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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례
2.1. 한자문화권2.2. 유럽 문화권2.3. 대중동 문화권
2.3.1. 이슬람화 이전2.3.2. 이슬람화 이후
2.4. 아메리카

1. 개요[편집]

Universal Monarchy.

특정 지역이나 민족 등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를 아우르는 군주라 자처한 지배자가 통치하는 체제로, 보편제국이라고도 한다.

문자 그대로 전세계를 지배한 군주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지만, 보편제국이라 자처한 제국의 군주들은 적어도 자국이 패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역 내에서는 그러한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단, 보편성을 추구하는 방향성은 시대에 따라, 국가에 따라 달랐는데, 다양한 피지배 민족을 포용하고 관용을 베풀며 보편성을 인정받으려 한 제국도 있었지만, 근대의 식민제국들마냥 강압적으로 피정복민을 동화시키려 한 제국도 있었다.

이러한 보편제국 이데올로기는 근대 내셔널리즘에 따른 국민국가 이념이 확산되면서 타격을 입었고, 이에 식민제국들은 군주의 보편적 권위가 아닌 지배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제국을 유지했다.

2. 사례[편집]

2.1. 한자문화권[편집]

천자(天子).

중화제국의 황제들은 천명을 받아 천하를 다스린다는 천자로서의 명분을 내세우고, 주변국 군주들을 제후왕으로 책봉하며 자국이 주도하는 조공-채봉 체제에 편입시켰으며, 국내에서는 이민족 출신을 관료로 선발하는 빈공과를 실시하는 나름의 포용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다만 중국의 주변국들은 형식적으로는 칭신하고 제후로서 조공을 바치더라도, 중국 황제가 내정에 간섭하는 것만큼은 최대한 피하려했고, 일부 국가들은 대외적으로는 왕이지만 내부에서는 황제를 칭하거나 천자국 제도를 일부 차용하기도 했다.

19세기에 들어서 청나라가 서구 열강들과의 전쟁에서 연달아 깨지고 근대적 국제법에 입각한 대등한 외교 관계를 체결하면서 위와 같은 중화적 보편제국 관념은 타격을 입었고, 1911~1912년 신해혁명을 통해 제국 자체가 붕괴되면서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2. 유럽 문화권[편집]

Dominum Mundi(세계의 군주).

2.2.1. 로마 제국[편집]

로마 제국은 단순한 선언적 의미의 보편제국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피정복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개방하여 3세기 카라칼라 황제 시대에 안토니누스 칙령을 통해 제국 내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했고, 군인 황제 시대(3세기의 위기) 이후에는 초기의 주류 민족인 라틴족 혈통과 무관한 인물들도 로마인으로서 황제가 되어 제국을 이끌었다.

또한 313년 메디올라눔(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에는 보편교회(정통교회)의 수호자라는 기독교적 권위를 확보하고, 보편공의회(세계공의회)를 주최하여 교리 확립에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기독교 세계의 보편군주는 곧 로마 황제라는 공식을 확립했고, 이는 제국이 서방 영토(서로마)를 상실하고 동부(동로마)만을 유지하게 된 중세 로마 시대에도 지속되었다.

이와 같이 로마 황제들이 확립한 보편군주로서의 권위는 동시대는 물론 후대의 유럽인들에도 영향을 주어, 여러 유럽 국가의 군주들이 로마를 계승했다 주장하며 제국을 칭하는 계기가 되었다.

2.2.2. 중세 이후 서유럽[편집]

2.2.2.1. 신성 로마 제국[편집]
로마 제국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며 성립된 신성 로마 제국 역시 자국 황제가 보편군주로서의 권위를 가진다 주장했으며, 독일인, 이탈리아인, 보헤미아인(체코인) 등 다양한 민족 위에 군림하는 군주로서,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로서 권위를 내세웠다.

이러한 신성 로마 제국의 보편성은 당대에 여전히 건재했던 정통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을 비롯한 동방 정교회권 국가들에겐 전혀 인정받지 못했으나, 서방 가톨릭권에서만큼은 유효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다.

16~17세기에 이르러서는 가톨릭 자체를 부정하는 개신교가 제국을 휩쓸었는데, 그 파도가 정점에 달한 시기에 일어난 30년 전쟁은 제국을 수많은 영방국가의 집합에 불과한 상태로 전락시켰고, 전근대적 보편제국 관념이 아닌 근대적 국제법에 기초한 베스트팔렌 체제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1804년에 이르러선 교황이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을 집전하여 두번째 가톨릭 제국인 프랑스 제국을 승인하면서 형식적으로나마 유지되던 보편제국 관념이 송두리째 부정되었고, 1806년에는 아예 제국 자체가 해체되면서 서방의 보편제국이라 자처한 신성 로마 제국의 역사는 완전히 종식되었다.

이후에도 서유럽에서는 프랑스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독일 제국 등이 제국을 칭했고, 특히 신성 로마 황제 가문이었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다스리던 오스트리아 제국이 국내 개별 민족들의 내셔널리즘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보편성을 추구했으나, 끝내 시대의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고 사라졌다.
2.2.2.2. 교황[편집]
''교황은 태양, 황제''[1]

교황은 본래 군주가 아닌 로마 교구를 관할하는 성직자 직위로 시작되었으나, 가톨릭(보편) 교회라 불리는 교단의 수장으로서 기독교 세계 전체에서 보편적인 권위를 인정받으려 했고, 특히 중세 시대에 들어서 교황령이라는 세속의 영토까지 확보한 이후에는 세속 세계의 보편군주인 황제마저 굴복시키려 했다.

이는 고대 로마 제국이나 동로마 제국이탈리아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으나, 교황 자신이 관을 씌워주며 성립된 신성 로마 제국을 상대로는 명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서임권 투쟁을 거치면서 실질적인 영향력 역시 증대하여 보름스 협약 이후엔 권위가 아닌 권력의 측면에서도 황제를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위세가 절정일 때 일어난 십자군 전쟁이 연달아 실패하면서 교황권은 다시 약화되기 시작했고, 아비뇽 유수와 서방 세계 대분열, 종교 개혁과 사코 디 로마 등의 사건사고를 겪으며 교황이 보편군주로서의 위세를 누리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2.3. 대중동 문화권[편집]

2.3.1. 이슬람화 이전[편집]

아시리아의 군주들이 왕중왕을 칭하며 보편군주임을 주장했고, 이후에는 신바빌로니아와 이란계 제국들[2]이 뒤를 이어 왕중왕으로서 보편군주로서의 권위를 확보하려 노력했다.

2.3.2. 이슬람화 이후[편집]

  • 이슬람 제국 - 칼리파(할리파)
    '칼리파트(할리파트) 라술 알라', 즉 알라의 사도(라술) 무함마드의 대리자(칼리파)로서 이슬람 세계 전체의 보편군주라는 권위를 내세워 통치했다.
  • 오스만 제국 - 파디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부터 오스만 군주들은 '왕들의 주인을 뜻하는 페르시아식 칭호 '파디샤'를 사용하며 보편군주로서의 권위를 내세웠고, '카이세리 룸(로마 황제)'를 칭하며 기독교 세계의 보편군주 역시 자처했으며, 1517년부터는 위에서 언급한 칼리파 칭호까지 확보했다.
  • 이란계 제국 - 샤한샤(왕중왕)
    16세기 사파비 제국(사파비조 페르시아)가 고대 이란의 왕중왕 칭호를 부활시켜 사용했으며, 이와 별도로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사위인 초대 시아파 이맘 알리[3]의 후손이라는 권위까지 내세우며 보편군주를 자처했다. 이후의 이란계 제국들[4]은 사파비처럼 이맘의 권위를 내세우진 않았으나, 샤한샤 칭호는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이는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제정이 폐지될 때까지 지솤되었다.

2.4. 아메리카[편집]

  • 잉카 제국 - 사파 잉카
[1] 역대 교황 중 가장 막강한 권력을 자랑한 인노첸시오 3세 시기에 나온 표현.[2] 아케메네스 제국, 파르티아 제국, 사산 제국.[3]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와 결혼했고, 제4대 정통 칼리파 역시 역임했다.[4] 아프샤르 제국, 카자르 제국, 팔라비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