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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민공화국
日本人民共和国
People's Republic of Japan
국기
파일:인민기.png
국장
파일:일인공국장.png
국호
일본인민공화국
日本人民共和国
People's Republic of Japan[1]
수도
센다이 도(仙台都)
상징
국가
국화
국조
정치
정치체제
인문환경
인구
1420만 1258명 (2017년
인구밀도 95명/㎢ (2016)
공용어
없음(사실상 일본어)[2]
국교
없음
자연환경
면적
15만 373㎢
경제
1인당 GDP
10,700$ (2017년 추정치)
GDP(PPP)
1519억 5346만 $ (2017년 추정치)
1인당 GDP(PPP)
화폐 단위
공화국 엔(Y)
ccTLD[3]
국가 예산
1년 세입
1년 세출
단위
국제전화번호
일본인민공화국 전지역 UTC+9(일본 표준시)
외교
대한수교현황
국제연합 가입
1956년
국가원수

국가핵심인물
서기장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부총리 겸
재무장관
참의원 의장
(상원의장)
중의원 의장
(하원의장)
최고재판소 장관
여행경보
철수권고
위치
파일:일공지도.jpg
이 지도에서 일본 열도 북쪽의 붉은 영역이 일본인민공화국이다

[1] 통칭으로는 북일본(North Japan)이 가장 널리 쓰이며, 한자 문화권 국가에서는 간혹 일공(日共)이라는 약칭이 사용되기도 한다.[2] 일본의 공용어를 일본어로 정한다는 법은 없으나 사실상 일본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3] 국가코드 최상위 도메인(country code top-level domain).

1. 개요[편집]

일본인민공화국은 가상지구 알파 세계관의 국가로서, 일본 열도의 북쪽을 점유하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이다.

2. 역사[편집]

가상지구 알파 세계관의 일본 열도 역사는, 2차 세계대전 때까지는 현실 역사와 거의 동일하게 흘러갔다. 2차 세계대전 말기,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은 일본의 거의 모든 전력을 꺾어놓았으며,

현실 역사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의 핵 투하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제국 정부는 무조건 항복함으로서 2차 세계대전은 종결되었으나, 이 세계관에서는 일본 제국 정부는 여전히 결사항전을 고수하였고, 미국 정부는 소위 말하는 몰락 작전을 실제로 입안하고 실행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일본의 국가 여력이 무너졌다고 하더라도, 일본 본토 내에서 벌어질 게릴라전에서 소모될 미군 병사들의 피해, 본토를 제압하는 데 소모될 물자와 비용 문제로 인하여 미군의 단독 진입 계획은 미국 수뇌부가 지속적으로 이의제기하고 있었고, 결국 미국 정부는 자신들 대신 몰락 작전을 실행할 대리인으로서, 중화민국[4]소련군의 동원을 결정한다. 소련군을 동원할 시 일본 열도를 소련과 분할해야 했지만,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동아시아의 잠재적 위험성이 높은 강대국으로서 미-소 양국이 일본을 분할한다면 일본의 재기와 제 2의 태평양전쟁이 일어날 기회를 차단할 수 있다는 이익이 더욱 크다고 미국은 판단했고, 소련 또한 자신들만의 의도를 가지고 미군의 대리자가 되는 데 동의함으로서, 미군의 수송선과 수송기를 타고 중화민국군과 소련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하는 작전이 실행된 것이다.

중일전쟁으로 일본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한 중국군과, 독일군을 물리치고 자신만만한 붉은 군대가 일본에 상륙하자 일본 정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고, 끝내 무조건 항복하고 만다.

이 세계관에서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태평양 전쟁과 같은 도발을 원체 억제할 목적으로 중화민국, 미국, 영국, 소련에 분할당하고 교토도쿄는 미소중영의 공동관할 지역이 된다.
파일:분할당한 일본.jpg
파랑색 - 미국
빨간색 - 소련
연두색 - 영국
노란색 - 중화민국
회색 - 공동관할 지역

소련 하에 들어간 북일본에서는 일본 좌익들이 집권하여 지주의 토지를 몰수해 농민들에 균등하게 분배해주었고, 자본가들로부터 생산수단과 재산을 몰수해 국유화하였다. 또한 전범들과 군국주의 부역자들을 색출해 처벌했다.

1952년 미국, 중화민국, 영국이 관할하던 지역과 교토, 도쿄는 일본국으로서 독립되었지만, 소련 군정 하의 좌익은 천황의 퇴진과 전쟁범죄의 사죄를 외치며 일본국으로의 편입을 거부했고, 1953년 소련의 지원 하에 일본의 공산당의 당수인 노사카 산조를 초대 서기장으로 하는 '일본인민공화국'을 건립한다.

3. 외교[편집]

  • 남일본과의 관계
일본 분할은 일본을 약화시켜 태평양 전쟁과 같은 도발을 원천 억제할 목적으로 미-소 양국에 합의된 것이므로, 공식적으로는 남일본/북일본 양국의 헌법상 영토는 남일본/북일본의 행정력이 미치는 영역으로만 한정되어 있으며, 남일본과 북일본 양국은 상대국을 외국으로 간주하고 있다.[5] 그러나 양국의 국민들 사이에서는 남일본과 북일본이 한 민족이라는 의식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고 양 측의 정부(비공식적으로)와 국민들은 통일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남일본은 천황제의 폐지와 남일본의 정치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전범과 군국주의 부역자 관료들의 처벌을 외치는 북일본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줄 리 없다. 또한, 비록 북일본의 생활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지만, 남일본을 군국주의 부역자들의 정부이며 천황과 귀족이라는 봉건시대적 잔재가 남아있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다만, 양측 국가 모두 극렬한 민족주의 계열에서는 '무력 사용을 불사한 일본의 고유 영토 회복'을 주장한다.

80년대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를 진행하며 공산권의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할 때, 남일본 내에서도 일시적으로 북일본에 대해 유화적인 정당이 집권하였고, 양국간의 우호적인 공존-협력-연합 관계를 구상한 적이 있었다. 이 당시의 남북일본간 회담의 결과로 남일본-북일본을 잇는 열도 고속철도망 계획이 양국간에 합의되었고, 90년대 중후반에 교토-센다이를 잇는 국가간 고속철도인 호쿠리쿠-리쿠젠 신칸센[6] 노선이 개통되어 당시의 유화 무드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남아 있으나, 그 후 남북일본 관계가 다시 냉각되고 이전같이 회복되지 못하게 되어 추가적인 열도 고속철도 계획은 무기한 중단되었고, 교토-센다이 노선만이 기존 개통 구간의 유지보수 정도나 이루어지고 있다.
  • 러시아와의 관계
일본인민공화국은 처음부터 소련의 영향 하에 세워진 나라였고, 일본인민공화국 영토 내에 주일소군 육군/해군/공군이 주둔하는 등 소련에게 일본인민공화국은 소련의 세력권을 태평양 동쪽으로 확장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이었다. [7] 동구권이 붕괴하고 수많은 공산주의 국가가 붕괴되는 시점에도 소비에트 연방은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거점인 일본인민공화국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일부 규모가 축소되는 한이 있더라도 주일소군 전력은 필사적으로 유지하였다. 2010년대 이후로 가상지구 알파 세계관의 소련의 사정이 전반적으로 회복되면서, 주일소군의 규모는 다시 확장되고 있으며 미국과 다시 불편한 대립이 일어나고 있다.

현실 역사에서 러시아가 실효지배하고 있고, 일본이 여전히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사할린은, 일본인민공화국이 사할린의 영유권을 영구히 포기함으로서 국제법상 완벽히 소련의 영토로 인지되고 있다.
  • 한국과의 관계
일본인민공화국은 건국 초부터 군국주의 부역자들을 엄격히 처벌한 전례가 있다. 또한 일본인민공화국의 정치인들은 일제 시절의 조선 병합과 수많은 인권유린을 사과했으며, 한국에 정기적으로 배상금을 보내며 일공의 정치인들은 과거 서대문 형무소 등을 방문해 헌화하고있다. 또한,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과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정신적, 신체적 치료를 돕는 재단을 한국과 공동발족하기도하였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인민공화국이 공산국가임에도 남일본보다 훨씬 우호적인 시선을 가지고있다.

4. 행정구역[편집]

파일:제목 없음.png
일본인민공화국의 현급 행정구역과 각 현도

5. 정치[편집]

일본인민공화국이 건설된 이래 일본공산당의 일당독재가 이뤄졌다. 따라서 국가 권력기구와 별도로 당내 권력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인민공화국의 국가권력의 최고 기관은 국가평의회이며, 단원제이다. 국가평의회는 일본인민공화국 내의 각 시정촌 평의회부터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올라가, 최후에는 전 일공을 어우르는 최고 의결 기관이다. 국가평의회는 내각과 간부위원회 위원들을 선출할 수 있다. 국가평의회가 폐회 중일 때는, 국가평의회 간부위원회가 내각 구성인원이나 최고인민법원 재판장의 임면권과 법률개정권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전담한다. 일본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는 국가평의회 간부위원회의 의장이며, 일본 공산당 서기장이 겸임해왔다.

일본 공산당의 최고의결기관은 일본 공산당 대회이다. 여기서는 당의 기본 노선을 설정하고 일본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중앙위원 후보를 선출한다. 당 대회는 1년에 4회 정도 개회되며, 개회되지 않을 때는 당 중앙위원회에서 상무를 전담한다. 중앙위원의 임기는 4년이다. 당 중앙위원회는 보다 실권을 가진 인원들로 압축된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을 구성하며, 이 정치국의 실제적인 업무를 전담할 추리고 추려 10여 명의 서기들로 구성된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이 구성된다. 또한 이 서기국의 수장이 서기장이다.

5.1. 역대 서기장[편집]

대수
이름
임기시작
임기종료
재임기간
비고
01대
노사카 산조
野坂参三
1953
1985
32년
8선 후 정계은퇴. 1993년 사망
02대
미야모토 겐지
宮本顕治
1985
1997
12년
3선 후 정계은퇴. 2007년 사망
03대
후와 테츠조
不破哲三
1997
2009
12년
3선후 정계은퇴
04대
시이 가즈오
志位 和夫
2009
현직 서기장

6. 경제[편집]

일본인민공화국은 기본적으로 계획경제를 채택하고있으며, 모든 산업과 토지가 국유화되어있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택하고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는 어느 정도 개방을 택해 해외관광객을 받고있으며, 홋카이도를 시장경제 일부 수용과 해외와의 자유로운 무역을 보장하는 특별자치현으로 지정했다.

6.1. 농업[편집]

6.2. 산업[편집]

7. 사회[편집]

8. 교육[편집]

9. 문화[편집]

10. 종교[편집]

일본인민공화국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있다. 그러나 일본인민공화국이 건국될 때 대부분의 교회와 사찰, 신사들은 파괴되고, 교단들이 가지고있는 모든 재산은 몰수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정부가 승인한 교단만이 종교활동을 할 수 있고, 일공 정부가 승인하지않은 교단이나 우익적인 설교를하는 종교인들과 교단들은 탄압받는다. 일본인민공화국의 종교 억압과 사회주의적 교육에 힘입어 일본인민공화국의 무교 비율을 매해 올라가는 추세이다.

이러한 종교 정책의 현안에 의해 실제 역사의 중화인민공화국 - 바티칸 시국 관계와 유사하게 일본인민공화국은 바티칸 시국과 현재까지 수교하지 않았으며, 바티칸은 남일본 정부에만 수교를 맺은 상황이다.

11. 교통[편집]

12. 도로[편집]

13. 철도[편집]

14. 언론[편집]

15. 기타[편집]


[4] 여기서의 중화민국은, 현실 역사의 중화민국과 다른 역사를 겪은, 가상지구 알파 세계관의 가공의 중화민국이다.[5] 가령, 일본인민공화국의 수도인 센다이에는 '일본국 대사관'이 존재하고, 남일본의 수도인 교토에는 '일본인민공화국 대사관'이 있다.[6] 남일본, 북일본 모두 고속철도 브랜드는 신칸센을 사용하고 있다.[7] 반대로, 남일본 영토 내에도 주일미군 육군/해군/공군이 주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