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칸국에서 넘어옴
1. 개요
1. 개요[편집]
훌레구인 울루스는 13세기 중반부터 14세기 중반까지 서아시아 패권을 차지했던 몽골계 통치 집단으로, 오늘날의 이란과 인근 지역에 기반을 둔 국가 체계를 유지하였다. 이 정권은 일반적으로 '일 칸국'으로도 알려져 있으나, 보다 정확한 몽골식 명칭은 '훌레구인 울루스'이며 이는 곧 '훌레구의 후예들이 세운 공동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통치체는 몽골 제국의 대칸이었던 뭉케가 사망한 1259년을 기점으로 독립적인 정치 실체로 형성되었다. 창건자는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툴루이의 아들인 훌레구였다. 훌레구는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서진하여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정복한 후, 이 지역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울루스를 구축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배지를 '이란의 땅'이라 부르며 통치 정당성을 이란 고유의 역사적 전통과 결부시켰다.
훌레구인 울루스의 주요 영토는 오늘날의 이란,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한때는 이라크, 시리아, 아르메니아, 조지아,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 북부, 다게스탄과 타지키스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포함했다. 정복 초기에 그들은 몽골의 전통 신앙인 텡그리 신앙과 샤머니즘, 그리고 일부는 불교를 신봉하였으나, 1295년 가잔 칸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후로 이슬람은 국가의 공식 종교로 자리 잡았다.
훌레구인 울루스는 이집트의 맘루크 술탄국과 지속적인 충돌을 겪었으며, 대표적으로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의 패배는 그들의 시리아 진출에 중대한 장애로 작용하였다. 이후에도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국경을 두고 갈등이 이어졌으나 결정적인 승리를 얻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14세기 중반, 흑사병이 이란과 그 주변 지역을 휩쓸면서 사회 기반이 붕괴되었고, 이는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335년 마지막 유력 칸이었던 아부 사이드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중앙 집권 체제는 완전히 와해되었다. 이후 여러 귀족 집단과 군벌들이 각지에서 세력을 형성하였으며, 잘라이르 왕조와 추판 왕조 같은 여러 후계 정권들이 일시적으로 등장하였으나, 티무르 제국의 침공과 카라 코윤루 및 아크 코윤루로 대표되는 튀르크멘계 세력의 공격으로 차례차례 멸망하였다.
이 통치체는 몽골 제국의 대칸이었던 뭉케가 사망한 1259년을 기점으로 독립적인 정치 실체로 형성되었다. 창건자는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툴루이의 아들인 훌레구였다. 훌레구는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서진하여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정복한 후, 이 지역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울루스를 구축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배지를 '이란의 땅'이라 부르며 통치 정당성을 이란 고유의 역사적 전통과 결부시켰다.
훌레구인 울루스의 주요 영토는 오늘날의 이란,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한때는 이라크, 시리아, 아르메니아, 조지아,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 북부, 다게스탄과 타지키스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포함했다. 정복 초기에 그들은 몽골의 전통 신앙인 텡그리 신앙과 샤머니즘, 그리고 일부는 불교를 신봉하였으나, 1295년 가잔 칸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후로 이슬람은 국가의 공식 종교로 자리 잡았다.
훌레구인 울루스는 이집트의 맘루크 술탄국과 지속적인 충돌을 겪었으며, 대표적으로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의 패배는 그들의 시리아 진출에 중대한 장애로 작용하였다. 이후에도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국경을 두고 갈등이 이어졌으나 결정적인 승리를 얻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14세기 중반, 흑사병이 이란과 그 주변 지역을 휩쓸면서 사회 기반이 붕괴되었고, 이는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335년 마지막 유력 칸이었던 아부 사이드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중앙 집권 체제는 완전히 와해되었다. 이후 여러 귀족 집단과 군벌들이 각지에서 세력을 형성하였으며, 잘라이르 왕조와 추판 왕조 같은 여러 후계 정권들이 일시적으로 등장하였으나, 티무르 제국의 침공과 카라 코윤루 및 아크 코윤루로 대표되는 튀르크멘계 세력의 공격으로 차례차례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