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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초기2.2. 11세기: 상급 원로원(추밀원)의 등장2.3. 4차 십자군 이후2.4. 팔레올로고스 시대

1. 개요[편집]

콘스탄티누스 1세의 새로운 로마(Nova Roma) 콘스탄티노폴리스 건설 이후부터 중세 동로마 제국 시기까지 존속했던 원로원.

초기에는 서방의 로마 원로원이 따로 있었기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원로원이라 불리기도 했으나, 7세기에 들어 전자가 역사 기록에 더이상 등장하지 않게 되면서 그냥 원로원[1]이라 불리게 되었다.

2. 역사[편집]

2.1. 초기[편집]

콘스탄티노폴리스 건설 이전에도 로마 원로원 이외의 원로원이 여럿 있었으나, 이러한 원로원들은 일개 지역유지들의 모임 정도로 간주되어 중앙의 로마 원로원에 필적하는 권위는 없었으며, 그나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원로원이 330년의 이른바 '노바 로마(Nova Roma)' 선포 이래 위상이 올라갔으나 기존 로마 원로원을 완전히 대체하진 못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원로원이 서방의 로마 원로원과 대등한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받은 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본인의 치세가 아닌, 그의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의 치세부터였으며 이때부터 일개 지역 원로원이 아닌 제국 동부를 대표하는 원로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나 동로마 황제들은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새로운 로마의 위상을 부여하려 노력한 것과는 별개로, 원로원의 권한은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려 시도했고, 이는 유스티니아노스 대제가 제정한 시민법 대전(로마법 대전)을 비롯한 동로마 시대의 여러 법령에 반영되었다.

2.2. 11세기: 상급 원로원(추밀원)의 등장[편집]

11세기에는 기존의 원로원(Synkletos)보다 우위에 있는 '상급 원로원(Prote-Synkletos)라는 기관도 등장하였는데, 이때 상당수의 법적 권한이 해당 기관으로 이관되어 본래의 원로원은 상급 원로원의 하부 기관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때 창설된 상급 원로원 역시 전성기의 로마 원로원에 필적하는 위세를 누리진 못하고, 황제의 자문기관 정도로 그쳤기에, 원로원이라기보다는 군주의 자문기구인 추밀원(Privy Council)에 가까웠다.

2.3. 4차 십자군 이후[편집]

4차 십자군의 침공으로 제국이 멸망의 기로에 놓인 1204년, 원로원에서 니콜라오스 카나보스라는 인물을 민심을 잃은 알렉시오스 4세를 대신할 새 황제로 추대되기도 했지만 그는 제위를 거부했고, 실제로 새 황제가 된 인물은 알렉시오스 5세였다.

알렉시오스 5세가 즉위한 바로 그 해에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당하면서 원로원 역시 약탈의 희생양이 되어 무너져내렸고, 잔존 정권인 니케아 제국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

2.4. 팔레올로고스 시대[편집]

1261년 팔레올로고스 왕조 치하의 니케아 제국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을 재건하면서, 원로원 역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귀환했다.

그러나 이 당시의 원로원은 간판만 달고 연명하는 상태나 다름 없었고, 1341년에 소집된 것을 마지막으로 기록에서 사라졌다.

그나마 원로원의 상위 기관인 상급 원로원(추밀원)은 좀 더 오래 존속하긴 했지만, 해당 기관 역시 14세기의 제국을 뒤흔든 팔레올로고스 내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 제국의 마지막까지 함께하진 못했다.
[1] Gerousia 또는 Synkle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