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모리현 버스 회사 |
十和田観光電鉄株式会社 Towada Kanko Electric Railway Co., Ltd. / 토와다 관광전철 주식회사 | |
종류 | |
운행지역 | 일본 아오모리현 |
약칭 | 토테츠(十鉄) |
본사 소재지 | |
설립년일 | |
업종 | 육운업 |
법인번호 | |
사업내용 | 여객버스사업 등 |
대표 | 사장 사토 유키히로(佐藤行洋) |
자본금 | 9,600만 엔[시점] |
매출 | 21억 9,700만 엔 |
영업이익 | 334만 5,000엔 |
종업원 수 | 238명 |
결산기 | |
주요 주주 | 국제도호쿠 100% |
웹사이트 |
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2.1. 설립 초기[편집]
1913년 후루마기[3] ~ 산본기[4] 간 궤도부설 특허를 취득하고, 이듬해 6월에 토와다 관광궤도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였다. 이후 1918년에는 궤도부설 특허를 얻은 후루마기 ~ 산본기 구간을 넘어서 토와다 호가 있는 네노쿠치까지 승합자동차 영업을 먼저 시작하였다. 1920년에는 지방철도 부설면허를 취득하게 되고, 그 해에 회사명도 토와다 철도로 변경하였다.
1922년에 전 구간의 노선이 개통하게 되고, 1926년에는 동쪽의 야케야마까지의 지방철도 부설면허를 취득하게 되었으나, 이 구간은 착공도 못 하고 계획이 중단되게 된다. 1941년에는 야스노 자동차와 오가사와라 자동차 등을 인수하였다. 1943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이 격화되면서 고토 철도[5]와 난부 승합자동차 등과의 통합을 추진했으나, 이는 무산되었다.
전후인 1951년 6월에는 노선이 762mm 궤간에서 1067mm로 개궤되고, 직류 1500V로 전철화되면서 철도영업이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이때 사명도 현재의 토와다 관광전철로 변경하였다. 1954년에는 토와다 호 근처에 위치한 여관을 인수하고, 유람선의 운행을 시작하는 등 토와다 호를 중심으로 한 관광사업을 많이 전개해나가기 시작했다.
1922년에 전 구간의 노선이 개통하게 되고, 1926년에는 동쪽의 야케야마까지의 지방철도 부설면허를 취득하게 되었으나, 이 구간은 착공도 못 하고 계획이 중단되게 된다. 1941년에는 야스노 자동차와 오가사와라 자동차 등을 인수하였다. 1943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이 격화되면서 고토 철도[5]와 난부 승합자동차 등과의 통합을 추진했으나, 이는 무산되었다.
전후인 1951년 6월에는 노선이 762mm 궤간에서 1067mm로 개궤되고, 직류 1500V로 전철화되면서 철도영업이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이때 사명도 현재의 토와다 관광전철로 변경하였다. 1954년에는 토와다 호 근처에 위치한 여관을 인수하고, 유람선의 운행을 시작하는 등 토와다 호를 중심으로 한 관광사업을 많이 전개해나가기 시작했다.
2.2. 국제흥업 산하로[편집]
이후로도 토와다 관광전철은 토와다 호를 이용한 관광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1957년에는 호텔 사이교도나 오가사와라호 민속박물관 등을 설립하면서 관광시설을 많이 확충하고 있었으며, 이후에 토와다 개발 출신의 스기모토 유키오 사장이 취임하면서 이러한 정책에는 더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다만 이 시절에 버스사업의 경영악화가 이어지고, 철도사업에서는 노동조합의 사철총련 가입여부를 두고 노사갈등이 장기간 이어지다가 노동자들의 70일 간의 파업이라는 사태까지 맞이하게 되면서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스기모토는 국제흥업에 대형 자본의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하게 되고, 이를 국제흥업이 받아들이면서 토테츠는 국제흥업의 완전자회사가 되었다.
다만 경영 상태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는데, 파업 이후인 1970년대에는 연간 165만명이 이용하면서 이용객 수의 정점을 찍고, 1985년에는 토테츠 터미널 빌딩을 신축하면서 철도 사무소와 역 기능을 모두 빌딩으로 이전하면서 토테츠라는 슈퍼를 개설하는 등 시설의 개수도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만 이 시절에 버스사업의 경영악화가 이어지고, 철도사업에서는 노동조합의 사철총련 가입여부를 두고 노사갈등이 장기간 이어지다가 노동자들의 70일 간의 파업이라는 사태까지 맞이하게 되면서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스기모토는 국제흥업에 대형 자본의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하게 되고, 이를 국제흥업이 받아들이면서 토테츠는 국제흥업의 완전자회사가 되었다.
다만 경영 상태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는데, 파업 이후인 1970년대에는 연간 165만명이 이용하면서 이용객 수의 정점을 찍고, 1985년에는 토테츠 터미널 빌딩을 신축하면서 철도 사무소와 역 기능을 모두 빌딩으로 이전하면서 토테츠라는 슈퍼를 개설하는 등 시설의 개수도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2.3. 경영악화와 철도 폐선[편집]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토와다 관광전철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유가 상승과 이용객 수 감소가 함께 일어나면서 여객운송 사업에서의 수익이 날로 악화되고 있었고, 토테츠 슈퍼의 수익도 안 좋아지고 있었다. 결국 2006년에 토테츠 미사와점이 먼저 폐업하고, 2007년에는 토테츠 토와다시점도 폐점되게 되면서 슈퍼마켓 사업에서 발을 빼게 되었다.
게다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터지는 바람에 안 그래도 수익이 좋지 않았던 토테츠의 상황을 더욱 옥죄어왔다. 그나마 적자였던 철도 사업을 버스 사업과 관광레저 사업이 보충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지진으로 인해 이 수요마저도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철도 노선의 폐지 위기가 오게 되었다. 회사는 노선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지원을 연선 지자체에 요청했으나, 지자체가 이를 거절하면서 2012년에 결국 철도 노선은 폐선되었다.
게다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터지는 바람에 안 그래도 수익이 좋지 않았던 토테츠의 상황을 더욱 옥죄어왔다. 그나마 적자였던 철도 사업을 버스 사업과 관광레저 사업이 보충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지진으로 인해 이 수요마저도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철도 노선의 폐지 위기가 오게 되었다. 회사는 노선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지원을 연선 지자체에 요청했으나, 지자체가 이를 거절하면서 2012년에 결국 철도 노선은 폐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