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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3. 특정 군주에서 유래한 유사 표현

1. 개요[편집]

신성(神聖)하신 우리 임금께서는 문도 마땅하게 하시고 무도 마땅하게 하시는 나라의 큰 법과 기율을 세우시어 태평성대(泰平盛代)의 기초를 더할 수 없이 높였으며, 어진 이를 임명하고 유능(有能)한 인재를 부리시어 널리 문·무를 겸하여 걷어들이시는 길을 열었습니다. 드디어 자질구레한 좀스러운 무리들로 하여금 또한 우악(優渥)하신 은택을 입게 하셨습니다. 신 등이 감히 효도를 충성에 옮겨 평소의 절조(節操)[1]를 더욱 굳게 하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성하고 치열(熾烈)하게 하여 배나 임금의 장수를 송축(頌祝)하지 않겠습니까.[2]
세종실록56권, 세종 14년 4월 28일 병진 2번째기사

태평성대(太平聖代)

성군이 다스려서 백성들의 근심걱정이 없고 천하가 무사태평한 시대를 일컫는 고사성어.

중국어에서는 태평성세라 하며, 고려가요에서는 대평성대라는 표현도 쓰였다.

2. 어원[편집]

태평성대는 전쟁이나 혼란이 없이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표현은 두 개의 한자어 결합으로 이루어진 고사성어이며, 동아시아 전통에서 이상적인 정치 상태를 설명하는 데 널리 쓰였다.

먼저 ‘태평(太平)’은 ‘매우 평온한 상태’를 뜻한다. 여기서 ‘태(太)’는 한자음으로 태이며, ‘크다’, ‘매우’, ‘지극하다’는 뜻을 지닌다. 이는 평화의 정도가 매우 크고 넓다는 뜻을 강조하는 요소다. ‘평(平)’은 한자음으로 평이며, ‘평평하다’, ‘고르다’, ‘평화롭다’는 뜻을 가진다. 이 두 글자가 합쳐져 외부의 침입이나 내부의 혼란이 없는 안정된 상태를 나타낸다.

다음으로 ‘성대(聖代)’는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훌륭한 시대’를 의미한다. ‘성(聖)’은 한자음으로 성이며, ‘성스럽다’, ‘지혜롭다’, ‘어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덕과 지혜를 갖춘 성군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대(代)’는 한자음으로 대이며, ‘시대’, ‘세대’, ‘왕조’를 뜻한다. 따라서 ‘성대’는 성스러운 군주가 다스리는 시대, 곧 이상적인 정치가 실현된 시기를 나타낸다.

이 표현은 중국의 고대 문헌에서 유래하였으며, 『서경』에서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치세를 평화롭고 질서 있는 세상으로 묘사하며 ‘태평’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후 한나라 시기부터는 이러한 평화로운 이상 국가의 모습을 ‘태평성대’라는 말로 널리 부르게 되었다.

유교적 이상 정치관에 기반한 이 말은 조선에도 계승되었으며, 성군의 통치를 찬양하거나 정치적 안정기를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예문 속에서 왕의 치세를 높이 평가할 때, 혹은 이상적인 사회 질서를 묘사할 때 ‘태평성대’는 매우 상징적인 표현으로 기능하였다.

오늘날에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 상태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데에도 사용된다.

3. 특정 군주에서 유래한 유사 표현[편집]

중국에서는 특정 군주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전성기가 태평성대의 모범으로 인식되어, 후대에도 태평성대의 유사 표현으로 쓰이는 일이 종종 있었다.
[1] 지조와 절개, 즉 변하지 않는 올곧은 마음가짐이나 도덕적 굳셈을 뜻한다.[2] 감정이나 정성을 아주 뜨겁고 극진하게 다해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겠다는 의미이다.[3] 실존 여부가 의심되는 하나라보다도 이전이라 오늘날에는 역사가 아니라 신화로 여겨지지만, 오랫동안 모범적인 태평성대로 여겨졌다.[4] 제요(요 임금)의 치세.[5] 제순(순 임금)의 치세.[6] 한 문제와 경제의 치세. 유교적 태평성대의 모범으로 손꼽힌다.[7] 한 무제의 치세로, 흉노, 고조선, 남월 등 주요 적성국들을 정벌하며 국력이 절정에 달했음을 과시했다. 그러나 막중한 세금 부담으로 민생이 악화되고 재정 역시 취약해져서 후폭풍이 있었기에 태평성대라기엔 논란이 있었다.[8] 수 문제의 치세.[9] 당 태종의 치세.[10] 당 현종 재위 전반기의 전성기. 그러나 연호를 천보로 바꾼 이후의 이른바 '천보난치'라 불리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로 안사의 난이 일어나면서 빛이 바랬다.[11] 요 성종 치세.[12] 금 세종의 치세.[13] 금 장종의 치세.[14] 세조 쿠빌라이 칸의 치세.[15] 성종 올제이투 칸의 치세.[16] 태조 홍무제의 치세.[17] 성조 영락제의 치세.[18] 인종 홍희제와 선종 선덕제의 치세.[19] 성조 강희제와 고종 건륭제의 치세. 중간에 짧게 재위했지만 명군이었던 세종 옹정제를 끼워넣어 강옹건성세라고도 한다. 이들 중에서 강희제는 예수회 선교사들에게도 이교도지만 명군이라고 극찬을 받은 군주였고, 현대 중국에서도 수많은 명군들을 제치고 대중적으로 대제라 칭송받는 유일한 군주지만, 건륭제는 영토 면에서나 국력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줬지 국가 재정은 잦은 대외 원정으로 크게 악화된데다 중국이 산업 혁명을 시작한 서구 열강에게 본격적으로 뒤쳐지기 시작한 시대였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실제 서구 열강에게 역전당했음을 체감한 게 그로부터 50여년 이후인 아편전쟁이라 본인 살아생전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