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착공 | |
완공 | |
건축가 | 제임스 호번 |
주소 | |
전화번호 | (202)456-1111 |
공식 사이트 | |
SNS |
1. 개요[편집]
백악관은 1792년 착공하여 1800년 완공된 미국의 대통령 관저이다.
2. 역사[편집]
백악관이 지어지기 전에는 뉴욕의 Samuel Osgood House[2]과 Alexander Macomb House[3], 필라델피아의 President's House[4]가 대통령 관저의 역할을 했다. 즉 워싱턴 DC의 백악관은 미국 역사상 4번째 대통령 관저인 셈.[5]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 관저 부지를 고른 것은 대통령 직무를 시작한 지 2년 뒤인 1791년이었다. 워싱턴은 멋진 대통령 관저를 지어보려는 욕심에서 국제 설계공모전까지 했다. 9건의 최종 후보작에서 아일랜드 출신 건축가 제임스 호번의 모델이 뽑혔다. 전통적 유럽풍 양식이었다. 건물의 형태에 대한 영감은 더블린의 레인스터 하우스에서 얻었고, 흰색 외장은 조지 워싱턴의 아내 마사 워싱턴이 과거 살던 하얀 집을 본떴다. 호번은 몇 차례 수정하면서 2층 외관에 11개의 출입구가 있는 건물 설계를 완성했다. 이듬해 10월 13일 주춧돌이 세워지고 공사가 시작됐다. 주요 건물들의 건설은 당시 흑인 노예와 노동자들이 주로 담당했고 돌 세공은 스코틀랜드인이 맡았다.
착공 8년 뒤인 1800년 11월에 건물이 완공됐다. 그 당시에는 백악관의 명칭이 ‘대통령의 집(President’s House)’이었고 정작 워싱턴은 백악관에 입주하지 못했고 2대 대통령 존 애덤스가 처음 입주했다. 백악관은 프랑스의 샤토성을 흉내낸 건물로 이후로도 계속되는 미국인들의 프랑스 컴플렉스를 반영했다. 하지만 겉만 그럴 듯하지, 내부 상태는 한창 정비 중이라서 대통령 내외도 벽칠이 다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집무를 봤다고 한다.
그리고 건축에도 조예가 아주 깊었던 토머스 제퍼슨 때 건축가 벤자민 헨리 라트로브가 합류하여 마굿간과 부속 시설들을 위해 두 개의 작은 윙이 증축되었다. 1812년 미영전쟁 이전부터 백악관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고 정식 명칭이 된 것은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시절이었다.
미영전쟁 당시 영국군과 캐나다군이 1812년 미국의 기습으로 털려버린 온타리오주와 오타와 그리고 퀘벡을 탈환하자마자 미친듯이 미국에 공세를 실시해 1814년 워싱턴 D.C.를 점령했을 때 백악관을 포함한 워싱턴 D.C. 대부분의 주요 관청들이 불살라지거나 철거되었다. 남북전쟁 무렵에는 일부 부분이 무너지기도 했다.
지금의 백악관은 33대 대통령인 해리 S. 트루먼이 대대적으로 정비, 보수한 후 35대 존 F. 케네디 때 마지막 손질을 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트루먼이 대통령으로 집무를 시작하던 즈음에 백악관은 겉만 멀쩡했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불안불안했지만 어찌어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2층의 피아노 다리가 1층 천장을 뚫고 내려와버렸다. 결국 외벽만 남기고 내부는 싹 갈아 엎어 철근 컨크리트로 재건축했다. 원래 백악관은 전부 사암으로 만든 돌집이었지만 이제는 겉에만 사암을 두른 컨크리트 건물이다. 참고로 사암은 풍화에 취약하기 때문에 페인트칠을 해 보호하고 있다.
그 후 백악관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각자 취향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고 증축되었지만 관리가 체계적으로 되지 않다 보니 점차 허술한 꼴이 되고 말았는데 존 F. 케네디의 아내 재클린 케네디가 주도적으로 한 백악관 복원 사업에서 프랑스풍의 장식을 여기저기 도입하였고, 이게 선례가 되어 현재는 대통령 부인과의 긴밀한 협조는 물론 기존의 역사적인 상징적 이미지를 유지하는 가운데 리모델링 작업이 이루어졌다.
2020년에는 웨스트 윙 뒤편의 로즈 가든이 리모델링되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 관저 부지를 고른 것은 대통령 직무를 시작한 지 2년 뒤인 1791년이었다. 워싱턴은 멋진 대통령 관저를 지어보려는 욕심에서 국제 설계공모전까지 했다. 9건의 최종 후보작에서 아일랜드 출신 건축가 제임스 호번의 모델이 뽑혔다. 전통적 유럽풍 양식이었다. 건물의 형태에 대한 영감은 더블린의 레인스터 하우스에서 얻었고, 흰색 외장은 조지 워싱턴의 아내 마사 워싱턴이 과거 살던 하얀 집을 본떴다. 호번은 몇 차례 수정하면서 2층 외관에 11개의 출입구가 있는 건물 설계를 완성했다. 이듬해 10월 13일 주춧돌이 세워지고 공사가 시작됐다. 주요 건물들의 건설은 당시 흑인 노예와 노동자들이 주로 담당했고 돌 세공은 스코틀랜드인이 맡았다.
착공 8년 뒤인 1800년 11월에 건물이 완공됐다. 그 당시에는 백악관의 명칭이 ‘대통령의 집(President’s House)’이었고 정작 워싱턴은 백악관에 입주하지 못했고 2대 대통령 존 애덤스가 처음 입주했다. 백악관은 프랑스의 샤토성을 흉내낸 건물로 이후로도 계속되는 미국인들의 프랑스 컴플렉스를 반영했다. 하지만 겉만 그럴 듯하지, 내부 상태는 한창 정비 중이라서 대통령 내외도 벽칠이 다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집무를 봤다고 한다.
그리고 건축에도 조예가 아주 깊었던 토머스 제퍼슨 때 건축가 벤자민 헨리 라트로브가 합류하여 마굿간과 부속 시설들을 위해 두 개의 작은 윙이 증축되었다. 1812년 미영전쟁 이전부터 백악관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고 정식 명칭이 된 것은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시절이었다.
미영전쟁 당시 영국군과 캐나다군이 1812년 미국의 기습으로 털려버린 온타리오주와 오타와 그리고 퀘벡을 탈환하자마자 미친듯이 미국에 공세를 실시해 1814년 워싱턴 D.C.를 점령했을 때 백악관을 포함한 워싱턴 D.C. 대부분의 주요 관청들이 불살라지거나 철거되었다. 남북전쟁 무렵에는 일부 부분이 무너지기도 했다.
지금의 백악관은 33대 대통령인 해리 S. 트루먼이 대대적으로 정비, 보수한 후 35대 존 F. 케네디 때 마지막 손질을 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트루먼이 대통령으로 집무를 시작하던 즈음에 백악관은 겉만 멀쩡했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불안불안했지만 어찌어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2층의 피아노 다리가 1층 천장을 뚫고 내려와버렸다. 결국 외벽만 남기고 내부는 싹 갈아 엎어 철근 컨크리트로 재건축했다. 원래 백악관은 전부 사암으로 만든 돌집이었지만 이제는 겉에만 사암을 두른 컨크리트 건물이다. 참고로 사암은 풍화에 취약하기 때문에 페인트칠을 해 보호하고 있다.
그 후 백악관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각자 취향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고 증축되었지만 관리가 체계적으로 되지 않다 보니 점차 허술한 꼴이 되고 말았는데 존 F. 케네디의 아내 재클린 케네디가 주도적으로 한 백악관 복원 사업에서 프랑스풍의 장식을 여기저기 도입하였고, 이게 선례가 되어 현재는 대통령 부인과의 긴밀한 협조는 물론 기존의 역사적인 상징적 이미지를 유지하는 가운데 리모델링 작업이 이루어졌다.
2020년에는 웨스트 윙 뒤편의 로즈 가든이 리모델링되었다.
3. 여담[편집]
-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재임기에는 백악관이 거의 동물원이 되었다. 루스벨트가 탐험가(라고 쓰고 사냥꾼이라고 읽는다)에 농장주였던 경력이 있어서 말, 소, 뱀, 도마뱀 등 별의별 동물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루스벨트가 백악관에 입주하면서 이 동물들도 함께 들어오는 바람에 아예 백악관에 동물원이 만들어졌다. 심지어는 말이 백악관 건물 안에 똥을 갈겼다고 한다. 거기에 악동으로 유명했던 루스벨트의 자녀들이 온갖 장난으로 백악관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바람에 훗날 한 직원은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에는 맨정신으로 근무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을 정도.
- 지금의 미국의 정치적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 9.11 테러 당시 유일하게 테러에 실패하고 추락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목표물이 백악관이었다는 설이 있다.
- 포네틱 코드로는 '위스키 호텔(Whiskey Hotel)'이라고 하는데 덕분에 이 위스키 호텔이 정말로 일반적인 호텔인 줄 착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 블랙 하우스(Black House)가 될 뻔한 적이 있다. 진주만 공습 직후 미합중국 육군에서 일본군의 공습시, 흰색은 눈에 띄기 쉬우니 검정색으로 외관을 도색하자는 제안을 해온 것. 뭔 헛소리인가 싶지만, 진주만 공습 직후 미국 조야의 분노와 함께 일종의 패닉에 빠진지라 서해안 방어가 어려우니 로키 산맥을 방어선으로 삼자느니, 일본군이 이미 미국 영내에 비밀기지를 건설했다느니 같은 온갖 괴악한 소리가 한동안 돌아다녔다.(...) 당연히 백악관은 그 제안을 거부했고, 대신 공습에 대비한 등화관제를 실시하고 창문마다 검은색 커튼을 설치하는 것으로 끝냈다.
[1] 구역명인 NW를 붙여야 한다. 남동쪽에 1600 Pennsylvania Ave. 주소를 쓰는 아파트가 있기 때문. 백악관뿐만 아니라 워싱턴 D.C. 내의 다른 건물도 마찬가지로 중복 주소가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워싱턴 D.C.로 우편을 보낼 때에는 반드시 구역명을 붙이자.[2] 1789년 4월 23일~1790년 2월 23일[3] 1790년 2월 23일~8월 30일[4] 1790년~1800년[5] 조지 워싱턴은 1793년 필라델피아 황열 유행과 1794년 위스키 폭동 때 Germantown White House에 임시로 머물렀지만 정식으로 대통령 관저로 지정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