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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영국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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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부유럽으로 보기도 한다.
** 지리적으로는 보스포루스 해협 이서의 일부 지역(동트라키아)만이 남유럽에 속하나 정치, 경제, 군사, 사회문화적인 이유로 터키 전체를 남유럽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 지리적인 이유로 서아시아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민족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그리스와 가깝기에 남유럽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 동유럽으로 보기도 한다.
지브롤터
Gibraltar
파일:1000000418.jpg
지브롤터의 지도
파일:1000000416.jpg
지브롤터의 자세한 지도
파일:지브롤터 기.svg
지브롤터의 기
면적
6.7 km²
국가
인구
34,003명[1]
시간대
UTC+01:00 (CET)

1. 개요2. 역사3. 어원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지브롤터는 영국의 해외 영토로, 이베리아반도 남단부 스페인 지브롤터 해협에 위치해있다.

지브롤터는 유럽 대륙의 남서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현재 영국의 해외 영토로 지정되어 있으며, 북쪽으로 스페인과 접하고 있다.

지브롤터는 면적이 약 6.8 km²에 불과하지만,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오랜 역사 동안 여러 국가의 관심을 받아왔다. 이 지역의 가장 두드러진 지형적 특징은 높이 약 426 m의 석회암 절벽인 지브롤터 바위로, 이는 과거부터 군사적 요새로 활용되었으며 오늘날에는 관광 명소로도 유명하다.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덥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비교적 온화하고 습하다. 지브롤터 해협을 따라 강한 바람이 자주 발생하며, 이는 항해 및 기상 조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으로는 관광업과 금융업, 해운업이 주요 산업을 이루고 있다. 특히 낮은 세율과 규제 완화로 인해 금융 서비스업이 발달했으며, 면세 혜택을 제공하는 쇼핑 관광도 활발하다. 또한, 항구와 항공 교통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며,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주요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영국의 주권 아래 있으나, 스페인은 지브롤터에 대한 영유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은 영국령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하며, 이에 대한 주민 투표에서도 압도적인 비율로 영국과의 유대를 유지하는 선택을 해왔다.

문화적으로는 영국과 스페인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으며, 영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되지만, 스페인어도 널리 통용된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는 다문화적 환경을 이루고 있으며, 전통적인 영국식 생활양식과 지중해식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2. 역사[편집]

711년 이슬람교도인 타리크가 무어인을 이끌고 지브롤터를 점령하였고, 타리크는 이곳을 거점으로 스페인 본토로 침입하였다. 그 후 스페인과 이슬람은 이곳을 점령하려고 많은 전쟁을 벌였다.

170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참가하였던 영국군이 지브롤터를 점령하였고, 그 후 계속 영국령이 되었다.

1713년부터 영국령이 된 지브롤터는 스페인 이베리안 남단에 위치한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요충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지브롤터 바위산의 북쪽 비탈을 닦아 군용 비행장이 건설되었고,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지브롤터 해협의 군사 요충지였기 때문에 독일군의 폭격을 받았다. 1969년에는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지휘하에 지브롤터의 반환을 요구하는 스페인과 지브롤터 간에 국경 봉쇄 및 경제 봉쇄가 있었으며 완전한 국경 재개는 1985년에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현재 지브롤터 곳곳에서 전쟁 때 지어 놓은 요새들과 대포들을 비롯한 공격지의 흔적, 전쟁 기념탑과 전우 묘지 등을 볼 수 있다.

지브롤터에는 2018년 3만여명의 영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정책을 자치정부가 결정한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2016년 브렉시트 투표 당시 지브롤터 거주민 96%는 유럽연합 잔류에 표를 던졌다.

3. 어원[편집]

지브롤터라는 명칭은 아랍어 Jabal Ṭāriq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타리크의 산’을 뜻한다. 이 이름은 8세기 북아프리카의 군사 지도자였던 타리크 이븐 지야드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는 711년 무슬림 군대를 이끌고 이베리아 반도를 향한 원정을 개시했으며, 현재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반도 정복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가 처음 상륙한 지역이 지금의 지브롤터였으며, 그의 이름을 기념하여 ‘타리크의 산’이라는 의미의 명칭이 붙게 되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서고트 왕국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타리크 이븐 지야드의 원정은 이슬람 세계가 유럽으로 확장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약 7,000명에서 12,000명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상륙하였고, 이후 코르도바와 톨레도를 포함한 여러 지역을 점령하면서 무슬림 세력의 영향력을 넓혀 나갔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지브롤터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이슬람 세력이 유럽으로 진출하는 전환점이 되었던 상징적인 장소로 여겨진다.

이후 중세를 거치면서 이 지역은 다양한 세력의 지배를 받았으며, 스페인과 영국의 통치 아래에서도 명칭 자체는 원래의 아랍어 형태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현대에 와서도 ‘지브롤터’라는 이름은 이곳의 역사적 유산을 반영하며, 이 지역이 단순한 지리적 위치를 넘어 문화적,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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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령식민지 Crown Colony
* 로디지아는 일방적으로 식민지 남로디지아가 자치령을 선포한거라 영국은 인정하지 않았다.
[1] 2020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