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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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4·19 革命 April Revolution[1] |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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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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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당사자 | |
주요 인물 | |
참여 인원 | 10만 명 이상 |
사상자 | 사망 186명[7] 부상 1,500여 명 |
결과 | |
1. 개요[편집]
1960년 4월 대한민국에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을 끝낸 민주주의 시민 혁명. 국제적으로는 아시아에서 드물게 성공한 민주 혁명으로 평가된다.
2.28 학생민주의거와 3.15 부정선거로 인한 시위가 4.19 혁명의 서막으로서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3.15 부정선거에 시민들이 항거하여 대대적으로 일어난 이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2.28 학생민주의거와 3.15 부정선거로 인한 시위가 4.19 혁명의 서막으로서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3.15 부정선거에 시민들이 항거하여 대대적으로 일어난 이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 그냥 이렇게 4월 혁명으로 부르는 게 보통이지만 'April 19 Revolution'이나 '4·19 운동(April 19 Movement)'이라는 명칭도 쓰인다.[2] 뒤쪽에 보면 대한체육회 건물이 보이는데 이 건물 터에 더 플라자 호텔이 세워졌다. 정확히는 대한체육회 건물은 1966년에 철거되었고 건물이 있던 곳은 길거리로 편입되었으며 대한체육회 건물 뒤에 1976년 더 플라자 호텔이 준공되었다.[3] 이승만 정권 중 세워진 이 동상은 이승만의 81세 생일을 맞아 공사를 시작했기에 높이를 일부러 81척(25m)으로 맞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동상은 4.19 이후 분노한 시위대에 의해 끌어내려져 산산조각났다. 또 탑골공원에 있던 동상도 4.19 당시 시위대가 끌어내려 거리에 질질 끌고 다녔고 각 대학에 세워진 이승만 동상들도 혁명 이후 학생들에 의해 차츰 철거되었다. # 이 당시 파괴된 남산과 탑골공원 동상 잔해 일부가 성균관대학교 근처 명륜동 부근에 남아 있었는데 동상 잔해의 소유권을 두고 법정 싸움도 있었다고 한다.[4] 더 넓게는 2.28 학생민주의거가 일어난 2월 28일부터 잡기도 한다.[5] 사실상 자신의 직속 수하였던 이기붕을 통한 돌려막기는 독재 시도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현대의 사례로 보면 블라디미르 푸틴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직을 돌려먹으면서 연임제한을 피했지만 실세는 푸틴이었단 점을 들어 푸틴을 독재자로 규정하고 있다.[6]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이승만 정부 라고 봐도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유당 소속 대통령 이기 때문이다.[7] 1960년까지 집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