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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올로고스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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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징
2.1. 문장2.2. 표어
3. 역사
3.1. 본가
3.1.1. 제위 계승 이전3.1.2. 미하일 8세의 니케아 제국 통치3.1.3.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의 로마 제국 통치
3.1.3.1. 미하일 8세3.1.3.2. 안드로니코스 2세3.1.3.3. 팔레올로고스 내전3.1.3.4. 마누일 2세3.1.3.5. 요안니스 8세3.1.3.6. 콘스탄티노스 11세
3.1.4. 제국 멸망 이후
3.1.4.1. 디미트리오스와 토마스 팔레올로고스(모레아 전제군주국)3.1.4.2. 망명 이후의 토마스 팔레올로고스 일가
3.1.4.2.1. 명목상의 황제: 토마스와 안드레아스 부자3.1.4.2.2. 소피아 팔레올로기나3.1.4.2.3. 마누일 팔레올로고스
3.2. 분가
3.2.1. 팔레올로고 가문(몬페라토 변경백국)3.2.2. 팔레올로고 가문(페사로)3.2.3. 기타 분가

1. 개요[편집]

1258년[1] 또는 1261년[2]부터 1453년까지 존속했던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왕조.

2. 상징[편집]

2.1. 문장[편집]

파일:717px-Palaeologoi_eagle_XV_c_Byzantine_miniature.jpg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상징
쌍두독수리(쌍두수리)를 사용했다.

2.2. 표어[편집]

Βασιλεύς Βασιλέων, ΒασιλεύΩν ΒασιλευόντΩν
임금(바실레프스)들의 임금, 통치자들의 통치자

3. 역사[편집]

3.1. 본가[편집]

3.1.1. 제위 계승 이전[편집]

3.1.2. 미하일 8세의 니케아 제국 통치[편집]

3.1.3.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의 로마 제국 통치[편집]

3.1.3.1. 미하일 8세[편집]
3.1.3.2. 안드로니코스 2세[편집]
3.1.3.3. 팔레올로고스 내전[편집]
3.1.3.4. 마누일 2세[편집]
3.1.3.5. 요안니스 8세[편집]
3.1.3.6. 콘스탄티노스 11세[편집]
1448년 요안니스 8세가 사망하고 남은 동생들 중 맏이였던 콘스탄티노스 드라기시스는 1449년에 황제 콘스탄티노스 111세로 즉위했다.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제국을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그의 치세인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당하며 로마 제국은 멸망했다.

3.1.4. 제국 멸망 이후[편집]

3.1.4.1. 디미트리오스와 토마스 팔레올로고스(모레아 전제군주국)[편집]
제국 멸망 이후에도 잔존한 영토인 모레아 전제군주국에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동생들인 디미트리오스와 토마스 팔레올로고스 형제가 명목상의 제위를 이어갔으나, 1460년 디미트리오스가 토마스를 제거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을 끌어들였다가 본인도 토사구팽 당하는 바람에 잔존 영토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이후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는 에디르네에서 가택연금에 처해졌다가 1470년 사망했다.
3.1.4.2. 망명 이후의 토마스 팔레올로고스 일가[편집]
3.1.4.2.1. 명목상의 황제: 토마스와 안드레아스 부자[편집]
디미트리오스와 달리 교황령 로마로 망명한 토마스는 교황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황제' 칭호를 부여받고 황제의 예우를 받다가 1465년 사망했다.

토마스의 장남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는 부친의 뒤를 이어 제국을 재건하려 했으나, 1502년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여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본가는 단절되었다.
3.1.4.2.2. 소피아 팔레올로기나[편집]
토마스 팔레올로고스의 딸 조이 팔레올로기나는 소피아로 개명한 후,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와 결혼했는데 이는 러시아가 제3의 로마를 칭하는 명분을 제공했다.
3.1.4.2.3. 마누일 팔레올로고스[편집]
토마스 팔레올로고스의 차남이자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의 동생인 마누일 팔레올로고스는 형과 달리 오스만 제국에 귀순한 후 공직에 등용되었고, 마누일의 아들 안드레아스[3]는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성씨마저 버림으로써 튀르크인에 동화되었다.

3.2. 분가[편집]

3.2.1. 팔레올로고 가문(몬페라토 변경백국)[편집]

안드로니코스 2세의 아들 중 하나인 테오도로스 팔레올로고스가 외가인 알레라미치 가문의 작위를 계승, 테오도로 1세로 즉위하면서 형성된 가문으로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에 위치한 몬페라토 변경백국을 다스렸다.

몬페라토의 팔레올로고 가문은 제위를 세습하던 본가가 단절된 이후인 16세기까지 통치를 이어갔으나, 1533년 조반니 조르조 공작이 적자를 남기지 못하자 그의 딸 마르게리타 팔레올로가가 작위를 승계한 후, 남편인 만토바 변경백 페데리코 2세 곤차가에게 넘겼다.

곤차가 가문은 만토바와 몬페라토가 둘다 공국으로 승격되면서 2개의 공작위를 보유한 가문으로 거듭났다가 남계 후손이 단절되었는데, 페데리코 2세와 마르게리타의 후손 중 하나인 마르게리타 곤차가가 로렌 가문(로트링엔 가문)에 시집 가서 자손을 남겼고, 로렌의 프랑수아 3세[4]가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하여 자손을 남기면서, 팔레올로고스의 혈통은 모계를 통해 돌고 돌아 합스부르크 가문에 섞이게 되었다.

다만 적자가 아닌 생물학적 후손으로 따지면 남계 후손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조반니 조르조의 사생아 플라미니오의 자손은 현재까지 대를 이어오고 있으며, 그 후손 가문 중 팔레올로고-오리운디(Paleologo-Oriundi) 가문은 구체적인 계보까지 현존하고 있다.

3.2.2. 팔레올로고 가문(페사로)[편집]

토마스 팔레올로고스의 아들 중 1명인 요안니스 팔레올로고스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형성된 가문인데, 정작 당대 기록에 등장하는 토마스의 아들은 안드레아스와 마누일 뿐이었기에 신빙성은 딱히 없다.

16세기 이탈리아 남부 페사로를 기반으로 삼아 활동하다가 17세기에 잉글랜드 왕국으로 이주하여 잉글랜드 국교회(성공회)로 개종했고, 잉글랜드 본토 및 서인도 제도(카리브) 식민지에서 활동하다가 단절되었다.

3.2.3. 기타 분가[편집]

오늘날 그리스에도 팔레올로고스라는 성씨를 사용하는 사람이 간혹 있으며, 해외에도 팔레올로그[5] 등 파생 성씨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후손인지는 불명이다.
[1] 미하일 8세의 공동 황제 즉위.[2]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복 및 라스카리스 왕조 종식.[3] 위의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와는 동명이인이다.[4] 신성 로마 황제 프란츠 1세.[5]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작가였던 모리스 조르주 팔레올로그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