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비우스 왕조

플라비우스 왕조는 로마 제국의 황가로, 서기 69년에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며 즉위한 베스파시아누스를 시조로 한다. 이 왕조는 서로마뿐 아니라 동로마의 황제들 또한 ‘플라비우스’라는 이름을 공통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로마 제국 전반에 걸친 상징적 연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플라비우스 왕조는 주로 1세기 말에 제위를 계승한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세 인물을 중심으로 정의되며, 이들을 흔히 ‘플라비우스 황제들’로 지칭한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몰락 이후, 이른바 네 황제의 해라 불리는 정치적 공백기를 끝내고 제위에 올랐다. 그는 이탈리아 본토 출신이 아닌 에트루리아계 속주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제국의 행정과 재정을 정비하고 황제권의 기초를 실무적으로 강화하였다. 그의 집권은 귀족 중심의 구질서로부터 군사적 실력 기반의 새로운 황제 계승 방식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아들 티투스는 베스파시아누스 사후 평화롭게 제위를 승계하였으며, 재위 기간 중 서기 79년에 발생한 베수비오 산의 대분화와 같은 재난에 민첩히 대응하였다. 그는 공공건축을 증진하고 황제의 자비로운 이미지 구축에 주력하였으나, 병으로 인해 짧은 재위 끝에 사망하였다.

뒤를 이은 도미티아누스는 형과 달리 장기간 통치를 이어갔으나, 집권 후반기에는 원로원과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그는 제국 전역의 방어선을 강화하고 중앙 행정의 효율을 높였으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으로 인해 결국 궁정 쿠데타로 암살되었다. 그의 사후, 원로원은 플라비우스 왕조를 부정하며 네르바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플라비우스 왕조는 황제 세 명으로 구성된 짧은 왕조였으나, 군사력과 행정개혁을 바탕으로 로마 제국의 기반을 재정비하고 이후 오현제 시대의 안정을 여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베스파시아누스를 비롯한 이들 황제는 ‘플라비우스’라는 이름을 공통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이 명칭은 이후의 황제들, 특히 동로마 황제들에게도 계속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성명이 아니라 제국의 계승 정통성을 상징하는 관례로 기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