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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조위[1]는 삼국 시대에 성립된 중국의 왕조로, 후한의 붕괴 과정에서 조조의 정치적·군사적 기반 위에 그의 아들 조비가 황제를 자처하며 수립한 국가이다. 위나라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역사상 같은 이름을 지닌 여러 왕조가 존재했기 때문에 보통 조씨 가문이 세운 국가라는 의미에서 조위라고 부른다. 국호 ‘위’는 조조가 후한 조정으로부터 위공에 책봉된 것을 기원으로 하며, 이후 조비가 이 칭호를 계승하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국호로 확립되었다.

조위의 건국은 후한 말기의 혼란한 정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조조는 혼란에 빠진 황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헌제 유협을 옹립하였고, 낙양과 허창을 중심으로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조조 사후, 그의 아들 조비는 헌제를 강제로 폐위시키고 자신에게 제위를 이양하도록 강요함으로써 형식적으로 선양을 받은 형태로 즉위하였다. 이로써 220년에 후한이 공식적으로 멸망하고 조위가 성립되었으며, 삼국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조위는 당시의 세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정통 황제를 자처하며 제국 체제를 갖춘 국가였으며, 인구와 영토 면에서도 가장 안정된 기반을 지녔다. 황하 유역과 화북 대부분을 통치하면서 중원의 정치 중심지를 차지하였고, 뛰어난 행정력과 군사력으로 촉한 및 오나라와의 대치 국면에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통일을 이루기에는 이르지 못했고, 내부적으로는 조씨 황실과 외척, 관료 세력 간의 권력 투쟁이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조조의 오랜 측근이자 조위의 초기 체제를 떠받친 무장과 관료들이 세대를 거치면서 점차 쇠퇴하고, 그 틈을 타서 군권과 정권을 장악한 인물이 사마의였다. 그는 촉한과의 전쟁을 지휘하며 실질적인 권력을 획득하였고, 이후 그의 아들 사마사와 손자 사마염에 이르러 황실보다 더 강력한 권세를 행사하였다. 결국 조씨 황실은 점차 허수아비로 전락하였고, 265년 사마염이 조환에게서 제위를 찬탈함으로써 조위는 멸망하고 새로운 왕조인 서진이 수립되었다.

조위는 표면상으로는 정통을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황제 권위의 약화와 귀족 중심 정치 구조, 그리고 관료제의 내부 균열로 인해 정치적 안정을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후한의 말기를 닮은 구조적 취약점으로 작용하여 조위의 몰락을 앞당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위는 법제와 행정 제도 면에서 후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으며, 북방 민족에 대한 방어 체계와 병농일치적 제도 운영 방식은 이후 위진남북조 시기까지 이어지는 정치적 유산을 형성하였다.
[1] 국호는 위(魏)였으나 다른 위나라와 구별을 위해 조위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