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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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소닉 パナソニック| Panasonic | |||||
기업명 | 정식: パナソニックホールディングス株式会社 | ||||
영문: Panasonic Holdings Corporation | |||||
한글: 파나소닉 홀딩스 주식회사 | |||||
국가 | |||||
업종명 | 전자제품 제조업 | ||||
설립일 | |||||
설립자 | |||||
대표자 | 쿠스미 유키 (대표이사 사장 CEO) | ||||
임원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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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 6조 8,470억 엔 | ||||
기업규모 | |||||
링크 | |||||
오사카에 위치한 파나소닉 본사 |
1. 개요[편집]
A better Life, A better World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 현행 슬로건. 이전에는 Ideas for life, What's new by Panasonic 등이 사용되었다. |
2. 역사[편집]
2.1. 창업 ~ 2007년[편집]
파일:구내쇼날로고.png
초창기 파나소닉의 전 이름인 나쇼날의 로고. 아래 로고와 혼용해서 쓰기도 했다.
파일:나쇼날 로고.svg
1918년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3]가 전기소켓을 만드는 오사카 전등이라는 회사에서 독립하여 마쓰시타 전기기구 제작소를 만든 것이 효시. 마쓰시타는 포탄형의 자전거 램프를 고안해 '내쇼날 램프'라고 만들어 히트를 친다.[4]
1932년 마쓰시타전기산업주식회사(松下電器産業株式会社)[5]으로 개명.
잘나가던 시절에는 마쓰시타 전공, 마쓰시타 통신공업 등 마쓰시타라는 이름이 붙은 14개의 대기업군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계 40개국에 진출해서 나쇼날(National), 파나소닉(Panasonic), 테크닉스(Technics) 등의 이름으로 다양한 제품을 팔았다. 그룹의 규모가 이리 크다 보니 일본 내 가전제품 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기업으로 손꼽혔다. 비디오테이프 규격을 놓고 VHS와 베타맥스가 격돌할 때 다들 마쓰시타가 어떻게 나서느냐에 따라서 판정이 날 거라고 예측했을 정도. 마쓰시타는 VHS를 선택했고 반드시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그게 표준이 되었다.
1980년대에 제너럴 일렉트릭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가전업체 중 하나로 그 명성을 떨쳤다.
1990년대까지 시가총액 기준으로 일본 최대의 가전업체로 군림하였다. 한때 유니버설 픽처스의 모회사인 MCA를 인수하여 할리우드까지 진출하기도 하였으나 적자를 봐서 매각했다.
1970~90년대의 일본 가전업체 광고를 보면 1970~80년대까지는 내수에서 나쇼날 브랜드를 사용했으며 파나소닉 브랜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나[6], 1990년대 초반부터 A/V 기기를 중심으로 점점 파나소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언젠가부터 하나 둘씩 파나소닉 브랜드로 갈아타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이전에는 나쇼날 브랜드가 널리 알려졌고 1990년대 이후에는 파나소닉 브랜드가 더 많이 알려졌다.[7]
2000년대 초까지 일본 국내에서는 주로 '나쇼날' 브랜드로 판매하고, 국내용 오디오 일부 제품과 해외 수출용 제품은 '파나소닉', 오디오 한정으로 '테크닉스(Technics)' 브랜드를 사용했다.[8]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51379FZRSEL._SL500_AA300_.jpg
SL-SX390 CD 플레이어
가전이 아닌 워크맨, CD플레이어, 찍찍이, 일반/단파 라디오 등 소형 음향기기 시장에서는 소니 다음을 달리는 콩라인 회사[9]였으나 주로 참신함보다는 견실함을 내세우는 점때문에 내구성 측면에서 소니 제품보다는 이쪽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었다.[10] 또한 바이브레이션 기능의 이어폰이라든가 특징 있는 상품도 있었기에 일부 사용자에게는 기능 측면에서 선호받기도 하였다. 이 시장에서 파나소닉은 소니의 카피캣 이미지가 있었다. 소니가 개발한 신상품을 재빠르게 연구하여 유사상품을 내놓는 식. 이를 두고 소니는 '마쓰시타의 연구소/실험실/모르모트'라는 별칭을 얻었었다고. 소니처럼 탁상시계 겸 라디오(드림 머신)를 만든 적이 있는데, 특이하게 플립식 시계를 장착한 기종이 몇 있었다.
파나소닉 본체의 전신인 마쓰시타 전기산업 이외의 주력 계열사로는 마쓰시타 전공(현재는 본사에 합병)과 마쓰시타 통신공업(현 파나소닉 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이 있었다. 마쓰시타 통신공업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앞으로 가전용이 아닌 산업, 업무용 전자제품의 수요가 증대할 것이라는 예견에 따라 1958년에 설립되었다. 설립 후 자산내용, 수익 등에 있어서 줄곳 마쓰시타 그룹의 우등생으로 군림. 간사이(關西) 지방에 본부를 둔 그룹의 약점을 보강하기 위하여 도쿄권인 요코하마에 본사를 둔 마쓰시타 통신공업은 ‘이용자를 위한 하이테크형 효율기업’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주로 통신기기, 정보기기를 생산하여 2000년 초반에는 일본 국내 이동통신 단말기 부문에서 NEC와 쌍벽을 이루기도 했다. 다만 NEC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사업에 적응이 늦어져 현재는 산업용 단말기만 취급하는 상황.
파나소닉은 전자산업 초창기부터 전자 소비재들,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개발도상국의 중소기업이나 만들법한 물건까지 나쇼날(파나소닉) 브랜드로 만들어 팔았다. 가령 소니는 백색가전 제품을 만들지 않으며 다른 종합전자회사[11]도 뭔가 몇 가지는 빠지거나 미약한 부문이 있었는데, 파나소닉은 TV, VCR, 오디오 등의 영상/음향가전, 냉장고, 세탁기 등의 백색가전은 물론 커피포트, 헤어드라이어, 전기밥통, 탁상시계[12], 안마의자, 전기 다리미, 전기면도기, 정수기, 건전지, 오디오/비디오 테이프, 가정용 전화기, 복사기, 팩시밀리, 워드프로세서, MSX PC 등 정말 소비재 전자분야의 거의 모든 것을 만들었다.[13] 심지어 일본 내수용은 엘리베이터[14]에다가 심지어 바지에 자동으로 줄 잡는 기계 등 정말 황당한 것까지 제조했을 정도인데 이정도로 전자분야에서 제품군이 문어발인 것은 파나소닉이 유일하다.[15] 또한 유통망 또한 전국에 수만개의 대리점(나쇼날 샵) 네트워크를 유지했다. 그러다보니 일본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전자기업으로 인정받는다.
이런 광활한 제품군을 대부분 자사의 기술력으로 직접 생산했기 때문에[16] 전자부품 쪽으로도 강자였으며, 이는 나중에 파나소닉이 B2B 사업위주로 과감히 나갈 수 있게끔 해준 원천이 되었다.[18]
초창기 파나소닉의 전 이름인 나쇼날의 로고. 아래 로고와 혼용해서 쓰기도 했다.
파일:나쇼날 로고.svg
1918년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3]가 전기소켓을 만드는 오사카 전등이라는 회사에서 독립하여 마쓰시타 전기기구 제작소를 만든 것이 효시. 마쓰시타는 포탄형의 자전거 램프를 고안해 '내쇼날 램프'라고 만들어 히트를 친다.[4]
1932년 마쓰시타전기산업주식회사(松下電器産業株式会社)[5]으로 개명.
잘나가던 시절에는 마쓰시타 전공, 마쓰시타 통신공업 등 마쓰시타라는 이름이 붙은 14개의 대기업군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계 40개국에 진출해서 나쇼날(National), 파나소닉(Panasonic), 테크닉스(Technics) 등의 이름으로 다양한 제품을 팔았다. 그룹의 규모가 이리 크다 보니 일본 내 가전제품 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기업으로 손꼽혔다. 비디오테이프 규격을 놓고 VHS와 베타맥스가 격돌할 때 다들 마쓰시타가 어떻게 나서느냐에 따라서 판정이 날 거라고 예측했을 정도. 마쓰시타는 VHS를 선택했고 반드시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그게 표준이 되었다.
1980년대에 제너럴 일렉트릭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가전업체 중 하나로 그 명성을 떨쳤다.
1990년대까지 시가총액 기준으로 일본 최대의 가전업체로 군림하였다. 한때 유니버설 픽처스의 모회사인 MCA를 인수하여 할리우드까지 진출하기도 하였으나 적자를 봐서 매각했다.
1970~90년대의 일본 가전업체 광고를 보면 1970~80년대까지는 내수에서 나쇼날 브랜드를 사용했으며 파나소닉 브랜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나[6], 1990년대 초반부터 A/V 기기를 중심으로 점점 파나소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언젠가부터 하나 둘씩 파나소닉 브랜드로 갈아타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이전에는 나쇼날 브랜드가 널리 알려졌고 1990년대 이후에는 파나소닉 브랜드가 더 많이 알려졌다.[7]
2000년대 초까지 일본 국내에서는 주로 '나쇼날' 브랜드로 판매하고, 국내용 오디오 일부 제품과 해외 수출용 제품은 '파나소닉', 오디오 한정으로 '테크닉스(Technics)' 브랜드를 사용했다.[8]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51379FZRSEL._SL500_AA300_.jpg
SL-SX390 CD 플레이어
가전이 아닌 워크맨, CD플레이어, 찍찍이, 일반/단파 라디오 등 소형 음향기기 시장에서는 소니 다음을 달리는 콩라인 회사[9]였으나 주로 참신함보다는 견실함을 내세우는 점때문에 내구성 측면에서 소니 제품보다는 이쪽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었다.[10] 또한 바이브레이션 기능의 이어폰이라든가 특징 있는 상품도 있었기에 일부 사용자에게는 기능 측면에서 선호받기도 하였다. 이 시장에서 파나소닉은 소니의 카피캣 이미지가 있었다. 소니가 개발한 신상품을 재빠르게 연구하여 유사상품을 내놓는 식. 이를 두고 소니는 '마쓰시타의 연구소/실험실/모르모트'라는 별칭을 얻었었다고. 소니처럼 탁상시계 겸 라디오(드림 머신)를 만든 적이 있는데, 특이하게 플립식 시계를 장착한 기종이 몇 있었다.
파나소닉 본체의 전신인 마쓰시타 전기산업 이외의 주력 계열사로는 마쓰시타 전공(현재는 본사에 합병)과 마쓰시타 통신공업(현 파나소닉 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이 있었다. 마쓰시타 통신공업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앞으로 가전용이 아닌 산업, 업무용 전자제품의 수요가 증대할 것이라는 예견에 따라 1958년에 설립되었다. 설립 후 자산내용, 수익 등에 있어서 줄곳 마쓰시타 그룹의 우등생으로 군림. 간사이(關西) 지방에 본부를 둔 그룹의 약점을 보강하기 위하여 도쿄권인 요코하마에 본사를 둔 마쓰시타 통신공업은 ‘이용자를 위한 하이테크형 효율기업’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주로 통신기기, 정보기기를 생산하여 2000년 초반에는 일본 국내 이동통신 단말기 부문에서 NEC와 쌍벽을 이루기도 했다. 다만 NEC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사업에 적응이 늦어져 현재는 산업용 단말기만 취급하는 상황.
파나소닉은 전자산업 초창기부터 전자 소비재들,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개발도상국의 중소기업이나 만들법한 물건까지 나쇼날(파나소닉) 브랜드로 만들어 팔았다. 가령 소니는 백색가전 제품을 만들지 않으며 다른 종합전자회사[11]도 뭔가 몇 가지는 빠지거나 미약한 부문이 있었는데, 파나소닉은 TV, VCR, 오디오 등의 영상/음향가전, 냉장고, 세탁기 등의 백색가전은 물론 커피포트, 헤어드라이어, 전기밥통, 탁상시계[12], 안마의자, 전기 다리미, 전기면도기, 정수기, 건전지, 오디오/비디오 테이프, 가정용 전화기, 복사기, 팩시밀리, 워드프로세서, MSX PC 등 정말 소비재 전자분야의 거의 모든 것을 만들었다.[13] 심지어 일본 내수용은 엘리베이터[14]에다가 심지어 바지에 자동으로 줄 잡는 기계 등 정말 황당한 것까지 제조했을 정도인데 이정도로 전자분야에서 제품군이 문어발인 것은 파나소닉이 유일하다.[15] 또한 유통망 또한 전국에 수만개의 대리점(나쇼날 샵) 네트워크를 유지했다. 그러다보니 일본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전자기업으로 인정받는다.
이런 광활한 제품군을 대부분 자사의 기술력으로 직접 생산했기 때문에[16] 전자부품 쪽으로도 강자였으며, 이는 나중에 파나소닉이 B2B 사업위주로 과감히 나갈 수 있게끔 해준 원천이 되었다.[18]
2.2. 2008년 이후[편집]
2008년 이후 마쓰시타와 나쇼날이라는 일본식 이름을 버리고 일본 안팎에서 더 알려진 이름인 파나소닉으로 사명을 정식으로 변경한다. 단,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도 여전히 마쓰시타, 마쓰시타 전기산업 명칭을 유지하고 있는데(현지발음으로는 쑹샤) '파나소닉'을 한자로 발음이 되게 쓰는 것 보다는 기존처럼 한자로 소나무 송, 아래 하 자(松下)를 쓰는 게 훨씬 간편하기 때문이다.[19]
사명 변경 후 다방면으로 사세 확장을 꾀하였으나 하필이면 세계 경제 위기와 맞물려 백색가전 업계 전체가 불황을 겪었다.
2009년 12월 6600억엔(약 7조원)을 들여 산요를 인수했다. 당시 리튬이온전지 시장 선두를 달리고 있던 산요를 인수해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 때문에 인수금 약 80%인 5180억엔(5조2천억원)이 무형의 가치인 사업권을 사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파나소닉은 지난해 이 금액 중 2500억엔(2조5천억원)을 손실 처리하고 1위를 달리던 산요의 리튬이온전지 사업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그 가치가 급락한 것인데, 결국 2500억엔은 고스란히 적자에 반영됐다고 한다.
2010년 경 중국 회사 하이얼에 백색가전업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위기에 봉착했다. 물론 이 계열사는 파나소닉이 과거 인수했던 산요전기의 해당 사업부문이 모태여서, 산 걸 되팔았을 뿐이라 결정적인 위기 요인은 아니었다.
2010년 이후 파나소닉의 모태인 TV/AV 가전사업부문도 삼성전자, LG전자의 TV 판매량에 명확하게 밀리며 세계 판매량 4위권으로 내려앉았기에 그 충격은 작지 않았다. 게다가 경영의 신으로 대단한 존경을 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이름까지 버림으로써 기업 이미지와 네임 밸류에도 손상이 갔다고 한다.
2011년 그룹 전체로는 엔고와 가격 및 기술 경쟁력 저하로 인하여 7천 8백억엔(약 8조 원) 규모의 어머어마한 적자를 기록했다.# 2012년에도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아, 2012회계연도의 순손실이 7,650억엔(약 7조 8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2년간의 적자액은 지난 20년간 벌어들인 순이익 전체와 맞먹는 금액이다. 파나소닉 주가 31년 전 수준으로 추락
2012년 기준으로 소니가 소형 음향기기 시장에서 명맥이라도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파나소닉은 거의 철수에 가까운 상태다. 단적인 예로 전성기였던 90년대에는 휴대용 라디오 발매 모델 수가 소니와 견줄만 했으나, 2010년 이후엔 정말 손으로 꼽을 지경. 그래도 2012년에도 극소수의 기종이나마 인도네시아 현지 직영공장에서 생산 중이지만. 물론 소니의 경우 특히 라디오 시장, 그중에서 일본 내수 라디오 시장은 은근히 캐시카우라 그룹 차원에서 장려하고 있는 덕분이다. 소니의 모 일본계 협력업체의 중국현지법인 사이트에 따르면 생산량이 1년에 무려 800만대 가량이 된다고 한다. 이는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소니쪽은 특유의 음색때문에 아직도 찾는 매니아가 있는 반면(따라서 지금도 꾸준히 발매 중)에 파나소닉은 제품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2012년 시점에서 파나소닉의 주력 사업부문은 TV/AV 부문이며 그중에서도 TV에서 아직 사세를 떨치고 있다. 점유율 부문에선 내려 앉았지만 세계 최대 TV시장이자 품질 평가의 척도가 되는 북미 시장에서 화질 좋은 TV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등 품질은 인정받는 상태다.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7천542억엔(7조5천억원)의 적자를 냈다.
토요타, 소니, 샤프를 비롯한 다른 일본 기업들도 엔화약세 덕분에 실적과 주가가 급격히 치솟으며 부활하는 모습이다. 인력 감축과 같은 강도높은 구조조정 노력과 함께, 엔저의 효과가 상상 이상으로 컸다는 평가. 다만 이러한 비용 절감에 따른 실적 개선은 근본적인 해법이 되어주진 못하며, 장기 성장동력의 부재라는 취약점은 여전하므로 아직은 지켜볼 일이다.
2014년 2분기 - 2015년 1분기 결산에서는 무려 3,800억엔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며 과거의 명성에 맞는 파나소닉으로 이름값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 중국기업들이 전기차 배터리 부분에서 어느새 파나소닉을 따라오며 위협하고 있다. LG화학은 파나소닉을 점유율에서 바싹 추격하기 시작했으며 그와 별개로 일본 내의 다른 기업들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거기에 테슬라가 배터리 공급을 다변화하기 시작한 만큼 안심할 것은 아닌 상황.
일찍이 파나소닉은 B2B 기업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 2013년부터 흑자를 회복했으나 이후로 좀체 매출이 증가하지 않자 추가적인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제는 수익이 나지 않는 6개 사업부를 대상으로 2017년 상반기에서 2018년에 걸쳐 구조조정을 단행한다고 보도했다. 우선 전화교환기·광디스크 사업부를 완전히 해체하고, 관련 인력을 모두 내보내기로 했다. 디지털카메라 사업부는 가전으로 통합시켰다. 또 효고현의 액정패널 생산설비와 주택용 태양광 설비를 매각한다. 반도체 자회사는 이스라엘의 합작회사에 지분을 파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리고 자동차와 주택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감행하여 매출 10조 엔, B2B 사업의 비중이 80% 이상(자동차 부문 2조 엔, 주택 부문 2조 엔, B2B솔루션 부문 2조 5,000억엔)인 New 파나소닉으로의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2017년 9월 시점에서 파나소닉은 완전히 부활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3~2016년 내내 3~4조원의 막대한 영업이익을 냈고 17년 1분기에도 8,000억이 넘었다. 실적을 놓고 보면 그야말로 초우량 대기업. 연간 영업이익 3~4조원이면 한국 대기업중에서는 현대자동차, LG전자, SK하이닉스 정도만이 비견할 만한 수준이다. 사업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도 기존의 B2C 기업에서 B2B 기업으로 180도 변신했는데 예를 들어 파나소닉은 폭발적인 성장이 거의 확실시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확고한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배터리 뿐만 아니라 LG가 그룹 전사적으로 명운을 걸고 육성 중인 자동차 부품(전장) 분야에서 LG보다 훨씬 먼저 두각을 드러내고 있고 그 외에 주택설비 및 조명, 태양광·에너지 솔루션 등 다양한 사업에서 뛰어난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 2분기(일본 회계연도 2019 1분기) 실적은 전년 동시기에 비해 악화됐다. 엔고 등 악재가 겹쳐 영업이익이 무려 44% 정도 줄어들면서 약 560억엔(6,100억원)을 기록했고 순이익은 13% 감소해서 약 500억엔(5,400억원)을 기록했다. B2B 사업 특히 전장, 배터리 사업이 적자를 기록했으며 에어컨같은 가전과 건축 및 내수용 라이프 솔루션에서 주된 이익이 나왔다. 이 정도면 같은 시기에 6천억원대 초중반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LG전자와 비교할만 하다. 수 조원씩 적자보던 시절보다야 낫긴 하지만 라이벌인 소니가 비디오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 그리고 이미지센서 판매로 매 분기 2~3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것과 비교하면 완전한 부활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애매모호한 상황이 됐다. 참고로 2019년 3월 결산기(2018년 4월~2019년 3월) 소니의 연간 영업이익은 약 10조 원이다. 2019 연간실적으로는 매출이 6% 감소한 7.5조엔, 영업이익이 30% 감소한 2,938억엔으로 마무리되었으며, 대부분 사업부의 이익이 감소하고 자동차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오토모티브 사업부는 최종적자를 봤다.
2020년 2월 말 기준으로 작성된 기사를 보면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수구적인 일본 기업문화의 단점을 상당부분 타파했기 때문에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소니와는 방향을 다르게 간 부분이 많은 파나소닉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알 수 있는 글이다. 아직은 여전히 매출액 영업이익 모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하이닉스와 비슷한 수준의 대기업이지만, 체력이 남아있을 얼마동안 거대한 대기업을 먹여살릴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사업 종목을 찾지 못하면 현재 앞으로의 전망이 별로 안 좋은 파나소닉의 상황이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이 하는 예상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소니의 경우 게임이나 이미지 센서가 그룹 자체를 턴어라운드시키는 기반이 되었지만 도시바의 원전 사업이나 샤프의 디스플레이 사업은 아예 회사를 빈사상태로 몰아넣기도 했으므로 자동차 배터리 등 현재 파나소닉에서 성장세를 기대하는 사업이 향후 어떤 영향을 줄 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2021년 5월 기준으로 작성된 기사에 따르면 내년 4월 지주사 전환을 앞두고 새 엔지니어 출신 55세인 구스미 유키 사장 취임에 따른 경영쇄신과 젊은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50세 이상 또는 10년 이상 장기근속자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있으며 퇴직금으로 4000만 엔[20]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영업이익은 전년의 3조원을 밑돌았으나 그래도 2조원 후반을 기록하고 있다. 파나소닉의 전망에 따르면 2021년 영업이익은 3조원대로 회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22년 4월 1일 "파나소닉 홀딩스"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산하에 8개 회사(파나소닉, 파나소닉 오토모티브 시스템즈, 파나소닉 엔터테인먼트&커뮤니케이션, 파나소닉 하우징 솔루션즈, 파나소닉 커넥트, 파나소닉 인더스트리, 파나소닉 에너지, 오퍼레이셔널 엑설런스)를 두고 있다.
사명 변경 후 다방면으로 사세 확장을 꾀하였으나 하필이면 세계 경제 위기와 맞물려 백색가전 업계 전체가 불황을 겪었다.
2009년 12월 6600억엔(약 7조원)을 들여 산요를 인수했다. 당시 리튬이온전지 시장 선두를 달리고 있던 산요를 인수해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 때문에 인수금 약 80%인 5180억엔(5조2천억원)이 무형의 가치인 사업권을 사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파나소닉은 지난해 이 금액 중 2500억엔(2조5천억원)을 손실 처리하고 1위를 달리던 산요의 리튬이온전지 사업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그 가치가 급락한 것인데, 결국 2500억엔은 고스란히 적자에 반영됐다고 한다.
2010년 경 중국 회사 하이얼에 백색가전업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위기에 봉착했다. 물론 이 계열사는 파나소닉이 과거 인수했던 산요전기의 해당 사업부문이 모태여서, 산 걸 되팔았을 뿐이라 결정적인 위기 요인은 아니었다.
2010년 이후 파나소닉의 모태인 TV/AV 가전사업부문도 삼성전자, LG전자의 TV 판매량에 명확하게 밀리며 세계 판매량 4위권으로 내려앉았기에 그 충격은 작지 않았다. 게다가 경영의 신으로 대단한 존경을 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이름까지 버림으로써 기업 이미지와 네임 밸류에도 손상이 갔다고 한다.
2011년 그룹 전체로는 엔고와 가격 및 기술 경쟁력 저하로 인하여 7천 8백억엔(약 8조 원) 규모의 어머어마한 적자를 기록했다.# 2012년에도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아, 2012회계연도의 순손실이 7,650억엔(약 7조 8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2년간의 적자액은 지난 20년간 벌어들인 순이익 전체와 맞먹는 금액이다. 파나소닉 주가 31년 전 수준으로 추락
2012년 기준으로 소니가 소형 음향기기 시장에서 명맥이라도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파나소닉은 거의 철수에 가까운 상태다. 단적인 예로 전성기였던 90년대에는 휴대용 라디오 발매 모델 수가 소니와 견줄만 했으나, 2010년 이후엔 정말 손으로 꼽을 지경. 그래도 2012년에도 극소수의 기종이나마 인도네시아 현지 직영공장에서 생산 중이지만. 물론 소니의 경우 특히 라디오 시장, 그중에서 일본 내수 라디오 시장은 은근히 캐시카우라 그룹 차원에서 장려하고 있는 덕분이다. 소니의 모 일본계 협력업체의 중국현지법인 사이트에 따르면 생산량이 1년에 무려 800만대 가량이 된다고 한다. 이는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소니쪽은 특유의 음색때문에 아직도 찾는 매니아가 있는 반면(따라서 지금도 꾸준히 발매 중)에 파나소닉은 제품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2012년 시점에서 파나소닉의 주력 사업부문은 TV/AV 부문이며 그중에서도 TV에서 아직 사세를 떨치고 있다. 점유율 부문에선 내려 앉았지만 세계 최대 TV시장이자 품질 평가의 척도가 되는 북미 시장에서 화질 좋은 TV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등 품질은 인정받는 상태다.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7천542억엔(7조5천억원)의 적자를 냈다.
토요타, 소니, 샤프를 비롯한 다른 일본 기업들도 엔화약세 덕분에 실적과 주가가 급격히 치솟으며 부활하는 모습이다. 인력 감축과 같은 강도높은 구조조정 노력과 함께, 엔저의 효과가 상상 이상으로 컸다는 평가. 다만 이러한 비용 절감에 따른 실적 개선은 근본적인 해법이 되어주진 못하며, 장기 성장동력의 부재라는 취약점은 여전하므로 아직은 지켜볼 일이다.
2014년 2분기 - 2015년 1분기 결산에서는 무려 3,800억엔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며 과거의 명성에 맞는 파나소닉으로 이름값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 중국기업들이 전기차 배터리 부분에서 어느새 파나소닉을 따라오며 위협하고 있다. LG화학은 파나소닉을 점유율에서 바싹 추격하기 시작했으며 그와 별개로 일본 내의 다른 기업들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거기에 테슬라가 배터리 공급을 다변화하기 시작한 만큼 안심할 것은 아닌 상황.
일찍이 파나소닉은 B2B 기업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 2013년부터 흑자를 회복했으나 이후로 좀체 매출이 증가하지 않자 추가적인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제는 수익이 나지 않는 6개 사업부를 대상으로 2017년 상반기에서 2018년에 걸쳐 구조조정을 단행한다고 보도했다. 우선 전화교환기·광디스크 사업부를 완전히 해체하고, 관련 인력을 모두 내보내기로 했다. 디지털카메라 사업부는 가전으로 통합시켰다. 또 효고현의 액정패널 생산설비와 주택용 태양광 설비를 매각한다. 반도체 자회사는 이스라엘의 합작회사에 지분을 파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리고 자동차와 주택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감행하여 매출 10조 엔, B2B 사업의 비중이 80% 이상(자동차 부문 2조 엔, 주택 부문 2조 엔, B2B솔루션 부문 2조 5,000억엔)인 New 파나소닉으로의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2017년 9월 시점에서 파나소닉은 완전히 부활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3~2016년 내내 3~4조원의 막대한 영업이익을 냈고 17년 1분기에도 8,000억이 넘었다. 실적을 놓고 보면 그야말로 초우량 대기업. 연간 영업이익 3~4조원이면 한국 대기업중에서는 현대자동차, LG전자, SK하이닉스 정도만이 비견할 만한 수준이다. 사업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도 기존의 B2C 기업에서 B2B 기업으로 180도 변신했는데 예를 들어 파나소닉은 폭발적인 성장이 거의 확실시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확고한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배터리 뿐만 아니라 LG가 그룹 전사적으로 명운을 걸고 육성 중인 자동차 부품(전장) 분야에서 LG보다 훨씬 먼저 두각을 드러내고 있고 그 외에 주택설비 및 조명, 태양광·에너지 솔루션 등 다양한 사업에서 뛰어난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 2분기(일본 회계연도 2019 1분기) 실적은 전년 동시기에 비해 악화됐다. 엔고 등 악재가 겹쳐 영업이익이 무려 44% 정도 줄어들면서 약 560억엔(6,100억원)을 기록했고 순이익은 13% 감소해서 약 500억엔(5,400억원)을 기록했다. B2B 사업 특히 전장, 배터리 사업이 적자를 기록했으며 에어컨같은 가전과 건축 및 내수용 라이프 솔루션에서 주된 이익이 나왔다. 이 정도면 같은 시기에 6천억원대 초중반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LG전자와 비교할만 하다. 수 조원씩 적자보던 시절보다야 낫긴 하지만 라이벌인 소니가 비디오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 그리고 이미지센서 판매로 매 분기 2~3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것과 비교하면 완전한 부활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애매모호한 상황이 됐다. 참고로 2019년 3월 결산기(2018년 4월~2019년 3월) 소니의 연간 영업이익은 약 10조 원이다. 2019 연간실적으로는 매출이 6% 감소한 7.5조엔, 영업이익이 30% 감소한 2,938억엔으로 마무리되었으며, 대부분 사업부의 이익이 감소하고 자동차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오토모티브 사업부는 최종적자를 봤다.
2020년 2월 말 기준으로 작성된 기사를 보면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수구적인 일본 기업문화의 단점을 상당부분 타파했기 때문에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소니와는 방향을 다르게 간 부분이 많은 파나소닉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알 수 있는 글이다. 아직은 여전히 매출액 영업이익 모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하이닉스와 비슷한 수준의 대기업이지만, 체력이 남아있을 얼마동안 거대한 대기업을 먹여살릴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사업 종목을 찾지 못하면 현재 앞으로의 전망이 별로 안 좋은 파나소닉의 상황이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이 하는 예상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소니의 경우 게임이나 이미지 센서가 그룹 자체를 턴어라운드시키는 기반이 되었지만 도시바의 원전 사업이나 샤프의 디스플레이 사업은 아예 회사를 빈사상태로 몰아넣기도 했으므로 자동차 배터리 등 현재 파나소닉에서 성장세를 기대하는 사업이 향후 어떤 영향을 줄 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2021년 5월 기준으로 작성된 기사에 따르면 내년 4월 지주사 전환을 앞두고 새 엔지니어 출신 55세인 구스미 유키 사장 취임에 따른 경영쇄신과 젊은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50세 이상 또는 10년 이상 장기근속자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있으며 퇴직금으로 4000만 엔[20]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영업이익은 전년의 3조원을 밑돌았으나 그래도 2조원 후반을 기록하고 있다. 파나소닉의 전망에 따르면 2021년 영업이익은 3조원대로 회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22년 4월 1일 "파나소닉 홀딩스"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산하에 8개 회사(파나소닉, 파나소닉 오토모티브 시스템즈, 파나소닉 엔터테인먼트&커뮤니케이션, 파나소닉 하우징 솔루션즈, 파나소닉 커넥트, 파나소닉 인더스트리, 파나소닉 에너지, 오퍼레이셔널 엑설런스)를 두고 있다.
3. 사업 분야[편집]
- Appliances
파나소닉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가전사업부. TV, 공조·냉동장치, 소형가전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가전업체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일반 소비자용(B2C) 가전제품보다도 약품 보관용·상업용 대형 냉장고, 빌딩 공조시스템, 칠러(chiller)[22], 빌트인(Built-in) 같은 B2B 시장이나 터보, 컴프레서 등의 부품이 크게 성장했다. 23조원의 매출과 1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 AVC Networks
영상·촬영·음향기기 분야. 일반 소비자용 카메라부터 전문 방송·촬영용 장비, 기업용 프로젝터, 화상 회의 시스템, 보안·감시 목적의 CCTV 등을 제작·판매하고 있다. 10조원의 매출과 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파나소닉 중국산 라디오, 카세트는 이쪽 계통을 통해 생산된 것.[23]
- Automotive & Industrial Systems
자동차용 전장 및 전기차 배터리, 그리고 산업용 설비 등을 포함하고 있다. 자동차용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전기차용 이차전지 시장에서 수년째 세계 1위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매출 25조원, 영업이익 1조 1천억원. 자동차 관련 제품의 매출총액은 8조 6천억원이다.[24] 아무래도 일반 대중에게 더 익숙할 만한 것은 자동차 부품류이나 그보다는 현대적 공장과 설비에 필수적인 각종 콘덴터, 레지스터, 인덕터, 모터, 온갖 종류의 센서들, 입력장치, 산업용 배터리, 전자 소재·재료 등이 주력이라고 볼 수 있다.참고
- Others
기타 제품. 건설 자회사인 파나홈이 Others 부분에 속한다. 6조 5천억의 매출과 800억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3.1. TV[편집]
파나소닉의 TV 브랜드인 비에라(Viera)는 PDP/LCD/포터블TV 제품군을 아우르는 명칭으로 일본 내 TV/AV 시장점유율 면에선 전부문에서 최상위권에 들어 왔다. 흔히 소니가 일본 내 TV시장 점유율 1위인 줄로 아는 분이 많으나 TV를 비롯하여 BD/DVD 레코더 점유율에서 파나소닉이 소니보다 앞서 있다. 2010년 이전에는 CRT나 PDP 점유율이 높은 파나소닉이 일본 내수에서 1위를 달려 왔으며, 이후에는 LCD에 강세였던 샤프가 1위, 그 다음이 파나소닉인 정도였다. 다만 금액 점유율에서는 소니의 단가가 높아 세 회사가 엎치락 뒤치락 하며, 해외 시장에서 강세인 소니가 세계 점유율에서는 앞서는 경향을 보인다. 파나소닉에서는 카트리지가 달린(타입 4) DVD-RAM 미디어도 만들고 있으며, 대한민국 오픈마켓에서 유통되는 DVD-RAM 미디어는 해외직구를 제외한다면 100% 파나소닉의 것이다.
파나소닉은 PDP 기술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한 회사이다. 전세계 TV시장이 LCD 위주로 사실상 일원화된 이후에도 상당히 오랜 기간 PDP를 고집해 왔으며 심지어 2011년까지 증설공장 투자를 지속했다.
과거 품질면에서 파이오니어 PDP에 항상 밀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나 파이오니어가 2008~2009년 사업분기를 끝으로 PDP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한 이래 파이오니어 PDP사업부의 인력과 일부 라인을 흡수, 생산량과 품질면에서 성장을 이루었다. 다만 이 시점엔 이미 PDP TV 자체가 황혼기여서 TV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는 기여하지 못하였으며, 반대로 타이밍을 착각한 대규모 시설투자로 인해[25] 대규모 결손을 면치 못했다.
결국 2013년 3월, 이후 3년간 PDP 생산을 축소-종료하는 계획안을 발표. 신제품 역시 2013년 모델을 끝으로 더이상 내지 않음을 천명하며 PDP 사업을 완전히 종료함을 공표했다. LCD 또한 PDP의 부진을 맞아 뒤늦게 히타치등과의 합작법인이었던 IPS알파를 인수하여 히메지 공장을 건설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으나 마찬가지로 별다른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2021년 LCD 생산에서 철수하게 된다.
대신하여 파나소닉은 소니와 제휴하여 개발중인 AMOLED TV 중심으로 재편되며 2014년에 실 판매품을 내놓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2015년에는 소니와 OLED사업을 통합해 JOLED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다만 JOLED는 대형 패널의 생산이 불가능하며 2020년 현재 판매중인 OLED TV의 패널은 전량 LG디스플레이에서 공급받고 있다.
참고로 브라운관 시절에는 모토로라의 TV사업부를 인수한 적도 있다. 이때 브랜드는 요코즈나(ヨコヅナ)와 화왕(画王) 그리고 타우(タウ, T)
"日파나소닉도 TV사업 축소 中 TCL에 생산 위탁" 2021년 이후 파나소닉은 가격 경쟁이 격화된 중소형 TV 생산을 중국 TCL에 위탁해 생산 비용 감소를 노린다. 그러나 대형액정 TV 와 LCD TV 등 가격대가 높은 제품과 일부 중형 TV는 파나소닉이 계속 생산하기로 했다.
파나소닉은 PDP 기술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한 회사이다. 전세계 TV시장이 LCD 위주로 사실상 일원화된 이후에도 상당히 오랜 기간 PDP를 고집해 왔으며 심지어 2011년까지 증설공장 투자를 지속했다.
과거 품질면에서 파이오니어 PDP에 항상 밀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나 파이오니어가 2008~2009년 사업분기를 끝으로 PDP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한 이래 파이오니어 PDP사업부의 인력과 일부 라인을 흡수, 생산량과 품질면에서 성장을 이루었다. 다만 이 시점엔 이미 PDP TV 자체가 황혼기여서 TV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는 기여하지 못하였으며, 반대로 타이밍을 착각한 대규모 시설투자로 인해[25] 대규모 결손을 면치 못했다.
결국 2013년 3월, 이후 3년간 PDP 생산을 축소-종료하는 계획안을 발표. 신제품 역시 2013년 모델을 끝으로 더이상 내지 않음을 천명하며 PDP 사업을 완전히 종료함을 공표했다. LCD 또한 PDP의 부진을 맞아 뒤늦게 히타치등과의 합작법인이었던 IPS알파를 인수하여 히메지 공장을 건설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으나 마찬가지로 별다른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2021년 LCD 생산에서 철수하게 된다.
대신하여 파나소닉은 소니와 제휴하여 개발중인 AMOLED TV 중심으로 재편되며 2014년에 실 판매품을 내놓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2015년에는 소니와 OLED사업을 통합해 JOLED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다만 JOLED는 대형 패널의 생산이 불가능하며 2020년 현재 판매중인 OLED TV의 패널은 전량 LG디스플레이에서 공급받고 있다.
참고로 브라운관 시절에는 모토로라의 TV사업부를 인수한 적도 있다. 이때 브랜드는 요코즈나(ヨコヅナ)와 화왕(画王) 그리고 타우(タウ, T)
"日파나소닉도 TV사업 축소 中 TCL에 생산 위탁" 2021년 이후 파나소닉은 가격 경쟁이 격화된 중소형 TV 생산을 중국 TCL에 위탁해 생산 비용 감소를 노린다. 그러나 대형액정 TV 와 LCD TV 등 가격대가 높은 제품과 일부 중형 TV는 파나소닉이 계속 생산하기로 했다.
3.2. 라디오[편집]
내쇼날-파나소닉 단파라디오 RF-5000 |
- 상세한 내용은 파나소닉/라디오 참조.
3.3. 휴대용 카세트[편집]
3.4. 카메라[편집]
포서드 시스템 DSLR 카메라인 DMC-L1 |
디지털 카메라 초창기부터 Lumix 브랜드로 지속적으로 제품을 출시했으며, 라이카와 지속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파나소닉이 라이카 브랜드의 렌즈를 사용하고, 한편으로는 라이카가 파나소닉의 제품을 리브랜딩해서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올림푸스와 협업하여 포서드 DSLR 시스템을 개발하였으며, 그 뒤로 최초의 미러리스 시스템인 마이크로 포서드의 개발을 선도하였다. 한편 DMC-CM1등의 휴대전화-디지털 카메라 하이브리드 제품도 개발하였다.
2017년 상반기 내에 디지털 카메라 사업에서 전면 철수할 계획이라는 오보가 있었으나, 파나소닉은 이를 공식적으로 부정하였으며 그 뒤로도 마이크로 포서드 제품군과 고사양 영상장비 등을 계속 출시하고 있다. 2019년 2월에는 풀프레임 미러리스 시스템인 루믹스 S 시리즈를 발표하였다.
그 외에도 Varicam, PTZ카메라, 스튜디오 카메라 등 방송/영화를 위한 전문가용 카메라 역시 꾸준히 판매해 오고 있다.
DV가 한창 현역이던 시절인 2002년에 출시했던 중형 핸드헬드 캠코더인 AG-DVX100가 NTSC권의 저예산 독립영화 업계에서 꽤 기념비적인 모델로 꼽히는데, 프로슈머급 캠코더 중에서 최초로 필름 룩 24p를 지원하는[26]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3.5. 전기면도기[편집]
람대쉬 ES-LV97 면도기 |
람대쉬(LAMDASH)라는 브랜드로 전기면도기를 만든다. 과거에는 파나쉐이브 브랜드로 나오기도 했다. 일본 내수시장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필립스와 브라운의 압도적인 점유율에 밀리는 2강 1약의 구도에서 1약에 해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면도기 모델을 네덜란드에서 생산하는 필립스, 독일에서 생산하는 브라운처럼 파나소닉 또한 람대쉬 브랜드로 출시하는 중~고가 라인업[27]은 전부 일본공장에서 생산한다. 특기할만한건 날, 망, 배터리교체같은 소모품 서비스를 제외한 수리가 3년 무상이라는것. 경쟁사인 브라운, 필립스는 각각 1년과 2년인데 비해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AS의 질적인 부분에서도 차이가 심한데, 브라운과 필립스는 완전방수가 가능한 모델에 대해서 내부수리를 위해 분해를 할 경우 방수가 불가능해진다며 리퍼만 가능하다는 정책을 고수하는 중이다. 이게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면도기에 들어가는 리튬이온/니켈수소 충전지는 충방전을 계속하다보면 결국 수명이 다하여 용량이 급격히 줄어들어버리는데, 이 충전지를 교체할 수 없다는건 결국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전기면도기가 소모품이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28] 반면 파나소닉은 완전방수 모델에 대해서도 내부수리를 지원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주된 평가는 절삭력은 전기면도기 최강. 차 안에서 배니티 미러 펼치고 대충 슥슥 미는 수준이 아닌, 화장실에서 거울 보며 공들여 하는 면도로는 날면도기 못지않은 깔끔한 면도가 가능하다. 다만 건식으로 면도할경우 피부자극이 타회사 제품보다 심한편이라는 평이 다수다. 때문에 습식면도를 한다는 전제하에 전기면도기로 날면도기같이 깔끔한 면도를 하려는 소비자에게 주로 추천한다. 파나소닉의 절삭방식과 날 각도가 동양인에 최적화된 것이라는 말도 있으나, 인종보다는 수염의 굵기와 양이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냥 마케팅 문구로 보인다.
면도날과 면도망을 타사와 비교하면 장점으로는 물세척이 간편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브라운은 날과 망이 일체형이라 내부에 낀 털가루, 각질 등을 꼼꼼하게 세척하는게 힘들고 필립스는 3헤드 각각 독립된 날이 붙어있는 형태라 일일이 분리하기 상당히 귀찮다. 단점은 날/망 교체비용이 3사중 가장 비싸다는것. 파나소닉은 교체주기가 면도망 12개월, 면도날 24개월인데 면도망이 면도날 가격의 두배가 넘는다. 브라운은 날/망 일체형이고 교체주기가 18개월, 필립스도 날/망 일체형이고 교체주기가 24개월로 가장 길다. 최고가 라인업 기준 (파나소닉 ES-LV9X라인, 브라운 9시리즈, 필립스 9000 프레스티지 시리즈) 1년으로 비용을 계산해보면 파나소닉>필립스>브라운 순이다.
무광 은색, 검정색, 연파랑 등의 무난한 색이 주된 라인업에 디자인도 세련되다는 평을 듣는 브라운과 필립스와는 달리 알록달록한 색조의 유광 빨강색, 유광 파란색, 유광 백색 등의 촌스러운 색상과 울퉁불퉁한 바디 디자인을 오랫동안 고수하여 원성을 듣다가 2020년 출시한 ES-LV97, ES-LV67 두 모델[29]부터는 무광 검정색에 모난 것 없는 바디로 호평을 받는 중.
대부분의 면도기 모델을 네덜란드에서 생산하는 필립스, 독일에서 생산하는 브라운처럼 파나소닉 또한 람대쉬 브랜드로 출시하는 중~고가 라인업[27]은 전부 일본공장에서 생산한다. 특기할만한건 날, 망, 배터리교체같은 소모품 서비스를 제외한 수리가 3년 무상이라는것. 경쟁사인 브라운, 필립스는 각각 1년과 2년인데 비해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AS의 질적인 부분에서도 차이가 심한데, 브라운과 필립스는 완전방수가 가능한 모델에 대해서 내부수리를 위해 분해를 할 경우 방수가 불가능해진다며 리퍼만 가능하다는 정책을 고수하는 중이다. 이게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면도기에 들어가는 리튬이온/니켈수소 충전지는 충방전을 계속하다보면 결국 수명이 다하여 용량이 급격히 줄어들어버리는데, 이 충전지를 교체할 수 없다는건 결국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전기면도기가 소모품이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28] 반면 파나소닉은 완전방수 모델에 대해서도 내부수리를 지원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주된 평가는 절삭력은 전기면도기 최강. 차 안에서 배니티 미러 펼치고 대충 슥슥 미는 수준이 아닌, 화장실에서 거울 보며 공들여 하는 면도로는 날면도기 못지않은 깔끔한 면도가 가능하다. 다만 건식으로 면도할경우 피부자극이 타회사 제품보다 심한편이라는 평이 다수다. 때문에 습식면도를 한다는 전제하에 전기면도기로 날면도기같이 깔끔한 면도를 하려는 소비자에게 주로 추천한다. 파나소닉의 절삭방식과 날 각도가 동양인에 최적화된 것이라는 말도 있으나, 인종보다는 수염의 굵기와 양이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냥 마케팅 문구로 보인다.
면도날과 면도망을 타사와 비교하면 장점으로는 물세척이 간편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브라운은 날과 망이 일체형이라 내부에 낀 털가루, 각질 등을 꼼꼼하게 세척하는게 힘들고 필립스는 3헤드 각각 독립된 날이 붙어있는 형태라 일일이 분리하기 상당히 귀찮다. 단점은 날/망 교체비용이 3사중 가장 비싸다는것. 파나소닉은 교체주기가 면도망 12개월, 면도날 24개월인데 면도망이 면도날 가격의 두배가 넘는다. 브라운은 날/망 일체형이고 교체주기가 18개월, 필립스도 날/망 일체형이고 교체주기가 24개월로 가장 길다. 최고가 라인업 기준 (파나소닉 ES-LV9X라인, 브라운 9시리즈, 필립스 9000 프레스티지 시리즈) 1년으로 비용을 계산해보면 파나소닉>필립스>브라운 순이다.
무광 은색, 검정색, 연파랑 등의 무난한 색이 주된 라인업에 디자인도 세련되다는 평을 듣는 브라운과 필립스와는 달리 알록달록한 색조의 유광 빨강색, 유광 파란색, 유광 백색 등의 촌스러운 색상과 울퉁불퉁한 바디 디자인을 오랫동안 고수하여 원성을 듣다가 2020년 출시한 ES-LV97, ES-LV67 두 모델[29]부터는 무광 검정색에 모난 것 없는 바디로 호평을 받는 중.
3.6. 배터리[편집]
2009년 12월, 경영부진에 시달리는 산요를 6,600억엔에 인수하여 eneloop 등의 충전지 원천기술과 함께 휴대전화, 내비게이션 원천기술을 확보한다. 특히 산요로부터 인수한 브랜드 중 쌀을 빵으로 만드는 제빵기 <Gopan>은 메가히트 상품.
건전지분야에서는 국내에는 에네루프 라인업인 충전지나 리튬계 버튼전지가 일반적이지만 일본내수나 일부국가에서는 압도적인 인지도를 자랑한다, 특히 일본내수에서는 파나소닉과 후지쯔 등의 인기로 듀라셀과 에너자이저는 찾아보기 힘들정도이며 저렴한 망간전지(클래식한 디자인이 매력적이다)부터 고성능 에볼타 네오까지 생산중이며 대부분의 편의점이나 매장에서 파나소닉 건전지를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6F22(9V사각)나 리튬계 버튼전지나 에네루프라인업은 인지도가 있으며, 알카라인 제품도 판매중이기는 하다.
파나소닉은 TV의 패배로 빼앗긴 주도권을 산요의 태양광 사업/리튬이온전지를 통해 되찾고자 했지만, 태양전지는 중국의 저가공세를 이겨내지 못해 PDP 공장을 태양전지 공장으로 전환하려던 계획을 포기했고, 리튬이온전지 역시 산요 인수 이후 2년간 가격이 30% 이상 하락한데다 엔고까지 겹쳐 경쟁력을 크게 잃었다.
2010년 리튬이온전지는 삼성SDI에게 처음으로 1위를 내어준 이후 엎치락뒷치락하다 2011년 말부터는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며 승패가 갈린 형국이다. 2012년 2분기 기준 점유율은 19.6%. (1위인 삼성은 28%)
경영진은 산요 인수가 리튬 이온 전지에서 큰 시너지가 될 것이라 기대했으나, 정작 이후의 파나소닉 관계자 인터뷰에 따르면 "양사 기술에서 서로 도움을 줄 요소가 거의 없었다. 억지로 둘을 합쳐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꼴. 기술적 검토를 조금만 제대로 했어도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란 평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산요 인수는 파나소닉 몰락의 또다른 원인이 되었다는 평가.
2013년 실리콘밸리의 전기자동차 업체인 테슬라가 급성장하면서 주 납품업체인 파나소닉의 범용 리튬이온전지를 엄청나게 구매하여 매출을 견인해주고 있다는 것이 위안. 테슬라와 파나소닉이 합작으로 기가팩토리라는 대규모 이차전지 생산공장을 설립하려 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에 대한 회의론도 있었지만 결국 초대형 배터리 공장에 투자한 테슬라의 전략은 옳았다.
2014년 당시 전기차 배터리는 충분하다며 테슬라의 결정을 비웃었던 폭스바겐은 배터리 업체를 인수하고 배터리 자체 생산에 뛰어들었다.
2017~2018년에도 배터리 부문에서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고 다른 업체들을 따돌리기 위해 수백억 엔의 투자를 단행해서 미국 네바다 주와 중국 다롄에 공장을 증설하며, LCD공장이었던 효고 현 히메지에 새 배터리공장을 만드는 등 지속적으로 배터리 부문에 관심을 두고있다.
2019년 중국의 CATL이 급성장하는 바람에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를 빼앗기고 2위로 내려앉았다. 거기에 LG화학, 삼성SDI 등의 한국 기업들도 중국 기업들 못지않게 강세이다.
2020년부터는 LG에너지솔루션에게도 밀려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3위를 차지했다. 시장점유율
2021년에는 파나소닉이 시장 점유율 3위를 지켰으나 20년 점유율 18.4 %에서 21년 12.2%로 줄어드는 상황으로 한국과 중국의 경쟁업체의 성장세가 무서운 상태다.
미국의 중국 배터리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40억 달러를 들여 미국 현지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는다고 한다. 기존에는 중국 생산분을 테슬라에게 공급했으나 규제 때문에 공급이 불가능해졌기 때문.
2023년 6월 업계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북미 지역에 최소 2개의 신규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는 4680배터리 제품 양산을 위한 물밑 작업이기도 하다. 이미 파나소닉은 테슬라향 2170원통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생산해오고 있다. 오는 2031년이면 연간 20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생산 여력을 갖추게 된다.
2025년 캔자스에 2170 원통형 배터리 주력 공장이 완공 예정이다. 이곳의 배터리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제외된 테슬라 모델 3에 적용될 경우, 다시 보조금 수령을 노릴 수 있게 된다.
건전지분야에서는 국내에는 에네루프 라인업인 충전지나 리튬계 버튼전지가 일반적이지만 일본내수나 일부국가에서는 압도적인 인지도를 자랑한다, 특히 일본내수에서는 파나소닉과 후지쯔 등의 인기로 듀라셀과 에너자이저는 찾아보기 힘들정도이며 저렴한 망간전지(클래식한 디자인이 매력적이다)부터 고성능 에볼타 네오까지 생산중이며 대부분의 편의점이나 매장에서 파나소닉 건전지를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6F22(9V사각)나 리튬계 버튼전지나 에네루프라인업은 인지도가 있으며, 알카라인 제품도 판매중이기는 하다.
파나소닉은 TV의 패배로 빼앗긴 주도권을 산요의 태양광 사업/리튬이온전지를 통해 되찾고자 했지만, 태양전지는 중국의 저가공세를 이겨내지 못해 PDP 공장을 태양전지 공장으로 전환하려던 계획을 포기했고, 리튬이온전지 역시 산요 인수 이후 2년간 가격이 30% 이상 하락한데다 엔고까지 겹쳐 경쟁력을 크게 잃었다.
2010년 리튬이온전지는 삼성SDI에게 처음으로 1위를 내어준 이후 엎치락뒷치락하다 2011년 말부터는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며 승패가 갈린 형국이다. 2012년 2분기 기준 점유율은 19.6%. (1위인 삼성은 28%)
경영진은 산요 인수가 리튬 이온 전지에서 큰 시너지가 될 것이라 기대했으나, 정작 이후의 파나소닉 관계자 인터뷰에 따르면 "양사 기술에서 서로 도움을 줄 요소가 거의 없었다. 억지로 둘을 합쳐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꼴. 기술적 검토를 조금만 제대로 했어도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란 평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산요 인수는 파나소닉 몰락의 또다른 원인이 되었다는 평가.
2013년 실리콘밸리의 전기자동차 업체인 테슬라가 급성장하면서 주 납품업체인 파나소닉의 범용 리튬이온전지를 엄청나게 구매하여 매출을 견인해주고 있다는 것이 위안. 테슬라와 파나소닉이 합작으로 기가팩토리라는 대규모 이차전지 생산공장을 설립하려 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에 대한 회의론도 있었지만 결국 초대형 배터리 공장에 투자한 테슬라의 전략은 옳았다.
2014년 당시 전기차 배터리는 충분하다며 테슬라의 결정을 비웃었던 폭스바겐은 배터리 업체를 인수하고 배터리 자체 생산에 뛰어들었다.
2017~2018년에도 배터리 부문에서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고 다른 업체들을 따돌리기 위해 수백억 엔의 투자를 단행해서 미국 네바다 주와 중국 다롄에 공장을 증설하며, LCD공장이었던 효고 현 히메지에 새 배터리공장을 만드는 등 지속적으로 배터리 부문에 관심을 두고있다.
2019년 중국의 CATL이 급성장하는 바람에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를 빼앗기고 2위로 내려앉았다. 거기에 LG화학, 삼성SDI 등의 한국 기업들도 중국 기업들 못지않게 강세이다.
2020년부터는 LG에너지솔루션에게도 밀려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3위를 차지했다. 시장점유율
2021년에는 파나소닉이 시장 점유율 3위를 지켰으나 20년 점유율 18.4 %에서 21년 12.2%로 줄어드는 상황으로 한국과 중국의 경쟁업체의 성장세가 무서운 상태다.
미국의 중국 배터리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40억 달러를 들여 미국 현지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는다고 한다. 기존에는 중국 생산분을 테슬라에게 공급했으나 규제 때문에 공급이 불가능해졌기 때문.
2023년 6월 업계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북미 지역에 최소 2개의 신규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는 4680배터리 제품 양산을 위한 물밑 작업이기도 하다. 이미 파나소닉은 테슬라향 2170원통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생산해오고 있다. 오는 2031년이면 연간 20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생산 여력을 갖추게 된다.
2025년 캔자스에 2170 원통형 배터리 주력 공장이 완공 예정이다. 이곳의 배터리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제외된 테슬라 모델 3에 적용될 경우, 다시 보조금 수령을 노릴 수 있게 된다.
3.7. 자전거[편집]
자전거도 만든다.[30] 일본공식홈페이지POS(Panasonic Order System)홈페이지 원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어린 시절 자전거 가게에서 일하던 사람이다. 티타늄 프레임도 한때 만들었으나, 하이엔드 보다는 생활용 자전거를 주로 생산하고, 판매도 내수에 집중하고 있어 한국에서 인지도는 낮지만 클래식 자전거 팬들에게는 은근히 알려진 브랜드. 일본 옥션은 폐쇄적인 구조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하여 잘 가는 곳이 아니며 주로 이베이에서 구입해온다. 당연히 길에서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 매우 희귀하다. 현재 픽시자전거 열풍을 타고 파나소닉제 경륜프레임이 잘 알려진 편이다. 품질이 매우 좋은 편. 일본 케이린경기에서 자주 사용된다. 그렇다고 해서 경륜자전거만을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로드,MTB등 다양하게 만들며, 합리적인 가격에 오더메이드를 제공한다(수제, 크로몰리, 105 기준으로도 20만엔 언저리이다). NJS 인증을 받은 프레임들이다, 자회사로 파나레이서(Panaracer)라는 자전거 타이어 전문 회사가 있다. 이쪽에서 만든 로드사이클용 타이어는 한국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전량 일본생산이며, 일본사이트 방문시 고성능(크로몰리, 알루미늄, 타이타늄 등 금속제)제품 군도 있으며 1,000g대 초반의 경량 프레임도 존재한다. 일본내에 평가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며, 소규모 수작업 공방들(경륜 등의 NJS 공방)보다는 못하지만 대만이나 중국 등의 대량 생산 제품보다는 훨씬 좋은 평을 받으며 준프리미엄 정도로 인정 받는다. 가격 역시 중간 급이고, 자동차처럼 오더메이드만 받는다.
자사의 전지와 모터를 응용하여 전동자전거도 내놓고 있다. 전기자전거에서는 우수한 출력을 바탕으로 일본내 탑3안에 드는 메이저 회사이다.
전량 일본생산이며, 일본사이트 방문시 고성능(크로몰리, 알루미늄, 타이타늄 등 금속제)제품 군도 있으며 1,000g대 초반의 경량 프레임도 존재한다. 일본내에 평가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며, 소규모 수작업 공방들(경륜 등의 NJS 공방)보다는 못하지만 대만이나 중국 등의 대량 생산 제품보다는 훨씬 좋은 평을 받으며 준프리미엄 정도로 인정 받는다. 가격 역시 중간 급이고, 자동차처럼 오더메이드만 받는다.
자사의 전지와 모터를 응용하여 전동자전거도 내놓고 있다. 전기자전거에서는 우수한 출력을 바탕으로 일본내 탑3안에 드는 메이저 회사이다.
3.8. 노트북 컴퓨터[편집]
3.9. 스마트폰[편집]
2012년 2월 출시된 ELUGA 스마트폰 |
일본의 가전업체 중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세번째로 시장에 내놓은 회사이지만 일반폰은 좋게 말해서 '심플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현지 사용자들로부터 '쓸 게 못 된다'라는 평을 받는다 한다. 2012년 상반기(4~9월) 파나소닉의 일본 스마트폰 점유율은 6.7%(138만대, 7위)로, 내수 시장에서조차 8.3%의 삼성(171만대, 5위)에게 밀리는 상황이다. 2013년 8월 6일 로이터통신은 교도통신을 인용해 파나소닉이 NTT도코모에 올해 겨울용 새 스마트폰 모델 공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NTT도코모는 파나소닉이 스마트폰을 판매할 수 있는 유일한 마케팅 채널이기에 사실상 개발 중단 상태였다가 결국 일본 내수시장에서 스마트폰 사업도 철수했다. 인도 등지에서는 엘루가 시리즈 스마트폰이 여전히 시판되는 중.
루믹스폰 101P이나 파나소닉 루믹스 CM1 같은 카메라에 가까운 스마트폰을 출시한 전적이 있다.
3.10. 기타 사업[편집]
- 1990년에 유니버설 영화사 및 유니버설 뮤직 그룹[31]을 61억 달러에 인수하여, 소니의 컬럼비아 트라이스타 픽처스 인수에 이어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겨우 5년 후 57억 달러로 캐나다 씨그램에 되팔았는데 5년 동안 80억 달러 이상 재정적자를 보았기에 견딜 수 없었다고.
- 파나소닉은 업무용 장비도 제작하는데, 표면실장부품 장착기 등을 제작한다.
- 2000년대 들어오며 내세울 헤드폰이 없었는데, RP-HD10이 소니 MDR-1A보다 성능이 좋으면서 가격은 싸게 나와 주목받고 있다.
- 카오디오 사업은 내수 시장만 유지하고 있으며 수출 시장은 손을 뗀 지 오래다.
- 파나소닉 홈즈(パナホーム)라는 주택건설 사업도 하고 있다. 주로 일본 내 잇코다테나 맨션같은 저층 위주의 건물을 짓는 일을 담당 중.
- 1983년부터 1994년까지 MSX 컴퓨터를 생산하였다. MSX1과 MSX2 일부는 나쇼날 브랜드로, MSX2 일부와 MSX2+와 MSXturboR은 파나소닉 브랜드로 생산하였다. MSX 말기로 가면 사실상 파나소닉이 독점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파나소닉의 MSX 컴퓨터 참고.
- 게임큐브에 DVD를 돌릴 수 있는 파나소닉 Q를 만든 기업이 파나소닉이다.
- 오디오계에서도 테크닉스라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지금도 하이파이를 꾸준히 만들고 있으며, SL-1200이라는 턴테이블 시리즈는 이 분야 최고로 꼽힌다.
- 니치콘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캐패시터 생산업체로 오디오필들이 선호한다. 이외에도 작종 전자 소재 부품에서 여전히 유명하다.
4. 한국 시장[편집]
4.1. 한국나쇼날전기[편집]
1973년 4월 20일 흑백,컬러 TV 생산을 목적으로 아남산업과 마쓰시다가 50:50의 투자로 합작 진출한다.
1974년 국내 최초로 컬러 TV를 미국에 수출.
1975년 국내시장용 흑백 TV를 생산한다. 아남나쇼날의 브랜드로 판매.
2005년에는 일본산 파나소닉 가전을 직수입하여 아남전자 대리점에서 판매하기도 했다.[32]
1974년 국내 최초로 컬러 TV를 미국에 수출.
1975년 국내시장용 흑백 TV를 생산한다. 아남나쇼날의 브랜드로 판매.
2005년에는 일본산 파나소닉 가전을 직수입하여 아남전자 대리점에서 판매하기도 했다.[32]
4.2. 파나소닉코리아[편집]
1999년 7월 1일 일본산 가전제품의 수입이 전면자유화된 한국에도 지사를 설립하여 2004년까지 자사 TV를 정식수입하여 소개했으나 LG와의 소송분쟁과 국내 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 저하로 철수.[33]이후에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파나소닉 제품이라면 전기면도기나 안마의자 정도나 떠올릴 정도로 몰락한 상황이다.[34] 다만 산업용 시장[35]에서는 광범위한 센서제품군 덕에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있다.
2010년 이후 B2B시장 한정으로 자사 PDP TV를 정식 수입하고 있다. 일반 개인이 아닌 기업을 상대로 하는 제품이므로 사이즈가 80인치, 100인치, 150인치에 이르는 대형급 물건들. 이 중 103인치 모델은 압구정에서 서초역으로 이전한 파나소닉 프라자 서초본점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TV에 밀려서 현재는 더이상 수입하고 있지 않다.
국내 정발 기종이 아니면 당연히 수리 부품 수입도 없다. 파나소닉 일본 내수품이나 미정발 수출품을 해외 직구하는 사람은 이런 점을 유의해야 한다.
2010년 이후 B2B시장 한정으로 자사 PDP TV를 정식 수입하고 있다. 일반 개인이 아닌 기업을 상대로 하는 제품이므로 사이즈가 80인치, 100인치, 150인치에 이르는 대형급 물건들. 이 중 103인치 모델은 압구정에서 서초역으로 이전한 파나소닉 프라자 서초본점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TV에 밀려서 현재는 더이상 수입하고 있지 않다.
국내 정발 기종이 아니면 당연히 수리 부품 수입도 없다. 파나소닉 일본 내수품이나 미정발 수출품을 해외 직구하는 사람은 이런 점을 유의해야 한다.
5. 여담[편집]
- 2005년 일본 내에서 기업의 사업적 책임을 가장 잘 수행해 온 기업 2위로 선정되었다. 1위는 소니.
- 1984~1994년까지 캐논 대신 영국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광고판에 고개를 내밀었으나, 이후 한국 삼성그룹에 넘겼다.
- 시마 과장 시리즈의 배경인 하츠시바 전산은 마쯔시타/파나소닉을 모델로 한 기업이며, 작중 전개에도 현실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 시마가 사장으로 취임한 후 하츠시바의 사명을 테코트로 변경한 것도 같은 맥락. 문제는 경쟁사들의 공세와 엔고에 따른 수출 악화 등으로 인해 현실에서의 파나소닉의 위상은 계속 추락하고 있어서# 조만간 시마니트가 될 기세라고 까였는데 2012년 시마가 회사의 적자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사임 이후 그의 행적은 2013년 2월부터 주간 모닝에 연재되는 만화 시마 코사쿠에서 다뤄진다. 이 만화의 작가인 히로카네 켄시도 만화가로 직업을 바꾸기 전에 시마와 같이 마쓰시타의 광고선전부에 근무한 경험이 있다.
- GTA Chinatown wars에서 파나소닉과 어감이 비슷한 Panoramic이라는 실제 존재하는 단어를 사용한 이름의 회사가 있는데 회사 마크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파나소닉을 패러디한 회사인 듯 하다.
파일:attachment/파나소닉/panoramic.2.png
광고판도 있다. Grand Theft Auto IV에서도 알곤퀸에서 잘 보면 Panoramic사의 건물이 있다. 딱히 특이한건 없다. 헬기를 타고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지트의 TV도 여기 브랜드의 TV가 있기도 한다.
- 저스트 코즈 3에는 Panau Sonic이라는 브랜드의 라디오와 디제잉 컨트롤러 기기의 모델링이 존재하는데, 파나우는 전작의 배경이다.
- 김진명의 소설 '삼성 컨스피런시'(舊 '바이 코리아')에서는, 1983년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앞두고 자금조달 문제로 삼성이 부득불 일본 금융계에 신세를 지러 왔을 때, 같은 전자사업 부문과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를 떠나 친구이자 우군의 입장에서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만류하는 나름 선역의 기업으로(이 때는 그 시기상 '마쓰시타'라는 사명을 사용.) 등장했다. 오히려, 온갖 좋은 말로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대놓고 독려했던 노무라 증권이, 그 때를 틈타 삼성그룹의 자금줄을 장악하려고 하는 음모[38]를 은연중에 획책하는 악역으로 등장.
- 산하에 사회인야구팀을 두고 있다. 파나소닉 경식 야구부 문서 참조.
- 오사카대학의 학생들이 가장 많이 취직하는 기업이다. 매년 수십명의 오사카 대학 졸업생이 파나소닉에 입사한다.
[1] 마쓰시타 전기기구 제작소 시절까지 치면 2018년 기준 100주년을 맞았다. 공식에서도 창립 100주년이라고 홍보했다.[2] 파나소닉 홀딩스 주식회사(지주회사)의 산하에 있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파나소닉 주식회사는 도쿄도 미나토구 히가시신바시에 위치해 있다.[3]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을 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일명 '잇쇼켄메이(一生懸命)' 정신으로 일본의 회사/사업문화를 뒤바꾼 사람이다.[4] 이 National은 "국민(囯民)"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으며, 여기서 국민은 이른바 국민PC, 국민차, 국민라면, 같은 것 말할 때의 국민, 즉 비싼 물건이라서 아무나 못 사는 것을 저렴하게 만들어 모든 국민들이 다 살 수 있다는 의미의 국민이다. 저 시절, 자전거 램프 말고 가정용 전구 소켓을 만들면서 이른바 '국민 소켓(国民ソケット)'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했으며, 이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디자인대로 판매되는 제품이다.[5] 2008년에 나쇼날이 파나소닉주식회사로 변경할 때까지 쓰인 유구한 회사명이었다.[6] 다만 그때도 파나칼라처럼 접두사를 붙이는 경우는 있긴 했다.[7] National은 한글로는 '내셔널'로 읽는 것이 맞지만 일본에서 ナショナル(나쇼나루)로 홍보한 관계로 한국에서도 나쇼날로 알려져 있다. 주로 일본 내수제품에 이 상표를 붙였는데 1980년대 정식 한국 수입업체도 없었던 시절 보따리장수 등을 통해 유통된 제품이 나쇼날 상표를 붙이고 있던 터라 이게 더 많이 알려졌다. 게다가 1970~90년대 아남전자가 이 회사와 기술제휴로 TV를 생산할 무렵 아남나쇼날(Anam National)로 홍보했기 때문에 나쇼날이 더 친숙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마쓰시타 제품 정식 수입업체들이 생기면서 마쓰시타의 해외 수출용 브랜드인 파나소닉 브랜드를 붙인 제품이 수입되어 파나소닉의 인지도가 더 올라가게 된다.[8] 마쓰시타가 미국에 진출할 당시 유사상표가 있어 내쇼날이 아닌 다른 상표를 달고 팔았다고 한다. 게다가 National이라는 상표는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 등 미국에서 흔했으며, 굳이 그게 없다라도 National이라는 단어는 NTSC 등 전자 분야에서 보통명사로 워낙 많이 사용하여 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9] 사실 소형 음향기기 시장에서 소니 다음을 달리는 회사는 아이와(AIWA)였으나 아이와는 소니에서 워크맨을 발매하기 10년이나 더 전인 1969년부터 소니의 자회사였으므로 소니 다음 콩라인 회사를 파나소닉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10] 지금도 이러한 경향이 남아있기는 한데, 파나소닉 저가형 소형라디오인 RF-P50의 안테나 연결부위가 라이벌 기종인 소니 라디오 ICF-S10MK2보다 더 견고하게 설계되어있다.[11] 현재 일본에서는 '전자기기 8사'(電機8社)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대형 전자회사 8개(파나소닉은 물론 보통 IT 전문기업으로 인식되는 후지쯔와 NEC까지 포함된다)를 묶어 언급하며 과거에는 산요전기도 이 부류에 들었다. 이들 대기업들은 전기가 흐르는 것이라면 전구부터 PC, 반도체까지 모두 내부에서 제조하는 종합화를 추구했다.[12] 영화 백 투더 퓨쳐에서 마티 방에 놓여있는 탁상시계가 파나소닉제.[13] 지금은 그 중 상당수는 단종되었거나 개발도상국 중소기업의 ODM으로 만든다. 파나소닉 브랜드를 붙인 채로.[14] 오티스 엘리베이터가 일본에서 사업을 할때 파나소닉과 합작으로 National·OTIS를 세워서 함께 승강기를 생산한 적이 있다. 한국의 LG산전-오티스의 관계와 비슷하며 한국처럼 여기서도 파나소닉의 승강기사업부를 오티스가 통째로 꿀꺽해서 사업을 계속 하고 있다. 한국에 설치된 오티스엘리베이터의 해외 직수입 제품 중 미쓰비시 차임벨과 비슷한 홀랜턴 차임벨이 울리거나 차가 움직일때 진행방향 화살표가 점멸하는 제품이 있다면 그게 바로 파나소닉과 오티스의 합작 제어반을 쓴 제품이다. [15] 유튜브에 1980년대 일본 전자기업의 광고를 제품 분야별로 쪼개서 20개 이상의 영상으로 만든 것이 돌아다닌다. 그 영상을 보면 오직 나쇼날/파나소닉만이 모든 영상에(즉 모든 분야의 제품에) 광고를 내고 있다.[16] OEM 생산이 많은 소니와 다르게 대부분 직영공장에서 생산한다. 라디오를 예로 들자면, 소니의 경우 대부분 일본계 협력업체 '도와다오디오'의 중국 공장(광둥성 둥관시)에서 OEM 생산되지만, 파나소닉의 경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에 있는 현지 직영공장에서 생산된다. 또한 파나소닉은 직영공장서 건전지를 생산하지만 소니는 언제부터인가 자사 브랜드 소니 스태미나를 중국을 거쳐 인도네시아 OEM으로 돌렸다. 파나소닉[17]과 후지쯔의 건전지 생산부문이 분사된 FDK라는 일본계 협력업체 소관이긴 하지만.[17] 구 산요전기[18] 지금은 중국에서도 중소기업이나 만드는 헤어 드라이어를 생각해 보자. 간단해 보이지만 단순히 열선 깔고 팬 달면 끝이 아니다. 과열 방지 센서 등 안전관련 부품들이 꽤 필요한데 이들 정밀센서까지 개발 및 생산했고 지금과는 달리 20~30년전만 해도 그런 센서류 들은 최첨단 제품이여서 개발도상국의 중소기업이 헤어드라이어를 만들었어도 그런 부품들은 파나소닉에서 들여와 장착했다. 전자부품의 강자가 될 수밖에. PC 메인보드나 파워에 들어가는 캐패시터도 파나소닉(산요)제가 최상급으로 쳐준다.[19] 샤프(중국어 명칭은 夏普 샤푸)를 볼 때 브랜드 네임을 사명으로 못 쓴다는 것은 낭설로 보인다. "파나소닉"을 중국어로 음역하면 "怕拿索尼客"(소니에서 고객을 빼앗다는 것을 두려워하다.)라는 안 좋은 뜻이 나올까봐 아예 안 바꾸는 추정도 있다.[20] 한화 4억 3천 정도.[21] 18년 회계연도부터 미세한 사업조정이 있는데 AVC Networks 부문이 Connected Solution으로 명칭이 바뀌고 일부 AV 제품이 Appliances 분야로 이전되는 등의 변화가 생겼다.[22] 상업용 건물의 냉난방 시스템을 의미한다.[23] 인도네시아산 라디오는 PT Panasonic Manufacturing Indonesia(원래는 인도네시아의 라디오 생산 향토업체였으나 이후에 파나소닉에 흡수)라는 별도의 현지 직영 법인이 생산을 담당.[24] 전장 5조, 배터리 3조6천억[25] 2005년부터 개장한 아마가사키 라인에 쏟은 설비투자는 당시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가 건설한 TV용 7~8세대 2개 라인에 해당하는 6천억엔에 달했다.[26] 다만 어디까지나 텔레시네를 응용한 24p 기반 60i다보니 디텔레시네를 안 하면 일정 간격마다 프레임이 인터레이스로 번진다.[27] 람대쉬 브랜드가 아닌 저가 라인업(ES-SA40,ES-SL10 등)은 중국에서 생산한다. 무상AS 기간도 1년.[28] 브라운과 필립스의 보증기한 내의 면도기는 무상리퍼, 보증기간이 경과한 면도기는 인터넷 최저가보다 비싼 수준의 유상리퍼를 진행한다.[29] 사실 두 모델의 본체 기능은 차이가 없고 충전스테이션의 구성품 포함유무로 구분한다.[30] 슬램덩크에서 서태웅이 타는 자전거로 묘사된다.(정확히는 지오스에 가깝다.)[31] 당시 이름은 MCA 레코드였다.[32] 사실 90년대에도 내쇼날 가전 직수입 판매 신문광고도 있었다.[33] 그전에는 국내총판들이 미국이나 동남아시아 현지생산 TV를 수입했다.[34] 사실 1980년대 이전 과거에도 나쇼날 하면 라디오, 헤어드라이어, 전기밥솥, 토스트기 등 소형, 생활가전제품을 우선 떠올렸다. TV나 VCR 하면 소니를 떠올렸듯이. 그나마 아남전자가 아남나쇼날 TV를 만들면서 다른 분야에도 인지도가 올라가기는 했다.[35] 파나소닉코리아가 아닌, '파나소닉디바이스세일즈코리아'라는 별도의 법인을 통해 취급한다. 이쪽은 B2B 부품 전용.[36] 링크의 기사에는 '패나소닉(주)'이라고 적혀 있으나, 발음상의 오타로 보인다.[37] 2018년 현재 지분 70%.[38] 노무라증권을 중심으로 구성한 컨소시엄에서, 삼성에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작중 설정상으로 삼성그룹의 핵심 자금원 중 하나였던 동방생명 사의 주식을 담보로 전환사채를 요구했는데, 일본 금융계에서 빌려온 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그 채무는 즉각 동방생명 사의 주식으로 전환되어 노무라 증권 측에 넘어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