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시청 소재지 | 나카쿄구 우에혼노지마에마치 488 | ||
도도부현 | |||
하위 행정구역 | 11구 | ||
면적 | 827.83km² | ||
인구 | 1,439,929명[1] | ||
인구밀도 | 1,739명/km² | ||
시내 총생산 | 6조 6,292엔 (2018년) | ||
시장 | |||
상징 | 시화 | ||
시목 | |||
075 | |||
시정촌코드 | 26100-9 | ||
1. 개요[편집]
일본 교토부 중남부에 위치한 시. 교토부청의 소재지이자 교토부 최대 도시이다.
794년 헤이안 시대가 시작한 이래 메이지 시대 초기인 1869년까지 1075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유서 깊은 고도(古都)로 별칭이 '천년수도(千年の都)'이다.[2]
교토시의 상위 행정구역인 교토부는 마이즈루, 교탄고 등 북부의 동해 연안까지 뻗었으나, 교토시는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내륙도시이다.
한국에서는 드물지만 교토가 아닌 '경도(京都)'라고 읽는 사람들도 있는데, 뜻도 쓰임새도 한국어의 서울(수도, capital city)과 같다. 서울처럼 보통명사가 고유명사가 된 사례이다.
794년 헤이안 시대가 시작한 이래 메이지 시대 초기인 1869년까지 1075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유서 깊은 고도(古都)로 별칭이 '천년수도(千年の都)'이다.[2]
교토시의 상위 행정구역인 교토부는 마이즈루, 교탄고 등 북부의 동해 연안까지 뻗었으나, 교토시는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내륙도시이다.
한국에서는 드물지만 교토가 아닌 '경도(京都)'라고 읽는 사람들도 있는데, 뜻도 쓰임새도 한국어의 서울(수도, capital city)과 같다. 서울처럼 보통명사가 고유명사가 된 사례이다.
2.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교토시/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
3. 자연 환경[편집]
일본의 대도시 중에서는 지진 빈도와 대지진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데, 이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칸사이를 포함한 서일본 자체가 일본 해구보다 지진 활동이 적은 난카이 해곡의 영향권인 데다 내륙 깊숙이 위치한 교토는 난카이 해곡과도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실제 난카이 해곡 대지진이 발생해도 지진동이 약하며, 쓰나미 피해는 전무하다.[3] 또한 교토시 중심부가 위치한 교토 분지 북부는 충적층의 두께가 얇아 지반이 매우 단단하다.[4][5] 이는 간척 평야 특성상 지반이 약한 데다 지각판 3개가 겹쳐 일본 내에서도 위험하다고 평가받는 현 수도 도쿄와 대비된다.[6]
물론 지진대인 일본 열도에 위치하고 교토 분지 내에 여러 활단층이 존재하는지라 역사적으로 지진 기록이 다수 존재하며 수도 특성상 피해도 구체적으로 기록되었다.[7] 교토 부근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로 정권 유지의 위협을 받는 사례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는 1596년 게이초 후시미 지진이 발생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설 중이던 후시미 성의 천수각과 돌담 등이 무너져 성 안에서만 6백 명이 죽었고, 1662년에는 건물이 1천 채 이상 무너지고 사망자 2백 명이 발생했으며, 1830년에도 큰 지진이 발생해 니조 성과 교토고쇼 등이 피해를 입었다.[8] 물론 그럼에도 도쿄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 가운데 안전한 편인 건 사실이다. 역사 문헌적으로도 긴키 지역(교토, 나라, 오사카) 일대보다 간토 지역(도쿄, 요코하마, 가마쿠라) 일대의 재해 사망자가 훨씬 많이 있어왔으며 긴키 지역 내에서도 상술한 이유로 교토의 지진 피해가 상대적으로 경미하기 때문이다.[9]
여느 칸사이 지방과 마찬가지로 교토 분지는 한여름에 매우 덥고 습하다. 한여름 낮 최고 기온 평균이 33℃으로 최남단 오키나와보다도 높으며 심지어 이보다 더 올라가는 경우도 많다. 대구 같은 분지 지형인 데다 한반도보다 위도가 낮고 습도가 높아서 여름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절로 난다. 여름의 교토 여행은 그야말로 수행을 하러 가는 것이다. 더구나 신사나 절이 많아서 숲이 많기 때문에 모기 떼가 작렬한다.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로 들어감은 모기에게 인신공양을 하러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여기서 나오는 모기들은 일반 모기들이 아니라 국내에 아디다스모기로 잘 알려진 악랄한 흰줄숲모기 종이다.
실제 통계를 보면 8월 평균기온 28.5℃, 평균 최고 기온 33.7℃로 대구(각각 26.7℃, 31.3℃)보다 2℃ 가량 높다. 더군다나 2010년에는 나고야와 함께 9월까지 38℃ 이상 기록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만약 간다면 저 엄청난 더위를 견딜 각오와 자외선 차단제를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특히 역사 유적지가 많은 특성상 볼거리들이 대부분 다 야외에 있으며 냉방 시설이 적으므로, 여름에 교토 여행을 간다면 더위 대비는 단단히 해야 한다. 돌아다니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살이 자동 선탠된다. 심지어 하늘도 매우 맑아서 자외선이 매우 강렬하니 주의를 요한다.
최한월인 1월 평균 기온은 4.8℃로 따뜻한 편이나, 바람이 강하게 불다 보니 체감 기온은 그리 높지 않은데 오사카보다 조금 더 춥다. 강수량이 적어 함박눈이 내리는 광경은 보기 힘들다. 2015년 1월에 61년 만에 20cm 정도의 폭설이 왔는데, 교통이 마비되고 전국적으로 뉴스에 방송되었다.
물론 지진대인 일본 열도에 위치하고 교토 분지 내에 여러 활단층이 존재하는지라 역사적으로 지진 기록이 다수 존재하며 수도 특성상 피해도 구체적으로 기록되었다.[7] 교토 부근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로 정권 유지의 위협을 받는 사례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는 1596년 게이초 후시미 지진이 발생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설 중이던 후시미 성의 천수각과 돌담 등이 무너져 성 안에서만 6백 명이 죽었고, 1662년에는 건물이 1천 채 이상 무너지고 사망자 2백 명이 발생했으며, 1830년에도 큰 지진이 발생해 니조 성과 교토고쇼 등이 피해를 입었다.[8] 물론 그럼에도 도쿄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 가운데 안전한 편인 건 사실이다. 역사 문헌적으로도 긴키 지역(교토, 나라, 오사카) 일대보다 간토 지역(도쿄, 요코하마, 가마쿠라) 일대의 재해 사망자가 훨씬 많이 있어왔으며 긴키 지역 내에서도 상술한 이유로 교토의 지진 피해가 상대적으로 경미하기 때문이다.[9]
여느 칸사이 지방과 마찬가지로 교토 분지는 한여름에 매우 덥고 습하다. 한여름 낮 최고 기온 평균이 33℃으로 최남단 오키나와보다도 높으며 심지어 이보다 더 올라가는 경우도 많다. 대구 같은 분지 지형인 데다 한반도보다 위도가 낮고 습도가 높아서 여름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절로 난다. 여름의 교토 여행은 그야말로 수행을 하러 가는 것이다. 더구나 신사나 절이 많아서 숲이 많기 때문에 모기 떼가 작렬한다.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로 들어감은 모기에게 인신공양을 하러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여기서 나오는 모기들은 일반 모기들이 아니라 국내에 아디다스모기로 잘 알려진 악랄한 흰줄숲모기 종이다.
실제 통계를 보면 8월 평균기온 28.5℃, 평균 최고 기온 33.7℃로 대구(각각 26.7℃, 31.3℃)보다 2℃ 가량 높다. 더군다나 2010년에는 나고야와 함께 9월까지 38℃ 이상 기록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만약 간다면 저 엄청난 더위를 견딜 각오와 자외선 차단제를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특히 역사 유적지가 많은 특성상 볼거리들이 대부분 다 야외에 있으며 냉방 시설이 적으므로, 여름에 교토 여행을 간다면 더위 대비는 단단히 해야 한다. 돌아다니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살이 자동 선탠된다. 심지어 하늘도 매우 맑아서 자외선이 매우 강렬하니 주의를 요한다.
최한월인 1월 평균 기온은 4.8℃로 따뜻한 편이나, 바람이 강하게 불다 보니 체감 기온은 그리 높지 않은데 오사카보다 조금 더 춥다. 강수량이 적어 함박눈이 내리는 광경은 보기 힘들다. 2015년 1월에 61년 만에 20cm 정도의 폭설이 왔는데, 교통이 마비되고 전국적으로 뉴스에 방송되었다.
4. 경제[편집]
경제 활동 종류 | 생산액(100만 엔) | 구성비 | 전년비 증감 |
농림수산업 | 9,151 | 0.2% | △ 3.3% |
광업 | 139 | 0.0% | 33.7% |
제조업 | 1,044,258 | 17.4% | △ 15.2% |
건설업 | 251,672 | 4.2% | 14.2% |
전기·가스·수도업 | 89,744 | 1.5% | 10.9% |
도소매업 | 807,029 | 13.4% | 2.3% |
금융·보험업 | 260,721 | 4.3% | △ 2.5% |
부동산업 | 1,017,157 | 16.9% | 0.2% |
운수업 | 247,009 | 4.1% | △ 2.3% |
정보통신업 | 239,780 | 4.0% | 3.5% |
서비스업 | 1,342,337 | 22.3% | 2.2% |
정부 서비스[10] | 494,425 | 8.2% | △ 2.9% |
민간 비영리 서비스 | 208,921 | 3.5% | △ 0.6% |
소계 | 6,012,343 | △ 1.9% | |
1차 산업 | 9,151 | 0.2% | △ 3.3% |
2차 산업 | 1,296,069 | 21.6% | △ 10.7% |
3차 산업 | 4,707,123 | 78.3% | 0.8% |
2013년 교토시 시내총생산
칸사이 지역에서 지역중심지 역할을 하는 오사카가 다방면에 걸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해 교토는 서비스업과 함께 주로 전기, 전자 부품 계통의 제조업 비중이 높다. 대부분의 GRDP가 제조업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에 편중되어 있다.
일본 최고의 관광 도시로, 관광업이 시내 총생산에 차지하는 비율은 10% 이상으로 추산되어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관광업은 특성상 농림수산업, 운수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 다방면에 걸쳐 막대한 파급 효과를 발휘한다. 교토시를 찾는 관광객의 소비액은 상기 2013년 통계에서는 7,002억 엔에 달했으며, 2018년에는 1조 3,082억 엔으로 성장했다.
관광이 발달한 도시답게 아베노믹스에 의한 외래 관광객 효과[11]를 많이 보는 지역으로, 2019년에는 일본에서 호텔 증설이 가장 활발한 도시로 나타났으며(#) 한때 제주도에서 활발했듯이 중국인들이 교토의 부동산, 호텔 등을 사거나 세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만큼 일본에서 호텔이 가장 많은 도시이다.#
흔히 전통의 도시 이미지가 매우 강하고 실제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도시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러 기업들이 터전을 둔 곳이다. 대표적인 교토 소재 기업으로는 교세라[12], 닌텐도, 시마즈 제작소[13], 무라타 제작소, 오므론[14], 호리바 제작소[15], 와코루(Wacoal)[16], 일본전산[17], 타카시마야[18], 교토은행[19], 군제[20], 교토 애니메이션[21], 토세(Tose), 삼코(SAMCO), 니치콘, 로옴 등이 있다. 재일교포가 설립한 기업으로 유명한 MK택시와 마루한도 교토 소재 기업이다.
버블 붕괴 이후 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의 '아메바 경영론' 등이 부각되면서 교토 기업이 크게 지명도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전산[22]과 교세라[23], 사가와규빈의 영향으로 블랙기업이 많은 것처럼 여겨지는 풍조도 있다.
2000년대 중반을 전후로 교토 기업들의 경쟁력에 대한 책들이 여러 권 출판되었다. 이 책들에 따르면 교토가 가진 경쟁력의 원천에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칸사이 지역에서 지역중심지 역할을 하는 오사카가 다방면에 걸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해 교토는 서비스업과 함께 주로 전기, 전자 부품 계통의 제조업 비중이 높다. 대부분의 GRDP가 제조업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에 편중되어 있다.
일본 최고의 관광 도시로, 관광업이 시내 총생산에 차지하는 비율은 10% 이상으로 추산되어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관광업은 특성상 농림수산업, 운수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 다방면에 걸쳐 막대한 파급 효과를 발휘한다. 교토시를 찾는 관광객의 소비액은 상기 2013년 통계에서는 7,002억 엔에 달했으며, 2018년에는 1조 3,082억 엔으로 성장했다.
관광이 발달한 도시답게 아베노믹스에 의한 외래 관광객 효과[11]를 많이 보는 지역으로, 2019년에는 일본에서 호텔 증설이 가장 활발한 도시로 나타났으며(#) 한때 제주도에서 활발했듯이 중국인들이 교토의 부동산, 호텔 등을 사거나 세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만큼 일본에서 호텔이 가장 많은 도시이다.#
흔히 전통의 도시 이미지가 매우 강하고 실제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도시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러 기업들이 터전을 둔 곳이다. 대표적인 교토 소재 기업으로는 교세라[12], 닌텐도, 시마즈 제작소[13], 무라타 제작소, 오므론[14], 호리바 제작소[15], 와코루(Wacoal)[16], 일본전산[17], 타카시마야[18], 교토은행[19], 군제[20], 교토 애니메이션[21], 토세(Tose), 삼코(SAMCO), 니치콘, 로옴 등이 있다. 재일교포가 설립한 기업으로 유명한 MK택시와 마루한도 교토 소재 기업이다.
버블 붕괴 이후 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의 '아메바 경영론' 등이 부각되면서 교토 기업이 크게 지명도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전산[22]과 교세라[23], 사가와규빈의 영향으로 블랙기업이 많은 것처럼 여겨지는 풍조도 있다.
2000년대 중반을 전후로 교토 기업들의 경쟁력에 대한 책들이 여러 권 출판되었다. 이 책들에 따르면 교토가 가진 경쟁력의 원천에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 기술자들에 대한 대우가 좋다.
- 이름 있는 대기업에 하청 관계로 종속되는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 힘을 못 썼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초창기부터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기업을 운영했고 이것이 기업의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 무차입 경영을 고수하고 있는 기업이 많다. 경기가 좋을 때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가 경기가 어려워졌을 때 쓰거나, 반대로 투자를 확대하는 보수적인 운영 방식을 취하고 있다.[25]
5. 시 재정[편집]
6. 문화[편집]
상술했듯 교토는 794년 헤이안쿄 천도 이후 1869년 도쿄 천도까지 무려 1075년간 일본의 수도였기 때문에 현재도 많은 일본인들은 천년고도 교토를 '정신적 수도'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여긴다.
로컬 대중문화가 잘 발달된 일본의 도시답게, 칸사이 포크의 중심지로 1960~1970년대 내내 훌륭한 뮤지션들을 많이 배출했다. 영화 박치기에 나오는 임진강을 부른 더 포크 크루세이더스도 교토 출신이다.
사실상 이들로부터 칸사이 포크 붐이 시작되었다. 그 전까지 대학가를 중심으로 상업적인 포크 음악은 존재했지만, 메시지성이 강하고 언더그라운드적인 참신한 곡 구성이 등장한 것은 칸사이 포크 시대 이후부터다. 타카이시 토모야,[26] 나카가와 고로, 타카다 와타루, 엔도 켄지, 와카바야시 노부야스등 일본 포크를 이끈 뮤지션들이 모두 칸사이 포크 씬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당시 전공투 시대와 맞물려서 메시지가 강한 칸사이 포크 음악은 일본 각지로 퍼져나갔고, 교토 포크 캠프가 개최된 것을 필두로 기후현에서 전일본 포크 잼버리, 오사카에서 하루이치방이 개최되었다. 이 당시의 칸사이 포크 음악의 영향력은 엄청나서, 도쿄의 신주쿠역 서쪽 출구에서는 연일 포크 게릴라[27]의 반전 집회가 열렸다. 칸사이 포크는 붐이 가라앉자 메이저 음악으로 자리잡았고 아직도 일본의 1960년대 정서를 표현할 때 종종 쓰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칸사이 포크 이후 뮤지션으로는 쿠루리와 the brilliant green이 있다.
교토는 면적 대비 대학이 놀라울 만큼 많다. 그 때문에 인구 중 학생의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아 '학생의 도시'라고 불린다. 구제국대학의 일원인 교토대학 외에도 도시샤대학[28], 리츠메이칸대학이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예술대학인 교토시립예술대학(Kyōtogeidai)이 있다. 그 외에도 류코쿠대학, 교토산업대학[29], 도시샤여자대학, 교토부립대학, 교토여자대학, 만화 관련 학과가 유명한 교토세이카대학 등 수많은 대학들이 교토시 내에 존재하고 있다. 덧으로 도시샤대학과 리츠메이칸대학은 사립대 중에서도 분위기가 워낙 자유로운 까닭에 부속 고등학교도 사복을 입고 등교한다. 게다가 도시샤는 부속 중학교도 사복을 입는다.[30]
2010년 교토부 인구 조사 포스터가 열도의 기상을 보여주었다. # 아무래도 지역 회사에서 만든 것이다 보니 활용한 듯. 라디오 CM도 있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는 1997년 기후 변화 협약 총회의 개회 도시였던 이곳의 이름을 빌려 도입되었다.
교토가 천년고도이기 때문에,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상당히 은은한 느낌을 준다. 심지어 기온 거리 등 시내에서는 맥도날드의 간판이 붉은색과 노란색이 아니다. 편의점인 로손도 마찬가지이고, 역사유적지구에는 흑백 세븐일레븐도 있을 정도. 유니클로도 흰 바탕에 갈색 글씨다. 물론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그러는 게 아니고, 지자체의 행정지도 때문이다. 그러나 교토 시내 외곽을 가보면 원색이 은근히 보인다.
또한, 고도 제한이 상당히 엄격해 교토타워를 제외한 제일 높은 건물이 약 10층 안팎에 불과하다. 고도 제한은 가장 높은 목탑인 도지의 오층 탑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고도 제한의 부작용으로 2000년대 이후로는 젊은 세대들이 교토시를 탈출하여 시가현이나 오사카부 등의 다른 도시로 빠져나가는 등 인구 유출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히에이산 너머 오쓰시는 교토시와 대조적으로 초고층 아파트가 많이 개발되고 있기에 이 쪽으로 가는 인구가 많다.
굉장히 의외일 수도 있으나, 일본 최대의 IT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닌텐도의 본사가 교토에 있다. 이는 100여 년 전 닌텐도가 가내수공업 화투 제조업체로 시작한 까닭이 크다. 직원 평가를 보면 사내 직원들이 교토 특성상 놀거리가 적어 불평이 많다.
6.1. 교토식 화법[편집]
도쿄 전도 전까지는 언어도 교토벤이 표준어였고 우아하다고 여겼다. 그 때문인지 일본 내에서도 교토인은 다테마에로 혼네를 감추는 표현, 즉 완곡표현을 유난히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고 알려졌다.
좋게 말해 유난히 자주 사용한다고 하지만, 교토인들의 표현, 이른바 '교토식 화법'은 완곡어법으로 유명한 같은 일본인들조차도 학을 뗄 정도이다. 오죽하면 일본 예능에서 교토식 화법 예문을 늘여놓고 진짜 뜻을 맞히는 퀴즈까지 방송으로 나올 정도.
교토 사람들은 상대가 곤란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화법이라고 하지만,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정말로 차원이 다른 완곡어법으로 상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데에 특화되었다. 실제로 사례들을 검색해보면 이러한 화법은 자신이 곤란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화법일 뿐이지, 상대 입장에서 상대를 배려해서 하는 화법이 아니다. 어쩌면 상대가 곤란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화법이라는 교토 사람들의 주장조차도, '우린 좋게 이야기해주는 건데 니들이 제대로 못 알아처먹는 거다'라는 일종의 교토식 화법일 수 있다는 뜻. 이에 대해서는 해당 글을 참조하면 된다.#
교토식 화법은 일단 일본 상류층 사이에서는 상대방의 흠에 대한 직접적 지적이 상대방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불명예를 주었다고 해서 칼 찬 사람에게 원한을 사거나 트집을 잡힐 수있는 위험을 굳이 감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의 결점이 내게 흠이 되는 상황에서 '흠을 고쳐달라'라고 부탁하는 것은 내 명예를 깎는 것이고 굴욕적이다(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부탁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따라서 '나는 당신의 흠이 내게 민폐를 끼쳐 거슬리고 있으니까 고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넌지시 암시하는, 즉 메이와쿠라는 트집을 잡힐 위험 없이 상대방의 메이와쿠를 지적하는 고단수의 힐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는 웃는 낯으로 평소에 안하던 칭찬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항의하고 심지어는 갈구고 꼽주는 의도를 가지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제 젓가락 행진곡 치시는거 들었는데 엄청 잘치시던데요? -> 피아노를 이웃집에서 다 들릴 정도로 시끄럽게 치지 마세요." "강아지에게 뭘 먹이시는지 몰라도 참 건강해보여요! -> 당신네 강아지가 싼 똥 좀 치우고 다니세요." 정도가 있다. 기본적으로 이웃이 칭찬을 하거나 큰 대접을 제의한다면 의심해야하며, 속뜻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눈치가 없다 하여 흔히 소외와 조롱의 대상이 될 수있다. 이토록 눈치는 교토부의 사회생활에서 반드시 필수적인 능력이다.
또한 일례로, 밥에 차를 부은 음식인 오차즈케는 교토 사투리로는 부부즈케(ぶぶづけ)로 부르는데, 교토에서 "부부즈케 한 그릇 어떠세요?"라는 말은 '되도록 집에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라는 뜻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정중히 사양하고 집에 돌아가는 게 예의. 오차즈케는 식사 마지막에 먹는 음식이므로, 오차즈케를 먹는 것은 '머무름을 끝내다'는 뜻이기 때문.[31] 한국으로 치자면 마치 "식혜(또는 수정과) 한 잔 하실라우?"가 "이제 그만 돌아가시오."인 격이다.
간혹 손님이 눈치 없이 응낙해서 굳이 부부즈케를 내 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땐 최대한 빨리 눈치채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사회 생활에 좋다. 안 그러면 민폐꾼이란 인상이 박혀서 다시는 초대 못 받을 수도 있다. 심지어 이때 집으로 돌아갈 때도 ''정말 맛보고 싶은데 일이 있어서/집에서 할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라고 완곡히 거절해야 한다. 안 그러면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도 또 욕 먹는다고. 실제로 부부즈케 한 그릇 하겠냐는 말을 잘못 알아듣고 계속 있다가 차만 계속 내줘서 그제서야 눈치채고 황급히 떠났다는 타 지역 일본인들의 교토 후기가 상당히 많다.
비슷한 이야기로 "슬슬 스키야키를 먹을 시간이네요"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도쿄 출신 일본인이 교토 지인을 찾아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지인 집에서 머물던 도중 저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당연히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말로 받아들였지만 사실은 '슬슬 돌아가 주셨으면 한다'라는 뜻이었다는 듯. 그 까닭인 즉 스키야키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기에 '그런 수고를 내게 끼치겠느냐, 그러니 (내가 너를 위해 고생하게 만드는 실례를 범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돌아가 달라'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이케즈 문서 참조.
A: 아휴, 모처럼 귀하신 분께서 누옥에 왕림해 주셨는데, 아내에게 저녁 식사로 스키야키라도 준비하라 할 걸 그랬나 봅니다.
→ 지금 당신을 접대하는 것이 스키야키 만드는 것만큼이나 부담스러우니 저녁 좀 편하게 먹게 이제 그만 꺼져라.
B: 이런, 기차 시간이 가까워오는군요. 댁의 스키야키를 맛보는 영광을 누리지 못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아내에게 스키야키 준비시킬 만큼이나 당신이 날 부담스러워한다니 식욕이 확 달아나 밥 생각도 없고 기꺼이 꺼져 주겠다.
같은 예로, 맛 없는 요리를 대접 받았을 때, "재밌는 맛이네요."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거나, 일본어가 서툴러 어색한 표현을 썼을 때 "일본어를 너무 잘 하셔서 온 세대를 아우르는 일본어를 구사하신다."[32]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한다.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고 돌려 말하는 것이 원래 일본인들의 성향이지만, 교토 문화는 그 중에서도 정도가 심해 일본 내에서는 교토 사람들이 겉으로는 친절하면서도 속으론 그렇지 않다는 이미지가 있는 듯하다. 아예 "외국인들이 떠올리는 일본인 전체의 모습은 사실 타 지방의 일본인들이 교토 사람들을 바라보는 모습과 비슷하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33] 특히 이런 점을 같은 칸사이권이면서도 오사카인들이나 저 멀리 규슈의 후쿠오카현 주민들이 극히 싫어한다. 오사카나 후쿠오카 쪽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직설적인 편이다. 심지어 오사카는 교토랑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도 기질이 거의 정반대일 정도로 차이가 심해 두 도시 간 지역감정은 유독 심하다. 심지어 교토와 역사적, 문화적 환경이 유사한 나라 사람들조차 교토 사람들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다.[34]
최근 교토에서는 이러한 화법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추세라고 한다. 심지어 2020년대를 기준으로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통신 및 인터넷의 발달과 타지에서 유입 및 유출되는 인구로 인해 타지역과의 소통이 많아져 교토에서도 젊은 층을 기준으로 화법의 평준화 현상이 나타나는 중이다. 현재 이러한 화법을 사용중인 장노년층 마져도 노화로 인해 사망해감에 따라 머지않은 미래에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면 교토식 화법은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상인 기질이 강해서 뭐든지 속 시원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는 오사카 사람과, 귀족 문화의 영향으로 엄청 돌려 말하는 교토 사람은 엄청나게 상반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서 매우 궁합이 안 맞는다. 교토 사람을 보는 오사카 사람의 생각. 이러한 교토 시민의 특성상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한국인이나 외국인이 교토에서 알바할 때 교토 주민들이 친절하게 대해주고 설명해주고 칭찬해줬다고 하지만, 뒤에선 엄청나게 욕하며 뒷담을 깠다는 걸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심지어 이 정도면 교토에서는 꽤나 직설적인 편이다. 뒤에서도 뒷담을 안 까다가 갑자기 결정적인 순간 엿을 먹여버리는 무서운 경우도 있다. 즉, 같이 지낸 사람들도 믿지 않아서 돌려 말한다는 의미이다. 원래 싫은 티를 잘 안 내는 일본인이지만 특히 교토는 더욱 심하다.# 한편으론 이런 화법의 하드카운터는 그냥 들은 그대로 이해해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칸사이 문화가 부울경에 비슷하고, 오사카가 부산광역시에 해당된다면, 교토는 진주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 도시마로(阿滿利麿, 1939-)라는 교토 출신 학자가 저서에게 회고하기를, 교토의 존댓말이 도쿄의 반말이라, 자기가 도쿄에 처음 갔을 무렵에 택시에 타서 교토식으로 존대하여 말하면 택시 기사의 얼굴이 찌푸려지더라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경상도 내에서도 '~요'를 평대할 때 쓰는 부울경 기준으로는 존댓말인 '교, 겨'를 '기요'로 발음하는 경북 칠곡 사투리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비슷하다.[35]
6.2. 미디어[편집]
교토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만화에서 수학여행 에피소드에 돌입하는 경우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대가 되는 지방이기도 하다. 역시 위에 적혀 있는 대로, 헤이안 신궁, 은각사/금각사 등 문화재와 관광지가 많기 때문이다.
아예 대놓고 이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된 애니메이션도 많다. 명탐정 코난의 극장판인 미궁의 십자로와 진홍의 연가가 교토를 배경으로 했고, 소설이자 애니메이션인 교토탐정 홈즈의 무대이기도 하다. 《러키☆스타 애니메이션》에서는 관광지에 추가로 그곳에 위치한 제작사의 본사까지 등장했다.[36] 교토대학 출신이기도 한 소설가 모리미 토미히코가 쓴 소설도 거의 다 교토를 배경으로 한다. 자동적으로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들도 교토 배경. 그 외에도 다수.
그 외, 많은 노래들에서도 모티프가 되는 등 미디어에 많이 등장한다. 미국의 덥스텝 DJ 스크릴렉스의 노래 중 Kyoto라는 노래가 있기도 하고 영국 일렉트로니카 그룹 Clean Bandit의 노래 중 하나인 Rather Be에도 교토가 언급된다.
영화 박치기를 여기서 촬영했는데, 재일교포 영화 제작자 이봉우의 말에 따르면 교토 사람들은 (본인 생각에는) 영화 촬영도 많고, 관광객도 많아서인지 타인에 대해 무뚝뚝한 편이라고 한다.[37] 하지만 관광객들의 무례한 태도도 교토 현지인들의 무뚝뚝한 태도에 일조한다고 봐야 한다. 역사적인 건축물은 그렇다 쳐도, 양해도 구하지 않고 일반 가정집, 현지인들 사진까지 팍팍 찍어대는 관광객이 많다.
아이돌을 생각보다 많이 배출한 곳이다. 교토부는 AKB48의 요코야마 유이, 칸쟈니∞의 마루야마 류헤이[38], 모닝구 무스메의 나카자와 유코를 낳았다. TWICE의 멤버 모모도 교토와 바로 붙어 있는 교타나베시 출신. 아버지가 후시미구의 모모야마고료마에역 근처에서 접골원[39]을 한다.
교토시 사쿄구, 카메오카시, 나가오카쿄시, 오오야마자키쵸, 야와타시를 제외한 지역은 TV 도쿄의 계열국인 TV 오사카의 직접 수신이 힘들어서 TV 오사카를 보려면 케이블 TV에 가입해 디지털 재전송을 받아야 한다. TV 오사카가 방송 구역을 확대하려 해도 효고현의 지리적인 문제로 인한 중계국 설치 비용 문제, TV 세토우치와의 전파 혼선 문제, TV 도쿄 프로그램을 받아오는 인근 독립방송국의 반발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 TV 도쿄로부터 프로그램을 사와서 공급하는 TV 와카야마(WTV,) 나라 TV 방송(TVN)는 방송 구역 확대 이후부터 반발하고 있었고, 독자 프로그램으로 굴러가는 선테레비, KBS 교토는 이전부터 반발하고 있었다.
아예 대놓고 이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된 애니메이션도 많다. 명탐정 코난의 극장판인 미궁의 십자로와 진홍의 연가가 교토를 배경으로 했고, 소설이자 애니메이션인 교토탐정 홈즈의 무대이기도 하다. 《러키☆스타 애니메이션》에서는 관광지에 추가로 그곳에 위치한 제작사의 본사까지 등장했다.[36] 교토대학 출신이기도 한 소설가 모리미 토미히코가 쓴 소설도 거의 다 교토를 배경으로 한다. 자동적으로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들도 교토 배경. 그 외에도 다수.
그 외, 많은 노래들에서도 모티프가 되는 등 미디어에 많이 등장한다. 미국의 덥스텝 DJ 스크릴렉스의 노래 중 Kyoto라는 노래가 있기도 하고 영국 일렉트로니카 그룹 Clean Bandit의 노래 중 하나인 Rather Be에도 교토가 언급된다.
영화 박치기를 여기서 촬영했는데, 재일교포 영화 제작자 이봉우의 말에 따르면 교토 사람들은 (본인 생각에는) 영화 촬영도 많고, 관광객도 많아서인지 타인에 대해 무뚝뚝한 편이라고 한다.[37] 하지만 관광객들의 무례한 태도도 교토 현지인들의 무뚝뚝한 태도에 일조한다고 봐야 한다. 역사적인 건축물은 그렇다 쳐도, 양해도 구하지 않고 일반 가정집, 현지인들 사진까지 팍팍 찍어대는 관광객이 많다.
아이돌을 생각보다 많이 배출한 곳이다. 교토부는 AKB48의 요코야마 유이, 칸쟈니∞의 마루야마 류헤이[38], 모닝구 무스메의 나카자와 유코를 낳았다. TWICE의 멤버 모모도 교토와 바로 붙어 있는 교타나베시 출신. 아버지가 후시미구의 모모야마고료마에역 근처에서 접골원[39]을 한다.
교토시 사쿄구, 카메오카시, 나가오카쿄시, 오오야마자키쵸, 야와타시를 제외한 지역은 TV 도쿄의 계열국인 TV 오사카의 직접 수신이 힘들어서 TV 오사카를 보려면 케이블 TV에 가입해 디지털 재전송을 받아야 한다. TV 오사카가 방송 구역을 확대하려 해도 효고현의 지리적인 문제로 인한 중계국 설치 비용 문제, TV 세토우치와의 전파 혼선 문제, TV 도쿄 프로그램을 받아오는 인근 독립방송국의 반발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 TV 도쿄로부터 프로그램을 사와서 공급하는 TV 와카야마(WTV,) 나라 TV 방송(TVN)는 방송 구역 확대 이후부터 반발하고 있었고, 독자 프로그램으로 굴러가는 선테레비, KBS 교토는 이전부터 반발하고 있었다.
6.3. 그래 교토에 가자[편집]
6.4. 음식[편집]
교토의 전통 요리는 '쿄료리(京料理)'로 불리며, 재료 그대로의 담백한 맛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내륙도시다보니 교토산 제철 야채(교야사이) 같은 채소를 이용한 요리가 많이 발달한 편이며, 사찰 요리인 '정진요리', 교토식 두부 요리인 유도후[41], 가정식 백반인 '오반자이'가 유명하다.[42]
그런데 의외로 교토 사람들은 전통 요리들보다는 '교자의 오쇼'를 사랑하는데,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을 모토로 일본의 일본식 중화요리계를 평정한 전국 체인 교자의 오쇼(餃子の王将) 본점이 교토에 있기 때문이다. 정통 중국집보다는 백반집 혹은 대중 식당 분위기. 저렴한 가격과 준수한 맛으로 교토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심지어 TV아사히 인기 토크쇼 '아메토크'에서는 '오쇼를 사랑하는 코미디언'이라는 테마로 본사 관계자까지 나온 특집을 보낼 정도. 정말 오쇼야말로 교토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국 학생과 여행자의 벗. 유사품으로 오사카 오쇼가 있으니 주의하자. 사실 오사카 오쇼도 교자의 오쇼 관계자가 나와서 세운 회사이긴 하지만 다른 프랜차이즈이다.
또한 교토는 전통 음식을 좋아한다는 통념과는 다르게 일본 총무성 가계 조사에 따르면 1가구당 커피와 빵 소비량 전국 1위이기도 한데[43], 정작 교토가 대표 음식으로 미는 녹차를 비롯한 차 음료 소비량은 전국 41위이다.[44] 기사 교토 현지인들은 녹차보다 홍차를 좋아하며 로열 밀크티의 발상지가 바로 교토이다.
명물 간식으로 야츠하시가 있다. 교토의 유명한 시장인 니시키 시장에서 살 수 있다. 굽지 않은 반죽에 팥소를 넣은 음식으로, 미묘하게 찹쌀떡 같은 맛. 시장에 들를 시간이 모자라다면, 기요미즈데라에 오가는 길에서도 살 수 있다.
서양에서 중화요리처럼 알려진 포춘쿠키도 원형은 이곳이다. '쓰지우라센베이'(辻占煎餅)라 하며 후시미이나리타이샤(伏見稲荷大社)란 신사 근처에서 맛 볼 수 있다.
일본 대도시치고 드물게 내륙도시라서 일본 음식 하면 한국에서 흔히 떠올리는 초밥, 생선회로 유명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관동식 니기리즈시가 생기기 이전 시대의 봉초밥, 고등어초밥 같은 전통 요리가 있다.
'간토인은 양념을 진하게 해 짜게 먹고 칸사이인은 짠돌이라서 양념 강도도 약하고 싱겁게 먹는다.'라는, 일본 내에서도 유명한 지역드립성 이미지가 있는데 그 칸사이 요리의 총본산이 교토이다. 그런데 도쿄에 비하면 약간 싱거운데 그 이유는 음식 문화 발달할때 그 주대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교토는 천황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정신적 수도였다. 이에 자연스럽게 각 영지 귀족들은 이 교토에 거주할 집을 마련하고 간간히 궁정이벤트를 진행했기에 막부들이 실세였다 한들 교토는 중앙 정치의 정치적 입지가 상당했고 마지막 막부인 에도막부 시절에도 그 입지는 여전했기에 중앙 귀족들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기도 했다. 당연히 중앙 귀족들이 많이 거주한 만큼 고급 요리가 많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으며 게다가 귀족들은 서민들보다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양념을 살짝 약하게하고 최대한 자연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조화롭게 하는 요리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미식이라는 성향을 보였고 그 결과 가이세키 요리의 발달을 불러왔다. 그리고 서민층들도 이런 귀족들의 식습관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칸사이 지방 우동과 소바의 국물이 간토에 비해 색깔이 엷으면서도 은은한 맛과 향으로 승부하는 특유의 특징을 가진다.
수도의 자리를 빼앗긴 지 어언 100년이 되어가나 오사카에 이어 칸사이 제2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대도시이다 보니 여전히 고급 가이세키 요정이 많은 편이다. 일본의 대표 요리인 스시가 간토에 명점이 많이 모여 있다면 가이세키 명점은 교토에 몰려 있으며 역사도 길은 명점들 또한 교토에 위치해 있다.
보통 일본의 복날은 민물장어를 이용한 장어덮밥을 먹는 것이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데 교토는 민물장어 대신 갯장어를 주로 먹는다. 물론 교토도 외지인이 유입된 경우가 많아서 장어덮밥 소비율이 갯장어보다 높지만 교토 토박이 출신 사람들은 갯장어로 여름을 난다. 이렇다 보니 갯장어를 이용한 양념 꼬치구이가 교토에만 있을 정도로 갯장어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교토 사람들은 전통 요리들보다는 '교자의 오쇼'를 사랑하는데,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을 모토로 일본의 일본식 중화요리계를 평정한 전국 체인 교자의 오쇼(餃子の王将) 본점이 교토에 있기 때문이다. 정통 중국집보다는 백반집 혹은 대중 식당 분위기. 저렴한 가격과 준수한 맛으로 교토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심지어 TV아사히 인기 토크쇼 '아메토크'에서는 '오쇼를 사랑하는 코미디언'이라는 테마로 본사 관계자까지 나온 특집을 보낼 정도. 정말 오쇼야말로 교토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국 학생과 여행자의 벗. 유사품으로 오사카 오쇼가 있으니 주의하자. 사실 오사카 오쇼도 교자의 오쇼 관계자가 나와서 세운 회사이긴 하지만 다른 프랜차이즈이다.
또한 교토는 전통 음식을 좋아한다는 통념과는 다르게 일본 총무성 가계 조사에 따르면 1가구당 커피와 빵 소비량 전국 1위이기도 한데[43], 정작 교토가 대표 음식으로 미는 녹차를 비롯한 차 음료 소비량은 전국 41위이다.[44] 기사 교토 현지인들은 녹차보다 홍차를 좋아하며 로열 밀크티의 발상지가 바로 교토이다.
명물 간식으로 야츠하시가 있다. 교토의 유명한 시장인 니시키 시장에서 살 수 있다. 굽지 않은 반죽에 팥소를 넣은 음식으로, 미묘하게 찹쌀떡 같은 맛. 시장에 들를 시간이 모자라다면, 기요미즈데라에 오가는 길에서도 살 수 있다.
서양에서 중화요리처럼 알려진 포춘쿠키도 원형은 이곳이다. '쓰지우라센베이'(辻占煎餅)라 하며 후시미이나리타이샤(伏見稲荷大社)란 신사 근처에서 맛 볼 수 있다.
일본 대도시치고 드물게 내륙도시라서 일본 음식 하면 한국에서 흔히 떠올리는 초밥, 생선회로 유명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관동식 니기리즈시가 생기기 이전 시대의 봉초밥, 고등어초밥 같은 전통 요리가 있다.
'간토인은 양념을 진하게 해 짜게 먹고 칸사이인은 짠돌이라서 양념 강도도 약하고 싱겁게 먹는다.'라는, 일본 내에서도 유명한 지역드립성 이미지가 있는데 그 칸사이 요리의 총본산이 교토이다. 그런데 도쿄에 비하면 약간 싱거운데 그 이유는 음식 문화 발달할때 그 주대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교토는 천황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정신적 수도였다. 이에 자연스럽게 각 영지 귀족들은 이 교토에 거주할 집을 마련하고 간간히 궁정이벤트를 진행했기에 막부들이 실세였다 한들 교토는 중앙 정치의 정치적 입지가 상당했고 마지막 막부인 에도막부 시절에도 그 입지는 여전했기에 중앙 귀족들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기도 했다. 당연히 중앙 귀족들이 많이 거주한 만큼 고급 요리가 많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으며 게다가 귀족들은 서민들보다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양념을 살짝 약하게하고 최대한 자연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조화롭게 하는 요리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미식이라는 성향을 보였고 그 결과 가이세키 요리의 발달을 불러왔다. 그리고 서민층들도 이런 귀족들의 식습관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칸사이 지방 우동과 소바의 국물이 간토에 비해 색깔이 엷으면서도 은은한 맛과 향으로 승부하는 특유의 특징을 가진다.
수도의 자리를 빼앗긴 지 어언 100년이 되어가나 오사카에 이어 칸사이 제2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대도시이다 보니 여전히 고급 가이세키 요정이 많은 편이다. 일본의 대표 요리인 스시가 간토에 명점이 많이 모여 있다면 가이세키 명점은 교토에 몰려 있으며 역사도 길은 명점들 또한 교토에 위치해 있다.
보통 일본의 복날은 민물장어를 이용한 장어덮밥을 먹는 것이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데 교토는 민물장어 대신 갯장어를 주로 먹는다. 물론 교토도 외지인이 유입된 경우가 많아서 장어덮밥 소비율이 갯장어보다 높지만 교토 토박이 출신 사람들은 갯장어로 여름을 난다. 이렇다 보니 갯장어를 이용한 양념 꼬치구이가 교토에만 있을 정도로 갯장어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7. 스포츠[편집]
교토를 연고지로 삼는 프로 스포츠 팀으로는 J리그의 교토 상가 FC가 유명하다. 교토 퍼플상가 시절 박지성이 하위권이었던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었고, 계약 기간이 천황배 결승전 전날 끝났는데도 무보수로 출전해 1골 1도움으로 천황배 우승, 그것도 팀의 유일한 우승을 안겨 주었기 때문에 박지성은 교토에서 레전드 대우를 받는다. 실제로 당시 퍼플상가 구단주는 박지성이 PSV로 떠날 때 후에 돌아온다면 다리가 부러져도(!) 받아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야구팀은 칸사이권이 그렇듯 당연히 한신 타이거스가 인기가 많다. 교토 연고 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데, 쇼치쿠 로빈스가 1950년 부터 연고지로 삼았다가 1953년 다이요 훼일스와 반 강제로 합병된 다이요 쇼치쿠 로빈스의 준본거지로 1954년까지 머물렀다. 한신 외에는 일본 전국적으로 인기가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팬도 제법 있는 편이다.
두산 베어스 팬들에게는 안 좋은 의미로 기억될 수도 있다. 전 감독이었던 이시야마 카즈히데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김성근도 교토 출생이다.
B리그의 교토 한나리즈의 홈구장이 우쿄구에 위치해 있다.
고전 유도, 지금의 칠제 유도에서 교토대학이 최다 우승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칠제 유도 대회 개최를 주도한 곳부터가 교토 제국 대학이며, 1981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10연패를 차지할 정도. 경량급과 중(中)량급에서 특히 강세를 보인다.
야구팀은 칸사이권이 그렇듯 당연히 한신 타이거스가 인기가 많다. 교토 연고 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데, 쇼치쿠 로빈스가 1950년 부터 연고지로 삼았다가 1953년 다이요 훼일스와 반 강제로 합병된 다이요 쇼치쿠 로빈스의 준본거지로 1954년까지 머물렀다. 한신 외에는 일본 전국적으로 인기가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팬도 제법 있는 편이다.
두산 베어스 팬들에게는 안 좋은 의미로 기억될 수도 있다. 전 감독이었던 이시야마 카즈히데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김성근도 교토 출생이다.
B리그의 교토 한나리즈의 홈구장이 우쿄구에 위치해 있다.
고전 유도, 지금의 칠제 유도에서 교토대학이 최다 우승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칠제 유도 대회 개최를 주도한 곳부터가 교토 제국 대학이며, 1981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10연패를 차지할 정도. 경량급과 중(中)량급에서 특히 강세를 보인다.
8. 관광[편집]
교토는 오사카, 고베, 나라, 가끔 와카야마나 히메지와도 함께 엮어서 칸사이권 여행 패키지가 만들어지는 관광의 메카이고, 일본 내에서도 전통 건축물이 잘 살아남은 동네라서[45] 여행하기 좋다. 도시로서 규모도 제법 큰 편이라, 교토 시내에서도 게임 센터나 전자 제품 쇼핑도 어떻게든 되는 편.
일본 내에서 사찰과 신사와 같은 종교 문화재 관광하기에는 교토만큼 좋은 곳이 없다. 개인 사찰 포함 1천여 개의 사찰과 신사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교토의 예스런 분위기에 푹 빠진 여행객도 상당하다. 교토 사람들도 평생 동안 교토시 내 사찰과 문화재를 전부 보지 못한다. 이는 실제로 승려들이 수행 중인 절도 있어서이기도 하다. 관광객의 입장이 가능한 곳에서도 승려 외 출입 금지 구역이 있으니 이 주변에서는 가급적 소음에 유의할 것.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관광지라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모노를 입고 돌아다니는 걸 유명 관광지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고 렌탈샵 또한 즐비하다. 특히 기온마치나 기요미즈데라 근방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자연 액티비티의 경우 분지 지형이다 보니 동서남북으로 시를 둘러싼 산악 액티비티나 계곡, 호수가 주를 이룬다. 보통 서쪽의 아라시야마나 북동쪽의 히에이 산, 시 동쪽 시가현의 비와호 같은 것들이 자연 액티비티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벚꽃이 피는 봄철(3~5월)과 단풍철(11월 중후반)이 쌍벽을 이루는데, 그 중 5월의 골든 위크라면 각오를 다지는 게 좋은 편. 사람이 정말 많긴 하지만 사람이 몰리는 게 이해가 될 정도로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할 만큼 정말 좋은 여행철이기도 하다. 물론 그 방값 비싸다는 교토에서도 그 시기에 방을 잡으려면 호텔 체인별 회원 전용 예약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정상가로는 예약이 절대 불가능하고, 2인실 기준 최소 15만 원의 숙박비를 감당해야 한다. 심지어 혹서기에도 기온마츠리와 같은 시그니처 축제들이 즐비한지라 교토의 하드코어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벚꽃의 경우는 서쪽의 아라시야마부터 동쪽의 철학의 길과 케아게 인클라인[46], 그 외 교토 전역에 넓게 분포한 사찰들과 카모 강 유역, 심지어 카츠라 강, 우지 강, 키즈 강의 합류지점인 시 남서쪽 요도가와 하천공원까지 벚꽃이 정말 넓게 분포해 있어서, 실질적인 관광객 밀도는 석촌호수나 여의도 윤중로보다도 오히려 적은 수준인지라 사람들로 터져나갈 것 같은 인식과는 다르게 다소 여유로운 편이다.
오타쿠 관광도 조금 미묘하다. 오사카의 덴덴타운 수준에 못 미치는 건 아쉽지만, 애니 성지 등 나름의 유니크함을 가지고 있어 아예 무시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쿄애니 본사와 쿄애니샵은 교토에 없고 JR 나라선을 타고 20분 거리에 위치한 우지시에 곳에 있다. 특촬 오타쿠라면 토에이 우즈마사 영화촌(東映太秦映画村)을 꼭 들러 보자.
철도 동호인이 관광하기에도 좋은 도시이다. 증기 기관차를 원없이 볼 수 있는 교토철도박물관이 있고, 복선화 이전의 산인 본선 구간을 다니는 사가노 관광철도도 교토에 있다. 토롯코 열차를 이용하면 토롯코사가역에 전시된 디오라마를 100엔 할인하여 관람할 수 있다. 단 성수기엔 타는 게 로또 수준으로 매우 힘들다. 교토 시내에도 란덴 같은 노면전차가 다니는 등 철도 동호인이 좋아할 만한 것이 많다. 특히 란덴의 우타노역~나루타키역 구간의 벚꽃 터널이 굉장히 유명하며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객차에 사람이 꽉 들어차고 건널목에도 출사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철도 동호인이 칸사이권에 놀러갔다면 철도박물관 때문에라도 들르는 곳. 과거에는 대중교통편으로 교토철도박물관을 이용하기엔 애로사항이 있었으나, 2019년 우메코지쿄토니시역이 개업하여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역사 유적과 자연 유산이 주를 이루는 관광도시답게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그에 따른 마이너스 요인이 좀 있다. 대구와 똑같이 동서남북이 산으로 가로막힌 분지인 데다 여름철에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을 다이렉트로 맞는 것도 모자라 위도마저 대구보다 낮아 여름철엔 가혹한 날씨가 문제가 된다. 대구가 커피라면 교토는 TOP일 정도로 밖에 돌아다니기가 고통스러울 만큼 덥다. 봄철이라고 안심하면 안되는 것이, 벚꽃을 비롯한 꽃나무들이 시 전역에 즐비한지라 꽃가루가 날리는 현상인 카훈도 굉장히 심한 도시다. 본인이 날씨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교토는 매우 난감한 관광지인 셈.
한편 도시 전반적으로 문화재 보호로 인한 규제와 고도 제한이 매우 심한 탓에 대규모 숙박 시설이 굉장히 부족했고 그에 따른 아쉬운 가성비로 유명했다. 예컨대 대규모 호텔 체인은 한큐 교토선의 시죠거리와 교토역 근방, 니시혼간지 서쪽의 고죠에만 밀집되어 있었고 객실 규모도 타 대도시에 비해 굉장히 적었다. 접근성이 괜찮은 시죠 쪽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한숨 나오는 숙박비를 자랑했었고 반대로 가격이 괜찮은 고죠 쪽은 교토 도심지임에도 대중교통편이 아예 없는 수준인지라 여행객들의 불만이 꽤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하여 해외여행, 수학여행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며 2020년 교토 시내 관광업 종사자들의 실업률, 생활 보호 신청 건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교토 상공회의소 회장이 버블 붕괴 후보다 코로나19의 임팩트가 더 심각하다고 할 정도. 심지어 올림픽, 관광 수요의 증가로 건설한 호텔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관광객을 맞지 못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어서 교토부 지사가 조성금 기한의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방일 관광객을 기대할 수 없는 현 시점에서 그 시죠 주변의 호텔 숙박비가 40,000원 정도로 폭락한 걸 보면 교토의 방일 외국인 의존도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코로나19가 끝나고 여행이 풀린 2023년 시점에선 교토역 근처로 숙소를 잡는다면 그 옛날과 비교하면 굉장히 많이 오른 상태다. 정 안되면 우메다나 신오사카역 주변에 숙소를 잡고 교토를 오가는 방법도 있다. 오사카역에서 신쾌속을 타면 교토역까지 30분 이내로 끊고, 오사카우메다역에서 한큐 특급을 타면 교토카와라마치역까지 45분이면 간다[47].
일본 내에서 사찰과 신사와 같은 종교 문화재 관광하기에는 교토만큼 좋은 곳이 없다. 개인 사찰 포함 1천여 개의 사찰과 신사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교토의 예스런 분위기에 푹 빠진 여행객도 상당하다. 교토 사람들도 평생 동안 교토시 내 사찰과 문화재를 전부 보지 못한다. 이는 실제로 승려들이 수행 중인 절도 있어서이기도 하다. 관광객의 입장이 가능한 곳에서도 승려 외 출입 금지 구역이 있으니 이 주변에서는 가급적 소음에 유의할 것.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관광지라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모노를 입고 돌아다니는 걸 유명 관광지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고 렌탈샵 또한 즐비하다. 특히 기온마치나 기요미즈데라 근방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자연 액티비티의 경우 분지 지형이다 보니 동서남북으로 시를 둘러싼 산악 액티비티나 계곡, 호수가 주를 이룬다. 보통 서쪽의 아라시야마나 북동쪽의 히에이 산, 시 동쪽 시가현의 비와호 같은 것들이 자연 액티비티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벚꽃이 피는 봄철(3~5월)과 단풍철(11월 중후반)이 쌍벽을 이루는데, 그 중 5월의 골든 위크라면 각오를 다지는 게 좋은 편. 사람이 정말 많긴 하지만 사람이 몰리는 게 이해가 될 정도로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할 만큼 정말 좋은 여행철이기도 하다. 물론 그 방값 비싸다는 교토에서도 그 시기에 방을 잡으려면 호텔 체인별 회원 전용 예약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정상가로는 예약이 절대 불가능하고, 2인실 기준 최소 15만 원의 숙박비를 감당해야 한다. 심지어 혹서기에도 기온마츠리와 같은 시그니처 축제들이 즐비한지라 교토의 하드코어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벚꽃의 경우는 서쪽의 아라시야마부터 동쪽의 철학의 길과 케아게 인클라인[46], 그 외 교토 전역에 넓게 분포한 사찰들과 카모 강 유역, 심지어 카츠라 강, 우지 강, 키즈 강의 합류지점인 시 남서쪽 요도가와 하천공원까지 벚꽃이 정말 넓게 분포해 있어서, 실질적인 관광객 밀도는 석촌호수나 여의도 윤중로보다도 오히려 적은 수준인지라 사람들로 터져나갈 것 같은 인식과는 다르게 다소 여유로운 편이다.
오타쿠 관광도 조금 미묘하다. 오사카의 덴덴타운 수준에 못 미치는 건 아쉽지만, 애니 성지 등 나름의 유니크함을 가지고 있어 아예 무시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쿄애니 본사와 쿄애니샵은 교토에 없고 JR 나라선을 타고 20분 거리에 위치한 우지시에 곳에 있다. 특촬 오타쿠라면 토에이 우즈마사 영화촌(東映太秦映画村)을 꼭 들러 보자.
철도 동호인이 관광하기에도 좋은 도시이다. 증기 기관차를 원없이 볼 수 있는 교토철도박물관이 있고, 복선화 이전의 산인 본선 구간을 다니는 사가노 관광철도도 교토에 있다. 토롯코 열차를 이용하면 토롯코사가역에 전시된 디오라마를 100엔 할인하여 관람할 수 있다. 단 성수기엔 타는 게 로또 수준으로 매우 힘들다. 교토 시내에도 란덴 같은 노면전차가 다니는 등 철도 동호인이 좋아할 만한 것이 많다. 특히 란덴의 우타노역~나루타키역 구간의 벚꽃 터널이 굉장히 유명하며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객차에 사람이 꽉 들어차고 건널목에도 출사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철도 동호인이 칸사이권에 놀러갔다면 철도박물관 때문에라도 들르는 곳. 과거에는 대중교통편으로 교토철도박물관을 이용하기엔 애로사항이 있었으나, 2019년 우메코지쿄토니시역이 개업하여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역사 유적과 자연 유산이 주를 이루는 관광도시답게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그에 따른 마이너스 요인이 좀 있다. 대구와 똑같이 동서남북이 산으로 가로막힌 분지인 데다 여름철에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을 다이렉트로 맞는 것도 모자라 위도마저 대구보다 낮아 여름철엔 가혹한 날씨가 문제가 된다. 대구가 커피라면 교토는 TOP일 정도로 밖에 돌아다니기가 고통스러울 만큼 덥다. 봄철이라고 안심하면 안되는 것이, 벚꽃을 비롯한 꽃나무들이 시 전역에 즐비한지라 꽃가루가 날리는 현상인 카훈도 굉장히 심한 도시다. 본인이 날씨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교토는 매우 난감한 관광지인 셈.
한편 도시 전반적으로 문화재 보호로 인한 규제와 고도 제한이 매우 심한 탓에 대규모 숙박 시설이 굉장히 부족했고 그에 따른 아쉬운 가성비로 유명했다. 예컨대 대규모 호텔 체인은 한큐 교토선의 시죠거리와 교토역 근방, 니시혼간지 서쪽의 고죠에만 밀집되어 있었고 객실 규모도 타 대도시에 비해 굉장히 적었다. 접근성이 괜찮은 시죠 쪽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한숨 나오는 숙박비를 자랑했었고 반대로 가격이 괜찮은 고죠 쪽은 교토 도심지임에도 대중교통편이 아예 없는 수준인지라 여행객들의 불만이 꽤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하여 해외여행, 수학여행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며 2020년 교토 시내 관광업 종사자들의 실업률, 생활 보호 신청 건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교토 상공회의소 회장이 버블 붕괴 후보다 코로나19의 임팩트가 더 심각하다고 할 정도. 심지어 올림픽, 관광 수요의 증가로 건설한 호텔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관광객을 맞지 못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어서 교토부 지사가 조성금 기한의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방일 관광객을 기대할 수 없는 현 시점에서 그 시죠 주변의 호텔 숙박비가 40,000원 정도로 폭락한 걸 보면 교토의 방일 외국인 의존도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코로나19가 끝나고 여행이 풀린 2023년 시점에선 교토역 근처로 숙소를 잡는다면 그 옛날과 비교하면 굉장히 많이 오른 상태다. 정 안되면 우메다나 신오사카역 주변에 숙소를 잡고 교토를 오가는 방법도 있다. 오사카역에서 신쾌속을 타면 교토역까지 30분 이내로 끊고, 오사카우메다역에서 한큐 특급을 타면 교토카와라마치역까지 45분이면 간다[47].
8.1. 세계유산과 명소[편집]
교토에 있는 유적 중 아래에 개별 문서가 있는 유적들을 포함해 일부가 고대 교토의 역사 기념물이라는 유산군에 묶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개별 문서가 없는 명소에 대해서는 교토시/관광 문서 참조.
개별 문서가 없는 명소에 대해서는 교토시/관광 문서 참조.
8.2. 역사적인 장소[편집]
9. 교통[편집]
인구 150만의 대도시이자 일본 유수의 관광 도시인 건 확실한데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교통 상황은 눈물이 날 정도로 열악하다. 이는 교토 자체가 워낙에 오래된 도시이다 보니 교통편 개발을 통한 문화재 훼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48]
교토에서 이용하는 주요 교통 수단은 크게 시영버스와 시영 지하철, JR 서일본, 사철[49][50]과 노면전차[51], 그리고 택시이다.
교통 상황을 좀 적어 두자면,
교토에서 이용하는 주요 교통 수단은 크게 시영버스와 시영 지하철, JR 서일본, 사철[49][50]과 노면전차[51], 그리고 택시이다.
교통 상황을 좀 적어 두자면,
- 길은 좁은데 차는 많다. 서울로 치면 종로급의 도로인 시조(四条)는 왕복 2차로[52], 주요 산업 도로 중 하나인 고죠(五条)[53]와 호리카와 도리(堀川通), 오이케 도리(御池通) 정도나 왕복 6차로지, 교토에서 유서 깊은 도로인 니조(二条)나 산조(三条)의 경우 몇몇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왕복 2차로다. 종축으로 중요한 도로에 속하는 카와라마치 도리(河原町通)나 카라스마 도리(烏丸通)도 4차선. 교토 시가지의 중심인 시조-산조 카와라마치-카라스마는 항상 교통 지옥이라고 보면 된다. 시 차원에서 차 좀 끌고 나오지 말라고 할 정도. 더 심한 건 버스도 가축수송이다. 특히 3대 절 가는 라쿠버스. 거기다 동서 주요간선이라는 고죠를 관통하는 버스 노선들이 열악하기 그지없어 호리카와도리[54] 서쪽에 위치한 숙소를 이용하는 가성비 추구 여행객들에게도 피눈물을 선사하고 있다.
- 다른 대도시와 다르게 도심 내부의 철도 교통이 미비하다. 오사카 쪽을 잇는 JR과 케이한, 한큐의 경우 교토 시 동부와 남서부를 '매우 한정적으로' 커버한다. 교토 서부나 북부의 경우 철도로 시내나 오사카 쪽으로 나오기가 매우 불편하고[55][56], 야사카 신사 등지의 동부 쪽이 그나마 나은 편. 이렇게 된 큰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교토는 예전 물 속에 잠겨 있는 지역이었으며 교토 시내를 포함하여 기요미즈데라가 있는 높이까지 전부 물로 가득찬 지역이었으나 지각 변동으로 인해 교토 부근이 위로 치솟으면서 물이 빠지고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지금도 교토의 지하에는 방대한 물이 매장되어 있으며 도심에서도 지하수가 펑펑 나온다. 그래서 교토의 별명 중엔 水の都(물의 도시)도 있다. 또한 이런 지하수를 이용한 두부 장사가 옛날부터 전해져 와서 지금도 교토에서는 두부 요리가 많이 발달해 있다.
- 아무튼 방대한 지하수량과 더불어 문화재 굴착 등의 문제로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기 어렵다 보니 이러한 공사가 필수적인 철도 인프라가 굉장히 빈약해졌다.
- 문화재 굴착 등의 문제 때문에 JR과 한큐를 제외한 다른 철도 교통들의 경우 기본 요율과 비교해 교토 경유 시 km당 요금이 미묘하게 혹은 티나게 비싸다. 물론 스룻토칸사이 패스 등을 이용한다면야 이건 별 문제가 없겠지만.[57]
- 교토 관광 시 각오를 다져야 하는 시기는 벚꽃철과 단풍철, 그리고 여름철이다. 벚꽃철과 단풍철 시즌이 되면 교토 시내는 말 그대로 사람들로 터져 나간다. 오사카부 지역에 집이 있는 교토대생이라면 이때쯤 집에 가기가 힘들다고 보면 되며, 주요 행사가 있을 시 사대문 안이나 성저십리 안에서 대학을 다니는 경기도 거주 대학생같이 된다. 사찰이나 신사 쪽으로 연결된 버스 노선[58]은 증차를 해도 미어터지고 JR은 가을에 임시 열차까지 굴리며 한큐는 쾌속특급이라는 주말 한정 관광 열차를 배 이상으로 증편하고 케이한과 킨테츠는 구간 한정으로 서로의 승차권까지 통용시켜서 굴려주는데도 그마저도 감당을 못 해 사람들로 터져나간다. 여름철은 가혹한 날씨가 문제가 되는데, 대구가 그냥 커피라면 교토는 TOP일 정도로 밖에 돌아다니기가 고통스러울 만큼 덥기 때문이다.
- 관광지가 집중되어 있는 아라시아마에서 교토 시가지로 나오는 마루타마치 도리와 산죠 도리, 기온과 헤이안 신궁을 잇는 히가시오지 도리는 특히 오후에 집중적으로 막힌다. 이 지역을 보고 교토 시가지나 오사카 등지로 돌아가려는 관광객들이 몰리기 때문. 그나마 아라시야마는 산인 본선이나 한큐 아라시야마선 등 우회노선이 많지만, 기온은 답이 없다. 그래서 시에서 지하철 히가시야마 역에서 토자이선-카라스마선을 이용하도록 교통 분산을 유도하며, 교통 경찰들이 버스에 승차하여 교토역까지 가는 무료 환승권을 나눠줄 때도 있다.
그러나 시내 교통만 문제가 될 뿐 교토는 오사카에서 철도로 통학하기 매우 편리한 곳이다. 상술한 사철들을 이용하면 아주 쉽게 갈 수 있다. 북부에서는 한큐, 남부에서는 킨테츠, 동부에서는 케이한으로 통학할 수 있다. 단지 도로 사정이 엄청나게 열악하니 그건 고려할 것. 교토시 교통국(한국어) 홈페이지 참고 바람 교토에서 오사카로 갈 때도 마찬가지.
10. 기타[편집]
11.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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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계인구 2024년 2월 1일 기준[2] 천년 이상 신라의 수도였던 도시 경주시를 한국에서 천년고도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래서 교토의 별명이 일본의 경주이기도 하다.[3] 일례로 난카이 해곡 대지진 가운데 역대급 규모와 파괴력을 자랑한 1707년 호에이 대지진 당시 교토의 진도는 4~5 정도에 불과해 물리적 피해가 거의 없었다.[4] 실제 칸사이 외 타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나도 교토의 지진동은 가까운 오사카에 비해 상당히 약한 편인데 일례로 1923년 멀리 간토 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오사카의 진도가 4였던 반면 진원에서 비슷한 거리에 위치한 교토의 진도는 2에 불과했다.[5] 단, 교토 분지의 경우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충적층의 두께가 두꺼워지기 때문에 교토 분지 남부인 후시미 구 일대는 지반이 약하며 교토 시내보다 지진동이 강하다. 실제 1596년 게이초 후시미 지진 당시 후시미 성이 무너지는 등 이 일대의 피해가 유독 컸던 이유가 이것이다. 반면 전통적인 교토(헤이안쿄) 영역이자 현 교토 중심부인 시모교 구 이북은 충적층이 얕고 지반이 단단해 역사적으로 지진 피해가 비교적 적었다.[6] 실제로 지질학적 관점에선 교토에서 도쿄로 천도한 건 최악의 수였다. 쉽게 말하자면 활단층만 많은 교토에서 활단층은 물론이고 아예 3개의 판이 층을 이루는 도쿄로 수도를 옮긴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교토 역시 일본 열도인지라 지진에서 안전하진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 쓰나미의 위험은 전혀 없고 지진 역시 M7급의 단층발 지진이 수백 년에 한 번씩 발생하는 정도이다. 반면 도쿄의 경우 100년마다 M7, M8이 번갈아 일어나며 도쿄도를 벗어나 간토 평야 전체로 보면 태평양을 바라보는 지역은 쓰나미에 극도로 취약하다. 물론 수도를 천도할 당시엔 지진을 관측하거나 지각판을 파악하는 과학 기술이 당연히 없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도 천도했던 건 아니었다. 화산과 산으로 가득해 물자 보급, 발전이 힘들었던 당시 일본에서 유의미한 대평야가 존재했던 곳이 에도, 현 도쿄였고 따라서 천도했던 것.[7] 한국에서 지진 위험이 가장 큰 지역은 경상도이고 일본에서 가장 지진 위험이 적은 지역은 보통 주고쿠 일대나 규슈 북부 지역을 꼽지만 당연히 주고쿠나 규슈 북부가 경상도보다 지진 위험도가 훨씬 크다. 애초에 한국에서 경상도가 가장 지진이 많은 이유는 경상도가 일본의 판 경계에서 가장 가깝고 그로 인해 단층이 발달했기 때문이다.[8] 사실 칸사이 지역도 활단층이 매우 발달한 지역으로 여러 판경계와 겹치고 지진 활동이 매우 활발한 칸토, 토호쿠보다 나을 뿐이지 당연히 안전 지역은 아니다. 비록 지반이 약한 고베 일대이지만 불과 20여년 전에 한신 아와지 대지진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일본에서 지진이 적고 안전한 지역은 오카야마현과 히로시마현을 위시로 하는 주고쿠의 산요 지방 및 일본 해구와 쿠릴 해구의 영향권에서 비교적 먼 삿포로에서 아사히카와에 이르는 홋카이도 중서부~북서부의 내륙 지역이다. 단 해안 지역의 경우 동해안의 판 경계(오호츠크판-유라시아판)에서 발생하는 쓰나미에 취약하다.[9] 역사적으로 칸사이 지역의 지진 피해 규모는 천 단위였지만 간토 지역은 만~십만 단위였다. 1923년 칸토 대지진은 10~14만 명이었고 전근대인 1293년 가마쿠라 대지진의 피해 규모도 무려 23,000명 선이었다. 그나마 1703년 겐로쿠 대지진은 진원이 중심지 에도와 좀 거리가 있어 1만 이하 선이었다. 칸사이를 직격한 대지진 중 만단위의 사상자를 낸 유일한 경우가 2011년 도호쿠 대지진 이전 일본 최대의 지진으로 꼽히던 1707년의 호에이 대지진인데 최대 추정치가 2만 명이다. 그런데 이 지진의 경우 피해 지역이 시코쿠, 칸사이, 주부, 미나미간토까지 퍼져 있어 좀 애매한 편이다.[10] 전기·가스·수도업, 서비스업, 공무[11] 일본에서 흔히 외래인을 뜻하는 '인바운드'(インバウンド)로 줄여 쓴다.[12] 교토+세라믹의 합성한 사명이다. 원래 교토세라믹으로 출발했지만, 도쿄증권거래소 상장과 더불어 이름을 축약한 것이다.[13] 창업주가 가고시마의 유력 가문인 시마즈 집안이며, 샐러리맨이자 대졸자로써 노벨상을 수상한 다나카 고이치를 배출한 곳이다.[14] 세계 최초로 자동 개찰기를 개발한 곳으로, 당뇨병 의료 관련 키트로도 유명하다.[15] 엔진 배기 가스 측정·분석 장치 분야에서 80%의 세계 톱 셰어를 차지한다.[16] 대한민국에는 비너스라는 브랜드로 인지도가 높은 신영과 합작하여 신영와코루라는 이름을 세웠다. 신영와코루의 계열사는 신영스타킹이 대표적이다.[17] 세계 1위의 모터 제조사로 특유의 경영철학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18] 본사는 오사카에 있으나, 교토에서 창업했다.[19] 칸사이 지역의 유력 지방 은행들이 버블 이후 전부 무너져 내렸지만 교토은행은 이름을 유지하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20] 한국에서는 프라모델용 도료 쪽이 유명하지만 본업은 속옷 등 섬유, 의류이다. 군제의 스타킹은 한국에도 수입된 적 있다. 그리고 의외로 전자 부품 쪽에도 손을 대고 있다.[21] 엄밀히는 교토현 소재 기업이지 교토시 기업은 아니다.[22] 일본 제일의 노동자 탄압 기업으로 악명이 높으며, 젊은이들이 입사하고 싶지 않은 회사 1위로 꼽힌다.[23] 이쪽은 쥐어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회사 철학의 강조가 신흥 종교와도 같이 받아들여지고 있다.[24] 교토대학 스에마쓰 치히로 교수는 이를 교요식 경영이라 칭하기도 했다.[25] 이는 과거 타지역 기업들이 교토 기업들에게는 돈을 잘 빌려주지 않으려고 했고, 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26] 홋카이도 출신이고 도쿄로 대학교를 진학해서 도쿄를 근거지로 삼았지만 아무래도 포크의 중심지가 교토이다 보니 교토에서 활동을 많이 했다.[27] 당시 거리에서 공연을 하던 포크 뮤지션들을 위주로 한 집회. 처음에는 자연발생적인 거리 공연에 지나지 않았지만 점점 인원이 불어나서 경찰 기동대가 투입되어 폭력으로 해산시키는 사태도 벌어졌다. 경찰이 해산시키면 그 자리를 피해서 이곳저곳 도망다니며 공연을 해서 포크 게릴라라는 이름이 붙었다.[28] 윤동주가 일본에서 다녔던 학교 중 하나(다른 하나는 릿쿄대학).[29] 파나소닉의 창업자가 설립에 관여하였다.[30] 교토의 물가는 도쿄와 맞먹을 정도로 비싸다. 그래서 교토에서 대학을 다니는 유학생들은 교토에서 가까운 오사카부 북부, 특히 한큐나 케이한 연선에 방을 두는 경우가 많다.[31] 또한, 교토 출신 작가 이리에 아츠히코의 저서에서는 '내놓을 게 밥에 차를 만 오차즈케(부부즈케)밖에 없는데 꼭 굳이 이딴 것까지 꾸역꾸역 앉아서 쳐먹고 갈 거냐?'라는 식으로 통한다고 한다.[32] 해석하면 '니 일본어는 너무 유치해서 초딩들한테나 통하겠다.' 정도 의미라고.[33] 비슷하게 스테레오타입에서 유래된 국민성 유머로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미국인 전체의 모습은 사실 타 지방의 미국인들이 텍사스 사람들을 떠올리는 모습과 비슷하다.'라는 말도 있다.[34] 나라현 사람들의 스테레오타입은 불상 그 자체로 대표된다. 감정기복도 적지만 겉과 속도 크게 차이가 없다는 이미지이다.[35] 이만기의 고등학교 씨름부 시절 실제 경험담이다.[36] 정작 그 본사는 '교토시'에는 없다. 즉, 인증샷 찍으러 전철 타고 시내에서 30분 이상 걸리는 곳까지 갔다는 것. 사실 교토 애니메이션이 교토 애니메이션인 이유는 본사가 교토에 있어서라기보다는 창업주가 교토에 살았기 때문.[37] <인생은 박치기다!> 中.[38] 쟈니스에게는 안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 교토이다. 그 이유인 즉슨, 사장이 무턱대고 KYO TO KYO라는 이름으로 주니어들을 모아 놓고 공연을 열었다가 망해 이 공연에 참여했던 주니어들이 나중에 회사를 나가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라시의 오노 사토시는 이 힘든 시기를 거쳐서 살아남은 주니어 멤버 중에 하나로, 쟈니스 갤러리에서는 그를 '교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리고 있다.[39] 뼈와 관련된 응급처치와 시술을 하는 곳.[40] 사운드 오브 뮤직 OST "My Favorite Things"[41] 두부를 두유에 넣고 데운 것.[42] 오반자이도 비싼 가게는 비싸다. 가격이 부담되는 사람은 오반자이 바이킹을 이용해 보자.[43] 실제로 교토를 커피 및 빵 맛집 순례를 위해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커피 맛집 구글 리뷰 보면 한국어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44] 참고로 차 음료 소비량 1위는 홋카이도, 2위는 아오모리현, 3위는 이와테현이다.[45]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교토는 소규모 공습은 받았지만 대규모 폭격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는 미국이 의도한 것으로 역사적 문화재가 많고 군수공장이 없어 폭격할 이유를 못 느꼈기 때문에 핵폭탄까지 맞은 공업 도시 히로시마와는 다르게 살아남았다. 덕분에 교토시에는 많은 문화재와 전통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근교의 나라 역시 미국이 대규모 공습을 시행하지 않아 문화재가 잘 남아 있다. 목록에서 진작 빠지기는 했지만 교토도 핵폭탄 투하 후보 목록에 있긴 있었다고 했다. 이런 도시들은 before/after 비교사진을 남기려고 의도적으로 공습이 덜했다고.[46] 교토의 생활 용수 공급을 위한 비와호~교토 간 인공 수로이며, 이 인공수로의 건너편 도로에는 정수장도 있다. 비와호 문서 참조.[47] 만약 신오사카역 주변인데 한큐를 이용해야 된다면 미나미카타역에서 타면 된다. 특급이 안 서지만 아무거나 잡아타고 두 역 이후인 아와지역에 내려서 특급으로 갈아타면 된다.[48] 실제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로마, 이스탄불, 카이로 등, 긴 역사를 가지는 도시들은 교통이 열악한 편이다. 예외가 있다면 시안시 정도인데, 여긴 정부가 까라면 까야 되는 곳인지라...[49] 칸사이 5대 대형 사철 중 난카이와 한신만 빼고 다 들어온다. 킨테츠는 시가지 접근의 경우 교토 역에 조금 걸쳐 있긴 하지만 교토 시 남부 지역(타케다 등)의 경우는 케이한과 함께 아주 꽉 잡고 있다. 난카이도 사카이스지선이 개통되었을 때 들어올 뻔했으나 궤간과 전압차로 인해 무산되었으며 대신에 한큐와 합작해 패스를 내고 있다. 사쿄 구에서는 에이잔 전철도 운행되고 있다.[50] 에이잔 전철은 케이온!에서 코토부키 츠무기가 타고 다니는 바로 그 전철이다.[51] 케이후쿠 전철. '란덴(嵐電)'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하다.[52] 원래 4차선이었지만 인도를 늘리는 공사로 도로를 줄여버려 결국 2차선이 되었다. 4차선일 때에도 택시 자가용 버스가 뒤섞여서 700m를 10분이나 소요하였는데 이 공사로 인해 더욱 느려졌다. 그래서 시 곳곳마다 시조는 제발 우회해 달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53] 고조의 일부는 1번국도로 도쿄-오사카 간인 도카이도다.[54] 교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보조간선도로이며 교토 시영 지하철 카라스마선에서 왼쪽으로 한 블럭 위치에 있다.[55] 지하철은 요금이 높고 배차가 길다. 란덴은 환승역 2개가 하나같이 보통급 정차역이다. 설상가상으로 서부 즉 하나조노 이서로는 버스도 더럽게 안 온다.[56] 단, 교토 서북부에 있는 아라시야마 지역은 예외. 여기는 한큐 아라시야마 지선이 들어오고, 발품을 조금 팔면 JR 사가아라시야마역도 이용 가능하다.[57] 오사카에서 교토까지 거리와 요금을 비교해 볼 때 한큐는 특급 42분에 410엔, JR은 신쾌속 29분에 580엔이다.[58] 대표적으로 주황 205번. 교토 유학생들에게 205번 버스 물어보면 교토대생 빼고 다 안다. 교토역-사이인-금각사-아오이바시-가와라마치-교토역을 잇는 그야말로 황금 노선. 봄에는 히라노 신사(平野神社), 가을에는 토지(東寺) 하차 승객 때문에 미친 듯이 붐빈다.[59] 포스터는 賀茂川育ち(가모가와소다치) 작. 처음엔 두세 명이더니 친구나 누나가 포함되는 등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교토시 교통국이나 교토시 관련 관공서에는 반드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늘어나 기어이는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도 시작되었다고 한다.[60] 교토 시는 내륙이지만 교토부 전체로 보면 북쪽은 동해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교토부 북부에는 마이즈루(舞鶴) 같은 항구도시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일대는 교토시에서도 거리가 멀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데다 시가지도 완전히 분절되어 있기 때문에 교토시와 별개로 친다. 마치 한국에서도 인천광역시 본토와 강화군을 사실상 별개의 지역으로 보듯 말이다.[61] 해안도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타루시가 삿포로 주변 해안가를 띠처럼 얇게 둘러싸고 있어서 내륙도시이다.[62] 당시는 소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