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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굴라 관련 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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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2] Ga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 ||||||||||||||||||||
별명 | 칼리굴라 Caligula | ||||||||||||||||||||
출생 | 12년 8월 31일 | ||||||||||||||||||||
로마 제국 안티움 | |||||||||||||||||||||
사망 | 41년 1월 24일 (향년 28세) | ||||||||||||||||||||
로마 제국 팔라티누스 언덕 | |||||||||||||||||||||
재위 기간 | 로마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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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관련 문서[편집]
[1] 로마 관보, 원로원 회의록 등을 통해 황제를 명기한 타키투스, 수에토니우스, 디오 카시우스 등의 표기에 의거 표기 중, 당대 로마인이 그를 줄여 부른 이름.[2] 로마 관보, 원로원 회의록 등을 통해 황제를 명기한 타키투스, 수에토니우스, 디오 카시우스 등의 표기에 의거한, 프린켑스이자 임페라토르로서의 정식 이름.[3] 약칭으로 가이우스, 가이우스 카이사르라고 했으며, 로마인들에게는 가이우스, 가이우스 카이사르로 불렸다. 가이우스, 가이우스 카이사르라는 이름은 티베리우스와 본인, 황실 일가를 비롯해 원로원, 군대에서 사용해 부른 이름이기도 하다.[4] 카이사르는 황제 제호가 아닌 성씨로 사용됐다.[5] 태어날 당시 본명. 게르마니쿠스는 할아버지 이래로 대 드루수스 일가 후손들이 성씨 뒤에 붙인 존칭 성씨이다.[6] 네로 시대의 명장 코르불로의 여동생이다. 칼리굴라와 39년 애인관계가 되었고, 임신 중 결혼한 탓에 이런 부분에서 원로원과 로마인들에게 결혼 후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7] 유니아 클라우딜라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산욕으로 사망. 이 아이도 이름을 지어줄 8일이 되기 전에 사망했다고 한다.[8] 후술하지만 대부분의 거짓참칭자처럼 사생아를 주장했던 사람이다. 네로의 근위대장이지만, 제위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칼리굴라의 사생아를 주장하면서 네로 사후 황제를 칭했던 사람이다. 네로 몰락 당시 원로원 편에 붙었다가 제위에 욕심이 생겨 느닷없이 자신이 칼리굴라의 사생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워낙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서 휘하 병사들은 당연하고 호사가들조차 이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주장을 하며 반란을 일으켰음에도 호응도 크게 얻지 못하고 살해당했다.[9] 풀네임은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 칼리굴라의 셋째 형으로 유년기때 병으로 요절했다.[10] 동명이인의 친형이라는 의견도 있다. 남자아이의 이름을 지어줄 8일 전 사망해 가이우스 칼리굴라와 동명이인인지조차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