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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2.1. 기원[편집]
2.2. 상고시대[편집]
한민족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에 등장한 것은 조선(고조선)이었지만, 고조선 멸망 이후에는 여러 한민족 국가들을 예 또는 맥이라 지칭하는 용례가 늘어나며 만주, 한반도 북부 일대의 한민족은 예맥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편 한반도 남부에 위치했던 진국은 고조선보다도 사료가 부족해서 처음부터 한민족 계열 주민들이 거주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고조선이 연나라에게 요동 지방을 빼앗긴 기원전 3세기 이후부터는 고조선계 주민이 꾸준히 유입되어 고조선 출신들이 지배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후 원삼국시대에 진국의 영역은 마한, 진한, 변한이라는 삼한이 형성되었는데, 여기서 한이라는 명칭이 곧 한민족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삼한 가운데 마한 땅에서는 초기에는 고조선 준왕 계열의 익산 건만국이 주도권을 잡았다가 천안 목지국을 거쳐, 고구려계[2] 주민들이 세운 백제가 주도권을 차지했으며, 진한은 고조선 유민들이 세운 사로국이 주도권을 잡아 신라로 통합되었다.
한편 한반도 남부에 위치했던 진국은 고조선보다도 사료가 부족해서 처음부터 한민족 계열 주민들이 거주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고조선이 연나라에게 요동 지방을 빼앗긴 기원전 3세기 이후부터는 고조선계 주민이 꾸준히 유입되어 고조선 출신들이 지배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후 원삼국시대에 진국의 영역은 마한, 진한, 변한이라는 삼한이 형성되었는데, 여기서 한이라는 명칭이 곧 한민족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삼한 가운데 마한 땅에서는 초기에는 고조선 준왕 계열의 익산 건만국이 주도권을 잡았다가 천안 목지국을 거쳐, 고구려계[2] 주민들이 세운 백제가 주도권을 차지했으며, 진한은 고조선 유민들이 세운 사로국이 주도권을 잡아 신라로 통합되었다.
2.3. 삼국시대 ~ 후삼국시대[편집]
4세기에 들어서 만주와 한반도 북부는 고구려, 한반도 남부는 백제와 신라의 경쟁 구도가 정립되었고, 부여와 가야처럼 비교적 오래 독립을 유지한 중소국가들 역시 늦어도 6세기에 들어서는 이들 삼국에 통합되었다.
이 당시 삼국은 언어적인 친연관계가 상당했음이 당대의 여러 기록으로 교차검증이 가능하다.
그러나 언어적 친연관계가 단일한 민족 정체성까지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기에, 삼국은 끊임없이 군사적, 외교적인 충돌을 이어갔고, 신라에 의한 삼한일통 이후에도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건국하며 완전한 통일과 정체성의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신라의 통치 체제가 흔들리던 9세기 말에는 옛 고구려 땅과 백제 땅에서 각각 해당 국가를 계승했음을 주장하며 독립을 획득한 세력인 후고구려(태봉)과 후백제)가 나타났는데[3], 이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하나의 민족 의식이 아닌 삼국 각자의 정체성이 강하게 남아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이 당시 삼국은 언어적인 친연관계가 상당했음이 당대의 여러 기록으로 교차검증이 가능하다.
그러나 언어적 친연관계가 단일한 민족 정체성까지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기에, 삼국은 끊임없이 군사적, 외교적인 충돌을 이어갔고, 신라에 의한 삼한일통 이후에도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건국하며 완전한 통일과 정체성의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신라의 통치 체제가 흔들리던 9세기 말에는 옛 고구려 땅과 백제 땅에서 각각 해당 국가를 계승했음을 주장하며 독립을 획득한 세력인 후고구려(태봉)과 후백제)가 나타났는데[3], 이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하나의 민족 의식이 아닌 삼국 각자의 정체성이 강하게 남아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2.4. 고려시대[편집]
926년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하면서 상당수의 발해 유민이 남하하고, 936년 고려 주도의 후삼국통일이 이루어졌으나, 이 당시에도 삼국의 독자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은 발해 유민들은 고려와 별개로 12세기까지 독자 정체성을 유지하며 부흥운동을 지속하다가 금나라 이후 여진족 및 한족에 동화되었고, 고려에서는 중앙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된 무신정권 치하에서 삼국 부흥을 내세운 반란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이와 같은 삼국의 독자 정체성이 고려라는 단일한 국가 정체성으로 융합된 것은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입이라는 초유의 국난을 경험한 이후부터였다.
이 시기부터 더이상 중앙정부에 대항하는 세력도 옛 삼국의 정체성을 내세우진 않았고, 삼국 이전의 공통 조상인 고조선이 재조명되면서 그 시조인 단군이 국조로서 숭상받기 시작했다.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은 발해 유민들은 고려와 별개로 12세기까지 독자 정체성을 유지하며 부흥운동을 지속하다가 금나라 이후 여진족 및 한족에 동화되었고, 고려에서는 중앙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된 무신정권 치하에서 삼국 부흥을 내세운 반란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이와 같은 삼국의 독자 정체성이 고려라는 단일한 국가 정체성으로 융합된 것은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입이라는 초유의 국난을 경험한 이후부터였다.
이 시기부터 더이상 중앙정부에 대항하는 세력도 옛 삼국의 정체성을 내세우진 않았고, 삼국 이전의 공통 조상인 고조선이 재조명되면서 그 시조인 단군이 국조로서 숭상받기 시작했다.
2.5. 조선시대[편집]
2.6. 구한말 [편집]
2.7. 일제강점기[편집]
2.8. 현대[편집]
1945년 한민족은 광복을 되찾았으나, 미군정과 소련군정을 거쳐 대한민국과 북한이라는 두 나라로 갈라졌고, 1950년 6.25 전쟁을 거쳐 분단이 고착화된 채 현재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한반도 외부의 한민족의 경우 조선족은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민족의식을 잃고 점차 중국화되어갔고, 일본의 한민족은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민단과 북한을 지지하는 조총련으로 분열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거치면서 남북한의 한민족과 해외의 한민족은 한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공유하면서도 국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이면서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한반도 외부의 한민족의 경우 조선족은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민족의식을 잃고 점차 중국화되어갔고, 일본의 한민족은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민단과 북한을 지지하는 조총련으로 분열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거치면서 남북한의 한민족과 해외의 한민족은 한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공유하면서도 국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이면서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3. 현존하는 한민족[편집]
외국 국적을 가진 한민족도 있고, 반대로 외국 출신으로 귀화한 한국인도 있어서 민족으로서의 한민족과 국적으로서의 한국인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유의하고 살펴봐야 한다.
3.1. 한반도[편집]
- 북한인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인민.
- 북한이탈주민 - 북한 인민 출인이지만 탈북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은 사례.
3.2. 해외[편집]
4. 문화[편집]
4.1. 언어[편집]
4.2. 문자[편집]
4.3. 종교[편집]
한국 고유의 신화로 한국 신화가 있으며, 오늘날 한민족은 특정한 종교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종교를 믿고 있다.
[1] 영어로 그냥 Koreans나 Korean people이라 하면 한민족 출신이 아니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계 한국인까지 포괄하는 경우가 많으며, 민족, 종족이라는 의미를 확실히 전달하려면 Ethnic을 붙이는 게 적절하다.[2] 예맥 중에서도 맥족 계열이었다.[3] 후고구려의 초기 국호는 장수왕 이후의 고구려처럼 고려였다가 마진을 거쳐 태봉이 되었고, 후백제는 그냥 백제라 칭했다.[4] 구 일본령 조선 호적(사실상 무국적)을 아직도 유지하면서 일본에 체류하는 한민족. 한국 국적 취득도 일본 귀화도 거부하고 북한을 지지하지만, 일본이 북한 국적을 인정 안 해서 해당 호적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의 조선족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