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북마케도니아의 역사에 대해 다르는 문서.
2. 고대[편집]
2.1. 파이오니아[편집]
본래 북마케도니아는 파이오니아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당시 사용되던 토착 언어인 파이오니아어는 아직까지 정확한 계통이 밝혀지지 않은 미분류 언어로 남아있다.
2.2. 마케도니아 왕국[편집]
마케도니아 왕국은 본래 지금의 그리스령 마케도니아(남마케도니아)에 해당되는 지역에서 시작된 그리스계 국가였으나 점차 영토를 확장하며 파이오니아를 병합했고, 이로써 이 지역이 마케도니아 지방의 일부가 되었댜,
2.3. 마케도니아 속주[편집]
3. 중세[편집]
3.1. 동로마 제국과 슬라브족의 대이동 [편집]
중세 초기까지 마케도니아 지방은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남아있었으나, 6세기 이후 슬라브인의 대거 이주하여 슬라브화가 진행되었다.
남마케도니아는 9세기에 중흥을 맞이한 동로마 제국이 수복하면서 다시 그리스계 주민들을 이주시키며 재그리스화가 이루어졌으나, 북마케도니아는 동로마에 수복되지 않고 오랫동안 슬라브인의 땅으로 남았기에 결과적으로 마케도니아가 남부의 그리스계 지역(남마케도니아)와 북부의 슬라브계 지역(북마케도니아)가 영구적으로 별개의 민족 정체성과 언어를 가진 지역으로 갈라지고 현대의 마케도니아 명칭 분쟁까지 야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마케도니아는 9세기에 중흥을 맞이한 동로마 제국이 수복하면서 다시 그리스계 주민들을 이주시키며 재그리스화가 이루어졌으나, 북마케도니아는 동로마에 수복되지 않고 오랫동안 슬라브인의 땅으로 남았기에 결과적으로 마케도니아가 남부의 그리스계 지역(남마케도니아)와 북부의 슬라브계 지역(북마케도니아)가 영구적으로 별개의 민족 정체성과 언어를 가진 지역으로 갈라지고 현대의 마케도니아 명칭 분쟁까지 야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3.2. 불가리아 제1제국[편집]
발칸 반도에 정착한 슬라브계 국가들 가운데 처음 북마케도니아 일대를 장악한 국가는 불가리아 제1제국이었는데, 본래 불가리아는 튀르크계 유목민인 불가르족이 세운 나라였으나 해당 민족이 점차 슬라브화되며 사실상 남슬라브 국가가 되었다.
불가리아 제1제국은 이름처럼 지금의 불가리아 땅에 수도를 뒀으나, 10세기에 본격적인 중흥을 맞이한 동로마 제국에게 본토를 빼앗기자 북마케도니아 일대로 천도하여, 말기 불가리아 제1제국의 수도는 오늘날 북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와 제2의 도시 오흐리드였다.
불가리아 제1제국은 이름처럼 지금의 불가리아 땅에 수도를 뒀으나, 10세기에 본격적인 중흥을 맞이한 동로마 제국에게 본토를 빼앗기자 북마케도니아 일대로 천도하여, 말기 불가리아 제1제국의 수도는 오늘날 북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와 제2의 도시 오흐리드였다.
3.3. 동로마 제국의 재정복[편집]
3.4. 불가리아 제2제국과 세르비아 제국[편집]
1185년 앙겔로스 왕조 치하의 동로마 제국에서 불가리아 제2제국이 독립하는데 성공하자 북마케도니아는 다시 불가리아령이 되었다.
이후 불가리아의 일개 지방으로서 존재하던 북마케도니아는 14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중세 세르비아 왕국이 남진하자 세르비아령이 되었고, 세르비아 국왕 스테판 우로시 4세 두샨이 차르를 칭하고 세르비아 제국을 선포하면서 스코페로 천도하여 북마케도니아는 세르비아의 수도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르비아와 북마케도니아의 전성기는 스테판 두샨 사후 제위를 계승한 스테판 우로시 5세 두샨이 치세에 제국이 공중분해되면서 금방 종결되었고, 14세기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발칸 반도 진출을 시작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불가리아의 일개 지방으로서 존재하던 북마케도니아는 14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중세 세르비아 왕국이 남진하자 세르비아령이 되었고, 세르비아 국왕 스테판 우로시 4세 두샨이 차르를 칭하고 세르비아 제국을 선포하면서 스코페로 천도하여 북마케도니아는 세르비아의 수도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르비아와 북마케도니아의 전성기는 스테판 두샨 사후 제위를 계승한 스테판 우로시 5세 두샨이 치세에 제국이 공중분해되면서 금방 종결되었고, 14세기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발칸 반도 진출을 시작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4. 근세: 오스만령 마케도니아[편집]
5. 근대[편집]
5.1. 마케도니아 내셔널리즘의 발흥[편집]
5.2. 세르비아와 유고슬라비아 왕국[편집]
5.3. 제2차 세계대전[편집]
1941년 추축국의 유고슬라비아 침공 이후 북마케도니아는 불가리아 왕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1944년 불가리아가 추축국에서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나치 독일이 내부 마케도니아 혁명기구의 쿠데타를 사주하여 마케도니아 독립국(바르다르 마케도니아)라는 괴뢰국을 수립했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이미 추축국의 패색이 짙어진 상태였기에 바르다르 마케도니아는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에게 무너졌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이미 추축국의 패색이 짙어진 상태였기에 바르다르 마케도니아는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에게 무너졌다.
6. 현대[편집]
6.1.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편집]
2차 대전 이후 북마케도니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인민 공화국의 구성국 중 하나인 마케도니아 인민 공화국으로 인정받았다가, 다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개칭되었다.
6.2. 마케도니아 공화국[편집]
1990년 유고슬라비아가 내전으로 해체될 당시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먼저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연방 해체를 막으려는 세르비아와 혈전을 치르는 상황을 조용히 관망하다가, 세르비아군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본토에서 철수하고 보스니아 전쟁이 격화될 시기에 독립을 선언했는데, 보스니아에서 전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세르비아가 이를 마지못해 승인하여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무혈 독립에 성공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라는 국호의 사용을 둘러싸고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정통 후계자를 자처하는 나라이자 남마케도니아의 주인인 그리스와 명칭 분쟁이 붉어졌는데[2], 이로 인해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FYROM)이라는 어정쩡한 국호를 사용해야 했으며, 북마케도니아가 유럽 연합과 NATO에 가입하고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데도 장애물로 작용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라는 국호의 사용을 둘러싸고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정통 후계자를 자처하는 나라이자 남마케도니아의 주인인 그리스와 명칭 분쟁이 붉어졌는데[2], 이로 인해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FYROM)이라는 어정쩡한 국호를 사용해야 했으며, 북마케도니아가 유럽 연합과 NATO에 가입하고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데도 장애물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