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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원로원 의원(Senator)
2.1. 자격 및 임명2.2. 임기2.3. 정원
3. 역사
3.1. 왕정 시대3.2. 공화정 시대3.3. 제정 시대
3.3.1. 원수정 시대3.3.2. 전제정 시대3.3.3. 로마의 동서 분할 이후
3.3.3.1. 서방3.3.3.2. 동방

1. 개요[편집]

Senatus Romanus.

고대 로마의 기관으로 왕정 시대에 창설되어 로마 공화정에서 권력의 핵심으로 거듭난 후, 제정 시대까지 존속했다.

Senatus Populusque Romanus(로마 원로원과 인민, SPQR)이라는 공식 국호에도 반영될 정도로 강력한 기관이었고, 이러한 역사 덕분에 다른 설명 없이 그냥 원로원이라 하면 바로 로마 원로원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2. 원로원 의원(Senator)[편집]

2.1. 자격 및 임명[편집]

원로원 의원(Senator)는 오늘날 Senate(상원)라 불리는 의회 구성원, 즉 상원의원의 어원이 되었지만 시민들이 선거로 뽑는 선출직은 아니었고, 공화정 시대에는 현직 원로원 의원들 중에서 선발된 감찰관이 결원이 된 의석에 새로운 의원을 지명하면서, 제정 시대에는 황제에 의해 임명되는 방식으로 자격을 획득했다.

따라서 원로원은 의회의 기원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으며, 의회민주주의의 기원으로는 중세 아이슬란드 자유국의 알팅그 및 잉글랜드 왕국 의회가 꼽힌다.

공화정 시대 원로원 의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전직 집정관, 법무관, 호민관 순으로 부여되었고, 선거로 뽑는 게 아니라 현직 의원의 사퇴, 제명, 사망 등으로 결원이 있을 때만 보충했기에 해당 관직을 역임한 모든 이들이 의원이 되진 못했다.

2.2. 임기[편집]

로마 원로원 의원은 오늘날 의회의 의원과 달리 한 번 자격을 획득하면 자진 사퇴하거나 제명당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는 종신직이었다.

2.3. 정원[편집]

초기에는 300명이었다가 공화정 말기 술라의 개혁으로 600명이 되었고, 카이사르의 개혁으로 900명까지 늘어났다가, 다시 600명으로 줄어들어 제정 시대까지 그 인원이 유지되었다.

3. 역사[편집]

3.1. 왕정 시대[편집]

로마 신화에 따르면 초대 국왕(Rex) 로물루스가 원로원을 설치했다고 한다.

2대와 3대 국왕은 원로원에 의해 추대되었고, 4대 이후로는 선출되었는데 원로원은 국왕 선출에 있어서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단, 이러한 역사는 당대에 쓰인 기록이 대부분 실전되어 신화적 요소가 강하기에 실제 원로원의 권한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확실히 파악하기 어렵다.

3.2. 공화정 시대[편집]

공화정 시대에 이르러 원로원은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했고, 집정관을 비롯한 정무관 개개인보다 원로원의 힘이 더 막강했기에 장기간 안정적인 공화정이 유지될 수 있었다.

공화정 말기에 자영농이 몰락하고 민중파(포풀라레스)와 벌족파(옵티마테스) 간의 정치 갈등이 심화되자, 원로원은 포풀라레스를 대표하는 인사들을 제거하기 위해 원로원 최종 권고라는 초법적 수단을 동원하기까지 했으나, 이는 역으로 공화정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뒤흔들어 공화정의 쇠퇴를 야기했다.

3.3. 제정 시대[편집]

3.3.1. 원수정 시대[편집]

제정 시대에도 원로원은 황제와 함께 권력의 주축으로 남았고, 황제들은 원로원을 안심시키기 위해 형식적으로는 군주(Rex)가 아니라 제1시민인 프린켑스(Princeps)로서 통치하는 프린키파투스(Principatus), 이른바 원수정 체제로써 제국을 통치했다.

3.3.2. 전제정 시대[편집]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명목상의 공화정과 실질적인 제정이라는 원수정 시대의 모순으로 인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도미나투스(Domintus), 이른바 전제정이라 불리는 체제를 형성한 이후에도 원로원은 존속했고, 로마 제국의 최상위급 명사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기관으로 남았다.

3.3.3. 로마의 동서 분할 이후[편집]

3.3.3.1. 서방[편집]
로마가 이른바 서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으로 분리된 이후에도 로마 원로원은 존속했고[1], 심지어는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의 게르만족 치하에서도 살아남았다.

오도아케르와 동고트 왕국의 지배자들 역시 로마 원로원의 권위를 존중해서 형식적인 기관으로나마 존속했으며,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를 수복한 이후에도 존속했다.

그러나 고토 수복 전쟁 와중에 다수의 의원이 희생되었고, 도시 로마 역시 처참하게 파괴된 후폭풍을 원로원은 끝내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7세기 초 포카스 황제의 치세를 끝으로 더이상 기록에 등장하지 않으면서 도시 로마에서 원로원의 역사는 종식되었다.
3.3.3.2. 동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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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1세가 동방에 새로운 로마(Nova Roma)라 불리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건설한 이래, 서방의 로마 원로원과 별도로 동방에도 원로원이 존재했고, 이는 서방 원로원이 기록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동로마 제국에서 유지되었다.
[1] 엄밀히 말하면 당대에 2개의 제국이 있었던 게 아니라 2명의 황제가 하나의 제국을 분할 통치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