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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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阪グループ Keihan Group / 케이한 그룹 | |
국가 | |
창립일 | 1906년 11월 19일 (118주년) |
유형 | 복합기업, 기업집단 |
매출 | 2920억 엔(2024년 기준)# |
영업 이익 | 234억 엔(2024년 기준)# |
시가 총액 | 3927억 엔(2024년 2월 18일 기준)[1] |
1. 개요[편집]
2. 특징[편집]
주력 사업은 철도 사업이지만, 여러모로 철도 사업은 실패가 굉장히 많았던 회사였다.
- 우메다역 진출 실패1910년 개업을 시작한 케이한은 시영전철 이외에는 중심부에 두지 않겠다는 오사카시의 방침에 밀려 당초의 코라이바시[2]보다 외곽에 위치한 텐마바시역을 오사카 측의 터미널역으로 삼게 된다. 이후 케이한에서는 한큐가 고베 본선을 부설해 한신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을 보고, 한큐보다 먼저 신케이한선[3]을 건설하여 우메다를 터미널로 삼을 계획이었으나, 이 역시 오사카시의 반대로 우메다에서 떨어진 텐진바시[4]에 터미널을 두었다. 이후, 케이한은 현재의 케이한 본선과 신케이한선을 연결하여 최종적으로 우메다를 터미널역으로 세울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고[5], 이를 위해 신케이한선의 아와지역에서 분기해 쥬소역까지 가는 쥬소 지선을 건설하였으나 오사카시 측의 반대는 여전했고, 설상가상으로 당시 닥쳐온 대공황의 여파를 제대로 얻어맞아 경영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몰리게 되어 사실상 우메다 진출은 좌절된다.
- 나고야행 노선 부설 실패앞서 말했듯이 케이한은 '서쪽으로는 히메지, 동쪽으로는 나고야'를 외치며 적극적인 확장정책을 펼쳤는데, 그 일환으로 자회사를 설립해 나고야로 가는 노선을 부설하려 하였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도카이도 본선과 중복을 우려해 허가를 거절하다가 허가를 받아준다. 그러나 허가를 받은 지 4달 만에 세계 대공황이 닥쳐오며, 모회사인 케이한의 주식이 폭락하며, 해당 자회사 역시 파산했다.
- 한와 전기철도 매각이 외에도 잘 굴러가던 멀쩡한 노선을 둘이나 눈뜨고 빼앗긴 적도 있었다. 하나는 1920년대 중후반에 공격적인 확장정책의 일환으로 자회사 형태로 부설한 한와선으로, 이는 장래 국가에 헌납한다는 조건으로 국철이 요구한 조건에 맞게끔 부설한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대공황이 들이닥치면서 회사의 경영실적 악화로 인해 케이한은 한와 전기철도에서 손을 떼게 되고, 경쟁사였던 난카이가 한와선을 집어먹게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1944년에 국철이 전시체제를 이유로 다시 난카이로부터 한와선을 강탈했고 패전 이후에는 국철이 과거의 설립허가조건을 운운하며 한와선을 내어주지 않으면서 케이한은 두 번 다시는 이 구간에 발을 들일 수 없게 되었다.
- 신케이한선 강탈게다가 2차 대전 말기, 국가의 사철 통합 정책에 따라 한큐 전철과 통합했다가, 종전 후 분리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선형이 비교적 좋은 편이라 고속 운행이 가능한 자사의 신케이한선을 한큐에 강탈당하고 만다. 언론에서는 시설 운용상의 이유라고 발표했지만, 실상은 우세한 임원진 수를 바탕으로 한큐가 강제로 빼앗았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한큐는 케이한으로부터 강탈한 신케이한선을 교토 본선이라고 이름짓고 남부럽지 않게 잘 운용하게 되고, 반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케이한은 한큐와 JR(당시에는 국철) 중 속도 면에서 가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노선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비록 우리와 같은 외국인 입장에서는 볼거리가 많은 노선이라고 해서 타볼 만하다고 이야기하지만 통근객 입장에선 그런 것 따위 없다.[6]
- 나라 전기철도 매각추가로 앞의 두 노선처럼 눈뜨고 빼앗겼다고 말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힘싸움에 밀려 노선을 잃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오늘날 킨테츠 교토선의 전신인 나라 전기철도는 킨테츠의 전신 오사카 전기궤도와 케이한이 합작해서 만든 노선으로[7] 개업 당시에는 서로 같은 비율의 주식을 보유하는 형태였고 상호직결운행도 행해졌지만 전쟁 종결 이후 양사의 대립이 심해지면서 이 노선에 대한 소유권을 두고 힘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케이한이 요도야바시 진출에 집중하던 타이밍을 노려 킨테츠가 대규모로 주식을 매입해온 탓에 결국 변변한 대항도 하지 못한 채 이 노선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 오사카 도심에 진출했지만...
- 나카노시마선의 실패
이러한 요소들만 본다면 케이한은 진작에 무너져도 문제가 없는 회사로 보이나, 케이한 본선이라는 굳건한 지지대가 이 회사를 잘 살려주고 있다. 비록 케이한 본선이 요도야바시라는 애매한 터미널역을 삼고 있지만, 교토 시내 경로가 기온시조역, 데마치야나기역 등 주요 관광지와 제일 가까운 경로로 가고 있기 때문에 관광수요는 제일 큰 노선이다. 게다가 중간지역인 히라카타시, 네야가와시, 하다못해 교토시 남부인 후시미구까지만 가더라도 케이한에 대적할 노선이 없다.
후시미구를 예시로 들자면, 나라선은 애초에 오사카 쪽으로 가지도 않는다. 또한 킨테츠 교토선마저도 나라 방면으로 가는 노선이기 때문에 오사카 쪽으로 가려면 케이한을 타는 게 제일 낫다. 요도가와 강변에 있는 도시[11]도 마찬가지이다. 시내 중심지를 지나가는 노선은 케이한 본선뿐이며, 경쟁노선은 한참 동쪽을 지나가는 카타마치선뿐이다. 심지어 카타마치선은 쾌속열차의 쾌속운행구간은 히라카타시 나가오 ~ 쿄바시뿐이고, 구간쾌속은 더 짧은 시죠나와테 ~ 쿄바시 구간뿐이다. 반면 케이한은 네야가와시는 쾌속급행 이하, 히라카타시는 특급 이하 등급이 정차하여 속달성이 훨씬 잘 보장된다.[12]
3. 주요 회사[편집]
4. 케이한 홀딩스[편집]
京阪ホールディングス株式会社 Keihan Holdings Co., Ltd. 케이한 홀딩스 주식회사 | |
정식 명칭 | 케이한 홀딩스 주식회사 |
종류 | 주식회사, 지주회사 |
시장 정보 | |
약어 | 케이한, 케이한HD |
본사 소재지 | |
본점 소재지 | |
창립년일 | 1949년 11월 25일 (케이한 전기철도 주식회사) |
업종 | 육운업 |
법인번호 | |
사업영역 | 그룹 경영 사업 외 |
대표 | 대표이사 카토 요시후미(加藤好文) |
자본금 | 514억 6,641만 6,776엔 |
주식 총수 | 1억 1,318만 2,703주 (2020년 3월 기준) |
매출 | 연결: 3,171억 300만 엔 단독: 332억 8,900만 엔 (2020년 3월 기준) |
영업이익 | 연결: 311억 2,300만 엔 단독: 167억 6,700만 엔 (2020년 3월 기준) |
순이익 | 연결: 203억 9,000만 엔 단독: 153억 8,900만 엔 (2020년 3월 기준) |
순자산 | 연결: 2,540억 5,800만 엔 단독: 1,533억 8,300만 엔 (2020년 3월 기준) |
총자산 | 연결: 7,328억 2,400만 엔 단독: 5,428억 4,600만 엔 (2020년 3월 기준) |
종업원 수 | 연결: 7,083명 단독: 150명 (2020년 3월 기준) |
결산기 | |
주요 주주 | |
자회사 | |
외부 링크 |
지주회사 이관 계획은 2006년에 처음 계획되었으며, 원래는 2010년에 케이한 계열 회사의 창업 100주년과 함께 지주회사 체제로 이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때에 세계 경제 불황으로 인해 회사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계획이 좀 미루어졌다.
이후 2015년 1월에 매출이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2016년 4월 1일까지 케이한 홀딩스를 중심으로 하는 지주회사 체제로 완전히 이관되었다.
[1] 일본 345위[2] 현재의 키타하마역 인근. 참고로 코라이바시를 우리식으로 읽으면 고려교(高麗橋)로 이 이름의 유래는 이곳 인근에 우리나라 사신이 머물던 객관이 있었다는 설, 대 조선무역의 거점이었다는 설 등이 있다.[3] 이후의 한큐 교토 본선[4] 현재의 텐진바시스지로쿠초메역.[5] 지금의 HEP FIVE 부지가 바로 당시 케이한이 터미널로 삼기 위해 매입한 땅이었다.[6] 다만 케이한은 JR 교토선과 한큐 교토 본선과는 다르게 네야가와시, 코리엔, 히라카타시, 쿠즈하 등을 거쳐가기에 이 지역에서 오사카로의 통근객이 많다. 그리고 케이한은 요도야바시역, 키타하마역, 텐마바시역, 쿄바시역, 세키메역에서 지하철 환승이 가능하지만, 한큐는 지하철 환승이 오사카우메다역, 미나미카타역(미도스지선 니시나카지마미나미가타역)밖에 없어서 한큐 교토선보다 총 승객은 더 많다.[7] 이 노선 역시 원래는 케이한이 나라로 가는 노선에 눈독을 들이고 혼자 만들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결국 킨테츠와 협력하여 만들게 되었던 노선이었다.[8] 2014년 기준 요도야바시역 107,763명, 쿄바시역 177,292명. 출처 http://www.geocities.jp/l00az/22.htm[9] 당초 예측 일평균 7만 2천명, 현재 수요는 일평균 3만명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다.[10]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개통한 한신난바선이 일평균 9만 5천명에 달하는 수요를 보여주며 성공한 것과 대비되어 비교되기까지 한다(...)[11] 네야가와시, 히라카타시, 야와타시 등[12] 히라카타시~텐마바시 특급 18분, 나가오~오사카텐만구 쾌속 32분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