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편집]
Christianity |
2. 어원[편집]
3. 교리[편집]
3.1. 유일신 야훼[편집]
3.1.1. 삼위일체론[편집]
성부와 성자(예수)와 성령이 하나의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으로 선한 신을 이룬다는 삼위일체론은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 교리로 확정되어, 기독교를 유대교, 이슬람 등 다른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와 구분하는 핵심 교리이다.
역사적으로는 아리우스파, 영지주의 등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단 종파가 크게 교세를 떨친 적도 있긴 하지만, 오늘날에는 일부 군소종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가 삼위일체론을 공유하고 있다.
단, 같은 삼위일체론이라도 종파에 따라 세부적인 해석의 차이는 존재한다.
역사적으로는 아리우스파, 영지주의 등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단 종파가 크게 교세를 떨친 적도 있긴 하지만, 오늘날에는 일부 군소종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가 삼위일체론을 공유하고 있다.
단, 같은 삼위일체론이라도 종파에 따라 세부적인 해석의 차이는 존재한다.
3.1.2. 야훼 명칭의 번역[편집]
3.1.2.1. 한국어: 하느님과 하나님[편집]
3.2. 경전[편집]
3.3. 기념일[편집]
4. 세계의 기독교[편집]
4.1. 주요 종파 분류[편집]
4.1.1. 칼케돈파[편집]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부터 451년 칼케돈 공의회까지 네 차례의 세계공의회(보편공의회)[6]에서 공인된 교리를 따르는 종파들.
4.1.1.1. 가톨릭[편집]
4.1.1.2. 정교회[편집]
4.1.1.3. 개신교[편집]
4.1.1.4. 기타 칼케돈파 교단[편집]
4.1.2. 비칼케돈파[편집]
4.1.2.1. 에페소스 공의회까지만 인정하는 종파[편집]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에페소스 공의회까지만 인정하고 칼케돈 공의회를 비롯한 그 이후의 공의회들은 인정하지 않는 종파들이다.
4.1.2.1.1. 오리엔트 정교회(합성론)[편집]
칼케돈파 정교회와는 정교회라는 이름에서 유사점이 있지만 별개의 종파다.
4.1.2.1.2. 역사적 종파[편집]
칼케돈파, 합성론과 공존했으나 오늘날에는 더이상 독자적인 종파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 단성론
- 단의론[15]
4.1.2.2. 네스토리우스파[편집]
제1차 니케아 공의회와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확정된 삼위일체론만을 주류 종파들과 공유하고, 에페소스 공의회와 그 이후의 공의회들은 인정하지 않는 종파다.
현존 교단으로는 아시리아 동방교회와 동방 고대교회가 있다.
현존 교단으로는 아시리아 동방교회와 동방 고대교회가 있다.
4.1.2.3. 비삼위일체파 및 군소이단 종파[편집]
삼위일체론을 부정한 역사적 이단 종파 또는 기독교계 신흥종교들.
4.2. 세계 각국의 기독교 분포[편집]
4.3. 특정 종파의 '기독교' 명칭 독점 경향[편집]
특정 종파가 기독교 교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거나, 명칭을 선점하는데 성공한 나라들의 경우, 다른 설명 없이 그냥 기독교라 하면 해당 종파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단, 이건 어디까지나 경향성이지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므로, 해당 국가들의 언중들이 항상 그 종파만을 기독교라 부른다는 건 아니다.
단, 이건 어디까지나 경향성이지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므로, 해당 국가들의 언중들이 항상 그 종파만을 기독교라 부른다는 건 아니다.
4.3.1. 한국[편집]
오늘날 한국에서는 예수를 믿는 여러 종파를 포괄하는 의미로 '기독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용례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다른 설명 없이 그냥 기독교라 하면 개신교만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는 언어 습관이 언중들 사이에서 유지되고 있다.
이는 먼저 들어온 기독교 종파인 가톨릭이 천주교라는 독자적인 번역을 사용하면서 포교한 반면, 나중에 들어온 개신교가 기독교라는 용어를 선점하면서 비롯되었는데, 이후 다른 문화권에서는 예수를 믿는 여러 종파를 통틀어 기독교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에도 한국에서는 개신교만을 가리키는 언어 습관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이는 단순히 의식적이거나 관습적인 측면에서만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닌데,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아예 공식적으로 기독교와 천주교를 분리하고 사실상 기독교라는 명칭을 개신교가 독점하는 걸 허용하고 있는 상태다.
이는 먼저 들어온 기독교 종파인 가톨릭이 천주교라는 독자적인 번역을 사용하면서 포교한 반면, 나중에 들어온 개신교가 기독교라는 용어를 선점하면서 비롯되었는데, 이후 다른 문화권에서는 예수를 믿는 여러 종파를 통틀어 기독교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에도 한국에서는 개신교만을 가리키는 언어 습관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이는 단순히 의식적이거나 관습적인 측면에서만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닌데,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아예 공식적으로 기독교와 천주교를 분리하고 사실상 기독교라는 명칭을 개신교가 독점하는 걸 허용하고 있는 상태다.
4.3.2. 해외[편집]
개신교가 주류인 북유럽권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라는 명칭을 개신교가 독점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이탈리아와 이베리아 반도[16], 라틴아메리카 등 가톨릭의 존재감이 압도적인 문화권에서는 가톨릭이 독점하는 경향이 강하며, 그리스나 동유럽처럼 정교회가 기독교 명칭을 독점하는 경향이 강한 문화권도 있다.
영국은 16~17세기 종교 개혁 이래 성공회(잉글랜드 국교회)와 장로회(스코틀랜드 교회)를 비롯한 개신교가 절대 위위를 유지했고, 영국 출신 청교도들이 개척한 미국 역시 개신교가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기독교 명칭을 독점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20세기 이후에는 가톨릭 교세도 크게 성장하고 다양한 기독교 종파를 믿는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이전과 같은 개신교의 독점성은 희석되었다.
일본의 경우, 한국과 비슷하게 개신교가 기독교 명칭을 선점한 역사가 있고, 일본 제국 시절 개신교 교단들이 일본기독교단이라는 이름으로 통폐합된 적이 있지만, 오늘날에는 개신교와 가톨릭, 정교회를 다 합쳐도 1% 남짓한 소수종교인 상태라 명칭 독점으로 인한 논란은 크게 일어나지 않는 편이다.
영국은 16~17세기 종교 개혁 이래 성공회(잉글랜드 국교회)와 장로회(스코틀랜드 교회)를 비롯한 개신교가 절대 위위를 유지했고, 영국 출신 청교도들이 개척한 미국 역시 개신교가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기독교 명칭을 독점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20세기 이후에는 가톨릭 교세도 크게 성장하고 다양한 기독교 종파를 믿는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이전과 같은 개신교의 독점성은 희석되었다.
일본의 경우, 한국과 비슷하게 개신교가 기독교 명칭을 선점한 역사가 있고, 일본 제국 시절 개신교 교단들이 일본기독교단이라는 이름으로 통폐합된 적이 있지만, 오늘날에는 개신교와 가톨릭, 정교회를 다 합쳐도 1% 남짓한 소수종교인 상태라 명칭 독점으로 인한 논란은 크게 일어나지 않는 편이다.
5. 역사[편집]
5.1. 고대[편집]
1세기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유대 지방에서 예수에 의해 창시되었으며 베드로 등의 12사도와 사도 파올로스, 사도 바르나바 등에 제국 각지로 전파되었다.
초창기에는 네로를 비롯한 로마 황제들의 박해를 받던 지하종교였으나,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마지막 박해 이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의 메디올라눔 칙령(밀라노 칙령)으로 합법종교로 공인된 후 로마 황실의 종교로 거듭났으며, 380년에는 테살로니카 칙령을 통해 로마 제국의 국교로 거듭나게 되었다.
동시대에 기독교는 로마의 주변국인 아르메니아(아르샤쿠니 왕조), 조지아(이베리아 왕국)[17], 에티오피아(악숨 왕국) 등으로도 전파되었는데, 기독교를 국교화한 시점만 따지면 해당 국가들이 로마보다도 빨랐다.[18]
4~5세기 로마 제국 치하에서 기독교는 단순히 지배적인 종교로 거듭나는데 그치지 않고, 교리 역시 4차례의 공의회를 거치면서 체계화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제1차 니케아 공의회와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는 아리우스파 등 삼위일체론에 동의하지 않는 종파가, 에페소스 공의회에서는 네스토리우스파가,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에우티케스파(단성론)과 오리엔트 정교회(합성론)이 주류 교회인 가톨릭 및 정교회에서 이탈했다.
초창기에는 네로를 비롯한 로마 황제들의 박해를 받던 지하종교였으나,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마지막 박해 이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의 메디올라눔 칙령(밀라노 칙령)으로 합법종교로 공인된 후 로마 황실의 종교로 거듭났으며, 380년에는 테살로니카 칙령을 통해 로마 제국의 국교로 거듭나게 되었다.
동시대에 기독교는 로마의 주변국인 아르메니아(아르샤쿠니 왕조), 조지아(이베리아 왕국)[17], 에티오피아(악숨 왕국) 등으로도 전파되었는데, 기독교를 국교화한 시점만 따지면 해당 국가들이 로마보다도 빨랐다.[18]
4~5세기 로마 제국 치하에서 기독교는 단순히 지배적인 종교로 거듭나는데 그치지 않고, 교리 역시 4차례의 공의회를 거치면서 체계화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제1차 니케아 공의회와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는 아리우스파 등 삼위일체론에 동의하지 않는 종파가, 에페소스 공의회에서는 네스토리우스파가,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에우티케스파(단성론)과 오리엔트 정교회(합성론)이 주류 교회인 가톨릭 및 정교회에서 이탈했다.
5.2. 중세[편집]
중세 시대에 들어서 서방에서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아리우스파 등의 이단 종파를 믿는 게르만 왕국들이 들어섰다가, 프랑크 왕국의 개종을 시작으로 여러 해당 국가들이 칼케돈파 가톨릭 교회로 개종하면서 8세기에 이르러선 서방 세계의 기독교는 가톨릭으로 정리되었다.
그 무렵 동방에서는 동로마 제국 황실의 보호를 받는 주류 칼케돈파 정교회와 칼케돈 공의회를 거부하는 단성론파(에우티케스파) 및 합성론파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의 대립이 치열했는데, 7~8세기 이슬람 제국이 오리엔트 정교회가 다수인 레반트, 이집트 등을 휩쓸고, 그나마 독립을 유지한 에티오피아(악숨) 등 사하라 이남의 합성론파 정교회 국가들와의 교류도 끊어지면서, 사실상 동방 세계의 기독교는 그리스 정교회로 정리되는 형세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은 아리우스파, 단성론, 합성론 등에 맞서 싸우느라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던, 로마 가톨릭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정교회라는 두 주류 칼케돈파 교회 간 대립이 본격화되었는데, 이들은 8~9세기의 성상 파괴 운동과 9세기 말~10세기 초 포티오스 분열 등을 겪으면서도 불안하게나마 하나의 정통교회이자 보편교회라는 입장을 공유했으나, 1054년에는 상호 파문을 주고 받으며 이른바 동서 교회 대분열을 겪고, 1204년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을 통해 파국에 이르러 완전히 별개의 종파로 갈라서게 되었다.
1261년 동로마 제국이 십자군 국가 라틴 제국을 멸망시킨 이후, 동서 교회 양측 간의 재통합을 위한 공의회가 여러 차례 열리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교황수위권 등의 교리를 놓고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아 흐지부지되었고,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을 통한 동로마 멸망 이후에는 정교회의 수장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가 이슬람 국가 오스만 제국 치하에 들어가면서 재통합 논의는 완전히 무산되었다.
그 무렵 동방에서는 동로마 제국 황실의 보호를 받는 주류 칼케돈파 정교회와 칼케돈 공의회를 거부하는 단성론파(에우티케스파) 및 합성론파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의 대립이 치열했는데, 7~8세기 이슬람 제국이 오리엔트 정교회가 다수인 레반트, 이집트 등을 휩쓸고, 그나마 독립을 유지한 에티오피아(악숨) 등 사하라 이남의 합성론파 정교회 국가들와의 교류도 끊어지면서, 사실상 동방 세계의 기독교는 그리스 정교회로 정리되는 형세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은 아리우스파, 단성론, 합성론 등에 맞서 싸우느라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던, 로마 가톨릭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정교회라는 두 주류 칼케돈파 교회 간 대립이 본격화되었는데, 이들은 8~9세기의 성상 파괴 운동과 9세기 말~10세기 초 포티오스 분열 등을 겪으면서도 불안하게나마 하나의 정통교회이자 보편교회라는 입장을 공유했으나, 1054년에는 상호 파문을 주고 받으며 이른바 동서 교회 대분열을 겪고, 1204년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을 통해 파국에 이르러 완전히 별개의 종파로 갈라서게 되었다.
1261년 동로마 제국이 십자군 국가 라틴 제국을 멸망시킨 이후, 동서 교회 양측 간의 재통합을 위한 공의회가 여러 차례 열리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교황수위권 등의 교리를 놓고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아 흐지부지되었고,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을 통한 동로마 멸망 이후에는 정교회의 수장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가 이슬람 국가 오스만 제국 치하에 들어가면서 재통합 논의는 완전히 무산되었다.
5.3. 근세[편집]
중세 이래 서방 기독교 세계에서 절대적 위상을 누리던 가톨릭은 16세기 종교 개혁으로 신흥종파인 개신교에 그 입지를 위협받는 처지가 되었고 북유럽, 북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이 개신교 국가가 되어 신구교 간 종교 전쟁이 야기되었는데, 이는 17세기 30년 전쟁으로 절정에 달했다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가까스로 진정되어, 이후 서방 기독교 세계는 종교 차이로 인한 갈등보다는 개별 국가 및 군주 간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이 전쟁의 주된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톨릭은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를 비롯한 비유럽 세계에도 전파되었는데 특히 예수회는 동아시아의 중국 및 일본까지 가톨릭을 전파했다.
개신교는 가톨릭만큼 적극적인 대외 선교를 행하지는 않았지만, 영국 청교도의 북아메리카 이주, 네덜란드 신교도 농민들의 남아프리카 이주 등 일부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타대륙으로 이주하여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 있었다.
한편 동방 정교회 세계는 14~15세기 이래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슬람 국가 오스만 제국의 직접 지배를 받거나 종속되는 암흑기를 격었는데, 오스만과 멀리 떨어져서 독립을 유지한 러시아는 이교도에게 굴복하지 않은 정교회 신앙의 마지막 수호자로서 스스로를 제3의 로마라 칭했고, 표트르 1세의 개혁을 통해 열강의 반열에 올라선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러시아 제국을 칭하고 이교도의 압제로부터 정교회 형제들을 해방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적극적인 대외 팽창을 시도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톨릭은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를 비롯한 비유럽 세계에도 전파되었는데 특히 예수회는 동아시아의 중국 및 일본까지 가톨릭을 전파했다.
개신교는 가톨릭만큼 적극적인 대외 선교를 행하지는 않았지만, 영국 청교도의 북아메리카 이주, 네덜란드 신교도 농민들의 남아프리카 이주 등 일부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타대륙으로 이주하여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 있었다.
한편 동방 정교회 세계는 14~15세기 이래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슬람 국가 오스만 제국의 직접 지배를 받거나 종속되는 암흑기를 격었는데, 오스만과 멀리 떨어져서 독립을 유지한 러시아는 이교도에게 굴복하지 않은 정교회 신앙의 마지막 수호자로서 스스로를 제3의 로마라 칭했고, 표트르 1세의 개혁을 통해 열강의 반열에 올라선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러시아 제국을 칭하고 이교도의 압제로부터 정교회 형제들을 해방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적극적인 대외 팽창을 시도했다.
5.4. 근현대[편집]
6. 관련 정치 사상[편집]
- 기독교 민주주의
- 기독교 사회주의
- 기독교 좌파
- 기독교 우파
[1] 메시아라고도 한다.[2]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3] 313년 메디올라눔 칙령(밀라노 칙령).[4] 380년 테살로니카 칙령.[5] 다만 세계 2위 종교인 이슬람의 높은 출산율로 인해 근미래어 두 종교의 순위가 역전될 거라는 예측이 있긴 하다.[6]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에페소스 공의회, 칼케돈 공의회.[7] 가톨릭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교황청과의 일치에선 벗어난 종파들.[8]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황무류성 교리에 반발하며 분리되었다.[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결과에 반발하며 형성되었다.[10] 여전히 교황청과의 일치를 유지하고 있는 전통주의 가톨릭 단체들도 있기에 모든 전통주의 가톨릭이 아니다.[1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교황좌가 공석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교단.[12] 교황공석주의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아예 자기들끼리 교황 선거(콘클라베)를 열어 교황을 따로 뽑은 교단.[13] 러시아 정교회에서 모스크바 총대주교 니콘의 전례 개혁에 반발하며 분리되었다.[14] 대부분의 교리를 주류 정교회와 공유하지만, 신력(그레고리력) 도입을 거부하고 구력(율리우스력)을 고수하자고 주장하며 분리되었다.[15] 정확히는 칼케돈파와 합성론, 단성론 사이의 절충론으로서 주장된 신학 이론이다.[16] 스페인, 포르투갈, 안도라.[17]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와는 상관 없다.[18] 그 중 가장 먼저 국교화를 시행한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 타이틀을,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최초의 기독교 국가 타이틀을 획득했다.