 지방에 둘러싸인 형태이다.
영토가 감비아 강의 영역 근처만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유럽의 아프리카 쟁탈전 당시 영국이 강 유역만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3. 역사[편집]

3.1. 독립 전[편집]

감비아는 감비아는 1455년 포르투갈에 의해 발견되었고, 1588년부터는 영국 상인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17세기 후반부터 영국과 프랑스는 세네갈과 감비아 일대 지역의 통치권을 두고 소규모 전투를 벌였는데, 최종적으로 감비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고, 세네갈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세네갈과 감비아의 민족은 거의 차이가 없었지만, 서양 세력들에 의해 나뉘어진 셈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국주의 열풍이 시들어가자 1954년 8월 헌법 개정으로 식민지배에서 벗어났고, 1965년 2월 18일에 영연방 내의 독립국으로 인정받는다.

3.2. 독립 후 자와라의 독재[편집]

1970년 두 번째 국민투표에서 70.45%의 찬성을 얻어 영연방을 탈퇴, 정식 공화국으로 인정받는다. 그 후 인민민주당 당수 겸 총리인 다우다 자와라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자와라는 1994년 군사쿠데타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약 24년간 대통령직을 역임한다.

자와라 대통령이 1981년 영국을 방문한 틈을 타서 감비아 내의 좌파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세네갈 정부군의 개입으로 진압되었다. 이후 세네갈과 외교 관계가 긴밀해져서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세네-감비아 연방을 구성하기도 하였지만, 이미 각기 다른 제도, 다른 사상, 다른 정치세력과 언어가 발달한 뒤였기 때문에 통합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1994년 자와라는 육군 중위 야히아 자메(Yahya Jammeh)가 쿠데타를 일으켜 실각하고, 야히아 자메가 권력을 잡게 된다.

3.3. 자메의 집권[편집]

쿠데타 후 통치평의회 의장으로 취임한 후, 국민들의 지지에 업어 1996년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2010년 2월 유니세프의 한국인 대표 강민휘 씨를 특별한 이유 없이 추방시키기도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인식이 안 좋은 편이다. 무자비한 언론 탄압으로 국내외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 그리고 2011년 선거에 승리하면서 집권을 계속 유지해왔다. 2015년에 자메 대통령이 감비아가 알라의 손에 있어 오늘부터 우리는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고 공개석상에서 선언하기도 했다. 2016년 아담 배로우에게 선거에서 지면서 2017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3.4. 그 이후[편집]

탈퇴했던 영연방에 2017년 2월 15일 재가입했다. 2021년 12월 4일에 배로 대통령이 재선했다.

4. 상징[편집]

4.1. 국기[편집]

파일:감비아 국기.svg

감비아의 국기는 빨강, 햐양, 파랑, 초록으로 이루어진 4색기이다.
빨강은 선린우호(善隣友好)[5] 또는 높이 솟은 태양을, 파랑은 나라 전체를 따라 흐르는 감비아강(江)을, 초록은 농업과 국토를, 하양은 감비아 강가의 도로 또는 평화와 순수를 나타낸다. 1965년에 지금의 국기를 제정하였다.

4.2. 국가[편집]

감비아의 국가는 For The Gambia Our Homeland(우리의 조국 감비아를 위해)이다.


원문
한글 번역
1절
For the Gambia, our homeland,
우리의 조국, 감비아를 위하여
we strife and work and pray.
우리는 애쓰고 일하며 기도한다.
That all may live in unity,
그것들이 조화할 때,
freedom and peace each day.
자유와 평화는 매일 함께하리라.
2절
Let justice guide our actions
정의는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준다.
to work man's common good,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and join our diverse people,
모두가 함께함은,
to proof man's brotherhood.
모두의 형재애에 대한 증거이다.
3절
We pledge our firm allegiance,
우리는 확고한 충성을 맹세하고,
our promise we renew.
우리는 새롭게 변화할 것을 약속한다.
Keep us, great God of nations,
위대한 하느님이 우리의 나라에 계속 있는 한,
to the Gambia ever true.
감비아는 항상 진실되리라.

4.3. 국장[편집]

국장은 1888년 왕령 식민지가 시작되면서 청군함기에 감비아의 국장을 넣기 시작했다가, 현 국기로 바뀜으로서 국기에는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국장에는 감비아의 표어가 있다.

5. 지리[편집]

감비아의 면적은 11295km²로, 국토교통부 기준 세계 165위이다.[D] 카타르와 자메이카와 크기가 비슷하고, 남한보다 9배 작고, 한반도보다 20배 작다. 경상남도의 크기보다 약간 큰 수준이다. 나라를 관통하는 감비아 강이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감비아 강 근처에는 하마와 악어 등 동물들의 서식지가 많다.

5.1. 접경국 및 주변국[편집]


세네갈을 제외하면 북쪽에는모리타니, 동쪽에는 말리, 남쪽에는 기니비사우, 남동쪽에는 기니 등이 있다.

6. 기후[편집]

적도에 가까워 열대 사바나 기후에 속한다. 지리적으로 저위도에 위치하여 여름은 고온다습하고, 봄과 가을은 겪기 어려우며, 겨울은 있으나 매우 짧다.

7. 인문환경[편집]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막장 수준은 안 보이며, 삶의 질은 보통이다. 문맹률이 50%가 넘는다. 그로 인해 감비아에서는 구슬로 투표를 한다고 한다. 관련 뉴스 기사

7.1. 인구[편집]

277만 3,168명이고, 통계청 기준 세계 140위이다.[E] 남한보다 19배 적고, 경상북도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7.2. 언어[편집]

영국의 식민지였었다 보니 영어가 공용어지만, 기타 소수 언어를 쓰기도 하고, 인접국 세네갈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다보니 프랑스어를 쓰기도 한다.

7.3. 종교[편집]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 신자이고, 8%가 기독교, 2%가 토속 신앙을 믿는다. 하지만 국교는 딱히 정해놓지 않았다. 2015년 12월 12일에 야히아 자메 대통령이 감비아가 알라의 손에 있어 오늘부터 우리는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고 공개석상에서 선언했지만, 자메 대통령이 실각하면서 국교가 없어졌다.

8. 경제[편집]

2,486,937명
2020년, 세계 140위
국내 총생산(GDP)
20억 7,807만 달러
2018년, 통계청 기준, 세계 157위
1인당 명목 GDP
787 달러
2020년, 통계청 기준, 세계 159위
경제 규모(PPP)
67억 9,200만 달러
2022년, IMF 기준, 세계 171위
1인당 PPP
2,646 달러 세계 177위
2022년, IMF 기준, 세계 177위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
85.0%
2020년, 위키백과 기준
경제 성장률
5.63%
2021년, 한국은행 기준, 세계 67위

9. 출신 인물[편집]

  • 파투 벤소다
인권수호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영향력을 끼친 선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1961년생이며, 현재는 감비아 변호사이자 국제형사법 검사이다. 감비아의 수도인 반줄 시 출신이며, 파투벤소다의 아버지는 감비아에서 가장 유명한 레슬링 프로모터였다. 1986년 나이지리아 대학교에서 법학 학사 학위를 받으며 본격적인 법조계 생활을 시작하였다. 또 1994년 2월 자와라 대통령 시절 공소 부국장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2004년부터는 압도적 동의를 얻어국제형사재판소(ICC)의 헌법소원 담당 부검사에 선출되었고, 감비아 법무장관도 하였다.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2년 6월부터 국제형사재판소 부장판사를 지낸 그녀는 르완다 국제 형사 재판소(ICTR)에서 법률 고문과 재판 변호사의 직책을 맡아 왔다. 2009년에는 ICJ 국제 법학자상을 수상하였다. 더군다나 타임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 모두 바로우
EPL의 스완지 시티 AFC와 레딩 FC에서 활약했으며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2020년 하반기부터 2022년까지 활약한 축구 선수이다. 2022년 9월 EA 스포츠 이달의 선수상도 수상하였다. 2023년 1월 17일, 전북과의 계약을 약 1년 남겨둔 상황에 사우디 2부리그 팀이였던 알 아흘리 SFC에서 바로우를 영입하였다. 2021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2021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카메룬에도 감비아 국가대표로 활약하였다.

10. 여담[편집]

한감동맹이라는 밈이 있다.
[A] 2021년 기준.[B] 2019년 기준.[C] 3.1 3.2 2018년 기준[5] 이웃 나라 또는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며 잘 사귄다는 뜻[D] 2020년 기준[E] 2023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