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제도의 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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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호올라웨 섬 Kahoʻolawe | Kahoolawe | |
![]() | |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에서 촬영한 카호올라웨 섬 | |
분류 | |
형태 | |
위치 | |
최고점 | 450m (푸우 모아울리 산) |
면적 | 116 km²[1] |
국가 | |
행정 구역 | |
주요 도시 | 없음(무인도) |
1. 개요[편집]
카호올라웨 섬(Kahoʻolawe)은 하와이 제도에서 여덟 번째로 큰 섬이며, 면적은 약 115㎢로 비교적 작은 섬이다. 하와이에서 가장 건조한 섬 중 하나로, 물이 부족해 상업적 농업이나 대규모 정착이 어려웠던 곳이다. 카호올라웨 섬은 오아후 섬과 마우이 섬 사이에 위치한다.
이 섬은 폴리네시아 항해사들이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로 이주할 때 중요한 항해 경로의 일부였다고 전해진다. 하와이 왕국 시대에는 죄수를 수용하는 유배지로 사용되었으며, 19세기 이후에는 가축 방목지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해군이 이 섬을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하면서 큰 환경 피해를 입었다. 미군은 1941년부터 1990년대까지 이곳에서 폭격 훈련을 진행했으며, 섬 곳곳에 미확인 불발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1970년대부터 하와이 원주민들과 환경 보호 단체들은 카호올라웨 섬 반환 운동을 벌였으며, 결국 1994년 미국 정부는 섬을 하와이주로 반환했다. 이후 카호올라웨는 하와이 원주민들의 문화적, 역사적 회복을 위한 장소로 지정되었으며, 관광객의 일반적인 방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카호올라웨는 하와이 전통문화 복원 프로젝트와 환경 복구 활동이 진행 중이며, 원주민 공동체와 연구자들이 이 섬을 신성한 땅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카호올라웨는 하와이에서 유일하게 정식 거주지가 없는 섬이며, 현재 관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거 군사 훈련으로 인해 심각한 환경 훼손을 겪었으며, 토양 복원 및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한 지속적인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과거에는 풍부한 어업 자원이 있었으나, 해양 환경 변화와 군사 활동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 섬은 폴리네시아 항해사들이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로 이주할 때 중요한 항해 경로의 일부였다고 전해진다. 하와이 왕국 시대에는 죄수를 수용하는 유배지로 사용되었으며, 19세기 이후에는 가축 방목지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해군이 이 섬을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하면서 큰 환경 피해를 입었다. 미군은 1941년부터 1990년대까지 이곳에서 폭격 훈련을 진행했으며, 섬 곳곳에 미확인 불발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1970년대부터 하와이 원주민들과 환경 보호 단체들은 카호올라웨 섬 반환 운동을 벌였으며, 결국 1994년 미국 정부는 섬을 하와이주로 반환했다. 이후 카호올라웨는 하와이 원주민들의 문화적, 역사적 회복을 위한 장소로 지정되었으며, 관광객의 일반적인 방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카호올라웨는 하와이 전통문화 복원 프로젝트와 환경 복구 활동이 진행 중이며, 원주민 공동체와 연구자들이 이 섬을 신성한 땅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카호올라웨는 하와이에서 유일하게 정식 거주지가 없는 섬이며, 현재 관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거 군사 훈련으로 인해 심각한 환경 훼손을 겪었으며, 토양 복원 및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한 지속적인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과거에는 풍부한 어업 자원이 있었으나, 해양 환경 변화와 군사 활동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2. 명칭[편집]
카호올라웨 섬(Kahoʻolawe)의 명칭은 하와이 신화와 문화에서 기원하며, 그 어원에 대해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에 따르면, 카호올라웨는 하와이어로 "Kahoʻo"와 "lawe"라는 단어가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Kahoʻo"는 "끌어당기다" 혹은 "나누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lawe"는 "운반하다" 또는 "가져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Kahoʻolawe"는 "바람에 의해 운반되는 것" 또는 "해류에 의해 휩쓸리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섬이 거친 바람과 강한 해류의 영향을 받는 지리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하와이 신화에서는 카호올라웨가 원래 카날로아(Kanaloa)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카날로아는 하와이 전통에서 바다와 항해의 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섬이 과거 폴리네시아 항해사들의 중간 정착지로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일부 학자들은 카호올라웨가 하와이 제도에서 폴리네시아 항해 문화와 신앙이 가장 잘 보존된 장소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에 따르면, 카호올라웨는 하와이어로 "Kahoʻo"와 "lawe"라는 단어가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Kahoʻo"는 "끌어당기다" 혹은 "나누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lawe"는 "운반하다" 또는 "가져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Kahoʻolawe"는 "바람에 의해 운반되는 것" 또는 "해류에 의해 휩쓸리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섬이 거친 바람과 강한 해류의 영향을 받는 지리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하와이 신화에서는 카호올라웨가 원래 카날로아(Kanaloa)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카날로아는 하와이 전통에서 바다와 항해의 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섬이 과거 폴리네시아 항해사들의 중간 정착지로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일부 학자들은 카호올라웨가 하와이 제도에서 폴리네시아 항해 문화와 신앙이 가장 잘 보존된 장소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3. 섬의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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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 모이위 분석구, 작가 : Forest and Kim Starr |
카호올라웨 섬은 약 1000년경 폴리네시아인들에 의해 처음 정착되었다. 해안 지역에는 작은 어촌 마을이 형성되었고, 일부 내륙 지역에서는 농업이 이루어졌다. 푸우 모이위(Puʻu Moiwi)라는 분석구 지역은 하와이에서 두 번째로 큰 현무암 채석장이었으며, 이곳에서 채취된 암석은 석기 도구인 코이(koʻi, 돌 도끼) 제작에 사용되었다. 원래 카호올라웨는 건조한 숲과 간헐적인 개울이 있는 환경이었지만, 정착민들이 농업과 연료 확보를 위해 숲을 개간하면서 점차 초원과 나무가 어우러진 사바나 지대로 변해갔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종교 의식을 위해 석재 제단을 만들고, 성공적인 어획을 기원하며 바위를 세우거나 암각화를 새기는 등의 흔적을 남겼다. 카호올라웨는 바다의 신 카날로아(Kanaloa)의 신체적 형상(키놀라우, kinolau)으로 여겨졌으며, 신성한 장소로 숭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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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키오아와의 해, 작가 : Forest and Kim Starr |
카호올라웨는 담수원이 부족하여 대규모 정착이 어려웠다. 최대 거주지는 북동쪽 해안의 하키오아와(Hakioawa)였으며, 한때 약 120명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결국 1950년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무인도가 되었다. 18세기에는 하와이 여러 섬의 지도자들 간의 전쟁이 카호올라웨까지 확대되었다. 특히, 카모쿠히 전쟁(War of Kamokuhi) 동안 하와이 섬의 통치자 칼라니오푸우(Kalaniʻōpuʻu)는 마우이의 왕 카헤킬리 2세(Kahekili II)를 상대로 마우이를 차지하기 위해 카호올라웨를 공격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전쟁과 갈등이 지속되면서 카호올라웨의 인구는 더욱 줄어들었다.
1778년 이후 유럽 탐험가와 선원들은 카호올라웨가 사람이 살지 않으며 물과 나무가 부족한 황량한 땅이라고 기록했다. 1830년경 하와이 왕국의 카메하메하 3세(Kamehameha III)는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카호올라웨를 남성 죄수들의 유배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극심한 물 부족과 식량난으로 인해 많은 죄수들이 생존을 위협받았고, 일부는 마우이까지 헤엄쳐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결국 1853년 유배지 법령이 철회되면서 섬은 다시 비워졌다.
1857년 조사에 따르면, 카호올라웨에는 약 50명의 주민이 있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사탕수수가 재배되었다. 그러나 담수 부족으로 인해 본격적인 농업 발전이 어려웠다. 1858년부터 하와이 정부는 섬을 목축업에 이용하기 위해 여러 차례 임대하였으며, 1918년부터는 목축업자 앵거스 맥피(Angus MacPhee)가 섬을 대규모 목장으로 개발하려 했다. 하지만 지속된 가뭄과 초목의 파괴로 인해 섬은 점점 황폐해졌고, 결국 1941년 가뭄이 심해지면서 가축들이 모두 철수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는 하와이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카호올라웨를 태평양 전쟁을 대비한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 해군과 해병대는 태평양 섬들에서의 전투를 대비해 해상 포격 및 공습 훈련을 실시했으며,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시기에도 모의 군사 기지가 설치되어 폭격 훈련이 지속되었다. 1965년에는 ‘세일러 햇 작전(Operation Sailor Hat)’이 수행되었으며, 미 해군은 500톤의 TNT를 폭발시켜 함정의 폭발 저항력을 시험했다. 이 실험으로 인해 섬의 일부 지형이 파괴되었으며, 지하수층까지 균열이 생겼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1976년 하와이 원주민 운동가들은 카호올라웨 보호 운동(Protect Kahoʻolawe ʻOhana, PKO)을 결성하고, 섬을 군사 훈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1990년 조지 H.W. 부시(George H. W. Bush) 대통령은 섬에 대한 폭격 훈련을 중단하도록 지시했고, 1993년 미국 의회는 ‘카호올라웨 반환 법안(Title X of the Fiscal Year 1994 Defense Appropriations Act)’을 통과시켜 섬을 하와이 주에 공식적으로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1994년 5월 9일, 미 해군은 카호올라웨의 소유권을 하와이 주에 넘겼으며, 이후 ‘카호올라웨 섬 보호 위원회(Kahoʻolawe Island Reserve Commission, KIRC)’가 설립되어 섬의 환경 복원과 문화적 보호를 담당하게 되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미 해군은 불발탄 제거 작업을 진행했지만, 아직도 일부 지역에는 폭발 위험이 남아 있어 섬의 접근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2020년에는 카호올라웨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해 섬의 30% 이상이 불에 탔다. 그러나 섬 곳곳에 남아 있는 불발탄 위험으로 인해 소방대는 화재를 적극적으로 진압할 수 없었고, 이는 섬의 환경 복원 노력에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되었다. 현재 카호올라웨는 하와이 원주민들의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고 환경을 회복하는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으며, 섬의 완전한 복원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1778년 이후 유럽 탐험가와 선원들은 카호올라웨가 사람이 살지 않으며 물과 나무가 부족한 황량한 땅이라고 기록했다. 1830년경 하와이 왕국의 카메하메하 3세(Kamehameha III)는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카호올라웨를 남성 죄수들의 유배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극심한 물 부족과 식량난으로 인해 많은 죄수들이 생존을 위협받았고, 일부는 마우이까지 헤엄쳐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결국 1853년 유배지 법령이 철회되면서 섬은 다시 비워졌다.
1857년 조사에 따르면, 카호올라웨에는 약 50명의 주민이 있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사탕수수가 재배되었다. 그러나 담수 부족으로 인해 본격적인 농업 발전이 어려웠다. 1858년부터 하와이 정부는 섬을 목축업에 이용하기 위해 여러 차례 임대하였으며, 1918년부터는 목축업자 앵거스 맥피(Angus MacPhee)가 섬을 대규모 목장으로 개발하려 했다. 하지만 지속된 가뭄과 초목의 파괴로 인해 섬은 점점 황폐해졌고, 결국 1941년 가뭄이 심해지면서 가축들이 모두 철수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는 하와이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카호올라웨를 태평양 전쟁을 대비한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 해군과 해병대는 태평양 섬들에서의 전투를 대비해 해상 포격 및 공습 훈련을 실시했으며,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시기에도 모의 군사 기지가 설치되어 폭격 훈련이 지속되었다. 1965년에는 ‘세일러 햇 작전(Operation Sailor Hat)’이 수행되었으며, 미 해군은 500톤의 TNT를 폭발시켜 함정의 폭발 저항력을 시험했다. 이 실험으로 인해 섬의 일부 지형이 파괴되었으며, 지하수층까지 균열이 생겼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1976년 하와이 원주민 운동가들은 카호올라웨 보호 운동(Protect Kahoʻolawe ʻOhana, PKO)을 결성하고, 섬을 군사 훈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1990년 조지 H.W. 부시(George H. W. Bush) 대통령은 섬에 대한 폭격 훈련을 중단하도록 지시했고, 1993년 미국 의회는 ‘카호올라웨 반환 법안(Title X of the Fiscal Year 1994 Defense Appropriations Act)’을 통과시켜 섬을 하와이 주에 공식적으로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1994년 5월 9일, 미 해군은 카호올라웨의 소유권을 하와이 주에 넘겼으며, 이후 ‘카호올라웨 섬 보호 위원회(Kahoʻolawe Island Reserve Commission, KIRC)’가 설립되어 섬의 환경 복원과 문화적 보호를 담당하게 되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미 해군은 불발탄 제거 작업을 진행했지만, 아직도 일부 지역에는 폭발 위험이 남아 있어 섬의 접근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2020년에는 카호올라웨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해 섬의 30% 이상이 불에 탔다. 그러나 섬 곳곳에 남아 있는 불발탄 위험으로 인해 소방대는 화재를 적극적으로 진압할 수 없었고, 이는 섬의 환경 복원 노력에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되었다. 현재 카호올라웨는 하와이 원주민들의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고 환경을 회복하는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으며, 섬의 완전한 복원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