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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보기관 변천사
안기부
파일:중앙정보부.svg
파일:국가안전기획부 휘장.svg
파일:국가정보원 로고.svg
국가안전기획부
中央情報部
國家安全企劃部
國家情報院
Korean Central Intelligence Agency
National Security Planning Agency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1961~1998 / 2022~ )
국가안전기획부
國家安全企劃部 | National Security Planning Agency
파일:국가안전기획부 휘장.svg
설립일
해산일
전신
후신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1980~1995)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1995~1998)
상급 기관
1. 개요2. 특징

1. 개요[편집]

구 정부조직법 제14조(국가안전기획부)
①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수사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게 하기 위하여 대통령소속하에 국가안전기획부를 둔다.
② 국가안전기획부의 조직·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파일:external/www.tongilnews.com/36888_1.jpg
국가안전기획부 전경[1]

대한민국의 옛 정보기관. 중앙정보부의 후신이자 국가정보원의 전신으로, 약칭은 안기부다.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간첩신고를 위한 광고.[2]

1961년 창설한 중앙정보부가 10.26 사건 이후 위상이 추락했다가[3] 1981년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이후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1999년 1월 현재의 국가정보원으로 개칭되었다.

1980년대 남산과 이문동[4]에 청사가 있었는데, 보통 '남산'으로 돌려서 표현하며, 남산에서 나왔다는 말만 들어도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가장마지막 본청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소재이며 이전 본청은 그 유명한 남산에 있다가 1995년 10월, 서초구 내곡동으로 청사를 이전했다. 안기부 신청사 개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헌인릉 옆이다.

전국 주요 도시에도 지부가 산재해있으나 기관이 기관인 만큼 주민들도 그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2. 특징[편집]

당시 남산 청사의 국내 파트와 이문동(석관동) 청사의 해외 파트 간 사이가 아주 안 좋았다. 이문동 출신은 해외에 있다 보니 아무리 일을 잘해도 표가 안 나는데 비해서, 남산 출신들은 정권의 총애를 받으면서 줄줄이 진급하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당시 일어났던 간첩 조작 사건들도 정권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조장한 것도 있지만 어차피 독재정권 치하다 보니 자국민 상대로 일을 저질러도 언론을 통제하던 시절인 만큼 피해자들이 큰 목소리 내기 힘든탓에 뒷탈도 없기도 했다.

정보 기관으로서는 특이하게 국내, 국외 정보 수집을 독점하고 심지어 대공 수사권까지 가지고 있어서 무소불위의 기관으로 통했다. 이런 사례는 소련의 KGB 정도밖에 없다. 그나마 소련이 망한 이후에 KGB도 여러 조직으로 분할되었다. 그래서 국내/국외 정보기관 분할과 수사권 폐지 요구가 계속 거론되지만 국정원 시대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여러 월권행위로 인해 칼날을 피할 수가 없었고. 결국 2020년에 국내파트와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게 되었다.

러시아어 프락치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조직이기도 하다. 대학교에 가짜 학생, 위장 취업자를 보내서 학생 운동권을 분열시키고, 와해시킨 조직이 국가안전기획부다. 또한 시국이 불리하다 싶으면 정국전환용으로 중앙정보부 시절과 마찬가지로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으면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둔갑시키는 일을 행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일로는 수지김 간첩 조작 사건 등이 있다. 소련의 KGB급으로 제5공화국 시기의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끌려간 이들은 갖은 고초를 겪었다. 1980년대의 유명한 고문 사건인 김근태 고문 사건이나 박종철 사건은 모두 치안본부(현재의 경찰청) 산하 대공분실[5]에서 경찰[6]에 의해 자행된 것이지만 남산에서도 고문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김근태 고문사건의 경우 1999년 검찰이 이근안을 수사할 당시 박처원의 진술을 통해 정형근 당시 대공수사단장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서 "혼을 내서라도 밝혀내라"고 윽박지르며 지시했다는 얘기도 나왔으나, 정형근 본인은 "당시 내가 수사를 지시할 입장이 아니었으며, 박처원의 오락가락하는 진술만으로 혐의 내용을 발표하는 건 명예훼손이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당시를 겪어본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국가안전기획부가 발표한 사건 중 대표적인 사건으로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이 있는데,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간첩이 아닌데 안기부의 잔인한 고문 때문에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원에게는 오점이기 때문에 국가정보원이 뭔가 잘못하면 안기부 시절, 더 나아가서 중앙정보부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여론조작 의혹, NLL 대화록 논란, 해킹 프로그램 논란, 간첩조작 사건 등으로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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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 도시자연공원 내 옛 국가안전기획부 본관 건물. 서울시 종합방재센터로 쓰이고 있다가 2008년에 서울유스호스텔로 리모델링 개관 하였다.[2] 터미네이터 2의 브금이 삽입된 것으로 보아 1991년~1998년 사이에 제작된 광고로 보인다.[3] 알다시피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기 때문. 즉, 중앙정보부의 수장이 대통령을 살해한 것으로 위상이 추락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던 상황.[4] 이문동 청사 부지와 건물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바로 눈앞에 무시무시한 건물이 있었기에 한국외국어대학교는 건물 부지 확장 공사를 하기가 까다로웠고, 이는 글로벌캠퍼스가 신설되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서울캠퍼스는 지금도 안 그래도 좁디좁은 부지에 건물도 다닥다닥 붙어 있고 사람까지 미어터지는 포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5] 당시 '남영동'이라는 칭호로 불렸고, '남산'에 맞먹는 공포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행정구역상으로는 남영동이 아닌 갈월동에 있었다.[6] '고문기술자' 이근안도 남산이 아닌 경찰 소속이었다. 현재도 각 지방경찰청 산하 보안수사대 일명 보수대로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주목적은 간첩단 잡는 거지만 현재도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일부 재야 인사를 수사하는 데에 쓰인다.[7] 참고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안기부에서 대놓고 흑색선전물을 뿌렸다가 걸린사건이 있었다. 헌데 그 사례를 2010년대에 대규모로 재현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