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만주 공화국 自由滿洲共和國 Manchurian Free Republic | ||
국기[1] | 문장 | |
위치 | ||
장춘 | ||
정치체제 | ||
공용어 | ||
존속기간 | 1993~2018 | |
통화 | 만주 공화국 위안 | |
성립 이전 | ||
멸망 이후 | 중화민국 산하 만주 자치공화국 |
1. 개요[편집]
자유 만주 공화국은 가상지구 알파의 세계관에서 만주 지역을 점유하던 국가였으며, 공산국가였던 만주 소비에트가 군부 쿠데타로 붕괴된 후, 군부 정권이 공산주의 체제를 폐기하고 신국가체제를 수립함을 공표하면서 생겨났다.
본 국가의 정식 명칭은 자유 만주 공화국이나, 통칭으로는 신 만주 공화국 또는 만주로 지칭되었다.
본 국가의 정식 명칭은 자유 만주 공화국이나, 통칭으로는 신 만주 공화국 또는 만주로 지칭되었다.
2. 신 만주 공화국의 설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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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소비에트는 소련의 군사적 거점국가나 마찬가지였고, 반대로 말하자면 이 국가의 중요성은 소련에 달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냉전이 공산권의 붕괴로 끝남으로 인하여, 새로운 러시아 연방은 붕괴 후 혼란기 당시 예전 소련 시절처럼 국제적인 패권을 행사할 여유가 없었고, 따라서 만주 소비에트 또한 소련의 영향권에서 '강제로' 이탈하게 된다. 또한 만주 소비에트는 소련의 배후를 지키는 군사국가로 '기획'된 탓에 민간인들을 위한 산업구조는 지극히 취약했고, 생필품 등의 문제는 다른 '공산주의 형제국'으로부터 거의 수입하다시피 의존하고 있었는데, 제 2세계가 붕괴되었다는 것은 그런 지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시점에서 만주는, '탱크와 전투기가 많을 뿐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 나라'가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만주 소비에트의 비대한 군사전력을 주목해야 한다. 만주 소비에트는 소련을 지키기 위한 공산주의 군사국가였고, 소련으로부터 군사적인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아 그만큼 군사적 전력이 강력한 지역강국이었다. 이로 인하여 만주 소비에트의 군부는 다른 공산주의 국가에 비해 훨씬 정치적 권력이 강력했는데. 냉전이 붕괴된 혼란기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려 하자 이미 무력해진 만주소비에트 공산당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고, 군부가 만주 소비에트국의 핵심권력을 탈취한 후, 공산주의 체제의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함으로서 만주 소비에트는 사라지고, 신 만주 공화국으로 이어지게 된다.
3. 국가 정체성[편집]
만주 소비에트 정권은 국가의 정체성을 단순하게 '만주에 사는 노동자, 농민을 위한 사회주의 정부'라고 선언했지만, 소련의 뒷받침을 잃고 국제사회에서 반쯤 고립되다시피 한 신 만주 공화국 정부는 새로운 국가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게 된다. 만주의 독자 정권이 유지될 정당한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면, 중화민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만주가 중화민국의 고유한 영토이고 중화민국으로 병합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국가 자체의 존립이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주 정부는 자신들이 현실의 대만처럼 '자신들이 정통중국의 계승자'라고 주장할 수도 없었다.
이로 인하여, 신 만주 공화국 정부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게 된다.
"만주는 중국이 아니며, 신 만주 공화국은 역사 이래로 만주에 거주했던 여러 민족들의 국가이다."
또한, 만주 공화국 정부는 '고유의 만주 정체성'을 확립하기 '중국이 아닌 고유한 만주사'에 대한 연구를 국가 프로젝트로 확정하였고,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도 상당한 거액을 들여 '고유의 만주 정체성' 확립에 엄청난 노력을 쌓게 된다. 또한 만주어를 국가 공용어로 지정하여(만주 소비에트의 경우 공용어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자신들이 중국과 분리된 별도의 민족국가임을 선언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만주어는 사멸되다시피 하였고 현대적인 만주어 어휘의 부재, 만주어 재보급 노력의 미비함 등으로 만주어는 '법으로만 공용어'였을 뿐이지, 실제로 사용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학술적인 측면에서는 신 만주 공화국 정부가 거액을 들여 만주의 역사 연구를 지원한 것은 관련 역사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며, 중화민국으로 병합된 이후에도 이를 연구하던 학자들은 중화민국 또는 만주 자치공화국 정부가 만주사 연구 프로젝트를 승계하여 계속 지원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신 만주 공화국 정부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게 된다.
"만주는 중국이 아니며, 신 만주 공화국은 역사 이래로 만주에 거주했던 여러 민족들의 국가이다."
또한, 만주 공화국 정부는 '고유의 만주 정체성'을 확립하기 '중국이 아닌 고유한 만주사'에 대한 연구를 국가 프로젝트로 확정하였고,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도 상당한 거액을 들여 '고유의 만주 정체성' 확립에 엄청난 노력을 쌓게 된다. 또한 만주어를 국가 공용어로 지정하여(만주 소비에트의 경우 공용어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자신들이 중국과 분리된 별도의 민족국가임을 선언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만주어는 사멸되다시피 하였고 현대적인 만주어 어휘의 부재, 만주어 재보급 노력의 미비함 등으로 만주어는 '법으로만 공용어'였을 뿐이지, 실제로 사용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학술적인 측면에서는 신 만주 공화국 정부가 거액을 들여 만주의 역사 연구를 지원한 것은 관련 역사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며, 중화민국으로 병합된 이후에도 이를 연구하던 학자들은 중화민국 또는 만주 자치공화국 정부가 만주사 연구 프로젝트를 승계하여 계속 지원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4. 중화민국으로 병합[편집]
그러나 신 만주 공화국은 결국 2018년에 중화민국에 병합되고 중화민국 산하의 만주 자치공화국이 된다.
이는 러시아의 대중친선에 따른 지원세력 상실과 고립에 의한 것이다. 암묵적으로 껄끄러웠던 2차대전후 중화민국과 소련의 관계를 중화민국이 흐루쇼프의 이른바 '중화민국의 산업화와 교육정책을 돕고 2차대전동안 충실한 우방으로서 지원해준 동지' 스탈린에 대한 격하 운동을 명분으로 아예 차단시켰는데, 흐루쇼프 실각후 스탈린이 다시 역사위로 올라오게 됨에 따라 명분을 상실한 중화민국에 소련이 제 3세계로의 확장의 교두보로 스웨덴의 중재를 통해 화해를 제안함에 따라 소중 관계가 점차 개선되었다. 그렇기에 소련과 중화민국 사이의 꽤나 다발적이었던 국경 분쟁이 점차 줄어들고 만주의 입지도 줄어들었는데, 소련이 붕괴되자 자본주의화된 러시아가 만주국을 버리고 친중 정책으로 갈아탐에 따라 신만주공화국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립상태가 고착화되고 만주 인민 사이에서 소비재와 자유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옴에 따라 만주의 전 공산당원들과 지식인 엘리트들이 중화민국에 대한 적대 관계를 종식시키기로 가까스로 결의했다. 반좌적이고 지방적인 군내 소장파들에 의해 밀려난 중앙파 노장파들의 지지를 얻어낸 그들은 노령의 원수들과 대일전쟁 참전용사들을 앞세워 수도 창춘과 그 인근의 사단들을 최대한 긁어모았다. 또한 신만주공화국 소장파 군부에 의해 전차에 비해 처우개선에서 밀려나 불만을 품은 헬리콥터 편대들을 이용해 친정부군 전차사단들을 최대한 발목 잡았으며 창춘을 비롯한 대도시 시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각지의 정부청사로 행진하였다. 일부 도시들에선 봉기가 실패해 시민들과 지식인들이 학살 당하고 노병들이 무력하게 얻어맞았으나 창춘과 하얼빈을 비롯한 대다수의 봉기지점들에서 정부청사가 봉기군에 장악되고 급여가 부족한 사병들이 이에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신만주공화국은 붕괴되었다. 봉기군은 문민정부를 회복하고 소장파들을 대거 숙청하였다. 그리고 조속히 중화민국 중앙정부에서 반길 새로운 친좌 지역 만주의 중화민국 합류를 위한 국민투표를 실행해 중화민국 합류를 결의하였다. 중화민국 정부는 갑작스러운 이러한 사태에 3주간 혼란을 빚다가 만주 신정부의 합류 요청을 받고 만주 행정구역 개편과 랴오둥성 회복안을 가결시켜 만주 자치공화국과 랴오둥성을 비롯한 몇개 성을 신설하게 되었다.
[1] 현실 역사의 봉천 군벌의 깃발과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