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발해 渤海 | ᡦᡠᡥᠠᡳ[1]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공식 국호 | 진국 ・ 진단[4] → 발해 | ||
위치 | |||
행정구역 | 5경(京) - 15부(府) - 62주(州) - 현(縣) 독주주(獨奏州)[8] | ||
수도 | |||
정치 체제 | |||
국가원수 | |||
주요 군주 | |||
국성 | 대(大) | ||
언어 | |||
민족 | |||
종교 | |||
현재 국가 | |||
1. 개요
1. 개요[편집]
228년 동안 존속했던 국가이다. 한국사의 역대 국가중 가장 면적이 크다!
[1] 근현대 만주어로, 푸하이(Puhai)라고 읽는다.[2] 사실 고려는 발해가 멸망하기 전에 건국되었다. 그러나 발해 부흥운동이 끝내 실패했기 때문에 한민족 국가의 정통성은 남쪽의 또다른 고구려계 국가인 고려에게 이어지게 된다. 또한 많지는 않지만 고려는 발해의 영토를 일부 수복했으며 200여년간 수용한 수만~수십만 호 단위의 발해 유민들은 한민족의 조상이 되었다.[3] 후발해, 정안국, 흥료국, 대발해 등등이다. 사실 발해의 직계후신은 200여년간 이어진 이들 부흥운동 세력이라고 봐야한다.[4] 震國, 振國, 震旦.[5] 대동강 이남을 제외한 지역.[6] 동부[7] 위치가 중국, 러시아 사이에 있어서 각자 자신의 역사라고 경쟁한다.[8] 영주(郢州) · 동주(銅州) · 속주(涑州)로서 중앙에 속한다.[9] 문헌에 따르면 그 군주를 대면할 때는 성(聖), 군주에게 올리는 글에서는 기하(基下)로 존칭하였다고 한다. 금석문상에서는 "황상(皇上)"으로 지칭되며 그 부인은 황후라는 칭호를 가졌다.[10] 『遼史』卷38 志8 地理志2 東京道 東京遼陽府 “十有二世至彝震, 僭號改元 擬建宮闕, 有五京·十五府·六十二州, 爲遼東盛國”[11] 고구려어, 말갈어, '발해어'라는 용어까지 여러가지 가설이 제시된다. 다만 발해라는 나라 자체가 영토가 넓고, 여러 종족들이 함께 산 다민족 국가였기에 여러 계통의 언어가 같이 쓰인것으로 보인다. 신라어와 같은 계통의 예맥계 언어인 발해어와, 퉁구스어족 계통의 여러 언어, 북시베리아어 계통의 여러언어 , 몽골어족 계통의 여러언어(거란어를 비롯한 준몽골어족 포함), 중고한어, 소그드어 등.[12] '발해인의 언어'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부족해 확실시하기는 힘들지만 몇몇 파편적 기록을 통해 신라어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일본 기록에 의하면 740년 일본 조정에서 신년 축하 조회를 가질 때 발해 사신과 신라학어(新羅學語)를 행렬에 함께 세웠는데 이를 일본 측이 신라학어, 즉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간 신라인 학생에게 발해 사신의 통역을 맡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13] 여러 기록을 통해서 '발해인'과 '말갈인'이 당대에 구별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속일본기1,속일본기2. 즉 발해는 여러가지 종족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공존하는 다문화적 국가였음은 거의 확실하다.[14] '발해인'은 고구려인, 말갈, 여진, 실위, 소그드인 등으로 추정. 혹은 단순히 발해에 사는 주민으로서의 발해인이 아니라 구 고구려, 구 말갈과 구별되는 발해인 혹은 발해족이라는 독자적인 종족 정체성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단, 발해인들끼리 얼마나 공통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발해인'의 정체성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단언할 수는 없다. 단지 서남부의 고구려인(한국어족)과 동북부의 말갈인(퉁구스어족)이 연합한 다종족 국가라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