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괴게임 | |
표어 | 백괴게임, 너를 즐기는 게임 |
영리 여부 | 비영리 |
사이트 성향 | 미디어위키 기반 게임 사이트 |
편집 권한 | 문서에 따라 다름 |
관리자 | |
개설 일자 | |
접속 상태 | |
마스코트 | |
위키 엔진 | |
언어 | |
라이선스 | |
문서 수[2] | 25,490 |
주소 |
1. 개요[편집]
백괴사전의 자매 프로젝트 중 하나인 위키위키형 게임 사이트. 미디어위키에 기반했다는 한계점이 있지만 이를 자바스크립트까지 이용하여 뛰어넘는 프로그래밍 능력자[5]가 많아 나름 훌륭한 질을 보여준다.
서버가 마비되었다가 복구되는 일이 가끔 있는데, 서버가 가끔 폭주하여 오류가 뜨는 것이다. 백괴사전/서버 에러 기록 참조.
서버가 마비되었다가 복구되는 일이 가끔 있는데, 서버가 가끔 폭주하여 오류가 뜨는 것이다. 백괴사전/서버 에러 기록 참조.
2. 역사[편집]
전신은 2007년 처음 제안되어 '백괴사전의 세계관을 구현한 나라 시뮬레이터'를 표방하고 나온 백괴나라 네임스페이스로, 백괴나라가 억지 설정과 재미 없음 등의 이유로 2009년 2월 삭제되게 되자 백괴나라 산하로 남아있던 미니게임들이 독립되어 따로 '백괴게임' 네임스페이스로 자리잡게 되었고 백괴게임이 계속 성장하여 백괴사전 본진의 기여 수를 뛰어넘기 시작하자 별도의 위키로 분리된 것이 현재의 백괴게임이다.
백괴게임의 초창기 게임으로 대표적인 것은 이전의 백괴나라를 계승한 백괴시티▷백괴나라가 있었다. 그러나 하도 여러 사람이 만드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2011년 말 백괴나라 안의 싸움이 발생해 여러 사람이 떠나게 되었고 결국 게임은 삭제되었다. 급기야 세계관 바꾸기에 대한 제한까지 등장해 백괴나라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였으나, 현재는 좋은 편집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유로 제한이 해제되었다.
2012년 초에는 위의 백괴나라 일 때문에 한 관리자의 잦은 차단 행사가 있자 서버 관리자와 일반 관리자가 갈등을 일으켜 일반 관리자는 관리자 권한을 회수당해서 떠나고, 서버 관리자는 서버 관리 외의 모든 권한을 내려놓게 되었다. 또한 백괴게임등급심의위원회를 없앤 후부터 도박성 게임을 빼고는 게임 제작자가 마음대로 등급을 정하라고 정하는 바람에 이후부터의 게임들은 이전보다 부실해지게 되었고, 이는 이후에 판치던 양산형 게임을 막지 못한 큰 원인으로 작용하며 등급 분류가 의무화된 현재까지도 백괴게임의 질적 하락에 기여하고 있다.
백괴미디어 서버가 이전한 직후였던 2012년 9월 22일부터는 CentralAuth 확장 기능의 문제로 인해 백괴게임의 관리자가 사실상 없어진 상태였다가, 2012년 11월에 '사무관' 권한을 받아버린 사용자가 홀연히 나타나서 원래 사무관의 권한을 복구해주고는 떠났다. 다행히도 편집자 정보 오류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이 정상화되었으나, 이 사태 때문에 당시 기록에는 아이피 유저가 문서를 보호한 기록도 보인다.
2013년 초에는 백괴게임의 사무관이 모종의 이유로 사무관직을 사퇴했다. 그래서 한 달 정도 사무관이 공석이었는데, 이 때문에 서버 운영자의 경고를 받게 되어서 반강제적으로 한 관리자가 사무관이 되었다.
이후 약 1년 동안 자연적으로 회원 물갈이가 이루어졌다. 분류 상 백괴식 유머와 다양한 창의력을 보여준 초기 유저들이 빠지고 백괴게임 정비와 교통 분야 게임 개척을 중점적으로 했던 2세대 유저가 들어온 시기라고 볼 수 있다.
2015년 1월에 새로운 사무관이 선출되었으나 그 사무관은 모종의 사건으로 권한 사임을 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탈퇴하기 약 열흘 전, 사무관이 한 명 더 선출되었고 그 덕분에 사무관 공백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꾸준하게 다양한 게임이 나오면서 2015년 2월 3일 드디어 1만 번째 문서가 만들어져, 1주일 동안 로고를 만괴게임으로 바꾸게 되었다. 만 번째 문서의 주인공은 철도역 기행이라는 전국 철도역 탐방 게임의 낙민역 하위 문서로, 당시 철도•도로 분야 게임이 얼마나 많이 제작되었는지를 나타내는 상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2015년 하반기에는 회원들의 대량 탈퇴 러시로 인해 백괴게임의 많은 사용자가 이탈되기도 했는데, 이때 남은 유저들과 이후 꾸준하게 발을 들이게 된 초등학생~중학생 유저들이 모여 3세대 유저를 이룬다. 이들은 2017년경 대량으로 유입되어 이전의 교통 분야 게임과 도시 게임을 굉장히 많이 만들었는데, 도시생활 게임 버블 때문인지 이때 백괴게임은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게 된다.
그러다가 드디어 2017년 11월 2일에 2만 번째 문서가 만들어졌다. 2만 번째 문서의 주인공은 minseo0388시티라는 도시•국가 생활 게임의 한 문서[6]로, 만괴게임 당시처럼 당시 도시 게임이 백괴게임의 주 콘텐츠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던 2017년 12월 말, Regurus라는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의 게임을 무단 편집해 1일 차단되었다. 그러나 이 사용자는 초창기의 보카통 반달 사태를 연상시키듯 2018년 2월까지 무려 13개의 다중 계정을 마구 생성하며 반달을 저지르다가 결국 무기한 차단되었다. 보통 다중 계정이 차단당하면 그 사용자가 사용한 IP까지 같이 차단당했는데, 이 사용자는 IP 차단을 무시하고 계정을 생산한 것으로 보아 VPN을 사용하고 있다고 추측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태도 있었으니, 2017년 11월부터 백괴에서 분쟁을 일으키다 잠금을 먹은 사용자가 알고 보니 기여 8800여 회 네임드 계정의 다중 계정이었다는 점이다. # 일인 이역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아무도 두 계정이 동일 인물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 때문에 다중 계정을 거의 확실하게 잡아낼 수 있는 체크유저(CheckUser) 권한이 주목받게 되었다.
18년 2월 10일에는 초고속즉시삭제머신이 강림해 관리자들이 고초를 겪었다. 초즉삭은 다음 날 아침의 재공격을 예고하면서 다중 계정 생산을 끝냈고, 다음 날에는 초고속즉시삭제머신이 한 유명 반달러라는 것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밝혀진 바에 따르면 초즉삭의 진짜 정체는 2017년 말에 잠금을 먹은 사용자의 다중 계정이었다.
이렇게 혼란이 이어지던 2018년 2월, 백괴게임 초창기에 활동했던 한 올드비 유저가 돌아오게 된다. 그 유저는 함수가 고장나 플레이가 불가했던 자신의 게임을 고치거나 자바스크립트 도입을 진행하거나 모바일 겸용 대문을 제작하는 등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되고, 이때부터 백괴게임은 약 6개월 간 기술적 발전과 문화적 발전을 함께 이루면서 전무후무한 대호황기를 누리게 된다.
그런데 같은 시기부터 위키 갤러리에서 위의 올드비 유저를 중심으로 도시 게임 관련 문제 제기가 시작되었다. 이른바 도시/마을 생활 게임이라 하여 백괴민국, 산천대국이 나온 후 산천대국의 설정놀음과 그 외 요소들을 따라 여러 아류작 게임들이 우후죽순 생겨 설정놀음과 저연령층 제작자의 유입이 많아지게 되었다는 주장이었는데, 논의가 심각해지면서 결국 2018년 3~4월에 발전소를 통해 이들 게임을 정리하게 되었다.
자바스크립트와 루아스크립트를 기반으로 한 플러그인의 도입으로 호황기를 맞은 백괴게임이었지만, 위의 도시게임 금지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후부터 백괴게임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도시 게임을 중심으로 하던 저연령층 유저들은국가로 설정놀음이 가능했던(...) 카페 커뮤니티나 나무라이브/가상국가 채널로 이동했고, 이들의 비중이 컸던 백괴게임은 18년 12월을 기점으로 이전에 비해 크게 침체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플러그인 시스템 또한 침체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하는데, 플러그인 시스템이 미디어위키:common.js에 있지 않는 한 로그인을 강제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신규 아이피 사용자들의 활동에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백괴게임은 19년 1월부터 몇몇 사용자들만 방문하게 되는 사이트가 되어 완전히 침체된다. 보다못한 일부 사용자들은 현재의 문제점을 꼬집으면서 탈퇴한다는 쇼를 보이기도 하고 사이트 정비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지만, 이후 사용자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서 흐지부지되었고 DB 생성용 계정만 꾸준히 만들어지는 등 '접속자는 꾸준히 있는데 활동자는 없는' 괴상한 불황에 시달리게 되었다.
거기에 중간고사 시즌이 겹친 2019년 4월에는 하룻동안 기여가 전혀 없기도 하는 등 점점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오래 활동한고인물[7] 유저들도 점점 지쳐가며 잠수를 타게 되어서 유저까지 물갈이 되었는데, 다행히도 방학이 되면서 일수 유저들이 돌아오고, 조금 상황이 나아졌다. 그러나 8월에 서버의 하드가 깨지면서 접속이 불가능해졌고, 일부 데이터도 날아갈 위험에 처했다. 10여 년간의 기여가 어느 정도 날아갔으며 얼마나 복구될 지가 문제인 듯. 같은 서버를 사용하는 백괴사전/서버 에러 기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접속 불가 사태가 시작된 지 2달 정도가 지나자, 결국 보다못한 사용자들이 백괴게임 미러 사이트를 열게 되었다. 5월 21일의 텍스트 데이터를 개인 서버에 올리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알파위키나 다른 경로를 통해 백괴게임 본 서버에서 활동하던 유저들이 속속 유입되고 있다. 다만 접속 불가 3달 전의 텍스트 데이터만 복구된 상황이라 사진, 실질적 기술 등 자료는 데이터에 없어서 정비에 어느 정도 난항을 겪고 있다. 서버 사정이 열악한 데다 서버 관리자의 사정 때문에 서버가 내려가는 일도 있는데, 결국 리버티게임이라는 이름으로 Miraheze 기반으로 이주가 확정되었다.
백괴게임의 초창기 게임으로 대표적인 것은 이전의 백괴나라를 계승한 백괴시티▷백괴나라가 있었다. 그러나 하도 여러 사람이 만드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2011년 말 백괴나라 안의 싸움이 발생해 여러 사람이 떠나게 되었고 결국 게임은 삭제되었다. 급기야 세계관 바꾸기에 대한 제한까지 등장해 백괴나라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였으나, 현재는 좋은 편집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유로 제한이 해제되었다.
2012년 초에는 위의 백괴나라 일 때문에 한 관리자의 잦은 차단 행사가 있자 서버 관리자와 일반 관리자가 갈등을 일으켜 일반 관리자는 관리자 권한을 회수당해서 떠나고, 서버 관리자는 서버 관리 외의 모든 권한을 내려놓게 되었다. 또한 백괴게임등급심의위원회를 없앤 후부터 도박성 게임을 빼고는 게임 제작자가 마음대로 등급을 정하라고 정하는 바람에 이후부터의 게임들은 이전보다 부실해지게 되었고, 이는 이후에 판치던 양산형 게임을 막지 못한 큰 원인으로 작용하며 등급 분류가 의무화된 현재까지도 백괴게임의 질적 하락에 기여하고 있다.
백괴미디어 서버가 이전한 직후였던 2012년 9월 22일부터는 CentralAuth 확장 기능의 문제로 인해 백괴게임의 관리자가 사실상 없어진 상태였다가, 2012년 11월에 '사무관' 권한을 받아버린 사용자가 홀연히 나타나서 원래 사무관의 권한을 복구해주고는 떠났다. 다행히도 편집자 정보 오류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이 정상화되었으나, 이 사태 때문에 당시 기록에는 아이피 유저가 문서를 보호한 기록도 보인다.
2013년 초에는 백괴게임의 사무관이 모종의 이유로 사무관직을 사퇴했다. 그래서 한 달 정도 사무관이 공석이었는데, 이 때문에 서버 운영자의 경고를 받게 되어서 반강제적으로 한 관리자가 사무관이 되었다.
이후 약 1년 동안 자연적으로 회원 물갈이가 이루어졌다. 분류 상 백괴식 유머와 다양한 창의력을 보여준 초기 유저들이 빠지고 백괴게임 정비와 교통 분야 게임 개척을 중점적으로 했던 2세대 유저가 들어온 시기라고 볼 수 있다.
2015년 1월에 새로운 사무관이 선출되었으나 그 사무관은 모종의 사건으로 권한 사임을 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탈퇴하기 약 열흘 전, 사무관이 한 명 더 선출되었고 그 덕분에 사무관 공백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꾸준하게 다양한 게임이 나오면서 2015년 2월 3일 드디어 1만 번째 문서가 만들어져, 1주일 동안 로고를 만괴게임으로 바꾸게 되었다. 만 번째 문서의 주인공은 철도역 기행이라는 전국 철도역 탐방 게임의 낙민역 하위 문서로, 당시 철도•도로 분야 게임이 얼마나 많이 제작되었는지를 나타내는 상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2015년 하반기에는 회원들의 대량 탈퇴 러시로 인해 백괴게임의 많은 사용자가 이탈되기도 했는데, 이때 남은 유저들과 이후 꾸준하게 발을 들이게 된 초등학생~중학생 유저들이 모여 3세대 유저를 이룬다. 이들은 2017년경 대량으로 유입되어 이전의 교통 분야 게임과 도시 게임을 굉장히 많이 만들었는데, 도시생활 게임 버블 때문인지 이때 백괴게임은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게 된다.
그러다가 드디어 2017년 11월 2일에 2만 번째 문서가 만들어졌다. 2만 번째 문서의 주인공은 minseo0388시티라는 도시•국가 생활 게임의 한 문서[6]로, 만괴게임 당시처럼 당시 도시 게임이 백괴게임의 주 콘텐츠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던 2017년 12월 말, Regurus라는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의 게임을 무단 편집해 1일 차단되었다. 그러나 이 사용자는 초창기의 보카통 반달 사태를 연상시키듯 2018년 2월까지 무려 13개의 다중 계정을 마구 생성하며 반달을 저지르다가 결국 무기한 차단되었다. 보통 다중 계정이 차단당하면 그 사용자가 사용한 IP까지 같이 차단당했는데, 이 사용자는 IP 차단을 무시하고 계정을 생산한 것으로 보아 VPN을 사용하고 있다고 추측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태도 있었으니, 2017년 11월부터 백괴에서 분쟁을 일으키다 잠금을 먹은 사용자가 알고 보니 기여 8800여 회 네임드 계정의 다중 계정이었다는 점이다. # 일인 이역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아무도 두 계정이 동일 인물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 때문에 다중 계정을 거의 확실하게 잡아낼 수 있는 체크유저(CheckUser) 권한이 주목받게 되었다.
18년 2월 10일에는 초고속즉시삭제머신이 강림해 관리자들이 고초를 겪었다. 초즉삭은 다음 날 아침의 재공격을 예고하면서 다중 계정 생산을 끝냈고, 다음 날에는 초고속즉시삭제머신이 한 유명 반달러라는 것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밝혀진 바에 따르면 초즉삭의 진짜 정체는 2017년 말에 잠금을 먹은 사용자의 다중 계정이었다.
이렇게 혼란이 이어지던 2018년 2월, 백괴게임 초창기에 활동했던 한 올드비 유저가 돌아오게 된다. 그 유저는 함수가 고장나 플레이가 불가했던 자신의 게임을 고치거나 자바스크립트 도입을 진행하거나 모바일 겸용 대문을 제작하는 등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되고, 이때부터 백괴게임은 약 6개월 간 기술적 발전과 문화적 발전을 함께 이루면서 전무후무한 대호황기를 누리게 된다.
그런데 같은 시기부터 위키 갤러리에서 위의 올드비 유저를 중심으로 도시 게임 관련 문제 제기가 시작되었다. 이른바 도시/마을 생활 게임이라 하여 백괴민국, 산천대국이 나온 후 산천대국의 설정놀음과 그 외 요소들을 따라 여러 아류작 게임들이 우후죽순 생겨 설정놀음과 저연령층 제작자의 유입이 많아지게 되었다는 주장이었는데, 논의가 심각해지면서 결국 2018년 3~4월에 발전소를 통해 이들 게임을 정리하게 되었다.
자바스크립트와 루아스크립트를 기반으로 한 플러그인의 도입으로 호황기를 맞은 백괴게임이었지만, 위의 도시게임 금지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후부터 백괴게임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도시 게임을 중심으로 하던 저연령층 유저들은
아무튼 백괴게임은 19년 1월부터 몇몇 사용자들만 방문하게 되는 사이트가 되어 완전히 침체된다. 보다못한 일부 사용자들은 현재의 문제점을 꼬집으면서 탈퇴한다는 쇼를 보이기도 하고 사이트 정비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지만, 이후 사용자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서 흐지부지되었고 DB 생성용 계정만 꾸준히 만들어지는 등 '접속자는 꾸준히 있는데 활동자는 없는' 괴상한 불황에 시달리게 되었다.
거기에 중간고사 시즌이 겹친 2019년 4월에는 하룻동안 기여가 전혀 없기도 하는 등 점점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오래 활동한
접속 불가 사태가 시작된 지 2달 정도가 지나자, 결국 보다못한 사용자들이 백괴게임 미러 사이트를 열게 되었다. 5월 21일의 텍스트 데이터를 개인 서버에 올리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알파위키나 다른 경로를 통해 백괴게임 본 서버에서 활동하던 유저들이 속속 유입되고 있다. 다만 접속 불가 3달 전의 텍스트 데이터만 복구된 상황이라 사진, 실질적 기술 등 자료는 데이터에 없어서 정비에 어느 정도 난항을 겪고 있다. 서버 사정이 열악한 데다 서버 관리자의 사정 때문에 서버가 내려가는 일도 있는데, 결국 리버티게임이라는 이름으로 Miraheze 기반으로 이주가 확정되었다.
3. 문제점과 침체의 원인[편집]
3.1. 낮은 사용자 연령층[편집]
우선 사용자의 연령층이 지나치게 낮았던 것이 최대의 문제점이다. 2017~18년 활동하던 관리자, 일반 유저, 핵심 유저 대부분이 당시 기준으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라고 밝혔거나 밝혀졌으며, 이들은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참신한 게임을 만들지 못하고 흥행하는 게임들을 ctrl+c, ctrl+v하여 올리는 행동이 잦았다. 이러한 사용자 성향의 대표로서 존재했던 도시 생활 게임들은 삭제되고 초등학생 유저들도 대부분 백괴게임을 떠났지만, 이들의 게임 양산 흔적은 낚시 게임과 교통 게임에 많이 존재한다.
3.2. 미디어위키 기반의 한계[편집]
백괴게임은 기본적으로 미디어위키 엔진 기반의 사이트로, 게임의 질에 한계가 있다. 엔진 특성 상 그래픽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어서 사진이나 HTML 같은 것을 대량으로 때려박지 않는 이상은 제작자의 스토리 필력이나 전문적인 프로그래밍 실력이 게임의 질을 좌우한다. 전자책+비주얼 노벨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연령층 문제로 인해 상대적으로 만들기 쉬운 도시 게임이나 철도•도로교통 게임이 난립하게 되었다. 도시 게임은 제작자가 구획을 만들고 도시를 설계하는 정성이라도 들이지만, 교통 게임 분야는 실제로 존재하는 철도/도로 노선에 약간의 어드벤처성만 들어가면 되는데다가 여러 교통계 유저의 활동 산물로 도로 표지판이나 안내 전광판 등이 틀로 간단하게 삽입, 그래픽적으로 '있어 보이는' 효과까지 주면서 상당히 양산될 수 있었다.
물론 백괴게임 내부에서 엔진 자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라서 데이터베이스와 자바스크립트, 그리고 다양한 함수와 그것들을 활용한 틀들로 미디어위키의 한계를 넘는 게임이 많이 제작되기도 한다. 위의 개요에서 봤듯 애초에 본진 백괴사전이 공학 계열 영재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고, 백괴게임도 그 바톤을 받아 정올 준비자, 영재고 준비자들이 주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스의 특성상 일단 어렵다는 문제 때문에 이용자 중에서도 자스 사용자들과 자스 비사용자가 나뉘게 되었다. 게임 제작법 자체가 어려워져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8] 결국 자스 비사용자들이 대부분 이탈하고 신규 유입이 정체되면서 고인물이 넘쳐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백괴게임 내부에서 엔진 자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라서 데이터베이스와 자바스크립트, 그리고 다양한 함수와 그것들을 활용한 틀들로 미디어위키의 한계를 넘는 게임이 많이 제작되기도 한다. 위의 개요에서 봤듯 애초에 본진 백괴사전이 공학 계열 영재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고, 백괴게임도 그 바톤을 받아 정올 준비자, 영재고 준비자들이 주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스의 특성상 일단 어렵다는 문제 때문에 이용자 중에서도 자스 사용자들과 자스 비사용자가 나뉘게 되었다. 게임 제작법 자체가 어려워져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8] 결국 자스 비사용자들이 대부분 이탈하고 신규 유입이 정체되면서 고인물이 넘쳐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 기타[편집]
- 한국어 백괴게임은 포탈을 통해 낚이는 물고기를 로고로 사용한다.
- 영어 언사이클로피디아 게임 역시 한국어 백괴게임 못지않은 해괴한 센스를 자랑한다. 영어판은 위키아 산하였으나, 독립 서버이지만 프로젝트는 독립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별개의 사이트로 독립된 예는 독자적인 서버를 운영하는 백괴사전이 유일. 러시아판 언사이클로피디어도 독립 서버를 쓰고 있기는 하다.
- 백괴게임에도 만우절 낚시를 한 적이 있다. 항목 참조.
- 게임물등급위원회와 비슷하게 백괴게임등급심의위원회(약칭 백괴등위)가 있었다. 2012년 3월 19일 이후 현재는 백괴게임 등급 심의로 넘어간 상태.
5. 도보시오[편집]
[1] 백괴사전 본진에서 분리되는 형태로 개설하였다. 날짜는 "백괴게임:대문"의 최초 편집 날짜로 확인함.[2] 2019.02.22 기준[3] 현재 서버가 깨져 있는 상황이라 접속이 불가하다.[4] 대체 위키의 역할을 하는 포크 위키다.[5] 백괴사전 자체가 영재학교 게시판으로부터 시작한만큼 이곳에도 정보올림피아드나 영재고 입학을 준비하는 능력자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 부류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통 동호인인 경우가 대부분.[6] 제작자는 이것을 비밀 통로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20000번째 문서가 되어버리면서 비밀 통로의 역할을 하지 않게 할 것이라고 했다.[7] 그나마 2~3명 정도가 도시게임 전성기 때 가입한 인물들이었고, 활발한 신입 유저는 사실상 1명 수준이었다.[8] 실제로 명작으로 뽑히는 위키낚시를 즐기기 위해 생성되는 계정은 상당한 양이나, 그 중 실제로 기여자로 활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