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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신라는 기원전 57년부터 935년까지 존속했던 국가이다.
2. 국명[편집]
신라는 맨 처음에 국명이 사로였다. 지증왕이 집권하던 때에 국명이 신라로 바뀌었다.
3. 역사[편집]
3.1. 원삼국 시대[편집]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가 사로를 건국했다. 사로는 처음에 진한의 구성국들 중 하나였지만 이후 진한의 여러 구성국들을 병합해서 영토가 넓어졌다.
3.2. 삼국 시대[편집]
사로는 처음에 고구려, 백제, 가야보다 약했다. 왜냐하면 신라는 한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선진 문물 유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구려에서 광개토대왕이 집권하던 때에는 백제, 가야, 왜나라가 신라를 침공하자 신라가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침공을 격퇴하기도 했다.[1]
사로는 백제, 가야, 왜나라의 침공을 극복한 후,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었다. 이후 신라(사로)는 우산을 속국으로 삼았고, 금관가야를 병합했으며, 백제, 가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했다. 그렇게 신라는 북진에 성공해서 한강 상류 유역을 정복했지만 백제를 배신해서 한강 하류 유역까지 정복했다.
신라에게 배신을 당한 백제, 가야, 왜나라는 신라의 관산성을 공격했지만 패배했고, 백제의 성왕이 전사했다. 이후 신라는 대가야를 병합함으로써 가야를 완전히 병합했고, 고구려를 더 공격해서 관북의 일부를 병합했다.
신라의 공격으로 영토가 줄어든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를 공격했다. 특히 백제의 공격으로 서쪽 영토를 점점 잃게 된 신라는 고구려와의 동맹을 시도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신라는 당나라와의 동맹을 시도했고, 나당동맹이 체결되었다.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해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당나라는 신라를 정복하려고 했다. 신라는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삼국 통일을 했다.[2]
사로는 백제, 가야, 왜나라의 침공을 극복한 후,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었다. 이후 신라(사로)는 우산을 속국으로 삼았고, 금관가야를 병합했으며, 백제, 가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했다. 그렇게 신라는 북진에 성공해서 한강 상류 유역을 정복했지만 백제를 배신해서 한강 하류 유역까지 정복했다.
신라에게 배신을 당한 백제, 가야, 왜나라는 신라의 관산성을 공격했지만 패배했고, 백제의 성왕이 전사했다. 이후 신라는 대가야를 병합함으로써 가야를 완전히 병합했고, 고구려를 더 공격해서 관북의 일부를 병합했다.
신라의 공격으로 영토가 줄어든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를 공격했다. 특히 백제의 공격으로 서쪽 영토를 점점 잃게 된 신라는 고구려와의 동맹을 시도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신라는 당나라와의 동맹을 시도했고, 나당동맹이 체결되었다.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해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당나라는 신라를 정복하려고 했다. 신라는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삼국 통일을 했다.[2]
3.3. 남북국 시대[편집]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발해가 건국되었다. 탐라를 속국으로 삼은 신라는 처음에 발해와 대립했지만 이후 사신이 왕래해서 교역을 했고, 당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했다. 하지만 혜공왕이 피살된 후 신라는 진골 귀족들의 권력 다툼으로 점점 약해졌다.
3.4. 후삼국 시대[편집]
진골 귀족들의 권력 다툼으로 약해진 신라는 결국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건국됨으로써 후삼국으로 분열되었다. 신라는 후백제와는 대립했지만 태봉(후고구려)이 멸망한 후 건국된 고려와는 친선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신라는 영토가 계속 줄었고, 결국 신라의 경순왕은 고려의 태조에게 나라를 넘겼다. 그렇게 935년에 신라는 멸망했다.
3.5. 멸망 이후[편집]
신라가 멸망한 후, 몇 차례 신라 부흥 운동이 일어났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