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명[편집]
조선 후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 연대 미상의 우화 소설. 기존 유교적 사회상[1]을 비판·풍자한 작품이다. 제목은 장끼전이지만 정작 주인공은 장끼가 아니고 까투리다.[2] 이본이 여럿이라 전해지는 이야기가 조금씩 다른데, 까투리의 재가 내용은 소설화된 후대에 덧붙인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3][4]
판소리계 소설이며 초등학교,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경우가 많아 인지도가 높다. 이 작품은 판소리 12마당 중 하나인 <장끼타령>이 소설화된 것이지만 정작 판소리는 실전되고 필사본으로만 전해지고 있다.[5]
2020학년도 수능 대비 교재인 수능특강에 수록되어 있고, 그 해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에 출제되었다. 그리고 2000년 경북고 도전골든벨 문제로도 출제된 적이 있다.
판소리계 소설이며 초등학교,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경우가 많아 인지도가 높다. 이 작품은 판소리 12마당 중 하나인 <장끼타령>이 소설화된 것이지만 정작 판소리는 실전되고 필사본으로만 전해지고 있다.[5]
2020학년도 수능 대비 교재인 수능특강에 수록되어 있고, 그 해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에 출제되었다. 그리고 2000년 경북고 도전골든벨 문제로도 출제된 적이 있다.
2. 줄거리[편집]
어느 추운 겨울날, 장끼와 까투리가 아홉 아들, 열두 딸과 같이 길을 가다가 콩을 발견했다. 까투리는 이런 외딴 곳에 웬 콩이 이리도 많이 떨어져있냐면서 불안하다며 남편을 말렸지만, 장끼는 "사망 플래그인것도 모르고 내가 좋은 꿈을 꿨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며 여편네가 재수없게 옆에서 쫑알대니 이는 필시 집안이 망할 징조다. 닥치고 있거라"면서 콩을 먹으려고 들었다.[6] 당연히 그건 사냥꾼이 뿌려둔 미끼였고, 결국 장끼는 보기 좋게 덫에 걸려서 사냥꾼의 반찬 신세로 전락했다.[7] 참고로 어떤 판본에서는 장끼가 죽은 후 까투리가 제사를 차리는 과정에서 솔개에게 꺼병이 한 마리가 잡혀가 잡아먹히려는데 절벽의 바위 아래에 떨어지고 솔개는 이를 자기가 놔준거라고 자화자찬한다. 관우가 조조를 놔준 꼴이라나 뭐라나...
더 웃기는 건 미끼에 걸려 이미 다 죽게 된 것을 보고 까투리가 울자 정말 시끄럽다고 허세를 부리며[8] 맥을 짚어보라느니 눈동자를 봐달라느니 별 희한한 요구를 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죽게 된 것을 다 남편복이 없는 걸 타고난 까투리를 탓했다.[9] 읽어보면 알겠지만 먹으려고 고집피운 것은 자신이고 말린 건 아내다. 게다가 논리적으로 일관성도 없다. 거기다 까투리가 슬퍼하자 "나보다 더 슬프겠냐, 이 년이..."라며 욕하기까지 한다.[10]
그리고는 죽기 전 까투리에게 끝까지 "정절을 지켜서 수절하라"는헛소리 말을 남겼지만, 까투리는 그 말을 깔끔하게 무시했고 덫을 설치한 탁첨지라는 자가 나와 죽은 장끼를 빼내가는 것도 숨어 다 보고 그 자리에 남은 장끼 깃털로 장례를 치룬다. 장례 도중에 양반으로 추정되는 까마귀, 7번 상처한 물오리 등등 온갖 새들이 문상와서는 나랑 결혼해달라고 나섰다가 자기들끼리 싸움이 붙어 신나게 싸우는 도중에 과묵하게 나타난 또 다른 장끼(홀아비가 된지 3년째라고 한다.)에게 마음이 가게 되었다. 성격좋고 덩치도 좋고 해서 까투리에게 행복을 줄 듯한 설명이 나온다. 이렇게 5번째 남편을 맞이하고 엔딩에서는 자식들 9남 12녀 다 결혼시킨 다음 명산대천으로 놀러 다니다가 둘 다 명이 다해가자 큰 물속에 뛰어들어가 치위합(雉爲蛤)이라는 조개가 된다. 자살이라는 암시같으나 용궁에 들어가 수중생물이 된 듯. 즉 명을 달리해 숨을 거뒀고 장례를 치러 조개로 환생했다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아무튼 5번째 남편 장끼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잘 살고 환생해서도 같이 살아갈 정도로 금실이 좋았다는 뜻.
다만 가끔 엄마 까투리와 결합된 판본(어린이용 현대 판본)이 있는데, 이렇게 보면 이 까투리의 인생역정에 더더욱 눈물바다가 된다. 남편 4명을 잃고 자식들을 키우다 결국 본인마저 산불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니까 말이다.[11]
더 웃기는 건 미끼에 걸려 이미 다 죽게 된 것을 보고 까투리가 울자 정말 시끄럽다고 허세를 부리며[8] 맥을 짚어보라느니 눈동자를 봐달라느니 별 희한한 요구를 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죽게 된 것을 다 남편복이 없는 걸 타고난 까투리를 탓했다.[9] 읽어보면 알겠지만 먹으려고 고집피운 것은 자신이고 말린 건 아내다. 게다가 논리적으로 일관성도 없다. 거기다 까투리가 슬퍼하자 "나보다 더 슬프겠냐, 이 년이..."라며 욕하기까지 한다.[10]
그리고는 죽기 전 까투리에게 끝까지 "정절을 지켜서 수절하라"는
다만 가끔 엄마 까투리와 결합된 판본(어린이용 현대 판본)이 있는데, 이렇게 보면 이 까투리의 인생역정에 더더욱 눈물바다가 된다. 남편 4명을 잃고 자식들을 키우다 결국 본인마저 산불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니까 말이다.[11]
3. 패러디[편집]
4. 관련 문서[편집]
[1] 혹은 변질된 유교적 전통[2] 장끼는 수컷 꿩을 이르는 말이고, 까투리는 암컷 꿩을 이르는 말이다.[3] 출처[4] 물론 더 비극성을 부각하기 위해 재가 내용 대신 엄마 까투리의 내용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5] 2010년 천재교육 중2교과서에서는 장끼타령이 없어지는 과정에서 판소리계 소설로 정착됐다고 한다.[6] 오죽하면 까투리가 자기도 꿈을 꿨는데 불길하다고 하자 "아 그건 그렇게 해석하는게 아니라 이렇게 해석해야 함" 이런식으로 무시하기까지 한다. 참고로 까투리가 꾼 꿈은 북망산에 궂은 비가 내린 후 무지개가 생겼는데 갑자기 그게 쇠칼이 되어 장끼의 목을 쳤다는것 하지만 장끼는 내가 어사화를 쓰게 되는 꿈이라고 우겼다.[7] 참고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내용은 이상하게 깨끗한 바닥에 콩 한 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콩 속에 독극물을 넣어두는 사냥 방법으로 잡힌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사실 독극물 미끼는 사냥감의 몸에도 독이 퍼질 수 있어서 식용으로 쓸 사냥감에는 잘 안 쓴다.[8] 제 말론 호환 미리 알고 산에 가는 사람 보았나며 죽음 앞에서도 태연한 듯 구는데 나 죽고 사는 것 좀 봐달라고 하는 걸 보면 살고싶다는 말을 돌려 한 셈이며 울며불며 떼를 쓰지 않았다는 것 말곤 좋게 볼 구석이 없다.[9] 이 소설의 장끼가 까투리의 넷째 남편이다. 첫째 남편 장끼는 용맹했으나 고집이 쎘기에 힘을 믿고 까불다가 보라매와 싸우다가 죽고, 게으르고 까투리를 무시하던 둘째 남편은 위험하다고 그리도 말하는 까투리를 무시하다가 사냥개에 물려갔고, 조용하지만 그래도 순하고 까투리를 좀 위해주던 셋째 남편 장끼도 까투리 걱정을 무시하고 걱정 말라고 날다가 숨어있던 포수가 쏜 총에 희생되었다.[10] 분명 죽는 자신이 더 슬픈건 맞다. 하지만 그게 아내 말 듣지 않은 자업자득이라는 게 문제.[11] 어떻게 보면 남편들보다 고통스럽고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나마 남편들은 최대한 곱게 죽은 거지만 이쪽은 화염에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면서 죽어갔으니 말이다.[12] 한국의 고전문학으로 유명한 장끼전 패러디이다. 현대의 실장석으로 각색한 내용이 일품이다.[13] 판본에 따라서는 장끼전과 이어진다.[14] 위의 장끼전 패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